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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수행이 필요했던 저연차 기자 시절. 백흥암에서 수행 중인 비구니들의 삶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길 위에서>를 감명 깊게 보고 이창재 감독을 인터뷰했다. 이후로도 감독의 차기작에 늘 관심은 기울이고 있었지만 대면할 기회는 좀처럼 없었다. 그러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이하 전주영화제)에서 10년 만에 그를 다시 만났다. 다큐멘터리 <문재인입니다>를 들고 전주를 찾은 그는 미소를 머금은 편안한 얼굴로 고생담을 술술 들려주기 시작했다. 최소 1박2일은 들어야 전말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은 이야기. 이번주 특집 ‘전주에서 만난 사람들’ 인터뷰 기사에서도 그 고생담의 일부를 확인할 수 있는데, 여기선 기사에서도 빠진 뒷이야기 일부를 전하려 한다. 기사에선 이창재 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동안 이가 하나 빠졌다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2.5개의 이가 빠졌을 만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섭외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대통령을 직접 만나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전공과
[이주현 편집장] 전주를 기억하게 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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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집에는 다락방이란 게 있었다. 집을 짓다 보면 생기게 마련인 허드레 공간인 셈인데, 좀 작으면 그냥 ‘다락’이었고, 사람이 들어갈 만한 여지가 있으면 다락‘방’이 되었다. 어릴 적 나는 이 다락방에서 많은 걸 했다. 사촌 동생과 놀아준다는 핑계로 어른들의 눈을 피해 나는 갖지 못했던 좋은 장난감을 충분히 만져볼 수 있었다. 보퉁이에 싸인 잡스러운 것들을 뒤져보는 재미에 더해 가끔씩 요긴한 물건을 ‘득템’하는 행운도 찾아왔다.
대개는 그곳에서 책을 읽었다. 퍽 학구적인 아동기를 보낸 것 같지만, 실은 계통이 잘 잡히지 않는 독서였다. 이른바 ‘남독’에 빠져 있던 셈인데, 삼중당문고 한국 근대문학 소설에서부터, 일본 대하소설 <대망>의 해적판, 고모가 보던 하이틴 잡지, 할아버지가 길거리에서 산 <생활상식백과>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 꿈을 해몽하는 법을 배웠고, 일본의 전국시대를 머릿속에 그려넣었으며, 이름이 비슷한 김동인과 김동리
[정준희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다락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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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의 잡지를 만드는 데에는 생각보다 방대한 인력과 노동량과 자본이 투입된다. 매주 한숨과 스트레스의 파티를 벌이고 나면 이 일이 지속 가능한 일인지 수지타산이 맞는 일인지 자문하게 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매주 잡지를 만든다. 끊임없이 자신을 연마하며, 이 일이 지속 가능해질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며.
주먹을 불끈 쥐고 서두를 쓴 이유는 1404호 특집으로 젊은 영화평론가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이런저런 생각이 복잡하게 엉켜서다. 블로그, SNS, 팟캐스트, 메일링 서비스 등 다채로운 플랫폼을 활용하는 것은 물론 글쓰기에 국한되지 않은 다양한 방법론으로 비평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동시대 신진 영화평론가들이 늘어나고 있는 흐름 속에서 <씨네21>은 그들의 활동 양상을 살피고 그들의 생각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우선 <씨네21> 지면에서 자주 보았을 이름들에게 만남을 청했다. <씨네21> 영화평론상을 통해 2018년, 2020년, 20
[이주현 편집장] <씨네21>과 비평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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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주 흥미로운 제목의 논문을 접하게 되었다. ‘당신의 무기를 선택하라: 우울한 인공지능 학자들을 위한 생존 전략.’ (Choose Your Weapon: Survival Strategies for Depressed AI Academics) 각각 뉴욕대학교 컴퓨터 과학 및 공학과 그리고 몰타대학교 디지털 게임 연구소의 교수로 있는 두 인공지능 연구자가 쓴 글이다. “당신은 학술 기관의 인공지능 연구자인가요? 현재의 인공지능 발전 속도에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고 불안해하고 있나요? 인공지능 연구 혁신에 필요한 컴퓨팅 및 인적 자원에 대한 접근이 전혀 없거나 매우 제한적이라고 생각하나요?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저희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논문의 초록은 이렇게 시작한다.
