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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민의 디스토피아] 캐치 미 이프 유 캔

2009년 7월28일, 고3 학부모인 교수 A는 한 입시 전문가와 식사를 했다. ‘쓰앵님’께 스펙이 중요하다는 조언을 들었던 걸까. 이튿날부터 A는 연구실에서 인턴 증명서를 만든다. 2007년 6월부터 2009년 9월까지 한 사기업에서, 2009년 5월에는 한 국립대 센터에서, 자신의 딸이 인턴을 했다는 내용이다.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에 반영된 사기업 증명서는 기업명 중 한 글자가 잘못 표기됐다. 9월 모 사립대 입시에 제출된 국립대 센터 증명서는 센터용이 아닌 교수용 레터지였다. “그런 인턴은 없었다.” 관계자들의 하나같은 증언은 둘째치자. 기관 명의의 입시용 증빙서류를 학부모가 작성·저장·출력하는 날조 과정이 포렌식으로 명백히 밝혀졌다. A는 그러나 위조죄를 피한다. 공문서(국립대 센터 증명서) 위조는 공소시효 10년이 지나 있었다. 사기업 증명서 조작은 명의를 도용한 ‘위조’가 아닌 ‘허위 작성’으로 규정되었다. 아는 관계자에게 날인을 건네받았다는 이유다. 형법에 ‘허위 사문서 작성죄’는 없다. 가짜 스펙으로 대학교 입시 업무를 방해한 죄도 공소시효 7년을 넘겼다.

다만, 그래도 남은 죄가 있었다. A는 날조 서류들을 훗날 딸의 대학원 입시에도 사용했다. 배우자가 딸과 아들의 가짜 스펙들을 제조할 때도 공모했다(A의 배우자는 지인들에게 허위 증명서를 받기도 했고, 손수 위조를 반복하기도 했다. 명의 및 인장 부위를 오려 붙이고 거짓 내용을 입력하는 수법이었다). A가 속인 대학원은 4곳이다. 위조 공문서·사문서와 허위 작성 공문서를 행사한 죄, 위계공무집행방해죄(국공립 기관 대상)와 업무방해죄(사립 기관 대상)가 A의 죄다. A는 고위공직자 시절 어느 비위 공직자에 대한 감찰을 부당하게 끝낸 직권남용죄도 있었다. 지면 사정상 업무방해죄 형량만 보자. 형법상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고,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설정한 기본 범위는 ‘징역 6월~1년6월’이다. 단, ‘특별양형인자’에서 가중 요소가 감경 요소보다 1개 많으면 ‘징역 1년~3년6월’, 2개 이상 많으면 ‘징역 1년~5년’이다. A는 가중 요소 중 ‘반복적으로 범행한 경우’, ‘(범행 수법이 매우 불량한 경우 중) 문서위조, 조작 등의 방법을 적극적으로 동원하여 범행한 경우’ 등에 해당했다. 반면 ‘참작할 만한 범행동기’ 등 감경 요소는 없었다. 이것만으로 징역 1년~5년감이다. 징역 2년이 확정되었다. A의 딸도 입시 범죄를 시인했다. 차점 낙방자와 1.16점 차로 의전원에 합격했던, 서류 평가와 인성 면접에서 다수 가짜 스펙으로 고득점을 받았던 딸이다. 하지만 “때로는 거짓으로 사는 게 더 쉽지”.(<캐치 미 이프 유 캔>) A는 사과한다 말했지만 “범죄사실에 대한 인정이 전제되지 않은 사과”(서울고등법원 2023노550 판결)였다. 낭설도 퍼졌다. “봉사 시간 좀 부풀린 걸 가지고!” 지지자들은 A를 피해자로 꾸며냈다(김수민, “별건 수사로 멸문지화? 허위 선동의 바벨탑”, 뉴스토마토 2025년 8월26일 자 참고). 그들은 불패였다. 언론이 비리 단서를 보도하면 “기레기!”, 수사가 개시되면 “탄압이다!”, 기소되면 “무죄다!”, 유죄가 나오면 “상급심에서 뒤집힌다!” 형이 확정되어 감옥에 갇힌 이후에는? A는 형기의 3분의 1만 살고 광복절 특사로 출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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