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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
책 제목을 읽고 나는 순간 다소 경박하게 소리내 웃고 말았는데, 영화 제목 <헤어질 결심>이 (<헤어질 결심>의 제작 과정을 담은) 사진집 제목 <어떻게 헤어질 결심을>으로 바뀐 언어유희가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이다. 이 사진집의 제목은 ‘나는 어떻게 <헤어질 결심>을 만들었는가’의 맥락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어떻게 헤어질 결심을 할 수 있지?’처럼 경악을 동반한 질문으로 읽히기도 한다. 그러게, 어떻게 헤어질 결심을 한 거야, 혹은 만든 거야? 박찬욱 감독이 쓴 서문에 따르면 <헤어질 결심>은 팬데믹 기간을 관통하여 2022년 5월 경기도 파주에서 완성되었는데, 그 4년 가까운 시간 동안 찍은 사진들 중 일부를 골라 <어떻게 헤어질 결심을>에 실었다고 한다. “내 주장에 의하면 모두 제작 현장 사진이다. ‘어떻게 헤어질 결심을’ 만들까 대개 그 생각만 하던 때였으니 어디를 가나 내게는
씨네21 추천도서 - <어떻게 헤어질 결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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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준 지음 창비 펴냄
할 말이 없다는 기분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하고 싶은 말이 없다는 뜻은 아닌데, 할 수 있는 말을 고르는 게 적잖이 괴로워서다. 이 괴로움은 나의 몸 안에서부터 솟아오르기도 하고 바깥을 향하는 시선으로부터 비롯되기도 하는데, 어느 쪽이든 침묵 속에서 잠잠히 마음을 놓고 있는 편이 좋게 느껴지는 상태다. 그러다 보면 어라, ‘이 상태를 좀 좋아하는지도?’라는 깨달음에 도달하기도 한다. 내 안에 고여 있는 언어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 같은 썩 괜찮은 기분을, 박연준의 <마음을 보내려는 마음>을 읽으며 느꼈다. 시인이자 소설가, 에세이스트인 박연준의 새 에세이다.
“골동품과 유실물은 같은 공간에 담긴다. 서로를 노려본다. 낡아가는 일과 잊히는 일 중에 무엇이 더 나쁜가 생각한다.” <마음을 보내려는 마음>에서 눈길이 가는 단어들은 모두 시간과 관련이 있다. 맨 처음에 등장하는 시간은 새벽이다. 아침, 점심, 저녁, 밤으로 4등분되어 존재
씨네21 추천도서 - <마음을 보내려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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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보내려는 마음> 박연준 지음 /창비 펴냄
<어떻게 헤어질 결심을> 박찬욱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
<녹을 때까지 기다려> 오한기, 한유주, 박소희, 장희원, 이지 지음 /비채 펴냄
<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 에이든 체임버스 지음 고정아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그레이트 서클1, 2> 매기 십스테드 지음 민승남 옮김 /문학동네 펴냄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9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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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지하 지음 창비 펴냄
현대예술가이자 퀴어적 존재로서 다양한 글쓰기를 해온 이반지하의 세 번째 단독 저서. 이번에는 ‘공간’에 대해 다룬다. 주제로 삼기엔 너무 광범위한 개념을 담은 단어일까? 책은 “완전히 열려 있어도, 한 귀퉁이만 닫혀 있어도, 어디로도 통하지 않는 길, 서로를 연결하는 길”도 공간이라고 말한다. 집, 직장, 사회복지 내지는 규범 모두가 포함될 수 있다. <이반지하의 공간 침투>는 미흡한 폐쇄성으로 정의되는 넓은 의미의 공간에 대해 느슨하게 연결된 에세이들을 모은 책이다.
