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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왜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할까. 아이들은 왜 즐겁고 행복하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라 무섭고 이상한 이야기에 더 귀를 쫑긋 세울까. 공포에의 매혹을 심리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설명할 지식은 없지만, 아이들이 무서운 이야기를 즐기는 것은 겁쟁이가 아니라는 증명 혹은 어른스러움을 입증하는 행위 혹은 담력 테스트인 측면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고 보면 나는 심장을 죄어오는 공포를 즐길 줄 모르는 겁쟁이였다. 겁쟁이인 걸 들키는 것도 싫어하는 겁쟁이였지만 어릴 적 <전설의 고향> 중 <내 다리 내놔> 편을 봤을 때의 충격과 뭣 모르고 봤던 <오멘>의 공포는 쉽사리 떨칠 수 없었다. ‘김세인의 데구루루’를 연재하고 있는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의 김세인 감독은 자신이 괴담 마니아였다고 이번호에 실린 에세이 ‘무서운 이야기’에서 밝힌다. (“중학생 때 흔히 그렇듯 비 오는 날이면 선생님을 설득해 수업 대신 무서운 이야기를 했다. 그 순간만
[이주현 편집장] 괴담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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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아니라 응용통계라고 부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SF 작가 테드 창이 최근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인공지능 개발자나 기자들이 챗지피티와 같은 챗봇을 “나”와 같은 인칭 대명사로 칭하게 하거나 인공지능 기술을 묘사할 때 “학습”이나 “이해” 등과 같은 인간 중심적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인공지능에 대한 환상을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응용통계라니, 그동안 인공지능을 둘러싸고 과도하게 불붙었던 기대와 두려움 둘 다에 찬물을 끼얹는 이름이 아닌가. 테드 창의 표현을 빌리면 “섹시하지 않은” 이름이기 때문에 아마 아무도 사용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마침 또 이런 소식들이 들려온다. 자신을 본뜬 ‘인공지능 여자 친구’ 서비스를 출시한 미국의 인플루언서. 인공지능 앱에서 만난 가상 남성을 완벽한 남편으로 소개하는 여성. 챗지피티를 이용해서 나만의 여자 친구를 만드는 걸프렌드지피티 프로젝트를 개발하는 남성. 지난 화에서 이미 밝혔듯이 나는 인간을 닮은
[임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윌슨도 아니고 사만다도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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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플래시>의 공통점은? 모두 멀티버스(다중우주)를 활용하는 영화들이라는 점이다. 멀티버스의 개념을 요약하면, 내가 살고 있는 우주 말고 또 다른 우주에 내가 아닌 내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시간여행이 유행이었던 시대가 저물고 이제는 우주와 우주를 가로지르는(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이야기가 유행하고 있다. 멀티버스 서사의 유행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시간여행을 통해 과거 혹은 미래의 나를 만나는 것과 우주의 차원 이동을 통해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두 경우 모두 동일한(혹은 동일하다고 보이는) 자아와의 대면, 즉 거울 효과를 통한 셀프 코칭의 서사라는 점에서 유사하다. 반면 전자는 현재로의 수렴과 시간의 유한함을 얘기한다면 후자는 시공간의 우주적 확장을 통한 무한과 팽창의 서사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우리는 유한한
[이주현 편집장]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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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즘 윤석열 그분을 대통령으로 뽑은 사람들이 싫어 죽겠어요.”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푸념이다. 국민의힘 극성 지지층은 “무조건 민주당 찍는 좌파 콘크리트 40%는 인간이냐”고 조롱한다. ‘1찍(기호 1번 민주당 찍은 사람)’, ‘2찍(기호 2번 국민의힘 찍은 사람)’의 종특(종족 특성)을 운운하는 글과 말이 난무한다. 2022년 대선 직후 만난 유권자 몇몇에게 들은 말이다. “저는 국민의힘 지지자입니다만, 이재명에게 투표했어요.”(30대 초반 여성 A) A는 ‘2번’이 국정을 운영할 최소한의 자세도 안됐다고 보았다. ‘법인카드 유용’에 충격을 받았지만 ‘허위 이력’과 ‘주가 조작 의혹’에 더 경악했단다. “제 자신을 진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윤석열 찍었습니다.”(20대 후반 남성 B) 그는 조국 사태와 대장동 의혹을 거치며 ‘이번에는 1번이 져야 한다’고 생각을 굳혔다. 그는 여소야대가 여대야소보다 훨씬 낫다고 봤고 앞으로도 여소야대이길 희망했다.
