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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혁(민준현)은 인수(정주홍)가 10년 전 훔친 금불상을 강탈해 도망가던 중 귀걸이 살인마에게 살해당한다. 그는 정연식(정경호)의 부하로 최근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연쇄살인마다. 흥신소를 운영하는 최무달(성홍일)과 경찰 정병욱(박채익)은 살인마를 추적하던 중 연식에게 납치당하고 만다. <흥신소>는 한국영화배우협회의 제작 지원을 받은 배우 김태하의 장편 데뷔작이다. 영화의 만듦새는 아쉬움이 크다. 일단 금불상을 둘러싼 음모와 배신, 인육을 먹는 사이코패스라는 소재를 매끄럽게 접합하는 데 실패한 시나리오가 가장 큰 문제다. 비속어를 비효율적으로 남발하는 대사와 구멍 많은 설정, 난삽한 전개와 캐릭터의 허술한 동기가 영화를 보는 동안 의문을 자아낸다. 연출 면에서도 납치와 살인, 인육 등 유혈이 낭자한 이미지를 전시할 뿐 왜 그런 설정이 있어야만 하는지 당위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리뷰] 이런 인육 설정이라면 양들도 침묵에서 깰 듯하다, <흥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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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이 털로 뒤덮인 거대한 유인원 ‘사스콰치’는 북미 지역의 전설 속에만 존재하는 미확인 생물이다. 목격담만 무성하고 실제로 발견된 적 없는 거대생물이 지금도 자연에서 지내고 있다면? <사스콰치 선셋>은 바로 이 발칙한 상상에서 출발한다. 숲속에서 태고의 상태로 사계를 보내는 사스콰치 가족의 일상을 담은 영화는 지극히 원초적이다. 먹고, 자고, 싸고, 교미하는 이들의 생애는 철저히 욕구에 의해 움직인다. 게다가 괴성과 몸짓이 전부인 의사소통을 바라보고 있자면 관객들에겐 당혹감이 먼저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사스콰치 선셋>은 대사 한줄 없는 야만의 생태 속에서 가장 고귀한 희로애락의 정서를 끌어낸다. 엄습하는 인간 문명의 공포에도 안간힘을 다해 살고자 하는 본능의 로드무비는 우리를 웃게 하고, 울리고, 서늘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아리 애스터가 제작을 맡았으며, 2024 선댄스영화제 상영작이다.
[리뷰] 본능과 날것의 배설물로도 인간을 웃기고 울리네, <사스콰치 선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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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만 열면 술술 나오는 거짓말로 사기에 달인이었던 제니(강지영)는 경찰의 추적을 피해 지리산 근처 작은 마을 용두골에 도착한다. 평생 명품을 두르고 산 그에게 한적한 전원생활은 무료할 뿐이다. 그러던 중 제니는 우연히 전설의 담금주 ‘천년삼주’의 존재에 대해 듣게 된다. 부르는 게 값인 명약을 훔치면 크게 한탕을 노릴 수 있다는 생각에 곧장 약초꾼 된장할배(유순웅)의 집으로 향한다. 하지만 9살 꼬마 된장이(이주원)가 밤낮으로 창고를 지키는 탓에 계획은 꼬이게 되고, 어쩔 수 없이 제니는 말썽꾸러기와 며칠 밤을 같이 보내기로 한다. <된장이>는 조한별 감독의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 작품이자 장편 데뷔작이다. 허영과 범죄에 빠진 도시의 어른이 때 묻지 않는 시골 소년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코믹한 방식으로 그려냈다. 영화 전반에 감도는 무해하고 순박한 정서는 지리산이라는 공간적 배경의 덕이 크다. 평생을 자연과 함께 자란 아이는 여전히 세상을 동화처럼 바라보고, 호시탐탐
[리뷰] 구수하지도 깊지도 않은 싱거운 무해함, <된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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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괴담 유튜브를 운영하는 다경(주현영)에겐 조회수와 구독자 수를 올려줄 새로운 공포 콘텐츠가 간절하다. 결국 다경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실종 사건이 발생하는 광림역에 방문해 해당 역의 역장(전배수)에게 역사에서 벌어진 괴이한 일들을 전해 듣는다. 재수를 준비하는 학생, 성형을 바라던 사람, 지하철 내에서 이상한 용액과 접촉한 직장인 등 광림역 괴담을 소개한 영상이 반응을 얻으면서 다경의 콘텐츠는 단숨에 최고 조회수를 기록한다. 채널 구독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다경에게 주변의 축하가 이어진다. 그러던 중 괴담 속 사건의 실제 피해자가 찾아와 유튜브 영상을 전부 내려야 한다고 경고한다. 다경은 겁을 내면서도 늘어가는 조회수, 구독자 수를 포기하지 못한 채 반복해 괴담을 수집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다경은 점점 예민해지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동료 우진(최보민)과의 사이마저 틀어지고 만다. 더 이상 자신을 찾아오지 말라는 역장에게 다경은 마지막 괴담을 청하고, 그는 광림역에 관한 비밀
