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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이 지면에 영화 기자의 비애에 대해 쓴 적이 있다. <씨네21> 기자라면 넘어야 할 산 몇개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담력 약한 사람도 공포영화를 보고 기사를 써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한편 영화잡지 편집장의 비애도 있다. 영화와 드라마의 스포일러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기 일쑤라는 것이다. 최근엔 <마스크걸>에서 누가누가 죽음의 퇴장을 맞이하는지 스포당했다. 자고로 영화잡지 편집장이라면 스포일러에 의연해야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보지 못했으나 이미 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영화들이 자주 생겨난다. 이번주 긴 페이지를 할애해 소개하는 <어파이어>의 시사회 기회를 놓쳤다. 그럼에도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의 인터뷰, 페촐트의 배우들, 지난 작품들, 독일 영화사에서의 위치 등을 총정리하고 났더니 <어파이어>를 보지 않았는데도 <어파이어> 속 붉게 물든 하늘을 이미 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씨네21>은 크리스티안
[이주현 편집장] 크리스티안 페촐트와 지하철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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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잼버리 실패를 빌미로 불거진 ‘전북 지역 혐오’를 보며,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잠겼다. 나는 경북 구미에서 사반세기쯤 살았다. 대구경북이 겪는 곤경을 호남이 당해온 차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툭하면 지역 혐오에 노출되는 처지는 점점 비슷해진다. 고작 ‘선거 결과’가 혐오의 근거가 되고, 지역 내의 다양성과 활력이 ‘없는 것’으로 치부된다. 혐오는 어느 일방의 힘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지역 안에는 이견을 무시하고 지역 전체를 참칭하는 다수파가 있고, 지역 밖에선 지역을 통째로 싸잡아 매도하는 시도가 끊이지 않는다.
나는 2010년부터 2014년 사이에 종종 ‘박정희 기념 공공 사업을 반대하는 구미시의회의원’으로 언론에 소개되었다. “구미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군요”라는 식의 댓글은 거의 달리지 않았다. 광신자들의 도시로 몰아가는 혐오만 난무했다(서울에도 떡하니 박정희기념관이 있으면서). 2016년 5월에 실시된 구미시민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할가량이 당시까지 진행
[김수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도(道)리엔탈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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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을 10번 봤다거나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20번쯤 봤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렇게까지 보고 또 보는 마음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조금 다른 맥락이지만, 나의 최다 N차 관람 영화는 영어 섀도잉을 해보겠다며 선택한 <라라랜드> 되겠다. 스스로의 노래 실력에 크게 실망해, 영화에 등장하는 두 번째 노래 <Someone in the Crowd>까지만 열심히 따라하다 반복 관람하길 중단했다. 어쨌거나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116회나 본 관객이 있다는 소식에 꽤 놀랐다. 8월30일 열린 ‘2023 CGV 영화산업 미디어 포럼’에서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116회 예매한 관객의 사례가 소개됐다. 이날 포럼에선 ‘소확잼(소소하지만 확실한 재미), 역주행, 서브컬처의 부상, 비일상성’이 코로나19 이후 관객의 영화 소비 트렌드가 되었다는 발표가 있었다.
디깅 모멘텀(Digging Momentum). 자신이
[이주현 편집장] 과몰입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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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53번 버스를 좋아했다. 그 버스를 타려면 집에서 좀 떨어진 정류장까지 걸어가야 했지만 상관없었다. 시간도 많고 체력도 충분했다. 일단 타기만 하면 종로까지 한번에 갈 수 있으니 감수할 만했다. 서점과 음반 가게, 영화관 등 중학생에게 필요한 거의 모든 게 있는 종로. 버스가 서울역을 지나 남대문을 끼고 돌 때면 앞 유리창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서울시청에서 광화문까지 쭉 뻗은 길을 보면 마음이 트였다. 일요일의 도심을, 눅눅한 집과 서늘한 학교를 잊고 쏘다녔다. 영화관 입장권은커녕 메모지 묶음 하나 살 돈도 없을 때가 실은 더 많았지만, 새것을 실컷 보는 나들이는 언제나 재미있었다. 집에 돌아갈 때면 시간도 부족하고 체력도 떨어졌다. 남대문시장쯤으로 걸어와 57번이나 58번 버스를 탔다. 집에서 가까운 정류장에 내리기 위해서였다.
