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이후’(post-growth)라는 말이 있다. 20세기 후반의 전 지구적 산업문명은 국내총생산(GDP)으로 측정되는 경제성장을 지상명령으로 최고의 조직원리로 삼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기후 위기, 극심한 불평등, 인구 위기, 사회 해체 등으로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는 21세기의 현실에서는 전혀 다른 원리로 경제와 사회를 조직해야 한다. 그 새로운 대안적인 원리는 무한성장이 아닌 ‘인간과 자연의 좋은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 안에 담긴 함축된 내용이다.
이렇게 말하면 단박에 현실을 조금도 모르는 낭만적 이상주의자라는 비웃음이 쏟아져나온다. 경제성장 없이 어떻게 산업사회의 조직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좋은 삶’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하려면 마음 맞는 몽상가들끼리 모여서 공동체나 만들어서 조용히 살 일이지 떠들어대지 마라. 우리는 경제성장의 엔진을 힘차게 돌릴 것이다 등등.
나는 반대로 묻고 싶다. 이상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바로 그 ‘현실’에 대한 질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경제성장을 과연 이루었는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예측치는 2.5%를 넘지 못한다. 올해만이 아니다. 2010년대 내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3%였다고 한다.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다. 같은 기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평균 성장률은 1.4%였다. 온 국민을, 아니 온 인류를 들쑤셔서 채찍질하여 이룬 숫자로는 참으로 초라한 숫자이다. 이는 역사적 추세이기도 하다. 1980년대 초만 해도 평균 3%를 웃돌던 주요 선진국들의 잠재성장률은 2019년이 되면 1%를 조금 넘는 수준으로 떨어진다.
그러면 나오는 이야기가 또 있다. 그럴수록 더욱더 그러한 한계를 돌파하여 경제성장을 끌어올리기 위해 힘써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쯤에서 내가 묻는 질문이 또 하나 있다. 그렇게 주장하는 당신은 다시 최소한 4% 이상으로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는 ‘뾰족한’ 방책이 있는가? 당연히 기나긴 침묵이 돌아온다. 나는 코너에 몰린 상대방을 더 몰아붙인다. 뾰족한 방책도 없으면서 경제성장이라는 명분을 휘두르며 부자 감세 같은 정책이나 내놓은 결과가 무엇인가? 무슨 투자가 늘고 경제가 성장한단 말인가? 국가재정만 파탄나고, 사회적 불평등만 심해지고, 공공시설과 기후 위기 대응 등 마땅히 국가와 사회가 자원을 쏟아야 할 사회적 목표들은 방치되고 있지 않은가? 내 말이 고깝게 들린다면 다른 ‘뾰족한’ 방책을 내놓아 보라.
경제성장은 복리의 성장이다. 재테크 교과서에 항상 나오는 ‘복리의 마법’이 여기에도 적용된다. 매년 몇 퍼센트씩의 성장을 무한히 계속하다가는 GDP 총량의 그래프가 지수함수로 증가하여 천장을 뚫고 은하계로 나가버린다. 현실 세계에서 이런 일은 벌어질 수 없다. ‘저성장’은 이상주의자들의 몽상이 아니다. 21세기의 인류 전체가 직면해야 할 부동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경제성장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 것을 정책과 삶의 목표로 고집한다면 이는 인간과 사회와 자연에 이미 넘쳐나고 있는 여러 위기를 심화시키는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것은 아무도 막을 수 없다. 21세기의 산업문명은 이제 ‘성장 이후’를 생각해야 하며, 이에 적응하면서 행복하고 아름다운 새로운 세상을 설계하고 준비해야 할 시기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