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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 스탠딩 지음 안효상 옮김 창비 펴냄
‘시간은 금이다’라는 그 유명한 관용구를 끌어오지 않더라도, 시간에 관련한 대부분의 격언들은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충실히 아껴 쓸 것을 조언한다. 이른바 ‘갓생’이라 불리는 시대 정서 역시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고 자기 계발에 열중하는 이들을 위해 탄생했다. 주말에 10시간을 누워서 휴식을 취한 사람과 회사에 출근해 일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전자의 경우처럼 시간을 보내면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거나 주변에서도 허송세월한 것으로 치부한다. 최저임금이 시간당 금액으로 책정되는 것만 봐도 현대사회에서 시간은 곧 노동력이기 때문이다. 주어진 시간에 얼마만큼 자본주의사회에 충실한 노동력을 제공할 것인가가 그 사람의 가치로 평가되는 것이다. <시간 불평등: 시간의 자유는 어떻게 특권이 되었나>의 원제는 ‘시간의 정치’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시간이 왜 정치적으로 중요한 의제이며, 산업사회에서 시간이라는 규율을 정함으로써 어떻게 계급과 불평
씨네21 추천도서 - <시간 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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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불평등> 가이 스탠딩 지음 안효상 옮김 창비 펴냄
<이렇게 바삭한 카사바칩> 이경 지음 문학동네 펴냄
<세계에 대한 믿음> 김홍중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토끼들의 섬> 엘비라 나바로 지음 엄지영 옮김 비채 펴냄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1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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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 지음 비채 펴냄
“한줄 메시지로 요약할 수 없는 소설을 쓰고 싶다.” 이지 소설가의 등단 포부다. 2015년 단편소설 <얼룩, 주머니, 수염>이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그는 본격적으로 집필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담배를 든 루스>로 제7회 중앙장편문학상을 연이어 수상했으며 2022년 첫 소설집 <나이트 러닝>을 출간했다. <노란 밤의 달리기>는 이지 소설가가 2년 만에 내놓은 신작 장편으로 수시로 재개발이 이루어지는 을지로의 세운상가에 터를 잡은 청년 예술가들의 삶이 그려진다. 젊은 예술가들은 쉽게 안정을 꿈꿀 수 없다. 주변을 제대로 가꿔두면 지역이 유명해지며 임대료가 오르고, 결국 거처를 옮기는 건 다시 예술가들이기 때문이다. 전작들에서 그러했듯 이지 소설가는 인물들이 놓인 현실을 낭만적으로 묘사하지 않으며 세운상가라는 지역과 청춘들의 일상을 바탕으로 상실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세운상가의 많은 것들이
씨네21 추천도서 - <노란 밤의 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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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려령 지음 창비 펴냄
결혼정보업체 ‘웨딩라이프’의 자회사 NM(new marriage) VIP팀에 인지가 적을 둔 지도 6년차가 되었다. 일반적인 결혼정보업체의 목적은 두 남녀의 만남을 주선하고 최종적으로 이들이 결혼에 종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NM 직원들의 업무는 다르다. 이들은 VIP 회원들이 곧바로 결혼식부터 올릴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NM 직원들은 본인이 직접 기간제 부인 혹은 기간제 남편으로서 계약기간 동안 회원들의 곁을 지킨다. 대학생 시절, 인지는 어머니가 주도한 모종의 사건으로 양성애자인 자신의 애인을 진창으로 몰아넣고 그와 헤어져야 했다. 어머니에 대한 반감으로 입사한 회사였지만 인지는 NM의 업무와 대우에 적정한 만족감을 느낀다. 일전에 소개팅으로 만났던 엄태성의 집요한 스토킹으로부터 고통받던 중, 인지는 전남편 중 한 사람에게서 재결합 신청을 받고 다섯 번째 결혼 생활을 시작한다.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 <가시고
씨네21 추천도서 - <트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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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란 지음 문학동네 펴냄
이모는 이혼한 후 혼자 살다가 어머니의 암 투병 이후 ‘나’와 부모님이 함께 사는 집으로 들어왔다. 어머니의 간곡한 뜻으로 시작된 이 동거는 어머니의 병세가 심각해지면서 이모가 집안 살림을 도맡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제 어머니는 세상에 없다. 자매의 죽음 앞에서 꼼짝 않고 앉아 있는 이모는 어머니와 흡사해 보였지만 둘은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지금의 ‘나’는 180종류가 넘는 빵과 과자를 자유자재로 만들 수 있게 되었지만, 크루아상만큼은 만들지 않는다. 어머니가 건강했던 시절의 아침 풍경에 늘 존재했던 어머니의 다종다양한 크루아상 샌드위치는 지나고 보니 평온함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었으니까. <식빵 굽는 시간>은 1996년,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이다. 식빵, 브리오슈, 크루아상, 화이트케이크 같은 각종 빵의 이름이 나열되다가 소금, 편지, 외출, 흑백사진 같은 단어로 이어지는 목차는 어딘지 허기진 인상이다