나이가 들수록 내가 탈 수 있는, 타야 하는 버스도 늘어갔다. 나는 ‘빠르고 정확한’ 지하철보다 ‘확실하지 않은’ 버스를 더 좋아하는 어른이 되었
[김소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버스를 타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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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의 비평지면 ‘프런트 라인’의 필자 4명(김소희, 송형국, 김병규, 송경원)이 한자리에 모였다. <밀수> <더 문> <비공식작전> <콘크리트 유토피아>까지, 올여름 개봉한 4편의 한국영화 대작들을 중심으로 최근 한국 상업영화가 보여준 일련의 경향과 성패를 살피기 위해서였다. 조곤조곤 진행된 대담은 4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몰래 온 손님처럼 참석한 나는 이야기가 더 지속되기를 바랐지만 평론가들은 창문 없는 회의실을 이제 그만 탈출하고 싶은 눈치였고 이야기를 정리해야 하는 이우빈 기자도 이미 기사로 쓸 분량은 충분하다는 말로 평론가들의 귀가를 배웅했다.
‘한국 여름영화 빅4를 말하다’ 대담 시작에 앞서 김병규 평론가는 ‘개봉 시기가 비슷할 뿐인 4편의 영화를 왜 빅4라는 이름으로 묶어 이야기해야 하는지, 무기력한 관습과 인위적인 마케팅 용어는 아닌지’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했다. 옳은 말씀. 1년 중 가장 많은 관객이
[이주현 편집장] 2023년 여름의 한국영화가 남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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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같은 기억(photographic memory). 흔히 기억력이 좋은 사람을 지칭할 때 쓰는 말이다. 무언가를 직접 보는 것 같은 기억력이라고 해서 ‘직관기억’(eidetic memory)이라는 좀더 전문적인 용어도 있다. 직관기억은 성인에게서는 보고되지 않는 특징이며, 아동기의 특정 사례에서도 무언가를 본 직후 아주 짧은 기간만 지속되는 것으로 관찰된다. 그에 반해 사진 같은 기억은 원한다면 언제든 다시 불러올 수 있다는 면에서 직관기억과는 구별된다. 스스로 ‘사진 같은 기억력’을 지녔다고 은근히 우쭐해하는 성인들을 만나는 것 역시 드물지 않다.
그런데 사진 같은 기억이든 직관기억이든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는 없다.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세부사항을 기억해내는 능력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다. 다만 그런 기억력조차도 사진이나 직접관람에 해당할 정도의 정확성과는 매우 거리가 멀다는 게 현재까지의 과학적 결론이다. 음정을 정확히 짚어내는 ‘절대음감’과 음질 차이를 칼같이 짚어내
[정준희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제멋대로의 기억을 감히 역사라 말하는 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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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맣게 잊고 있던 부끄러운 경험 하나가 떠오른다. 대학 1학년, 몸담고 있던 교내 방송국에서 영상팀 친구들이 단편영화를 만들었고, 거의 모든 동기들이 크고 작은 배역에 동원된 가운데 나 역시 카메라 앞에서 연기라는 걸 처음 해봤다. ‘계단을 올라간다. 문 앞에 다다른다. 뒤돌아본다. 눈을 크게 뜨고 놀란 표정을 짓는다. 카메라가 내 얼굴을 줌인한다.’ 장르는 호러 아니면 스릴러였지만 누가 봐도 실소를 터뜨릴 연기였다. 이후 친구들이 다시는 나를 배우로 기용하지 않은 걸 보면 연기에는 영 소질이 없었던 모양이다.