논문을 읽으면서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우울했구나! 지난 글에서 썼듯이, 나는 인공지능이 생성하는 수많은 젊은 여성의 이미지가 불쾌했다. 그 불쾌함의 심연에 여성 대상화의 유구한 역사가 있기에 더욱
[임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우울한 인공지능 시대의 생존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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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득한 과거가 되었을 뿐 사장된 기억을 꺼내 보니 나도 한때는 수면과 식사를 거르고 게임에 몰두하던 때가 있었다. 모니터를 뚫고 들어갈 듯 <스타크래프트>와 세이클럽 맞고에 빠져 지낸 게 내 게임 역사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계속해서 누적된 패배와 사이버 세상에서 모은 고액의 고스톱 머니를 탕진한 슬픔 때문에 다시는 게임에 손을 대지 않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게임을 할 때 느끼는 기쁨과 슬픔은 영화를 보며 느끼는 기쁨과 슬픔과 다르기에, 개인적으로는 늘 게임과 영화의 상호 간 구애에 의구심이 있었다. <툼레이더> <레지던트 이블> <언차티드> <앵그리버드 더 무비> 등 게임 원작 영화들이 꾸준히 제작되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텐데 게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인지 ‘왜 굳이’라는 물음만 생길 뿐 마땅한 이유를 찾기는 어려웠다. 최근 역대 게임 원작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하며 승승장구 중인 애니메이션 <슈퍼 마리
[이주현 편집장] 게임과 영화의 만남, 슈퍼스타와 <씨네21>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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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소희>를 본 관객은 ‘다음에 올 소희’의 삶을 향해 기도했을 것이다. 콜센터 소희를 괴롭힌 자본과 소비자의 갑질이 사라지기를, 다음 소희에게 권리와 노조가 주어지기를 소원했을 것이다. 다음 소희의 일터는 자신의 적성과 전공을 살린 곳이기를, 특성화고가 이를 받쳐주기를 희망했을 것이다. 나의 바람은 조금 더 나아간다. 나는 다음 소희가 본인이 원한다면 부담 없이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고, 그의 직업 탐색이 여유롭기를 바란다.
“우리나라 진학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맹목적으로 대학에 진학한다. 국가적 낭비다.” 지난 3월31일, 국회 인구위기특별위원회에서 한 의원은 이렇게 발언했다. 많이 듣던 말이다. “대학은 공부할 놈만 가자. 대학 안 가도 먹고살 수 있게 해주면 된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제 자녀를 ‘공부 안 해도 될 놈’으로 분류하는 경우는 못 본 것 같다. 자기네는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 강물’이고, 남의 집은 ‘개천의 가재, 붕어, 개구리’인가.
[김수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다음 소희’는 대학을 안 가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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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달력을 들춰본다. 노동절인 5월1일은 월요일, 어린이날인 5월5일은 금요일. 이러면 대체 5월 첫째 주는 어떻게 마음을 다잡고 일해야 하는가. 가만, 5월의 황금연휴를 이제야 눈치챈 건 나뿐인가. 포털 사이트에 ‘5월 황금연휴’를 검색하니 제주행 비행기표가 일찌감치 동났다는 기사가 우수수 뜬다. 놀지 못할 운명을 직감한 내 마음도 우수수 떨어진다. 아니다. 어차피 매년 4월 말 5월 초는 전주국제영화제(이하 전주영화제)와 함께했고, 올해도 이변은 없을 것이다. 긍정 회로를 가동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전주에 가면 좋은 영화와 맛있는 음식과 반가운 사람들이 있다. 콩나물국밥과 모주 한잔, 가맥집에서 청양고추간장마요 소스에 찍어 먹는 황태포는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전주 경기전에서 쉬엄쉬엄 광합성하며 산책하는 것도 좋아한다. 어느새 전주는 여행 로드맵이 자연히 그려지는 친근한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무엇보다 올해 전주에서 만날 영화들에 대한 설렘이 크다. 진지하고 아름답
[이주현 편집장] 5월 황금연휴도 영화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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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찢어놓는 것은 언제나 행복의 낱말들이다. 사랑, 축하, 벚꽃, 여행 같은 말들. 소박하고 아름다운 말들이 그렇게 나를 낭떠러지로 끌고 가곤 했다. 예를 들면 내가 빌리지도 않은 돈을 갚아야 하던 시절에 그랬다. 한번도 거래한 적 없는 은행에서 걸려온 독촉 전화를 받느라 사무실을 뛰쳐나가던 시절에는 가족에 대해 생각하는 게 두려웠다. 가족이 두려웠다.
