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초이스 > 도서
씨네21 추천도서 - <시 보다 2025>
이다혜 사진 최성열 2025-10-21

구윤재, 김복희, 김선오, 문보영, 신이인, 유선혜, 이실비, 한여진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지금, 여기’의 감각으로 시를 읽는다. 문지문학상[시] 후보작을 묶어 해마다 한권씩 출간하는 ‘시 보다’ 시리즈의 2025년 책이 출간되었다. 김복희는 쓴다. “대한민국에 사는 희망은 키가 작다.” (<새 입장>) 문보영의 시 제목은 “너에게 수상함이 없었다면 너를 좋아하기 힘들었을 거야”이다. 신이인의 <꿈의 옷>은 “너희들은 어떤 옷을 입고 자니 세상의 잠옷이란 원래 이따위일까 사랑받은 옷의 말년이 모두 이 모양이라면 나는 울지 않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침대에서 꿈으로 넘어갈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유선혜의 <모텔과 인간>은 “방에는 성행위에 필요한 모든 것이 있었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흔해서 먹먹한 살풍경으로 시작한다. 이실비는 <귀와 종>에서 택시 밖 북촌의 풍경을 바라본다. 구윤재, 김복희, 김선오, 문보영, 신이인, 유선혜, 이실비, 한여진의 기발표작 4편과 시인이 쓴 ‘시작 노트’ 그리고 선정위원의 ‘추천의 말’을 함께 읽는 이 기획은 언제나 작은 전시회에서 보내는 한나절 같은 감각을 선사한다.

무조건 시를 먼저 읽을 것. ‘시작 노트’와 ‘추천의 말’은 언제나 그다음이다. 하지만 때로는 ‘시작 노트’가 시의 (뒷이야기 같은 방식이 아니라) 연장선에서 읽힌다. 구윤재의 시와 ‘시작 노트’가 그렇다. 아이들이 서로에게 뭉친 흰을 던진다는 표현에서 눈싸움과 겨울이라는 계절을 연상한다면 “흰을 끊임없이 서로에게 던지는 영화”라는 표현, “어느 나라에서 흰은 부정한 것을 쫓는 재료라던데 흰으로 무덤을 쌓아 올리는 저 아이들은”이라는 곡절은 ‘빛 부스러기’라는 제목의 ‘시작 노트’는 “흰”이라는 단어를 둘러싼 빛과 어둠의 교집합, 스크린 같은 단어들과 더불어 깊어진다. 영화의 롱테이크처럼 하염없이 보고 있어야만 하는 어떤 풍경의 시. 이실비의 시와 ‘추천의 말’은 솔깃한 방식으로 상호 교류하고 있다. 동생이 택시에서 태어났고, 7년치 택시비를 내지 못해 엄마와 나는 내내 택시를 타고 떠돌아다닌다며 운을 떼는 <택시>를 읽으며 경험하는 막막함의 세계에서 ‘추천의 말’에서 언급되는 폭력, 혼자, 착취, 위계, 고통과 같은 단어들을 둘러보면 시에 적히지 않은 단어들이 사실 표현하고 있는 무언가를 상상하는 방법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다시 한번, 시는 시로 읽는다. 여러 시인들이 공통적으로 불러내는 장소들- 택시나 모텔, 영화 같은- 을 마음속으로 클로즈업하면서.

자유와 멀리 있는 것은? 기다림, 거울, 시계, 유리창, 구두, 등대, 역할, 투자, 소비, 뉴스, 명함, 담배, 플라스틱, 비행기, 주머니, 답장, 장갑, 은행, 숫자, 우산, 카메라, 신발장, 성냥, 메일, 호수-<칠> 중에서, 15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