내게 연기는 이해할 수도 도달할 수도 없는 미지의 영역 중 하나다. 배우들의 존재가 늘 신기하고 신비로운 것도 그래서일까. 숭실대학교 영화예술전공 최익환 교수에게서 여름방학 기간 숭실대와 서울예대 학생들의 ‘대학 연기 배틀’이 열린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순수한 호기심으로 현장에 초대해달라 청했다. 8월11일, 두근두근 두근대는 가슴 안고 숭실대로 향했다. 오후에 진행된
[이주현 편집장] 연기가 하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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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이 이번에는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국내 최초 로봇 지휘자를 소개하는 TV 뉴스를 봤다. 지휘봉을 휘두르는 로봇을 바라보며 연주하는 수십명의 국립국악관현악단 단원들의 모습이 화면에 잡힌다. 며칠 후 국립극장에서 연주할 곡을 연습 중이었다. 요즘 각광받는 생성형 인공지능이라도 탑재한 로봇인가 했는데 그렇지는 않고 실제 지휘자의 동작을 따라 움직이도록 사전에 입력된 로봇이었다. 뻣뻣하게 고정되어 있는 하체와 대조적으로 로봇 상체의 팔은 아주 부드럽게 움직였다. 얼굴 표정은 굳어 있었지만 박자에 따라 살짝 까딱거리는 고개 덕분인지 전체적으로 아주 자연스러워 보였다.
로봇의 이름은 에버6(EveR-6). 에버(Ever)는 태초의 여성을 뜻하는 이브(Eve)에 로봇(Robot)의 R을 붙여 만든 이름이다. 2006년에 탄생한 에버1은 한국 연구진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만든 안드로이드 로봇이다. 인간 여성과 비슷한 외모와 행동은 물론 감정 표현까지 할 수 있게 얼굴에만 15개의 모터
[임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우리 에버가 달라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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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의 대작 시리즈 <무빙>이 8월9일 공개됐다. 시리즈를 미리 본 기자들은 하나같이 재미를 보장했다. 뒤늦게 강풀 작가의 원작 웹툰을 찾아봤다. 역시, 괜히 누적 조회수가 2억뷰에 이르는 메가 히트작이 아니었다. 초반부, 아기 봉석에게 공중부양 능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된 부모 미현과 두식(영화에선 한효주와 조인성이 연기하는 인물들)이 방에 그물을 쳐놓고 아기를 재우는 컷에서부터 마음을 빼앗기기 시작했다. 수면 중 아기가 천장에 부딪힐까 싶어 젊은 부모는 방 안에 그물을 쳤고, 그물에 걸린 아기는 곤히 잠든 엄마와 아빠를 공중에서 행복하게 내려다본다. 초능력 아기의 시선 아래, 비범한 사랑을 품은 보통의 존재들이 잠들어 있다. 아기의 공중 시점으로 색다른 앵글을 만들어낸 것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의 너르고 따스한 시선 덕에 마음이 덩달아 두둥실 떠오르는 듯했다. 특별한 신체능력을 지닌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히어로물이니 분명 폭력을 동반한 갈등의 서사가 이어지겠지만
[이주현 편집장] 스크롤 내리거나, 스크린 향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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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대한민국의 첫 대통령이었으니 무척 훌륭한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깨졌다. 어머니는 어린이용 인명사전 ‘이승만’ 편에 적힌 ‘부정부패’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심각하게 설명하셨다. 마침 드라마 <제2공화국>이 MBC에서 한창 방영 중이었다. ‘최불암이 이승만 역인데 설마 악역일까’ 싶었다. 그러다 4·19가 일어나 이승만 동상이 철거되는 장면을 보고야 말았다. 2년 뒤 러시아에서 레닌 동상이 철거되었을 때 나는 한국사를 자랑스러워했다.
지난 7월27일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 이승만의 동상이 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 동상과 함께 세워졌다. 파고다공원의 이승만 동상이 철거된 지 63년3개월 만의 일이다. 대통령 윤석열도 화환을 보냈다. 이들이 이러는 이유는 간단하다. 전두환과 노태우, 이명박과 박근혜는 감옥에 들어갔다 나왔다. 김영삼은 임기 말 경제 환란을 맞았기에 마냥 떠받들기
[김수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국부론(國父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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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펄펄 끓고 있다. 유럽에선 40도가 넘는 폭염에 대규모 산불이 발생하고 있고, 미국 플로리다 남부 바다의 수온은 38도까지 상승했다고 한다. 멀리 눈 돌릴 일도 아니다. 최근 강원도 강릉에선 열대야를 넘어 밤 최저기온이 30도 이상인 초열대야가 발생했다. 정말이지 24시간이 덥다. 어쩌면 지금의 극단적 기후 현상은 지구의 비명일지 모른다. 그 비명을 인간이 모른 척한다면 아포칼립스 영화가 현실이 되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이다.
