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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원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정명원은 2006년 검사가 된 뒤 지금까지 검사로 일하고 있다. 평검사 시기에는 형사부에서 금융, 조세, 환경, 의약, 소년 등 다양한 전담으로 일했고 공판부에서 성폭력, 마약, 살인 등 다양한 죄명의 사건에 관한 공소 유지 업무 또한 담당했다. 이력에 건조하게 적힌 이 말을 한권의 책으로 풀어낸 글이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이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이 책은 사건 뒤에 있는 사람 이야기다. 뉴스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만 골라내 스치듯 보도되었을 뿐이었던 사건을 가장 가까이서 들여다보았던 사람이 그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을 말한다. ‘고등어 삼촌의 지하실 왕국’이라는 글이 그렇다. 피의자가 열 몇명쯤 되는 소년 사건이었다. 죄명은 공동폭행. 14살부터 16살의 소년들 사이에 37살의 피의자가 눈에 띄었다. 지역에서 ‘XXX 삼촌’ (이 책에서는 지역이 특정되지 않게 하기 위해 고등어 삼촌이라고 칭한다)이라고 불렸던 그는 회사 이름도
씨네21 추천도서 -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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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동시대를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김수환은 발터 베냐민(1892 ~1940)과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1898~1948)이라는 동시대인을 겹쳐보기를 권한다. “베냐민과 에이젠슈테인은 어째서 단 한번도 만나지 못한 것일까?” 다소 엉뚱해 보이는 질문에서 시작하는 탐색 작업은 단순한 연결과 대질의 작업을 넘어서고자 한다. 외견상 결코 서로 연결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대상과 주제 들을 다소간 ‘폭력적으로’ 연결시킨다. 그와 같은 부딪힘이 만들어내는 새로움의 가능성을 시험한다. 이 작업에 김수환은 “비교의 산파술”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는 베냐민과 에이젠슈테인이 공히 관여했던 세 가지 공통적 대상을 제시한다. “유리 집, 미키마우스(디즈니), 그리고 채플린.”
1장 ‘유리 집의 문화적 계보학’과 2장 ‘에이젠슈테인의 디즈니와 벤야민의 미키마우스’, 3장 ‘채플린 커넥션’으로 구성된 1부와 4장 ‘혁명과 소리’, 5장 ‘에이젠슈테인의 <자본&
씨네21 추천도서 - <비교의 산파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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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민 지음 엘릭시르 펴냄
음악방송 무대를 준비하던 남자 아이돌이 공연 중 무대 위에서 죽었다. 아이돌 그룹 ROME의 메인보컬이자 대중적 인기가 높아 예능과 광고를 종횡무진 누비던 생기 넘치던 건아의 피가 무대 바닥을 카펫처럼 물들인 기이한 현장. <아이돌 살인>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최정상 아이돌의 시체를 살펴보는 젊은 형사 리애의 시선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선하고 젠틀한 이미지로 ‘연쇄선행마’라는 별명과 함께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건아에 대한 탐문을 시작하자 리애는 그에 대한 온갖 악평부터 듣게 된다. 같은 멤버들조차 그를 ‘이중인격자에 인간이 어떻게 그렇게 꼬일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평가한다. 사건의 용의자 역시 아이돌이었던 일라, 세실, 맑음인데 인물들이 가수, 매니저, 소속사 대표 등과 같은 연예계 종사자들이라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이면이 샅샅이 드러난다. 아이돌에 문외한인 주인공 리애와 달리 그의 파트너 경원은 오랜 세실의 팬으로 웬만한 연예 전문
씨네21 추천도서 - <아이돌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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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 선 지음 홍한결 옮김 비채 펴냄
간만에 하루 정도 휴식이 주어지면 그렇게 꿀맛일 수 없다. 한숨부터 나왔던 밀린 일들을 무사히 해내고 드디어 주어지는 보상과 같은 휴식! 그런데 그 휴식이 하루에서 이틀, 일주일이 되면 휴식의 단맛이 쓴맛으로 바뀌고 불안함이 뇌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왜 일이 없지? 일이 있는데 내가 깜빡하고 놓친 건 아닐까? 이러다 아무도 나를 찾아주지 않고 도태되는 건 아닐까. 충분한 휴식을 누리면 되건만 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죄책감이 동반된다. 이렇게 누워만 있다가 완전히 잊히는 거 아니야? 그저 뒹굴뒹굴 놀기만 해도 불안감 없이 마냥 행복한 사람도 있겠지만 현대사회에서 그러기가 쉽지 않다. 아마 대다수는 기약 없는 휴일을 받으면 ‘생산적인’ 일을 찾아서 자기계발을 해야만 한다는 불안감에 시달릴 것이다. 다른 이는 몰라도 적어도 이 책의 작가는 그런 사람이다. 조니 선은 처음 집필한 그래픽노블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넷플릭스 <보잭 홀스맨&g
씨네21 추천도서 - <하던 일을 멈추고 바닷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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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수 지음 영서 그림 토닥스토리 펴냄
일과 인간관계, 한국 사회에서 평범하게 살기 위해 감당해야 하는 그 모든 것들이 지긋지긋해질 때, 사람들은 흔히 ‘아무도 없는 데 가서 며칠만 살고 싶다’고 말한다. 한때는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삶을 ‘리셋’하는 사람들, 혹은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오는 식의 생활방식이 주목받기도 했다. 그러나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라고들 말한다. 시골도, 깊은 산도 진정 사람이 없는 곳은 아니기 때문일까. <나의 완벽한 무인도>가 바로 그 ‘모든 관계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완벽한 로망을 펼치는 소설일 거라고 믿고 첫장을 펼쳤다. 이 책을 소개할 때 함께 거론되는 <삼시세끼>나 <리틀 포레스트>의 문구 역시 그런 기대를 부추겼다. 결론만 말하면 <나의 완벽한 무인도>는 일군의 ‘떠나는 힐링’ 소설들과는 다르다.