그 무렵 어느 날, 친구가 대여섯살 된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뒷모습을 본 적이 있다. 아무렇지도 않은 그 장면이 눈이 아플 만큼 부러웠다. 다시는 그 길로 다니지 않았다. 나의 좌절과 슬픔이 남의 희망과 기쁨을 해칠 것 같았다. 적어도 나 자신은 해쳤다.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럭저럭 이겨냈으며 그보다 더한 일들을 겪기도 했다. 이제는 확실한 행복을 느낄 때도 있지만, 저 아래엔 그때의 서늘함이 남아 있다. 웃을 때 조심하게 된다.
봄은 왜 매번 갑자기 올까. 마음이 아직 겨울에 있는 사람에게 봄은 어려운 계절이다. 밝
[김소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꽃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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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근영은 별 미동도 없이 정물처럼 앉아 임수정을 기다렸다. <장화, 홍련> 이후 두 사람이 사석에서 따로 만난 적이 없다고 하니 실로 오랜만의 만남인데도 문근영은 들뜬 내색 없이 차분히 ‘언니’를 기다렸다. 거침없이 반가움을 표한 쪽은 오히려 임수정이었다. 초여름 같았던 봄날의 더운 공기를 상쾌하게 가르며 두팔 벌려 문근영과 인사를 나눈 임수정은 곧장 종달새처럼 반가움의 말들을 쏟아냈다. 그런 언니를 문근영은 촉촉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줘서 심장이 콩닥콩닥했어요. 처음엔 ‘무슨 이야기로 시작하지?’라고 생각했는데 만나는 순간 모든 걱정이 사라졌어요.”(임수정) “20년 전 언니랑 지금 언니가 너무 똑같아서 울컥했어요.”(문근영) 문근영의 눈동자에 물기가 고인 순간을 몇번 목격했지만 다행히 이날 두 사람은 내내 웃으며 과거와 현재로의 시간 여행을 왕복했다.
<씨네21>이 창간 28주년을 맞아 반가운 만남을 주선했다. 임수연 기자가 기사에 썼
[이주현 편집장] ‘장화, 홍련’, 20년의 시간을 거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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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에 기고를 하게 되었다는 나의 자랑에 그러던지, 라며 심드렁해하던 친구에게 코너의 이름이 ‘디스토피아로부터’라고 하자 눈을 반짝이던 것이 기억난다. 영화광은 아니지만 디스토피아 장르는 빠지지 않고 챙기는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칼럼의 내용보다 제목이었던 것이다. 왜 그런 영화들을 좋아하냐고 물으니 진지한 얼굴로 “모두 다 함께 망했으면 좋겠어”라는 답이 순식간에 나와서 실소가 나왔다. 하지만 곧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공감할 수밖에 없는 대답이란 생각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넷플릭스에 같은 키워드를 검색해보면 수많은 영화들이 우르르 쏟아지는 것을 보아 친구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상당한 듯하니 앞으로도 이 시장은 굳건할 것임을 짐작게 해준다. 섬네일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우리가 상상한 암울한 미래의 원인은 제각기 다르다. <투모로우>처럼 기상이변으로 빙하로 뒤덮일 수도, <블랙 미러>처럼 초연결 사회에서 각자의 정보가 기록되고 감시
[송길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미래는 디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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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블루베리가 들어간 견과류를 먹으며 눈 건강과 뇌 건강을 챙긴다. 홍삼도 한포 뜯는다. 이주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체력 관리가 필요하다. <씨네21>은 올해도 창간 28주년을 기념해 평소보다 두툼하고 특별한 잡지를 선보인다. 20세기의 기운을 가득 담은 촌스럽기도 멋스럽기도 한 이번호의 제호는 <씨네21>의 시작을 알린 첫 번째 제호 디자인이다. ‘첫’ 제호 디자인을 특별히 꺼내본 이유는 역시나 초심 때문이다. <씨네21>의 초심을 알기 위해 1호를 찾아 읽어본다. 잡지의 마지막 쪽에 실린 ‘편집자에게 독자에게’ 지면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씨네21이라는 제호가 누구든 영화에 관한 정보나 비평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로부터 28년이 흐르는 사이 <씨네21>은 ‘영화에 관한 정보나 비평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되었나? 그보다도 요즘 사람들은 영화에서 무엇을 기대하