세상에는 n개의
[김수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1찍과 2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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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무주산골영화제에 다녀왔다. 시외버스에 몸을 싣기 전 터미널에서 김밥까지 사먹었더니 그야말로 제대로 ‘영화 소풍’을 떠나는 기분이었다. 영화제 행사장 일대를 어슬렁거리며 오랜만에 만난 영화인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것도 좋았지만, 사람들이 모인 곳을 조금만 벗어나면 인구밀도가 급격히 낮아지는 소도시의 특성상 발길 닿는 대로 이동하다 온전히 혼자 된 기분을 만끽하는 일이 무엇보다 좋았다. 그러다 유난히 키 큰 나무 한 그루를 만났다. 다가가 안내 푯말을 보니 수령이 500년이다. 무주에서만 500년을 산 이 나무는 다른 땅, 다른 하늘이 궁금하지는 않았을까. 나무가 품은 경이로운 시간에 감탄하며 무주를 산책하자 어쩐지 <박하경 여행기>를 찍는 기분이 들었다.
미야케 쇼 감독도 신작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을 들고 무주산골영화제를 찾았다. 어깨너머로도 그를 보진 못했지만 이번주 특집 기사를 읽으며 그를 꽤 잘 알게 된 느낌이다. <씨네21>
[이주현 편집장] 청춘영화의 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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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이었다. 채도와 명도가 높은 파란색 파도가 휘몰아쳤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비슷한 느낌이었는지 주위 사람들도 웃거나 탄성을 질렀다. 공항 건물이 살짝 흔들린 것도 같았다. 귀국한 아티스트 J가 공항 출구에서 자신의 차로 향하는 시간은 10여초였다. 몇 시간을 기다린 팬들이 그를 따라가며 환호한 것은 물론이고, 나처럼 누군가를 마중 나왔다가 난데없이 그 파도를 맞은 사람들도 왠지 들떠 웅성거렸다. 누군가 말했다. “와, 정말 대단하다.” 그건 K팝 스타의 인기라든가 팬들의 ‘열성’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었다. 갑자기 공기를 눈부신 것, 차가운 것, 또는 열렬한 것, 간지럽고 조금 눈물 나는 것으로 만들어버린 사랑이 대단하다는 뜻이었다. 이만한 에너지를 가진 건 사랑밖에 없다.
사실 팬덤 문화에 대해서라면 나도 모르지 않는다. 한반도의 팬덤 역사에서 나는 신석기인쯤 될 것이다. 90년대 초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열풍이 시작되기도 전, 종로 어느 레코드 가게에서 재
[김소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사랑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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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영화제가 5월27일 폐막했다. 여전히 마음은 칸에서 배회 중인 듯한 송경원, 김소미 기자는 시차 적응에 실패했다며 다크서클을 주렁주렁 달고 출근했다. 영화 보랴 기사 쓰랴 사람들 만나랴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두 사람은 칸영화제 공식 굿즈 중 하나인 에코백 선물을 잊지 않았다. 칸영화제 출장자의 에코백 선물은 어느덧 <씨네21>의 전통 아닌 전통이 되어버려, 나는 칸영화제 에코백만으로 일주일 내내 새 가방을 들 수 있는 에코백 부자가 되었다. <씨네21> 기자들은 한동안 너도나도 한쪽 어깨에 ‘FESTIVAL DE CANNES’이 큼지막이 프린트된 가방을 메고서 묘한 동료애를 나눌 것이다. 시사회장에서나 거리에서 같은 가방을 멘 서로를 발견하고 슬며시 미소 지을 것이다. 사실 진짜로 기다린 건 에코백이 아니라 칸에서의 이야기다. 아직 두 기자는 칸에서의 이야기보따리를 제대로 풀어놓지 않았는데(나만 못 들은 건가?), 들리는 얘기에 따르면 <씨네21>
[이주현 편집장] 칸의 영화들, 수입 됐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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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건설노동자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결국 사망했다. “죄 없이 정당하게 노조 활동을 했는데, 집시법 위반도 아니고 업무방해 및 공갈이랍니다. 제 자존심이 허락되지가 않네요”라고 그는 유서를 남겼다. ‘심리적 G8’에 이르렀다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들의 심리는 세계 최정상 8봉 가운데 하나에 올랐는지 몰라도 내 마음은 바닥을 뚫고 한없이 추락한다. 도대체 그들의 심리와 나의 심리가 이렇게 ‘하늘 끝, 땅끝’만큼의 차이가 있단 말인가.