이야기는 주인공 지안이 이미 무인도에 정착해 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무슨 사연으로
씨네21 추천도서 - <나의 완벽한 무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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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완벽한 무인도> - 박해수 지음 영서 그림 토닥스토리 펴냄
<하던 일을 멈추고 바닷속으로> - 조니 선 지음 홍한결 옮김 비채 펴냄
<아이돌 살인> - 이소민 지음 엘릭시르 펴냄
<비교의 산파술> - 김수환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 - 정명원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씨네21>이 추천하는 8월의 책 – 한여름의 책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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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서가에 들이는 순간 영원히 이별할 수 없으리라는 예감을 불러일으킨다. <김혜순 죽음 트릴로지>가 그런 책이다. 2025년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처음 선보인 이 책은, 1권 <죽음의 자서전>으로 시작해 2권 <날개 환상통>을 지나 3권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에 다다르는 여정을 고스란히 담았다. 600쪽에 달하는 이 아름다운 책은 순서대로 읽기를, 순서를 뒤집어 읽기를 권한다. <죽음의 자서전> 은 첫시 <출근>에서부터 죽음과 삶 그 사이의 귀신 들림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너는 너로부터 달아난다. 그림자와 멀어진 새처럼./ 너는 이제 저 여자와 살아가는 불행을 견디지 않기로 한다.” 그리고 그렇게 자기 자신과 멀어지고 나서야 “네 직장으로 향하던 길을 간다. 몸 없이 간다.” 여자가 오늘 또 하루를 살아가는 비결이다. 그렇다고 앞서 성큼성큼 걷는 법을 익히기에는 복잡한 것들이 여자의 안에서 아우성치기
씨네21 추천도서 - <김혜순 죽음 트릴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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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전통, 그러니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권위주의에 가득 찬 정부가 들어서고 다양성을 박해하고 애국적인 행동을 강요하는 법률을 제정한다. 특히 미국 문화와 전통 보존이라는 명목하에 PACT 법안에 진보적인 의원들조차 찬성하며 법안이 통과되자 ‘미국의 전통을 위협’하는 책은 불온서적으로 분류되어 금지되고 부모가 선동가이거나 이민자일 경우 아이를 정부에서 빼앗아 위탁가정에 보내기까지 한다. 이 모든 것이 국가안보와 국민 안전을 위해서라며 정부는 국민을 감시, 검열하고 이러한 매카시즘에 가까운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 역시 서로를 위협하고 경멸하며 차별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여기까지 소개했을 때 지금 미국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대한 뉴스 같지만 실은 셀레스트 잉의 소설 <우리가 잃어버린 심장>에 대한 소개다. 2021년 <뉴요커> 표지는 아시아 여성과 어린 소녀가 지하철 플랫폼에서 손을 잡고 주변을 살피는 그림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뉴욕 내에서는 아
씨네21 추천도서 - <우리의 잃어버린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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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없는 것>은 <잘 자요, 엄마>와 <모든 비밀에는 이름이 있다>에 이은 ‘하영 시리즈’ 3부작의 최종편이다. <잘 자요, 엄마>에서 하영은 엄마가 죽고 집에 불이 나 조부모까지 죽자 재혼한 아빠의 집에 갑자기 떠맡겨진 열한살 여자아이였다. 남편이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양육하는 상황이 된 선경의 시점에서 볼 때 하영은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아이가 보이는 이상행동들, 동물을 공격한다거나 분노를 표출하며 인형을 찢는다거나 하는 행위들은 특히나 선경을 섬뜩하게 만든다. 범죄심리학을 전공한 선경이 봤을 때 아이의 돌발행동은 어린 시절 연쇄살인범들이 보였던 행동과 유사했다. ‘사이코패스는 타고나는 것일까, 만들어지는 것인가’에 대해 파헤쳤던 전작에서 사이코패스 기질을 가진 아이로 등장했던 하영이 성인이 되어 뉴욕으로 거주지를 옮겨 이름을 바꾼 후 재벌 2세 세나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것이 <나에게 없는 것>이다.