[이주현 편집장] 다시 초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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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일본의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는 인공물이 사람을 닮을수록 호감도가 증가하다가 어느 순간 오히려 사람을 닮은 모습이 불쾌함을 불러일으키게 된다는 가설을 내놓았다. X축에 표시된 인간과의 유사성이 50%를 넘어가면서 호감도를 나타내는 Y값이 갑자기 음(-)의 영역, 즉 비호감의 영역으로 떨어지며 그래프는 움푹 파인 골짜기 같은 모양이 된다. 어설프게 인간을 닮아서 오히려 기괴해 보이는 로봇이나 사이보그를 두고 ‘불쾌한 골짜기’에 빠졌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이다. 예를 들어 <알리타: 배틀 엔젤>에서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어진 알리타의 과하게 큰 눈은 ‘예쁘장한 소녀’ 사이보그를 불쾌한 골짜기로 미끄러지게 만든다.
‘대유쾌 마운틴’은 이 불쾌한 골짜기를 지나 인간과의 유사성이 100%에 근접하여 호감도가 다시 급격히 상승하는 부분을 가리키는 인터넷 밈이다. 나는 최근에야 대유쾌 마운틴이라는 용어를 알게 되었다. 원하는 외모와 복장, 포즈 등을 텍스트로 주면 그에 딱
[임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불쾌한 골짜기 너머 ‘대불쾌 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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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생각하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최고작 5편은 무엇인가요?’ 스필버그의 유년기가 담긴 자전적 영화 <파벨만스> 개봉을 앞두고 국내의 영화감독 및 제작자들에게 설문을 청했다. 영화 창작자의 시선으로 본 스필버그의 역작은 무엇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역시나 “스필버그 감독님 영화 중 다섯편만 뽑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일 줄이야. 진짜 고문도 이런 고문이 없다”(류승완 감독)는 답이 날아왔다. 끝내 순위까지는 못 정하겠다며 무순으로 응답한 이들도 여럿이었다. 바쁘기로 소문난 감독들이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기꺼이 응답해준 건 스필버그가 영화인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감독들의 감독’이기 때문이리라. 설문의 결과도 흥미로웠다. <죠스>와 <E.T.>는 상위권에 포함되었지만 스필 버그에게 7개의 오스카 트로피를 안긴 <쉰들러 리스트>는 10위 안에 들지 못했다. 197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스필버그의 초창기 영화부터 비교적 최근작까지, 반세기를 아
[이주현 편집장] 당신의 스필버그 영화 베스트5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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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규제가 풀리면서 이제는 극장 안에서 마스크를 벗을 수 있고 뭔가를 먹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영화 관객은 이전 규모로는 극장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가 활성화되었고,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가 전성기를 맞았다. 이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잠시 생각을 해보자.
가성비로 따지면 극장은 OTT를 따라가지 못한다. 물론 그렇게 따지면 그냥 TV만 틀면 나오는 드라마 역시 가성비는 매우 높은 편이다. 제작비를 어떻게 구해왔든, 광고가 얼마가 붙었든, 시청자에게는 전적으로 무료다.
영화의 최전성기는 1929년 대공황기였다. 경제 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가난해졌고, 영화만큼 값싼 놀이도 없었다. 채플린이 최전성기를 맞았고, <프랑켄슈타인>과 <드라큘라> 같은 공포영화들도 이때가 최고 전성기였다. 그 뒤로 영화는 늘 위기라고 그랬다. TV가 등장하면서 매체로서 라디오의 전성기가 끝났고, 연이어 컬러TV가 등장하면서 총천연색을 자랑하던
[우석훈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영화의 ‘포스트 코로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