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꿀 특별한 능력이 없다고 해서 꿈과 신념이 없을 리 없다. 꿈의 형태가 다를 뿐(혹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뿐) 몸이 고무처럼 늘어나지 않아도, 불주먹이 나가지 않아도, 세상을 뒤집을 수 없어도 우리는 각자 믿는 바대로 각자가 가능한 방식으로 (작은) 세계를 바꿔나가는 중이다. 요컨대 중요한 건 능력의 크기가 아니라 간절함이다. 오직 지극히 바라는 한 조각 마음이야말로 ‘원피스’의 정체가 아닐까, 하는 제멋대로의 결론. 문득 영화 <역린>(2014)에 나온 <중용> 23장의 구절이 머리를 스친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맑아진다. 맑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변하게 되고, 변하게 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독립영화가 무어냐 묻는다면 지극히 간절한 이들이 자신의 언어로 표현한 꿈이라 답하겠다. 물론 우리는 모두 각자 나름의 이유로 간절하다. 하지만 이들은 자본과 시스템으로부터 독립해서라도 자신이 믿는 바를 스크린에 구현하고자 하는 창작자들이다. 헷갈려선 곤란하다. 저예산을 자처한 것도 아니고 많은 관객을 만나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저 우선순위를 놓는다면 자신이 믿는, 필요한 방식이 가장 앞자리에 있다. 모두에게 사랑받지 않을 용기로 과감히 양자택일의 선택을 할 수 있는 태도. 간절함이란 그런 거다. 적어도 내가 만나본 독립영화 감독들은 그렇게 간절하고 순수한 에너지로 매번 상처받고 일어서길 반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원피스 팬레터>를 보며 문득 나도 어느새 그들을 대상화하고 있는 게 아닌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독립영화가 특별한 무언가, 특정한 집단으로 분리되어선 안된다. 독립영화인들은 꿈을 좇으며 세상을 바꾸는 전사들도, 믿음을 실행하는 구도자도, 고결한 철학자도 아니다. 그저 자신이 믿는 바를, 자신의 손이 닿는 방식으로 실천하는 평범한 창작자들일 뿐이다. 자발적 독립과 강제적인 분리가 뒤섞이고 있는 지금, ‘독립영화’에 대해 새삼 다시 말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비유하자면 지금은 해병1, 2, 3의 목소리가 더 듣고 싶다. 실은 아무리 이야기해도 부족하다. 새로운 시선과 가능성과 도전의 사연들은 오늘도 ‘독립영화’라는 형태로 쉼 없이 갱신 중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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