[리뷰] 속도감 있는 괴담단편선, <괴기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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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니 빌뇌브가 <듄> 시리즈와 <컨택트>와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를 만들기 전, 그러니까 필모그래피에 장편보다 단편의 수가 더 많던 2011년, 그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 <그을린 사랑>이 그해 부산국제영화제 최고의 화제작이었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압도된 건 해외도 마찬가지였다. 제83회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영화상(현 국제영화상) 후보에 올랐고 국내외 평론가들의 올해의 영화 리스트 상위권에서 <그을린 사랑>을 찾는 건 아주 쉬운 일이었다. ‘두통의 편지, 하나의 진실’이라는 포스터 문구는 이 영화가 남기는 충격을 정확히 요약한다. 유언장이기도 한 두통의 발신인은 어머니 나왈(루브나 아자발), 수신인은 쌍둥이 남매인 잔느(멜리사 데소르모 풀랭)와 시몽(막심 고데트)이다. 나왈은 자녀들에게 각기 다른 가족에게 편지를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잔느는 기억 하나 없는 아버지를, 시몽은 존재조차 몰랐던 형을 찾아 나선다. 이 여정은
[리뷰] 재개봉 영화 <그을린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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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서 함께 형사 생활을 했으나 지금은 불법체류자 신세로 한국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다섯 남자가 있다. 그들은 멤버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트로트 공연을 하는데, 그 영상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면서 일약 스타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폭력배로부터 쫓기는 한 몽골 여성을 돕게 되고, 그 과정에서 한 조직이 몽골 여성들을 착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밴드로 위장하여 수사를 시작한다. <위장수사>는 몽골과 한국 제작사가 공동제작한 작품으로, 모든 장면이 한국에서 촬영된 코믹 범죄수사극이다. 몽골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와 엔터테이너들이 대거 출연하여 영화 내내 크고 작은 웃음을 선사한다. 한국 관객에게는 외국인들의 시선으로 보는 한국이 어떤 장르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 영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윤제문, 기주봉 배우와 같은 묵직한 베테랑들의 활약이 극의 분위기를 끌어올린다.
[리뷰] 허술한 위장을 한 채 한판 잘 놀다 가는, <위장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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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로부터 격리된 섬에서 태어난 소년 스파이크(앨피 윌리엄스). 소년은 마을의 통과의례에 따라 어느 금요일 난생처음 아버지 제이미(에런 테일러존슨)와 함께 성벽 너머의 세상을 마주한다. 스파이크는 절멸의 세상에 처음 나가 경험한 적 없던 죽음의 공포에 휩싸이지만, 이내 어머니 아일라(조디 코머)의 불치병을 치료할 방법이 어쩌면 섬 바깥에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마주한다. <28년 후>는 <28일후…>와 <28주 후>를 잇는 좀비 아포칼립스의 종장인 동시에 <28년 후: 뼈의 사원> <28년 후: 파트3>로 이어질 새 트릴로지의 서막이다. 영화는 여름 블록버스터에 관객이 기대할 법한 서스펜스와 다음 3부작에서 줄곧 탐구할 것으로 보이는 철학적 화두 모두를 인상적인 미술과 음악, 독특한 편집 리듬 안에서 배합해낸다. 세계관의 끝이며 시작인 작품의 정체성을 경제적인 러닝타임 내에서 효율적으로 독파했다는 인상이다.
