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진창이야. 다시 써봐.” 오랜 지인이 등단을 했다. 국문과 졸업한 지 15년이 훌쩍 넘었으니 그동안 집필의 끈을 놓지 않은 의지만으로도 존경의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술기운이 적당히 오른 축하 술자리, 지인은 대학 시절 내가 자신의 글을 보고 했던 ‘엉망진창’이란 한마디가 갑자기 떠오른다며 불쑥 술잔을 내밀었다. 묵은 응어리를 푸는 회포의 잔도, 나의 건방지고 못된 말에 자극받아 계속 글을 쓸 수 있었다는 훈훈한 성공담도 아니다. 그냥 문득 지금 그 말이 떠올랐다며, “네가 비평을 업으로 삼은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해맑게 웃는 그의 모습에 생각이 복잡해졌다.
그는 내가 적성에 맞는 일을 찾은 것 같다고 했지만 실은 매 순간 번민의 늪 속을 허우적거린다. 이 걸작들을, 벅차오르는 순간을, 감히 이렇게 몇마디 조악한 단어들로 정리해도 좋은 것인가. 내가 뭐라고. 뭘 얼마나 안다고. 악의 없는 그의 미소가 안겨준 자괴감을 음미하며, 마음이 너덜너덜해지면서도 이 짓을 계속하는 이유를 곰곰이 고민 중이다. 나의 부박하고 어리석은 행보 속에서도 소박하게 자부할 수 있는 점 중 하나는 말의 무게를 모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이 얼마나 날카롭게 상처를 남길 수 있는지 알기에 가능한 한 섬세하게 다루려 하고, 자신이 없을 땐 차라리 침묵을 택하는 편이다. 당시 왜 내가 지인에게 그런 거친 언사를 썼는지 이유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의 표현처럼 문득, 불쑥 생각이 나는 장면은 하나 있다. 절박하게 글쓰기에 매진하던 그의 뒷모습. 하얀 백지를 붙들고 발을 동동 구르다 하얗게 지새던 밤들. 그 진심을 마주하고 그냥 내버려둘 순 없었던 것 같다. 뭐라도 해야 했다.
애정은 종종 주제넘은 참견을 동반한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나의 세계로 끌어와 기어이 연루시키고자 하는 마음. 후회할 것이 분명하지만 그쪽으로 몸을 던져, 기꺼이 참견하겠다는 각오. 모자란 밑천이 드러날 것을 알면서도 영화를 향한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특별해서가 아니라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애매한 재능은 잔인하다. 좋은 글을 알아보고 즐기는 눈은 점점 넓어져가는데 그걸 내가 직접 쓰기엔 손이 따라주지 않는다. 어느새 커버린 욕망을 메우기엔 한참 모자라지만 그렇다고 아예 접을 수도 없다. 가능한 건 그저 애매한 현실을 견디고 맴도는 것 정도다. 때론 그게 지옥 같다고 생각했다.
등단 작가가 되는 게 이야기의 끝도 아니고, 뭔가 크게 달라지는 게 없을 것이다. 혼자 글을 쓰던 대학 시절이나 책을 집필하고 있는 지금이나 그 친구는 똑같이 번민하고, 발을 동동 구르며 진심을 다해 쓰고 있다. 문득 그 친구도, 나도 이 지옥을 자발적으로 택해서 머물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깨닫는다. 지옥을 벗어날 수 없는 게 아니라 벗어나지 않는 거였어. 애매한 재능은 내가 사랑하는 이 세계에서 내가 튕겨나가지 않도록 적절한 위치를 잡아주는, 감사하기 이를 데 없는 중력이었던 셈이다. 어쩌면 영원히 맴돌 뿐일지도 모른다. 단지 맴도는 원의 크기에 차이가 있을 뿐, 위대한 작가들의 처지도 크게 다르진 않은 것 같다. 작가들의 글은 아름답지만 그 정수에 이르는 길은 대체로 지옥에 가깝다. 그럼에도 쓸 수밖에 없다면, 견디기로 결심했다면, 엉망진창일지라도 이를 악물고 쓸 뿐이다. 느리고 애매하게 보일지언정 멈추거나 타협하진 않았다는 작은 긍지를 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