비록 나와는 달라도 같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만큼은 남겨놓으려고 했다. 그런데 <조선일보>가 나의 그 안간힘조차 걷어찼다. 당시 현장에 있던 주변 동료들이 분신 노동자를 말리려고 하지 않았고, 심지어 유서까지 대필한 의혹이 있다는 주장. 누군가는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위해 목숨을 던지고, 대부분은 그걸 보며 참혹해하는데, 다른 누군가는 그렇게 스러져간 목숨을 조롱한다. 같은 인간이 아닌 건가, 아니면 인간들 중 일부는
[정준희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수치심 없는 자들은 이해할 수 없는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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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계 축구계는 레알 마드리드 소속 선수 비니시우스 주니오르를 향한 인종차별 문제로 떠들썩하다. 지난 5월22일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발렌시아와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 도중 발렌시아의 홈 팬들이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수 비니시우스를 향해 인종차별적 발언을 퍼부었다. 비니시우스는 관중과 설전을 벌였고 경기 막판엔 상대 선수들과 몸싸움을 하다 퇴장까지 당했다. 이후 비니시우스는 자신의 SNS에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두 번째, 세 번째도 아니다. 라리가에선 인종차별이 일상화되어 있다”고 스페인 축구계에 실망감을 드러냈다. 그가 브라질의 축구 스타이기도 한 만큼 룰라 대통령까지 나서 인종차별 행위에 대한 엄중한 대처를 촉구했다. 많은 동료 선수들이 비니시우스를 향해 연대 의사를 표했고, 25일 레알 마드리드 홈구장에서 진행된 경기에선 동료 선수들이 비니시우스의 유니폼을 단체로 입고 경기장에 입장했다. 구단은 공식 SNS에 이 사진과 함께 “우리는 모두 비니시우스다”라는 문장을 올렸다. 손
[이주현 편집장] NO ROOM FOR RAC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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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로봇청소기를 쓰기 시작했다. 지난해 연구실이 생기자마자 샀던 것은 부직포를 붙여 쓰는 청소밀대였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내 손으로 연구실 구석구석을 쓸고 닦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일주일이 이주일이 되고 이주일이 한달이 되고 한달이…. 그렇게 일년쯤 지난 후 난 청소할 생각을 접었다. 역시 바쁜 현대인은 기계의 도움이 필요해! 그렇게 로봇청소기를 주문했다.
기계가 나를 대신해서 연구실을 돌아다니며 청소를 하게 하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연구실 문 앞에 도착한 박스를 보며 깨달았다. 내가 읽을 수 있는 언어로 된 사용설명서가 없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인터넷 검색으로 같은 제품을 쓰는 사람들의 글을 읽어보고 대략적인 사용법을 익혔다. 별도로 구입한 전원 플러그를 연결하고 함께 온 여러 부품을 본체와 스테이션에 끼워넣었다. 연구실에 벽면 콘센트가 많지 않아 원래 있던 냉장고를 어정쩡하게 틀어놓고 나서야 스테이션이 놓일 자리를 만들 수 있었다. 앱을 다운받고
[임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나의 로봇청소기 사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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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영화인들의 대축제, 제76회 칸영화제가 5월16일 개막했다. ‘과거의 오늘’을 상기시켜주는 SNS는 지난해 이맘때 내가 칸에 있었음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칸영화제 역사상 처음으로 시도된 온라인 티켓 예매 시스템에 적응하느라 애먹었던 기억도, <헤어질 결심> <슬픔의 삼각형> <클로즈>를 보고 나온 뒤 벅차고 설레고 행복했던 기분도, 맛있는 크루아상을 먹고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매일 프렌치 무드에 취했던 시간도 이제는 그저 아득하기만 하다. 올해는 송경원, 김소미 기자가 칸영화제 취재를 맡았는데, 그들이 생존신고차 보내온 사진들을 보니 올해도 칸의 하늘은 쨍하게 푸르고 영화제의 열기는 기대만큼 뜨거워 보인다. 영화제 초반에 화제 혹은 논란이 된 작품은 개막작 <잔 뒤 바리>다. 논란의 이유는 <잔 뒤 바리>가 가정 폭력 혐의로 법정 공방을 이어갔던 배우 조니 뎁의 복귀작이기 때문이다. 문제적 배우의 복귀 시점은 언제나 논란 거리
[이주현 편집장] 영화제의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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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 깊은 건물이라고 해서 반드시 보존하라는 법은 없다. 건물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지 사람이 건물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재개발/재건축이 원형 보존보다 공익에 부합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 건물이 무엇인지에 따라 사람의 생각은 움직일 수 있다. 원주시가 허물려는 원주 아카데미극장은 1963년에 세워져 현재까지 원형을 간직한 건축물이다. 오래 공존했던 원주 시내 다른 단관 극장들이 사라지고 홀로 남았다.