씨네21 추천도서 - <식빵 굽는 시간·가족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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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모과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다이내믹함으로는 내로라하는 대한민국에선 왜 이토록 유난히 반사회적 활동이 반복되어온 걸까?” <스위트 솔티>에 수록된 단편 <시대 지체자와 시대 공백>을 읽다가 SF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지금 여기를 연상시키는 문장을 만났다. 이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에 달린 주석은 이렇다. “5·18 광주민주화항쟁 첫 희생자인 김경철씨는 청각장애인이었습니다. 김경철씨를 비롯한 국가 폭력 희생자들의 명복과 안식을 기원합니다.” 소설 속 배경이 되는 미래사회에는 타고난 그대로의 몸인 플랫보디와 대조되는 ‘스마트보디’가 존재한다. 그런데 시대 리터러시가 낮은 ‘시대 지체자’들을 상대하는 상담업무를 하는 화자는 장형철이라는 사람을 만난다. 몸의 시간이 정지한 상태로 미래로 건너온 장형철은 간단한 시력 교정을 통해 약시를 고칠 수 있는 현재에 머물기보다 아내와 딸이 있는 과거로 돌아가려고 한다. 화자는 2130년으로 갑작스레 이동해 시대 지체자가
씨네21 추천도서 - <스위트 솔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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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트 솔티> 황모과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식빵 굽는 시간·가족의 기원> 조경란 지음 문학동네 펴냄
<트렁크> 김려령 지음 창비 펴냄
<노란 밤의 달리기> 이지 지음 비채 펴냄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12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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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다 히카 지음 | 김영주 옮김 | 문학동네 펴냄
하라다 히카의 음식 소설을 좋아한다. 대표적인 것이 <낮술> 시리즈인데 이혼 후 밤새 누군가의 옆을 지켜주는 특이한 사무소 일을 하는 여성 쇼코가 퇴근 후 홀로 낮술과 함께 그 지역의 명물 안주를 즐기는 내용이 인물들의 소소한 사건과 어우러지는 따뜻한 소설이다. 그외에 <우선 이것부터 먹고>나 <도서관의 야식> 역시 <낮술>처럼 일본 특유의 정겨운 음식과 주요 에피소드가 얽히며 인물들이 위로를 받거나 사건이 해소되는 내용이다. <헌책 식당>은 여기에 책이라는 중요한 주인공을 하나 더 등판시킨다. 하라다 히카의 음식 묘사는 항상 문장에서 은은한 빛과 맛이 배어나오는데 <헌책 식당>은 헌책방이 배경이 되어 여기에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책을 통해 소통하고 치유받는다. 아무리 ‘텍스트힙’이 대세라고 해도 책은 여전히 자신을 강하게 드러내거나 항시 화제에 오르는 미디어의
씨네21 추천도서 - <헌책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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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맥도나 지음 | 서민아 옮김 | 을유문화사 펴냄
영화 <킬러들의 도시>(2008), <쓰리 빌보드>(2017), <이니셰린의 밴시>(2022)를 쓰고 연출한 마틴 맥도나는 1996년 <뷰티 퀸>이라는 희곡을 시작으로 극작가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필로우맨>(2003)이 출간되었다. 2007년에 최민식이 카투리안을, 윤제문이 카투리안의 형을 연기하며 한국에서 초연되었다.
무대는 경찰 취조실이다. 중앙에 테이블이 놓여 있고 카투리안 카투리안이 눈가리개로 눈을 가린 채 그 앞에 앉아 있다. 경찰인 투폴스키와 아리엘이 들어와 카투리안의 맞은편에 앉으면서 장면이 시작된다. 카투리안은 왜 잡혀왔는지 영문을 모르는 채로 무조건 협조하겠다는 뜻을 보이지만 경찰들은 시종일관 고압적이다. 카투리안은 도살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는데, 또한 작가이기도 하다. “우리가 처음에 대충 골라잡은 스무편이 죄다 ‘어린 여자애가
씨네21 추천도서 - <필로우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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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병 엮고 옮김 | 창비 펴냄
“눈 내리는 막막한 벌판에 홀로 서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식으로 이 유한한 생을 살아야 옳은가?’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고 문득 스스로에게 절실히 물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는 그런 공부법”을 담은 책. 1998년 외환위기를 맞은 직후 간행되어 큰 사랑을 받은 <선인들의 공부법>이 <자신을 속이지 않는 공부>라는 이름으로 새 단장을 했다. 세속적인 성취에 목적을 둔 공부가 아니라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한, 나 자신만이 알아볼 수 있는 공부의 도(道)를 동양고전에서 찾는다. 책의 부제는 ‘공자부터 정약용까지, 위대한 스승들의 공부법’으로, 목차는 공자에서 시작해 장자, 주자, 왕양명에서 이황, 서경덕, 조식, 이이, 박지원, 정약용, 김정희 등으로 이어진다. 해당 인물에 대한 간단한 해설 이후에는 그가 말한 공부에 대한 철학을 담은 문장을 한글 번역과 한자 원문을 병기해 소개한다.