작가는 고정된 공간에 속해서 정착하고 가꾸고 안주해본 적이 없다. 머물던 곳에서 도망치고 다른 장소로 이주하는 삶은 결혼이라든지 매끄럽게 설계된 독립과 무관하며 ‘작품’이라 부르는 짐더미를 이고 지고 사는 예술가인 그의 정체성과 무관하지 않다. 글쓰기의 괴로움을 토로하고 매일 먹는 도시락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친구에게 받은 에드바르 뭉크 인형의 위치를 고민하는 그의 글에
씨네21 추천도서 - <이반지하의 공간 침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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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 버튼 지음 이진 옮김 비채 펴냄
눈빛만으로 남자를 죽인 여자. 그리스신화 속 괴물 메두사는 그의 얼굴을 보기만 해도 사람들이 돌로 변하는 괴물로 묘사된다. 고르고네스 세 자매 중 유일하게 불사신이 아니다. 때문에 페르세우스에 의해 목이 잘려 죽는다. 메두사의 이미지는 많은 대중문화에서 차용되어왔고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메두사가 주는 공포를 남성의 거세 불안과 연결시켜 논의하기도 했다. 여기까지가 당신이 알고 있던 메두사다. 제시 버튼은 기존 신화에서 벗어나 메두사가 그의 언니들과 바위섬에 살던 시절부터 새롭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이미 아테나의 저주를 받고 흉측한 모습으로 변한 상태다. 어느 날 난생처음 보는 아름다운 남자, 페르세우스가 배를 타고 섬에 나타난다. 평생 사람들의 시선에 시달렸고 이젠 머리카락 대신 뱀을 갖고 있는 그는 차마 남자 앞에 나타날 수 없다. 메두사는 남자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지만 조심스럽게 교감을 시도하며 각자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준다.
씨네21 추천도서 - <메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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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성 지음 나비클럽 펴냄
<계간 미스터리>와 한국추리문학상 수상작품집 등 한국 미스터리 소설들을 다수 펴내는 나비클럽에서 <추리소설로 철학하기>에 이은 또 한권의 미스터리 비평서 <이것은 유해한 장르다>가 출간되었다. <곡성> <파묘>와 같은 오컬트 호러부터 <선재 업고 튀어> 같은 멜로드라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장르가 미스터리와 연결되어 전개되고 해석된다. 미스터리는 어떻게 모든 서사에 침투하는 힙한 장르가 되었을까. “무균실을 지향하는 세계에서 미스터리는 분명 유해한 이야기다. 미스터리는 언제나 선을 넘기 때문이다.” 미스터리의 플롯이 전개되기 위해서는 우선 범죄를 구성하고 범죄자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미스터리는 범죄를 매개로, 사회에서 촉발되는 다양한 유해함의 상상력을 다룸으로써 ‘유해한 이야기’를 넘어서는 ‘유해함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책은 현재 성공적인 한국 콘텐츠들의 공통점으로 미스터리 장
씨네21 추천도서 - <이것은 유해한 장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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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수정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원희는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결혼 후 육아와 살림을 하며 연주에 손을 놓았다. 때때로 피아노 앞에 앉아 쇼팽의 왈츠나 브람스를 연주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피아노 앞에 앉기보다 다른 누군가의 연주를 듣는 삶이 익숙해진 지 오래다. 딸이 일찍 아이를 낳아서 벌써 할머니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현실은 어딘지 아득하게 느껴진다. “원희는 이제 자신은 그저 클래식 애호가일 뿐이라 여겼지만 내심 아직도 언제든 연습만 하면 손가락이 금방 풀리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생각만.” 제2회 김유정작가상 수상작인 <오후만 있던 일요일>의 도입부는 급할 일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60대 원희의 어느 날을 담는다. 경지에 오른 중견 연주자가 자신의 취향이라고 굳게 믿어온 원희가 젊은 피아니스트 고주완의 연주에 빠져든다. 요양원에 간 시모, 치매인 어머니의 돌발행동에 황망해진 남편, 셋째를 임신한 딸, 그리고 시작된 덕질. 갈피를 잡을 수 없이 스쳐가는 삶의 순간
씨네21 추천도서 - <우리에게 없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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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지 지음 문학동네 펴냄
영화 <파묘>로 오컬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시기. 오컬트 장편소설 <귀매>가 문학동네 플레이 시리즈로 개정 출간되었다. 조선총독부에서 1930년에 펴낸 <조선의 귀매>라는 책에 실린 ‘귀매’의 정의는 “산이나 숲속에 서린 기묘한 기운에서 태어난 요괴”다. 산과 들에서 이따금씩 느끼는 오싹하고 두려운 기분은 귀매가 일으키는 것이라고. 불길한 예감의 진원지로 민속적인 요소를 활용하는 포크 호러 장르의 작품이기도 하다.
