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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 <가라앉는 프랜시스>
이다혜 사진 백종헌 2025-09-16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비채 펴냄

홋카이도의 소도시는 지명부터가 일본의 다른 지역과 다르다. 겨울이 유난히 긴 최북단의 홋카이도의 지명에는 일본 열도의 원주민인 아이누어의 울림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래서 한자로 쓴 지명조차 한자의 원래 뜻과는 관계없이 음이나 훈을 빌린 것이라 낯설게 읽는다. 호로카나이, 오토이넷푸, 도마코마이, 시무캇푸 같은 지명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홋카이도에서 생활한 적 있는 게이코는 그런 지명마저도 그리워한다. 급여가 몇분의 일 수준으로 깎이는데도 게이코가 홋카이도의 안치나이 마을에 계약직 우편배달부 일을 구하고 이사한 이유다. <가라앉는 프랜시스>는 고독하지만 외롭지는 않은 게이코의 나날을 묘사한다. 속도가 느린 이야기인데도 어쩐지 눈을 뗄 수가 없어 계속 읽게 된다. 홋카이도의 자연에 대한 묘사, 그 풍경을 통해 드러나는 게이코의 내면에 대한 호기심 때문일 것이다.

<가라앉는 프랜시스>를 쓴 마쓰이에 마사시는 1958년생으로, 장편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로 2012년 데뷔했다. <가라앉는 프랜시스>는 그 이듬해에 발표한 소설로 두 작품 공히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다루는 작품들이다. <가라앉는 프랜시스>는 사랑 이야기치고는 이상한(?) 제목인데 게이코가 마음을 주게 되는 가즈히코 역시 기묘한 매력의 소유자다. 배달을 갔다가 만난 가즈히코는 두 번째로 만난 날 “댁은 음악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음악이 아닌 ‘음’을 제대로 들을 수 있는 자기 집 재생 장치 이야기를 하며 시간이 맞으면 놀러 오라는 초대. “이야기가 재미있는 남자, 좋은 웃음을 띠는 남자는 특히 조심하는 편이 좋잖아”라는 마음의 소리에도 불구하고 어떤 옷을 입고 갈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예상 가능한 마음의 깊어짐 그리고 자연재해처럼 예측할 수 없는 날씨와 인간사의 행방이다.

홋카이도를 배경으로 하는 (사랑)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예사롭지 않다. 사쿠라바 가즈키의 <내 남자>, 사쿠라기 시노의 <호텔 로열> 같은 이야기들 말이다. 특유의 정서는 홋카이도의 자연이 주는 압도하는 감각과 엮여, 사계절이 뚜렷한 다른 곳에서라면 말이 되지 않을 것 같은 무언가가 당연하다는 듯 자리 잡고 벌어진다. 그리고 그 모든 것 사이에는 인간의 힘으로 어찌해볼 수 없는 자연이 있다. 이 생이 무사하기를. 그렇다면 우리는 또 내일을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얼마나 충만할 수 있는지.

가즈히코는 안치나이 마을로 옮겨오고 나서, 에다루보다 더 넓고 더 깊은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는 일이 있었을까? 불빛 하나 없는 목장에서 벌레 음을 녹음하면서, 무서울 정도로 아름다운 별하늘을 바라볼 가즈히코의,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듯한 옆얼굴이 떠오른다./ 18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