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시(보디 레이 브레스낙)는 스코틀랜드 헤브리디스 제도의 섬에 보급품을 전하고 돌아가던 중 폭풍우를 만난다. 함께 온 삼촌은 죽고 제시만 섬에 사는 의문의 남자(제이슨 스테이섬)의 도움으로 살아남는다. 남자는 다친 제시에게 필요한 약을 구하러 육지로 갔다가 특수요원에게 추적당한다. 남자의 이름은 메이슨. MI6이 키운 인간 병기 블랙 카이트의 일원이다. MI6의 전 총장 마나포트(빌 나이)는 현 총장 로베르타(나오미 애키)와 함께 메이슨을 추적한다. <쉘터>는 <그린랜드>의 릭 로먼 워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다. 제이슨 스테이섬이 제작과 주연으로 나선 만큼 익숙한 그의 액션 스타일이 펼쳐진다. 서사는 진부하고 클리셰로 가득하나 빌 나이와 나오미 애키 등 명품 조연의 호연과 기본에 충실한 연출이 단점을 상쇄한다.
[리뷰] 아는 재미라서 재밌는 스테이섬 액션의 밀키트화, <쉘터>
-
장주희는 급작스러운 백혈병 투병으로 영화감독의 꿈을 잠시 내려둔다. 그 꿈은 2019년 원주에서 부성필을 만나며 되살아난다. 4·3 사건 희생자의 아들인 부성필은 세월호 선체 기록단으로 활동했다. 이후 와상 장애인 선철규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두 사람은 선철규의 마지막 버킷 리스트인 번지점프를 도우면서도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을 위한 투쟁을 이어가는 전인숙의 활동을 찍는다. 김성환, 부성필, 장주희 감독이 연출한 <주희에게>는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부문에서 상영됐다. 탈시설, 세월호 참사와 4·3 사건, 이태원 참사, 빛의 혁명 등 수많은 이의 아픔을 연결하고 연대를 도모하는 따뜻한 시선이 인상적이다. 개인적 아픔과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그러모으는 내레이션이 가진 호소력에도 불구하고 산만한 내러티브가 아쉬움을 남긴다.
[리뷰] 픽션보다 더 픽션같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감싸안는 우정과 연대를 경험하고 싶다면, <주희에게>
-
보수 텃밭인 경상북도를 배경으로 승산 없는 선거에 기꺼이 뛰어든 더불어민주당 사람들을 그린 다큐멘터리. 당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출마를 반복하는 이들의 행보는 결과보다 신념에 모든 것을 내건 결단처럼 보인다. <한국인의 밥상><인간극장>등 대한민국 대표 교양프로그램의 방송작가로 활동한 홍주현 감독이 연출을 맡아 이들이 현장에서 겪는 두려움과 아픔, 패배 이후 다시 출발선에 서는 희망의 순간을 담담하게 따라가며 그린다. 2022년 지방선거부터 2024년 총선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이들의 기록은 좀처럼 바뀌지 않을 것 같은 지역 분위기 속에서 끝내 한표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다양하게 비춘다. 이들이 일군 시간이 언젠가 변화를 꽃피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묵직하게 전한다.
[리뷰] 험지에 거름이 되다 보면 꽃 피울 날 오겠지, <빨간 나라를 보았니>
-
<케이팝 데몬 헌터스> 제작진이 다시 뭉쳤다. 소니픽처스애니메이션 신작 <고트: 더 레전드>는 거대 동물들의 압도적인 힘의 논리만이 살아남는 농구 리그에서 출발한다. 어려서부터 지역팀의 슈퍼스타 선수인 제트를 동경해온 윌은 언젠가 농구 경기장에 서는 꿈을 꾼다. 하지만 어른의 삶은 고달프다. 응원의 말을 전하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그에게 남은 건 월세 독촉장뿐이다. 배달 일을 하는 와중에도 슛 연습을 놓지 않던 어느 날, 윌은 농구장에 에이스 선수 매인 어트랙션이 와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간다. 자만하는 그와의 1:1 대결. 처참하게 패배한 윌의 영상이 인터넷 곳곳에 퍼질 즈음, 그는 제트와 같은 구단으로부터 스카우트 기회를 얻는다. 중소형 동물에게 농구는 사치라던데, 정말일까.
