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3일 과학책방 갈다가 주최한 ‘사이언스 미디어 페스티벌’에서 차진엽 안무가의 <원형하는 몸>을 영상으로 봤다. 지난해에 같은 제목으로 국립극장 무대에 오른 공연을 봤을 때의 감동이 되살아났다. 동시에 무대 위가 아닌 영상 속에서 펼쳐지는 공연은 완전히 다른 작품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공연장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천장에 매달린 커다란 얼음이었다. 굵은 줄로 동여매진 얼음덩어리에서는 벌써부터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그 밑에 물방울을 받아내는 투명한 그릇이 놓여 있다. 공연 설명에 따르면 불규칙하게 떨어지는 물방울이 만드는 소리와 움직임을 무대 위의 청각적 요소와 시각적 요소로 증폭하여 구현하는 기술이 활용됐다고 한다. 예술과 과학의 융합이다.
영상은 크게 세 파트로 나뉜다. 영상의 전반부에서 흰옷을 입은 무용가의 움직임은 매우 대칭적이며 반복적이다. 유연한 움직임 덕분에 마치 물속에서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인다. 손이나 다리, 손가락의 움직임 때문에 섬모나 촉수를 가진 수중 생명체로 보이기도 한다. 드디어 얼음이 등장하고 검은 옷으로 갈아입은 무용가는 떨어지는 물방울에 손과 팔을 갖다 대며 새로운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이전의 동작과는 완전히 다르다. 전혀 대칭적이지도 않고 반복적이지도 않은 움직임이 불규칙하게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와 잘 맞아떨어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 화면이 밝아지면서 물결이 이는 바다 한가운데에 서 있는 무용가의 모습이 보인다. 공연을 봤을 때 긴가민가했던 것들이 이제 더 분명하게 보이는 것 같다.
<원형하는 몸>은 정말 흥미진진한 작품이다. 사물의 외형에 관심이 있는 나에게는 특히 그렇다. 인간은 납작한 원반 모양의 로봇청소기에도 이름을 붙여주고 말을 걸 만큼 ‘사물의 인간화’에 익숙한 종이다. 그 익숙함을 위해서 어떤 기계는 아이를 닮고 또 어떤 기계는 여성을 닮도록 만들어진다. 그러나 이 작품은 정반대다. ‘인간의 사물화’가 일어난다. 무용가의 몸이 물속 생물이나 물 분자처럼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그렇게 보이는 이유가 생김새 때문이 아니라 움직임 때문이라는 것이다. 브라운 운동을 하는 꽃가루나 섬모로 이동하는 짚신벌레처럼 무용가는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고 어떤 목적의식이나 감정도 없어 보이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인간의 몸이지만 인간처럼 움직이지 않는 몸이고 여성의 몸이지만 여성적이지 않은 몸이다. 낯설다.
물, 자궁, 생명, 그리고 여성…. 너무나 익숙하게 떠오르는 대자연 여신의 이야기에 이 작품은 단 한순간도 기대지 않는다. 여신이 되기보다 물방울이 되기를 택한 것이다. 그러자 비로소 여성의 몸은 몸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원형하는 몸>은 과연 ‘사이언스 미디어’다. 과학은 미디어 기술에만 있지 않다. 과학은 여성의 몸을 익숙한 신화의 영역에 남겨두지 않으려는 의지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