숲속에 있는 흰말 한 마리를 발견한 아이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갑작스레 나타난 말의 갈기를 쓰다듬는 아이는 하얀 머리를 곱게 쪽 찌고 한복을 차려입은 할머니로부터 그 말을 데려가라는 말을 듣는다. 말은 순하게 머리를 끄덕였지만, 아이는 망설인다. 할머니의 말은 의미심장하지만 또한 수수께끼 같다. “어차피 여기 있어봐야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으니까”라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가물가물 멀어지고, 아이는
씨네21 추천도서 - <귀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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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매> - 유은지 지음 문학동네 펴냄
<우리에게 없는 밤> - 위수정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이것은 유해한 장르다> - 박인성 지음 나비클럽 펴냄
<메두사> - 제시 버튼 지음 이진 옮김 비채 펴냄
<이반지하의 공간 침투> - 이반지하 지음 창비 펴냄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8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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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의 세계
찰스 브라메스코 지음 최윤영 옮김 다산북스 펴냄
한여름, 짙푸른 하늘에 뭉게구름이 피어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는 그런 하늘을 배경으로 자전거를 타고 있는 힘껏 달리는 주인공을 보는 일이 많다 보니, 일본 여행 중에 하늘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며 ‘일본 애니메이션에 들어온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본 문화에서 구름은 벚꽃의 개화와 상징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잠깐 피었다 지고 마는 벚꽃의 짧은 전성기는 인생의 무상함을 나타내기도 한다.” <컬러의 세계>에 따르면 벚꽃과 구름을 포함해 “미야자키(하야오)의 포근한 색채 감성은 대지에 대한 그의 사랑과 일본 시골 마을의 고요한 평온함을 통해 드러난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자연을 담아내는 색채 팔레트를 즐겨 쓴다면 왕가위는 어떨까. 왕가위의 <중경삼림>은 홍콩의 중심가이며 유흥가인 란콰이퐁 지역을 잿빛으로 포착하지만 두 인물이 만날 때면 ‘햇살’, ‘밝음’, ‘사랑스러움’의 파랑,
[CULTURE BOOK] <컬러의 세계> <교토, 길 위에 저 시간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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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아로즈 크레이그 지음 신혜빈 옮김 최순규 감수 문학동네 펴냄
10대 시절부터 세계적으로 주목받아온 환경운동가로 많은 이들이 그레타 툰베리를 떠올릴 것이다. 국내에 잘 알려지진 않았으나 그에 못지않게 활발히 활동하는 젊은 환경운동가가 있다. 바로 <버드걸>의 저자 마이아로즈 크레이그다. 이 2002년생 청년이 환경에 관해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건 가족을 따라 새를 관찰하는 ‘탐조’ 활동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다. “7살 때 조류 325종을 관찰했고 여전히 세계에서 빅 이어(1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 정해진 지역 안에서 최대한 많은 종류의 새를 보러 다니는 해)를 완수한 유일한 어린이”일 만큼 크레이그는 오랜 기간 가족과 세계를 누벼왔고 탐조 활동은 이제 그의 “삶의 패턴을 이루는 실”과 다름없게 됐다. 크레이그 가족의 열정을 알아챈 가 다큐멘터리 <트위치: 지극히 영국적인 취미>를 통해 이들을 소개하고, 크레이그가 본인이 관찰한 새들을 ‘버드걸