미국 농구 문화와 미국프로농구(NBA)를 현실적으로 차용한 <고트: 더 레전드>는 장단점이 뚜렷하다. 선택과 집중에 어긋난 듯 다소 스토리라인이 장황하지만,
[리뷰] 강백호의 햇살, 송태섭의 드리블, 정대만의 야투율이 이곳에, <고트: 더 레전드>
-
-
제주 4·3 사건을 배경으로 국가 폭력이라는 역사적 비극과 그것이 남긴 개인의 현재를 함께 조명하는 작품. 1949년 제주의 아픈 기억을 되찾으려는 어머니 정순(염혜란)과 촌스러운 이름을 지우고 싶은 18살 아들 영옥(신우빈)의 궤적을 따라간다. 서로 다른 시간대의 사건이 펼쳐지지만 ‘이름’이라는 연결고리로 이어지며 폭력이 어떻게 반복되고 재생산되는지를 이해시킨다. 과거의 흔적은 현재의 관계 속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관객은 그것이 특정한 사건에 해당하는 게 아닌 구조적 문제로 지속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9778명의 시민과 도민이 십시일반으로 참여해 역대 극영화 크라우드펀딩 최고 수준의 성과를 기록하며 제작된 이 작품은 그 제작 과정 자체가 집단의 기억을 복원하고 상처를 치유하려는 열망으로 볼 수 있다.
정지영 감독은 오랜 시간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영화로 다뤄온 인물이다. <내 이름은>에서도 그는 특정 사건을 단순 재연하는 데 그치지 않고 폭력이 어떤
[리뷰] 무관해 보이는 두 세계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 <내 이름은>
-
슬럼프는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 번아웃과 무기력의 시대에 <마녀배달부 키키>가 재개봉한다. 마녀 사회에서는 어린 마녀가 13살의 청소년이 되면 수습 마녀로 거듭나 1년간 고향을 떠나야 한다. 마녀가 일체 없는 타지에서 다양한 일을 하며 수행을 쌓는 것이 이곳 규칙이다. 이제 막 13살이 된 키키는 어머니의 가업을 물려받아 마녀의 길을 걷기로 결정한다. 고향을 떠난 어린 마녀는 친절하고 따뜻한 빵집 주인 오소노 아주머니를 만나 하숙집을 찾고 새로운 배달 일거리를 얻어낸다. 아이맥스 거대 스크린으로 거듭난 2026년의 <마녀배달부 키키>는 아름답고 드넓은 바다 위에서 키키와 함께 비상하는 기분을 안겨주기 충분하다. 이 장면에서 특히 키키의 빨간 리본과 푸른 대양의 선명한 색감 대비가 극대화되면서 완전한 개방감을 전해준다.
4K 리마스터링으로 다시 극장을 찾은 <마녀배달부 키키>는 불안과 우울이 조용히 침잠하는 현대사회에 순수한 용기의 의미를 전한다
[리뷰] 재개봉 영화 <마녀배달부 키키>
-
32년 만에 재개봉하는 <올란도>는 ‘오래된 고전’임과 동시에 ‘시의적절한 근작’처럼 느껴진다는 점에서 그만의 독특한 시간성을 지닌 영화다. 1992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되고 2년 뒤 한국에서 개봉했을 때 관객들은 영국에서 온 두 신성, 지금은 살아 있는 전설인 감독 샐리 포터와 배우 틸다 스윈턴의 만남을 반겼을 것이다. 작품은 이례적으로 빠르게 ‘페미니즘의 고전’으로 불리기 시작했는데, 이는 젠더와 사회적 시선의 충돌을 제대로 응시한 텍스트가 영화사를 통틀어 얼마나 희소한 것이었는지를 말해준다. 이젠 <올란도>를 트랜스젠더 영화라 부를 수 있을까. 주인공 올란도(틸다 스윈턴)는 400년을 넘게 살며 남자의 몸에서 여자의 몸으로 한번 바뀐다. 그의 성별 전환은 현대 의학의 관점이 아닌 신화적 판타지의 영역에 있는 것이지만, 육체의 변화와 함께 맞닥뜨리는 사회적 곤혹은 오늘날의 퀴어 경험들과도 공명하고 있다. 겹겹으로 온몸을 두른 귀족 남성 복식에서 벗
[리뷰] 재개봉 영화 <올란도>
-