씨네21 추천도서 - <나에게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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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보편화된 시대에는 질문을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무엇을 물을지 알기 위해서는 어디에 공백이 있는지를 파악할 줄 알아야 하고,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공지능 미디어아티스트인 우숙영의 <어느날 미래가 도착했다>는 인공지능과 관련한 여러 국면에 대한 ‘질문의 책’이다. 인공지능이 추천해준 연인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인공지능이 다 해결해주는데 공부를 왜 해야 할까? 킬러로봇을 도입하면 전쟁의 희생자를 줄일 수 있을까? 어떤 질문은 답이 쉬운 것 같은데 막상 답을 하다 보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문이 이어지고, 어떤 질문은 아예 답을 할 수 없을 것같이 느껴진다. <어느날 미래가 도착했다>는 영화와 시리즈, 게임에서 시작해 수많은 뉴스 기사들을 오가며 생각해볼 만한 지점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책이다. 인공지능과 관련한 여러 이슈를 일별하며 대화를 청한다.
‘상실과 애도’을 1장에,
씨네21 추천도서 - <어느날 미래가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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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미래가 도착했다> - 우숙영 지음 창비 펴냄
<나에게 없는 것> - 서미애 지음 엘릭시르 펴냄
<우리의 잃어버린 심장> - 셀레스트 잉 지음 남명성 옮김 비채 펴냄
<김혜순 죽음 트릴로지> - 김혜순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씨네21>이 추천하는 7월의 책 - 여름 독서 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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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현정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남현정의 첫 소설집. “그러니 인생을 취소할게 오이디푸스도 아마 그랬을 거야 자기의 인생을 취소하고 싶었을 거야 쥘리앵 또한 그랬을 거야 자기의 인생을 취소하고 싶었을 거야 그런데 가만 나에게는 취소할 인생조차 없네 그렇다면 인생을 취소할게라는 말을 취소할게 인생을 취소할 일 없는 인생 없는 나는 이제부터 아무 말도 안 할 거야”. 느낌표와 물음표는 있지만 마침표는 없는, 중심이 되는 이야기가 없는(하지만 여러 개의 각주가 자기주장을 하는) <없는>으로 시작하는 단편집 <아다지오 아사이>는 ‘예측되기’에 저항하는 듯 보인다. 소설 텍스트 바깥에서 끌어오는 레퍼런스들은 의미심장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는데, <부용에서>는 영화 <국외자들>과 소설가 찰스 부코스키, 칸딘스키의 그림 <곡선의 지배> 같은 작품들이 언급된다. 외삼촌을 만나기 위해 부용이라는 타지에 발을 들인 ‘나’의 이야기로, 어딘가 꿈을
씨네21 추천도서 - <아다지오 아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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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권영주 옮김 비채 펴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어떻게 영화를 구상하는가. <영화가 태어나는 곳에서>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의 제작 과정 전반을 처음부터 끝까지 기록한 에세이다. 2022년 11월30일, 고레에다 감독은 <브로커>의 프랑스 개봉에 맞춰 방문한 파리에서 배우 카트린 드뇌브와 식사를 하게 되었다. 본인이 고른 식당에 조금 늦게 도착해서는 왜 안 먹고 기다렸냐고 말문을 열더니 음식이 나오고는 이런저런 투덜거림이 이어졌다는 회고로 책은 시작한다. 통역을 거친 대화는 뉘앙스에 대한 상상이 더해져 “어딘지 모르게 기키 기린씨 느낌이 가미됐다는 것을 미리 고백해둔다.” 카트린 드뇌브와 기키 기린은 1943년생 동갑.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공통점은 “재미있어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점이다. 그리고 <영화가 태어나는 곳에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자신의 “재미있어하는 능력”을 살뜰히 담은 책이다.
먼저 설명하면
씨네21 추천도서 - <영화가 태어나는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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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본 지음 문학동네 펴냄
<슬램덩크>의 2025년 버전 재녹음이 결정되었고 당신도 성우 오디션에 참여한다고 가정하자. 오디션에 합격하면 누구를 맡고 싶어? 당신의 답은? <차라리 잠든 밤>의 재하의 답은 이렇다. 서태웅. 아, 서태웅 좋지. 아마도 재하의 목소리가 엄청난 미남자인가보다. 누가 뭐래도 <슬램덩크> 최고의 미남은 서태웅이 아니던가. 재하가 서태웅을 선택한 이유는 다소 황당하다. “대사가 적어서.” 선배가 다시 고르라고 하자 재하는 이 사람을 고른다. “그럼 권준호.” 권준호? 바로 그 ‘안경 선배’다. “재하는 권준호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에 있어서 좋다고 했다. 농구 천재나 지난한 과거를 가진 양아치 슈터가 아니라, 벤치 위에서 스타팅 멤버에 뽑히지 못한 3학년 벤치 선수. 부주장이라는 애매한 감투도 재하에게 이입할 여지를 주었다.” 그런 애매한 인물들에게 애정을 느끼고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김본 소설집
씨네21 추천도서 - <라디오 스타가 사라진 다음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