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초이스 > 도서
씨네21 추천도서 - <변화하는 행성 지구를 위한 문학>
진영인(번역가) 사진 백종헌 2025-09-16

마틴 푸크너 지음 김지혜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올여름 무지막지한 더위를 통과하는 동안 그냥 이대로 살아도 되는 걸까, 하고 은근하고도 끈질기게 불안감을 느꼈다. 앞으로 매해 여름이 더 더워진다는데 전 지구적 차원에서 탄소를 줄이자는 목표는 아무리 봐도 달성하기 어려워 보인다. 사람이 저지른 잘못을 사람의 손으로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이 문제를 죄와 벌의 관점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변화하는 행성 지구를 위한 문학>의 입장이다. 책은 마치 자연과학서처럼 시작한다. “1억6천만년 전 중력의 미세한 상호작용으로 소행성대 안쪽에서 운석 조각 하나가 떨어져 나왔다.” 운석이 지구에 떨어져 연쇄작용으로 엄청난 파괴가 일어났듯, 오늘날 지구에도 대규모 자연 재난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인간의 책임이 아니라는 얘기는 아니다. 털 없는 두발 잡식성동물이 정착 생활을 하고 글쓰기를 발명하여 지식을 축적한 까닭에 지구는 엉망이 되어버렸다고 저자는 분명히 밝힌다.

현대문학의 과제는, 인류를 벌하는 묵시록적 이야기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기후변화 경감이라는 새로운 목적에 복무할 스토리텔링을 마련하는 것이다. 저자는 고대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 문학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길가메시 서사시>를 생태 비평적 관점으로 분석한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도시 생활을 찬양하며, 주인공 길가메시와 엔키두는 정착 생활을 위해 아낌없이 자원을 추출한다. 즉 성벽 안 도시 생활을 위해서는, 성벽 밖의 풍부한 자원이 필요한 것이다. 다른 문화권의 서사시들을 살펴보아도, 도시화한 세계와 대자연의 상호작용이 중요하게 나타난다.

저자는 글쓰기 자체가 도시 생활에 근거하고 있기에 자원 추출적 방식과 공모 관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그래서 여러 문화권의 이야기를 비교하고, 또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전 지구적 수준의 비평을 위해 세계문학의 개념을 빌리자고 말한다. <공산당 선언>을 발표한 마르크스와 엥겔스 또한 전세계적 사상 교류를 꿈꾸며 세계문학을 지지했다. 그렇다면 어떤 실천이 가능할까. 한 가지 방법이 세계문학 선집의 편찬을 통해 기후 스토리텔링을 찾아 나서는 일이다. 물론 쉽지는 않다. 문학선집의 경우 현실의 교사와 학생이 바라는 방향대로 구성된다. 또 스토리텔링을 즐길 때 인간은 개인이나 인물의 서사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집단적 차원에서 발생하는 기후변화를 어떻게 이야기 속에 담을 수 있을지 고민이 많다. 그렇지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은 만큼, 세계적 관심이 필요하다.

“글쓰기와 자원 추출 사이에 다양한 형태의 공모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우리가 결을 거슬러 텍스트를 읽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12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