로드뷰 서비스 회사 ‘온로드미디어’에 사건이 생긴다. ‘살목지’라는 저수지에 사람 비슷한 무언가가 찍힌 것. 모두가 담당을 피하는 와중에 한수인 PD(김혜윤)가 팀을 꾸려 살목지행을 자처한다. 앞서 살목지를 찾았다가 소식이 끊긴 교식 선배(김준한)와 재회한 수인은 안도하지만 불길한 일이 연거푸 발생하면서 이곳을 빠져나가려 한다. <살목지>는 <함진아비> 등 공포 단편을 꾸준히 연출해온 이상민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긴 머리카락처럼 늘어진 나무들과 동굴처럼 깊고 검은 물, 수상한 돌탑과 기이한 풍습, 돌연한 인기척 등 공포영화의 재료를 충분히 모아 음습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360도 카메라로 로드뷰를 촬영한다는 설정으로 갑자기 무언가가 화면에 포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만든다. 정석적으로 전개됨에도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리뷰] 언제 눈 가려야 할지 알면서도 무섭네, <살목지>
-
행복한 부부 토비아스(앤드루 가필드)와 알무트(플로렌스 퓨)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들려온다. 알무트의 난소암이 3년 만에 재발한 것이다. 이번에는 말기암이라서 수술도 어렵다. 알무트는 항암 치료를 하면서도 셰프로 이름을 남기려는 마음에 남편 몰래 생애 마지막으로 국제 요리대회인 보퀴즈 도르에 출전한다. 10년 전 교통사고의 가해자와 피해자로 만난 두 사람은 서서히 이별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브루클린>의 존 크롤리가 멜로로 돌아왔다. <위 리브 인 타임>은 비선형적 서사구조로 두 연인의 연애사를 파노라마처럼 펼친다. 이 구조가 전형적 에피소드와 서사에 활기와 풍성함을 더한다. 삭발을 감행하면서까지 캐릭터와 혼연일체가 된 플로렌스 퓨와 캐릭터의 연약하고도 섬세한 감정을 체화한 앤드루 가필드의 열연이 인상적이다.
[리뷰] 시간을 파노라마로 펼칠 때 완성되는 사랑에 관하여, <위 리브 인 타임>
-
레일라(소니아 파이디)는 어머니 소피아와 평범한 삶을 사는 중이었다. 거대 보안 기업을 거느린 로벨리가의 아들 마티아스가 마약을 흡입하고 교통사고를 내기 전까지는. 소피아의 사고 소식에 그녀의 고아원 친구인 드리스(달리 방살라)와 가브리엘(알방 르누아르)이 병원으로 달려간다. 이들이 도착했을 때 소피아는 이미 죽은 뒤였다. 사실 이 두 사람은 18년 전 헤어진 친구로 각자 해결사와 경찰로 활동하고 있다. 둘은 소피아의 죽음을 애도하며 어릴 적 셋의 우정을 되새긴다. 한눈을 판 사이 레일라가 권총을 들고 마티아스에게 복수하려 하지만, 마티아스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총을 빼앗아 자살한다. 그의 어머니 크리스티나(수잔 클레망)는 레일라를 향한 복수심으로 그녀를 납치하려 한다. 드리스와 가브리엘은 의기투합해 레일라를 지키고자 한다. <오펀스:복수자들>은 <007 노 타임 투 다이><테이큰>등 여러 할리우드영화에서 스턴트 코디네이터로 일한 올리비에 슈나이더 감독
[리뷰] 추구미는 <테이큰>이었을 텐데 도달 가능미는…, <오펀스: 복수자들>
-
한 남자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몸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이나 각질 따위를 꼼꼼하게 털어낸 뒤 집을 나선다. 고급스러운 직업을 가진 줄 알았던 슈트 차림의 이 남자는 차를 몰던 도중에 신호 대기 상태에서 갑자기 복면을 뒤집어쓴다. 자신을 뒤따라오던 운전자를 납치하기 위함이다. 그는 보석 절도범 마이크(크리스 헴스워스)다. 아주 신중하고 민첩하게 행동하며, 함부로 사람을 해치지도 않는 명민한 도둑.
