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산처럼 높은 파도의 위용보다 하얗게 부서진 포말이 더 깊은 여운과 잔향으로 기억된다. 좋은 드라마도 마지막 페이지의 결과보다 과정이 메아리처럼 되돌아와 완성되는 법이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열풍이 남긴 후일담을 들으며 어느덧 우리도 맹목적인 결과지상주의의 터널을 지나 과정을 즐길 정도의 여유가 생겼음을 실감했다. 우승의 영광은 나폴리 맛피아에게 돌아갔지만 사람들의 반응을 보니 좀더 마음을 울리는 드라마를 써내려간 쪽은 아무래도 에드워드 리 셰프였던 것 같다.
다듬어지지 않은 애정은 간혹 차별과 공격의 언어를 동반하기도 한다. 에드워드 리의 서사를 응원하는 이들 중 일부는 호텔에 머물며 연습할 여건이 되지 않았던 그가 상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이었다며 공정성 문제를 지적했다. 이에 대한 에드워드 리의 화답은 그가 만든 어떤 요리보다 깊고 진한 맛을 전한다. “주방이란 무엇인가요? 주방은 화려한 장비나 고급 식재료뿐 아니라 열정과 사랑, 창의력을 발휘하는 곳입니다. 도마와 칼, 호기심만 있으면 모든 방은 주방이 될 수 있어요.” 에드워드 리, 아니 이균이라는 드라마를 완성하는 마침표. 아쉬움이 원망으로 번진 끝에 뾰족해져버린 말들마저 성숙하게 감싸안는 에드워드 리의 언어는 곧고 너르고 예쁘다.
한편 묘한 기시감이 드는, 또 다른 축제의 자리가 있다. 한강 작가의 한국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세상이 떠들썩하다. 아니 너무 조건반사 같은 표현이었다. 흥분과 열기로 뒤덮일 법한 소식이건만 막연히 그려왔던 상상보단 차분한 것 같다. 당사자가 침묵하니 주변도 덩달아 신중해지는 분위기랄까. 좋아하는 사람끼리 닮아가는 것처럼 축하하는 모양새에도 한강 작가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그렇게 내적 환호로 가득 찬 응원과 고요한 기쁨의 말이 향긋하게 퍼지는가 싶었는데, 역시나 곰팡이처럼 한구석에서 음습하게 퍼지는 분열과 공격의 말들이 눈치 없이 터져나왔다. 처음엔 입맛이 텁텁하고 귀를 씻고 싶어지는 정도였는데 스웨덴 대사관 앞에서 한림원을 규탄하는 시위에 이르니 초현실적이고 조악한 블랙코미디 같기도 하다.
어이가 없으면 화낼 마음도 들지 않는다. 마음 시끄럽게 하는 것들, 신경 쓰지 않으면 그만이란 심정으로 보이지 않는 구석에 미뤄뒀다가 문득 그래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희의 순간에도 전쟁이란 엄연한 현실에서 눈 돌리지 않은 한강 작가의 메아리가 굳은 머리를 깼기 때문이다. 응달에서 번지는 곰팡이처럼 증오의 언어는 무관심 속에 피어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애정 어린 관심과 호기심, 그걸 담아낼 곧고 너른 말이다. 살아온 대로 말하기 때문에 품격 있는 말이 존중받는다. 반대로 말하는 대로 살아지기 마련이니 증오의 언어를 지워나가는 태도 역시 중요하다. 굽이진 말을 뾰족하게 받아치면 악순환이 이어질 뿐이다. 힘들고 고되고 피곤할지라도 모두를 감싸안을 곧고 너른 말을 입에 담으려 애써야 한다. 그게 이번주 현장과 대담 등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여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을 적극적으로 소개하는 이유다. 우리에겐 사랑의 말이 더 필요하다. 아무리 부당하게 공격당하고 미움받아도, “서로 사랑하는 것만은 도저히 그만둘 수가 없어”(<플라네테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