한편 폭염 속에서 4만보를 넘게 걸으며 카트 정리를 했던 대형 마트의 청년 노동자가 사망했다. 야외에서 고강도 노동을 하는 건설 노동자와 플랫폼 배달 노동자들의 폭염 속 휴식권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휴식권. 일을 멈추고 쉴 권리. 건강에 무리를 줄 수 있는 환경일 때 잠시 일을 멈추고 쉬겠다는 게 무리한 요구일까. 상식적으로는 무리가 아니지만 ‘노동자들의 감독’ 켄 로치의 <미안해요, 리키>를 보면 플랫폼 배달 노동자
[이주현 편집장] 디스토피아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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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의 좋은 점을 세 가지 말해보겠다. 첫째, 로고가 아름답다. 박물관의 외관을 담백하고 기품 있게 표현한 선들이 멋있다. 둘째, 앞마당 전경이 시원스럽다. 이렇게 탁 트인 곳에서는 마음도 얼마간 넓어지게 마련이다. 움직임도 커진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린이들은 반드시 뛰게 된다. 셋째, 어린이가 많다. 정책이나 실제 상황은 어떤지 몰라도 이 공간이 어린이를 환영한다는 건 확실하다. 어린이만큼 이 문제에 민감한 사람은 없으니까.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 상형토기와 토우장식토기>전이 열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갔다가 어린이를 많이 보았다. 식당에서 어린이 일행이 오르르 몰려 다녔다. 동행한 어른들이 키오스크와 씨름하는 동안 어린이들이 자리를 맡아두는 모양이었다. 누구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누구누구는 티격태격하는 동안, 나란히 앉은 어린이 셋은 말없이 넓은 창 너머 푸르른 정원을 구경했다. 그 눈에 무엇이 담기고 마음에 무엇이 남을까? 어쩌면 전시보다 이
[김소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박물관 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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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휴가철이다. 여름휴가로 며칠 쉰다는 안내문을 붙여놓은 동네 미용실과 카페도 자주 눈에 띈다. 나도 일주일간의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다. 이번 휴가의 테마는 ‘특별한 걸 하지 않아도 좋아’ 혹은 ‘반자본주의적으로 살아보기’이다. 사실 이 말의 본뜻은 ‘느리고 게으르게 살겠다’는 것이다. 돈이 아닌 시간으로 사치를 부려보기로 한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무해한 플렉스라고 생각한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시간을 쓰는 일. 정해진 일과가 아니라 무계획과 비효율 속에서 즐거움 찾기. 이번 휴가 기간 동안 내가 실천하고 싶은 것이다.
지난 며칠은 서울에서 정주민이 아닌 여행자의 기분을 내며 돌아다녔다. 적당히 익숙하고 좋아하는 동네에서 평소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머물러보는 것이다. 낯선 시간에 낯선 길을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지난 화요일 아침 7시30분에 덕수궁 돌담길을 걸었다. 덕수궁 대한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이주현 편집장] 나의 여름 해방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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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만큼 디스토피아적인 소재가 있을까. 그런데 대다수의 재난영화는 사실 그다지 디스토피아적이지는 않다. 이유를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시종일관 디스토피아적인 상태의 불편함과 암울함을 견뎌줄 관객이 많지는 않기 때문일 테다. 그래서 이들 영화가 다루는 재난은 주로 재난 자체의 기승전결 서사(敍事)를 갖는다. 임박한 파국을 예측해서 경고하는 소수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그걸 무시하는 기존 시스템의 관성이 있다. 극의 초반기에는 답답하게도 후자의 힘이 압도적이지만, 결국 당도한 재난 앞에 전자의 예지와 역량이 빛을 발하고, 이들의 분투 덕에 재난은 ‘극적으로’ 그래서 ‘대충’ 극복되곤 한다.
이와는 다른 디스토피아적 영화의 서사는 주로 ‘재난 이후’를 소재로 삼는다. 인간이 멍청해서든 무력해서든 회복할 수 없는 재난의 결과로 펼쳐진 지옥도 위에서, 또 인간은 분투한다. 마치 재난이 소재인 듯하나 실제로는 정치가 내러티브의 핵심이다. 이 새로운 ‘자연상태’에 대한 해석은 영화마다 조금씩
[정준희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재난의 서사(敍事, 序詞, 署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