그리고 보석털이범 마이크와는 전혀 다른 아침을 맞이하는 남자가 있다. 억지로 잠에서 깨어나면 아내의 잔소리가 기다리고 있는 남자는 노년의 안락함 따위와는 거리가 먼 로스앤젤레스 경찰 루(마크 러펄로)라는 인물이다. 영화는 루와 마이크의 상반된 아침 풍경을 보여준 다음 또 한명의 등장인물을 보여준다.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샤론(핼리 베리)은 매일 아침 두터운 화장으로 자신의 많은 경력과 나이를 감추려 애쓴다. 아직도 임원으로 승진을 못하고 있으며, 거추장스러운 보석과 화려한 의상을 두른 채 무
[리뷰] 경찰과 도둑의 부당하고 타당한 이상거래, <크라임 101>
-
박철환 감독의 첫 장편영화가 제작 이후 오랜 시간을 건너 관객과 만난다. 개봉하기까지 7년이라는 긴 공백이 있었음에도 낡은 기색 없이 현재의 감각을 유지한다. 영화는 한적한 지방 도시에서 벌어진 사소한 사건을 계기로 시작된다. 좌천을 거듭해온 형사 재혁(배성우)과 신입 MZ 형사 중호(정가람)가 한팀이 되어 단순 절도 사건을 파헤치던 중 종결된 줄 알았던 살인사건과 마주한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숨겨진 실체가 드러나고, 두 형사는 점차 진실에 다가간다. 범죄 수사극의 기본 문법에 충실한 이 작품은 배우들의 찰떡같은 호흡이 압권. 두말할 필요 없는 연기 고수들이 합을 이루어 맛깔난 대사와 웃음을 만들어낸다. 범죄를 가볍게 소비하지 않으면서도 장르가 주는 재미를 오롯이 챙겼으며 콤비 수사물 특유의 티키타카가 인상적이다.
[리뷰] 찰떡같은 호흡으로 만들어낸 쫀득한 재미, <끝장수사>
-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에 이어 이치조 미사키의 소설을 다시 스크린으로 옮긴 미키 다카히로 감독의 실사영화. <네가 마지막으로 남긴 노래>는 서로 다른 결핍을 지닌 소년, 소녀가 음악을 통해 관계를 만들어가며 어른으로 성장하는 시간이 오롯이 담겨 있다. 조용한 소년 하루토(미치에다 슌스케)는 발달성 난독증을 앓는 소녀 아야네(누쿠미 메루)를 위해 시를 쓰고, 아야네는 시로 만든 노래를 부르며 세상으로 나아간다. 그들에게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되면서 영화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선천적 질병을 지닌 여주인공이라는 설정과 희생 코드는 신파적인 인상을 남기지만 화사하고 깨끗한 장면 연출로 특유의 감성을 살렸다. 밝고 힘찬 주제곡은 귀에 맴돌고 몽글몽글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리뷰] 계절처럼 반복되는 우윳빛 신파, <네가 마지막으로 남긴 노래>
-
1971년 도쿄, 국철 조차장에서 변사체가 발견된다. 피해자가 젊은 남성과 함께 방문했던 주점의 직원들은 이들이 나눈 대화에서 도호쿠 지방 말씨와 ‘카메다’라는 단어를 기억한다. 형사 이마니시(단바 데쓰로)와 요시무라(모리타 겐사쿠)는 그 희미한 단서를 좇는다. 느린 호흡의 수사극 <모래그릇>이 형사의 시점을 따라 풀어나가는 것은 ‘범인은 누구인가’보다는 ‘범인은 왜 그렇게까지 했는가’에 가깝다. <잠복근무>(1958)부터 <미주 지도>(1983)까지, 노무라 요시타로 감독이 마쓰모토 세이초의 소설을 바탕으로 연출한 여러 편의 영화 중 하나로, 52년 만에 HD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국내 개봉한다. 영화 <모래그릇>은 원작의 방향성을 고려하되 디테일을 대폭 생략하고 후반부를 멜로드라마틱하게 재구성해 감성에 호소하기를 택한다.
[리뷰] 범인은 왜 그렇게까지 했는가, <모래그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