씨네21 추천도서 - <버드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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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키냐르 지음 백선희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세상의 모든 아침> <은밀한 생>의 파스칼 키냐르 소설. 17세기 음악가들을 중심으로 하는 이야기. 암흑 속에서 더듬어 사물의 위치를 파악하듯 느리고 섬세하게 읽어나가기를 권한다. 파스칼 키냐르는 이전에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던 <세상의 모든 아침>의 생트 콜롱브와 <로마의 테라스>의 조프루아 몸므를 다시 등장시킨다. 산발적인 장면들로부터 서서히, 인물들과 이야기의 윤곽이 선명해진다. 작곡가 생트 콜롱브의 제자 튈린과 조프루아 몸므의 아내 마리에 주목하라. 세상을 등진 그 두 예술가와 연결된 두 여성에게. 17세기 음악가들의 생활사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음악은 자주 자연에 비유되며 파스칼 키냐르 특유의 풍경을 그려낸다. 때로는 수수께끼처럼 암호처럼 문장이 이어져간다. 문장은 신비할 정도로 이미지를 그려내고 정서를 전달한다. “유령이란 무엇이겠나? 우리 자신 너머를 빙 돌아 다시 자신
씨네21 추천도서 - <사랑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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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호진, 단요 지음 창비 펴냄
학생들을 사교육으로 내모는 ‘주범’으로 지목되는 초고난도 문제를 가리키는 킬러 문항은 보통 공교육 교과과정 밖에서 복잡하게 출제된다. 사교육 시장에서는 ‘킬러 문항 하나가 1조원짜리’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2023년 6월 윤석열 대통령이 사교육 부담의 원인으로 지목한 게 바로 이 킬러 문항이다. <수능 해킹: 사교육의 기술자들>은 킬러 문항의 문제를 이렇게 풀이한다. “교과 범위는 줄이고 상위권 변별력은 유지하는 흐름 속에서, 문제풀이 요령이 과도하게 강조되며 시험의 퍼즐화가 진행되었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현직 의사이자 의과대학의 공공성 확보를 위한 활동을 해온 문호진과 소설가 단요가 사교육 현장을 꼼꼼히 취재해 쓴 <수능 해킹: 사교육의 기술자들>은 지금의 수험생들이 상대하는 수능이 초창기 수능과 다르며, 그래서 기성세대의 짐작과는 크게 다른 무엇임을 증명해낸다. 더불어 현재의 수능 문제가 퍼즐화되면서 그 퍼즐을 푸는 공식
씨네21 추천도서 - <수능 해킹: 사교육의 기술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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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까지 3킬로미터> 이요하라 신 지음 홍은주 옮김 비채 펴냄
<8월의 은빛 눈> 이요하라 신 지음 김다미 옮김 비채 펴냄
과학적 지식을 지극히 현실적인 삶의 환경에 녹여내 소설을 쓰는 이요하라 신의 단편집 두권이 나란히 출간됐다. 이 중 <8월의 은빛 눈>은 서점대상과 나오키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는데, 어느 책을 먼저 읽어도 작가의 작품 세계를 만끽할 수 있다.
<8월의 은빛 눈>에 수록된 <아르노와 레몬>의 주인공 마사키는 아파트 관리업체 직원으로, 최근 맡은 업무는 아파트 재건축을 위한 주민 퇴거 교섭이다. 문제는 한 입주인이 갑작스레 비둘기를 기르기 시작했다는 것. 주인이 따로 있는 듯한 비둘기에 대해 조사하던 마사키는 회귀본능이 뛰어난 전서 비둘기에 대해 알아갈수록 집을 떠나와 돌아가지 못하게 된 자신의 상황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8월의 은빛 눈>이라는 제목은 지구 내핵 표면에 눈처럼 떨어지는 철
씨네21 추천도서 - <달까지 3킬로미터>, <8월의 은빛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