원주시가 전임 집행부의 복원 계획을 뒤집고 철거로 방향을 틀자, 문화유산을 지키려는 보존론과 주차장과 야외공연장으로 바꿔보자는 철거론이 맞섰다. 양쪽 모두 자신의 방안이 인근 시장을 살리는 것이라 주장한다. 원주시의회는 이 문제로 연신 파행을 겪다가 희한한 중간 결과를 내놨다. 추가경정예산안 처리는 다음 회기로 넘어가 철거 집행이 지연되었지만, 철거 계획을 담은 ‘공유재산 관리계획 변경안’은 표결에서 간발의 차이로 통과되었다. ‘계산’만 미룬 채 ‘주문’을 질러버린 꼴
[김수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극장의 밑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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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처님오신날 등이 모여 있는 5월은 지출이 늘어나는 달이지만 감사의 말을 전하기 좋은 달이다. 어버이날,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는 본인의 딸로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말을 해주었고 나 역시 나의 어머니여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나의 사회적 자아는 <브로커>의 “태어나줘서 고마워”처럼 진지한 대사에 저항하려 하지만 현실에선 영화보다 더 낯간지러운 상황을 끌어안기도 한다. 5월은 감사의 달이니 오늘은 낯간지럽더라도 감사의 에디토리얼을 써볼까 한다.
마침 1406호 표지를 장식한 배우 김우빈은 감사 일기를 꾸준히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15년째 감사 일기를 쓰고 있다는 김우빈은 “자기 전에 다섯 가지 감사를 쓰는데 15년 하다 보면 쓰는 데도 얼마 안 걸린다”며, ‘운동을 즐겁게 할 수 있어서, 쉴 수 있는 집이 있어서, 즐겁게 스트레칭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전날 쓴 일기를 소개했다. 오늘 나의 다섯 가지 감사한 일은… 첫 번
[이주현 편집장] 감사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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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종이는 좋은 미술 도구다. 예쁘고 가볍고 흔하다. 접어서 토끼나 비행기 같은 걸 뚝딱 만들 수 있다. 잘못 접어도 별로 표나지 않는다. 다만 고쳐 접을 때는 손톱에 힘을 주어 싹싹 문질러야 한다. 무엇보다 색종이는 가위질하기가 쉽다. 조금 무딘 가위로도 기분 좋게 잘라진다. 마분지나 켄트지보다 풀칠도 잘된다. 사실 너무 잘된다. 오려 붙이기를 할 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계획과 다른 작품이 탄생한다. 작은 조각이 손끝의 통제를 벗어나 엉뚱한 자리에 붙어버리기 때문이다. 그 점만 주의하면 색종이는 정말 좋다. 특히 어디에 좋은가 하면, 어린이와 대화를 나누기에 좋다.
나는 독서교실에 온 지 얼마 안된 니은이 마음을 얻으려고 안달복달하고 있었다. 니은이는 일찌감치 ‘스스로’ 독서교실에 온 오빠와 달리 책에 ‘전혀’라고 할 만큼 관심이 없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나와 인사하기도 싫어했다. 새로운 관계에 마음을 여는 데 오래 걸리는 편이라는 어머니의 귀띔대로였다. 막상 수업을 시작하
[김소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색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