[리뷰] 원시로 회귀하고 죽음을 수용하면 오히려 인간은 진화할 수 있을까, <28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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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철원의 외딴 마을. 태원(조관우)은 오늘도 서울로 떠난 아들을 그리워하며 하루를 견딘다. 칠성(장윤서)은 아버지를 호강시켜 드리겠다는 다짐 하나로 상경했지만 공장 기계에 손을 잃는 불의의 사고를 겪는다. 그로부터 5년, 갈 곳을 잃고 노숙자들과 함께 부유하던 칠성이 예기치 못한 살인 누명을 뒤집어쓴다. 칠성이 범죄자로 지목되며 고향에서 열릴 예정이던 세계 꽃 축제가 취소될 위기에 놓이고, 사건을 파헤치던 윤 기자는 그 속에 감춰진 비리를 마주한다. <세하별>은 인간성을 상실한 시대에 서로를 위해 헌신하는 부자의 사연을 그린다. <참외향기> <감동주의보> 등 지역의 풍광과 정서를 고스란히 스크린에 새겨온 김우석 감독의 노하우가 강원도 철원에서도 빛을 발한다. 악한 부자와 선한 서민의 도식적인 대립 구도는 상투적으로 느껴지지만, 잔뼈 굵은 조연들이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빈틈을 메운다.
[리뷰] 악한 부자와 선한 서민의 대립 구도에 갇혀 있다, <세하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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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고차에 탄 사람들에게 유서를 나눠주는 일도(박정표). 무표정의 그는 자살 모임을 가장해 인신매매를 일삼는 전형적인 밑바닥 인생이다. 같은 보육원 출신 우식(이호원)과 함께 궂은일을 도맡던 일도는 평생 아버지처럼 따르던 보스가 자신의 친형을 해치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몇십년 만에 재회한 형이 간절히 도움을 청하고, 조직은 변함없는 충성을 시험하는 상황. 두 가족 사이에서 갈등하던 일도는 마침내 자신의 운명을 건 결정을 내리게 된다. <천국은 없다>는 같은 이름 아래 정반대의 삶을 살아가는 형제의 비극을 다룬 액션 누아르다. 박정표 배우가 1인2역으로 일란성쌍둥이 역할을 소화하며 극을 견인해나간다. 효과음에 과하게 의존하는 만화적 연출이 종종 호흡을 끊지만, 삼류 양아치들의 언행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각본이 무너진 리듬을 빠르게 회복시킨다.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초청작.
[리뷰] 다소 과한 캐릭터에도 배우들의 역량이 돋보인다, <천국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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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이선빈)은 동생 주희(한수아)가 실종된 후 그녀가 살던 아파트로 간다. 주희는 오랫동안 그녀를 괴롭혀온 층간소음의 범인을 잡으러 간 후 돌아오지 않고 있다. 후천적 청각장애인 주영은 동생이 남긴 녹음 파일을 들은 후 층간소음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즈음 설상가상으로 아래층 남자(류경수)가 층간소음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면서 주영을 위협한다. <노이즈>는 김수진 감독의 데뷔작으로 시체스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초청되었다. 층간소음이라는 일상적인 소재를 밀실 호러로 풀어냈으며 아파트로 한국인의 무의식을 포착하려는 야심이 인상 깊다. 윤종찬의 <소름>을 계승하려고 한 흔적도 곳곳에 돋보인다. 감독은 중반까지 정교한 사운드디자인과 폐쇄적 공간, 여러 도구와 트릭의 활용으로 미스터리의 감흥을 살려낸다. 다만 후반의 초자연적 소재와 심리극 요소가 관객의 호불호가 갈릴 기점이 될 것이다.
[리뷰] 정교한 사운드 연출부터 넘쳐흐르는 야심까지 모든 것을 응원하고 싶은, <노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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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올가 솔리스(조이 살다나)는 부모를 여읜 조카 엘리오(요나스 키브레브)를 혼자 기른다. 둘의 동거는 순탄하지 않다. 엘리오는 외로움을 못 이기고 외계인과의 통신에 집착해 말썽을 피우고, 올가는 그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꿈을 포기한다. 어느 날 올가가 일하는 공군기지에 외계 신호가 잡힌다. 엘리오는 그 신호에 응답해 얼떨결에 지구를 대표하여 우주의 지성 교류 공동체 코뮤니버스로 가게 된다. <엘리오>는 디즈니·픽사의 신작으로 <메이의 새빨간 비밀>의 감독 도미 시가 합류했다. 기괴하고 우아한 외계의 풍경을 담은 독창적 비주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우우우와 글로던 등 캐릭터가 작품에 사랑스러움을 더해 평탄한 스토리를 보완한다. 칼 세이건의 음성과 골든디스크 등 우주적 외로움이라는 소재에 대한 애정과 <콘택트> <A.I.> <터미네이터> 등 걸작 SF의 오마주가 인상적이다.