공자의 말 중에서는
씨네21 추천도서 - <자신을 속이지 않는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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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혜 지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
“이제 나는 안다/ 들뜬 기분으로 모든 걸 내어주는 일은 모두를 도망가게 한다는 사실을 나의 구멍을 들여다보면 너도 떠나가 버릴 걸 잘 알아.” 유선혜의 시 <그게 우리의 임무지>가 이렇게 심산한 마음을 드러내는 풍경을 응시하는 일은 무척 즐겁다. 시 속의 광경은 즐거움과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아아, 독자는 그저 행복한 것이다. 그러니까 그 구멍 안에 무엇이 있는지 실망하지 않을 자신이 있으니 모두 내어보여달라고 매달리고 싶은 심정이다. 이 시는 SNS에서 바이럴되었다. 다음의 대목이다. “이건 내 폐예요/ 조금 지저분하죠?/ 제가 골초라…/ 이건 제 간이에요/ 조금 딱딱하죠?/ 제가 알코올의존증이라….” 장기를 모두 밖으로 꺼내 하나하나 소개해주고 싶던 시절로부터 멀리,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이 시집의 표제작인 <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보십시오> 역시 어딘지 풋 웃음이 나오는 엉뚱함이 뜻밖의 필연처럼 보이는 조합을 만들
씨네21 추천도서 - <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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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주, 박상민, 전건우, 주원규, 김세화, 차무진 지음 | 비채 펴냄
2011년 5월, 문경에서 괴이한 시체가 발견된다. 한 남성 시신이 흰 속옷을 입고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고 양손과 발이 십자가에 못 박혀 매달린 채 발견되었다. 성경 속 예수의 죽음을 재현한 십자가형을 한 시신은 택시 기사를 하던 50대 남성으로 밝혀졌고, 경찰 탐문수사 결과 평소 그가 사이비종교에 심취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나 그의 종교 활동에 대한 증언은 제각각 달랐다. 조사 결과 자살로 마무리되었으나 워낙 엽기적인 데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자세로 시신이 발견되었기에 이 사건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았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이를 다루기도 했지만 여전히 전세계적으로 가장 괴이한 미제 사건 중 하나로 꼽힌다. 실존하는 사건과 죽은 이가 있기에 모든 접근이 조심스럽지만, 미스터리 작가들은 여기서 가지를 뻗어 각자의 다른 소설을 완성하기도 한다. 비채 미스터리 앤솔러지 <십가
씨네21 추천도서 - <십자가의 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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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괴이> - 조영주, 박상민, 전건우, 주원규, 김세화, 차무진 지음 / 비채 펴냄
<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보십시오> - 유선혜 지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
<자신을 속이지 않는 공부> - 박희병 엮고 옮김 / 창비 펴냄
<필로우맨> - 마틴 맥도나 지음 / 서민아 옮김 / 을유문화사 펴냄
<헌책 식당> - 하라다 히카 지음 / 김영주 옮김 / 문학동네 펴냄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11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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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일, 송희지, 신이인, 양안다, 여세실, 임유영, 조시현, 차현준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시를 쓰고 읽는 것에 있어 살필 것들이 있다. 시를 쓰고 읽는 얘기에 관해 쓰는 사람과 그것을 읽겠단 사람. 그들이 각각 취할 수 있는 태도. 시가 자리할 수 있는 지면이나 스마트폰, 태블릿, 누군가의 머릿속, 누구들의 입술 사이… 그런 매개체 중 하나를 고른다면. 나의 눈과 손은 어떤 위치에 어떤 자세로. 어떻게 있을까. 물음이 끊이질 않는다.” <시 보다 2024>에 실린 차현준의 시작 노트 도입부다. <시 보다 2024>에 대한 출판사의 책 소개에는 “한국 현대 시의 흐름을 전하는 특별 기획”이라고 되어 있는데, 오늘의 한국 시를 만날 수 있는 시 앤솔러지 기획이다.
“여기서부터 당신이 살던 행정구역이 낯설어집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또박또박 읽어보다가// 뒤를 돌아보자 기다렸다는 듯이 표지판이 눈앞에서 멀어질 때// 두툼한 보조 배터리를 한 손으로 말아 쥔
씨네21 추천도서 - <시 보다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