[리뷰] 칼 세이건과 픽사의 컬래버 팝업스토어에 온 듯한 느낌, <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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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가 일본군에 살해당한 사건으로 조선인들이 큰 슬픔에 빠진다. 일본인 기독교 선교사 노리마쓰 마사야스는 그런 조선인들을 위로하고자 수원에 터전을 잡고 한반도에 복음을 전파한다. 그는 생소한 종교를 조선에 알리는 것뿐 아니라 조선인들에게 을미사변에 대한 사죄를 구하기도 하며 일본인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까지 바꿔낸다. 그 유지를 이은 또 한명의 선교사 오다 나라지는 일제의 조선 통치가 한창인 1928년에 조선을 찾는다. 전국을 돌며 선교를 하던 그는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운동에 앞장서다 추방당할 위기에 처하게 된다. <무명 無名>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두 일본인 선교사의 숭고한 삶을 조명하는 종교다큐멘터리로, 그들의 흔적을 찾아가는 현재의 이야기와 재연드라마 톤으로 펼쳐지는 과거가 동시에 전개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두 인물의 행보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메시지가 현재에도 큰 울림을 줄 만하다.
[리뷰] 반복되지 말하야 할 과거를 위해 거듭 호명되어야 하는 이름, <무명 無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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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촉망받는 드라이버였으나 사고 이후 30년 넘게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는 소니(브래드 피트)가 옛 동료였던 루벤(하비에르 바르뎀)으로부터 F1 리그로의 복귀를 제안받는다. 소니는 신인 드라이버 조슈아(댐슨 이드리스)와 힘을 합쳐 리그 최하위권 수준의 팀을 살려보려 하지만 강팀과의 격차를 줄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소니에게 시급한 것은 과거 자신의 실수로 비롯된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것이다.
<F1 더 무비>는 <탑건: 매버릭>으로 할리우드에서 가장 주목받는 감독이 된 조셉 코신스키 감독의 신작으로, 지상 최대의 스포츠 중 하나인 F1 레이싱 장면을 스크린에서 생생하게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영화다. 줄거리는 평범하지만, 모터스포츠의 매력을 널리 알리기 위한 디테일한 묘사가 인상적이다.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거론되는 현역 드라이버 루이스 해밀턴이 제작 및 특별 출연으로 작품에 참여했다.
[리뷰] 실수로 비롯된 트라우마 위를 달리는, < F1 더 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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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한 고교생 토모리(요미야 히나)를 비롯한 5명의 소녀가 밴드를 결성하고자 한다. 가장 큰 걸림돌은 소요(고히나타 미카) 등 멤버 몇명이 이전에 꾸렸던 밴드 ‘CRYCHIC’의 과거다. 새 밴드를 만들 것인지, 이전의 밴드를 지킬 것인지 문제로 이들은 끊임없이 갈등한다. 그렇게 먼 길을 헤매던 이들은 결국 자신들이 있을 곳, 새로운 밴드 ‘MyGO!!!!!’에 이른다. TV애니메이션 <BanG Dream! It’s MyGO!!!!!>를 재편집한 극장 총집편의 후편이다. 기존의 <BanG Dream!> 시리즈를 잘 모르더라도 입문하기 쉬운 별도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다. 작품의 핵심은 물고 물리는 인간관계의 세밀한 감정적 파고다. 무한의 평행을 달리는 듯하던 다섯 멤버의 마음이 하나의 무대 위에 모였을 때, 비로소 진정한 음악의 힘이 발휘된다. 이번 극장판엔 MyGO!!!!!의 등 세곡의 필름 라이브 영상이 더해졌다.
[리뷰] 화해와 갈등의 무한 평행, 밴드 한번 만들기 참 어렵다! <극장판 뱅드림! 잇츠 마이고!!!!! 후편: 노래하자, 우리가 될 수 있는 노래 & 필름 라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