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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마지막 에디토리얼을 쓰게 된다면 어떤 영화와 더불어 독자 여러분과 인사를 나눠야 할지 고민하곤 했다. 언젠가 경험하게 될 그 순간을 위해 뜨거운 안녕을 고하는 영화들의 목록을 마음속에 하나둘씩 저장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막상 글을 시작하려다 보니 생각지 않았던 한편의 영화가 머릿속을 맴돈다. 어떤 이야기든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지면을 할애받은 사람의 마지막 특권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더 포스트>와 나누고 싶다.
얼마 전에 이 영화를 다시 볼 기회가 있었다.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의 자유를 지키려는 <워싱턴 포스트>의 발행인과 편집부 기자들의 고군분투에는 언제 보아도 기자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드라마가 있었지만 4년 만에 다시 본 영화에서는 다른 순간들이 눈에 밟혔다. 무엇보다 <더 포스트>는 협업의 아름다운 메커니즘을 이야기하는 영화였다. 공식석상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람이든, 우연히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을 기밀문서
[장영엽 편집장] 협업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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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에 대해 말하고 싶다. 그 책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에 대해, 개인성과 역사성을 교차시키는 방식에 대해, 역경을 극복하는 내용에 대해, 인간의 본질을 통찰하는 방식에 대해 말하고 싶다. 하지만 나는 그 책에 대해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책의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하기 시작하는 순간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그 책을 온전히 느낄 기회를 박탈당할 위험에 처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나는 인간의 통제 욕구에 대해 말하려 한다.
근대인이 빠져 있는 줄도 잊고 빠져 있는 환상들이 있다. 교환 수단으로서의 가치를 아득히 뛰어넘어 그 자체로 물신이 된 화폐라든지, 모든 것을 인간을- 혹은 자신을- 위해 진열된 상품으로 보는 시선 같은 것이 그렇다. 그리고 무엇보다, 삶과 세상을 통제할 수 있다는 강력한 믿음이라는 달콤한 환상이 있다. 이 환상은 우리의 문명을 발전시키고 이끌어간다. 나는 나의 몸을 통제할 수 있어. 나는 나의 운명을 통제할 수 있어. 우리는 자연을 통제할 수 있어. 우리
[김겨울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인류라는 컨트롤 프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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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유튜브 채널 <삼프로TV>가 기획한 대선 후보 인터뷰 영상을 보며 새해를 맞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 등 네명의 유력 대선 주자가 출연해 경제 정책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는 자리였다. 대선을 앞두고 후보들의 공약을 점검하는 수많은 콘텐츠가 기획되지만 유독 <삼프로TV>의 인터뷰가 1천만뷰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열띤 반응을 이끌어낸 건 상대 후보에 대한 흑색선전이나 하나의 사안에 대해 답변하는 시간의 제약 없이 오롯이 정책에 대한 각 후보의 의견에 집중하는 자리를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시간30여분이라는 긴 시간을 두고 한 사람의 생각을 경청하다보니 각 후보가 바라보는 국정 운영과 정책의 방향이 보였다. <씨네21> 또한 대선 후보들의 문화 정책, 영상 정책을 비중 있게 논의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독자 여러분께 드린다. 이번호에서는 2022년 개
[장영엽 편집장] 2022년의 한국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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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식이 꽤 된 집에 살고 있으면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기곤 한다. 관리소로부터 공용 파이프가 낡아 누수가 발생해 이를 교체한다며 각 가정의 배관은 알아서 고치라는 통고를 받았다. 수리 전까지 난방이 안된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에 부랴부랴 업체를 알아보니 일이 밀려 일주일 이상 기다려야 한단다. 집 떠나길 두려워하는 고양이 두 마리를 힘들게 켄넬에 넣어 어머니 댁에 맡기고 임시 숙소를 찾아나섰다. 열흘 만에 간신히 집을 고친 후 돌아오니 고양이들은 훌쭉해졌고 사람들은 집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그 뒤 일주일 만에 전국을 강타한 한파 속 따뜻한 집 안에서 이 글을 쓰며 미리 고장난 난방이 고맙게 느껴졌다. 어차피 고장날 것이라면, 본격적으로 추운 겨울이 오기 전 대비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란 생각에서다. 이처럼 일어날 일이라면 빨리 일어나는 것이 고마울 때가 있다. 집 떠나 있는 동안 식구들끼리 좁은 공간에서 부대끼며 색다르게 지내보고, 그중 며칠은 호텔에서 호사도 부렸기에 나름의
[송길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미리 망가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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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을 여는 <씨네21>의 첫 스페셜 기획은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망 보고서’다. 산업을 리드하는 대표·임원급 결정권자들의 답변을 통해 데이터로 한해를 전망하는 기획으로, 지난해의 참여자들이 선정한 2021년의 화두 ‘OTT, 극장의 위기, 시네마틱 시리즈, 미드폼, 웹툰 IP’는 지난 1년여간 다양한 사례로 현실화되었다. 올해는 더 많은 전문가들(62인)이 설문에 참여했다. 새롭게 진입한 키워드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글로벌’이다. “2019년 <기생충>, 2020년 <미나리>에 이어 2021년 <오징어 게임>까지 한국 콘텐츠에 대한 전세계적인 열풍은 일시적 현상이 아닌 중요한 흐름이자 트렌드”가 되었으며, 2022년은 “특정 작품의 일회성 성과가 아닌 한국 콘텐츠 시장 전체가 글로벌화되는 본격적인 시기가 될 것”이라는 게 설문에 참여한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지난해에 이어 다시 한번 주요 화두로 언급된 키워드도 있다. ‘극
[장영엽 편집장] 2022년, 한국영화의 미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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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에서 방영을 개시한 <설강화>라는 드라마가 있다. 1987년을 배경으로 남파 간첩과 여대생의 사랑을 다루었다고 한다. 방영 전부터 말이 많았다. 올해 초 유출된 초기 시나리오에 대학생인 여자주인공이 남파 간첩인 남자주인공을 운동권인 줄 알고 보호해준다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JTBC를 비롯한 제작 관계자들은 시나리오의 일부가 왜곡되어 악소문을 탔을 뿐, 민주화 투쟁을 폄훼하거나 국가안전기획부(이하 안기부)를 미화한 작품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막상 방송이 시작되자, 주인공은 정말 운동권으로 오해받은 남파 간첩이었다. 이 간첩-운동권 설정은 민주화를 억압했던 독재자와 그를 추종하는 극우 세력의 주장이다.
실제로 독재시대의 많은 민주화 투사들은 간첩이라는 누명을 썼다. 독재정권은 시민 탄압에 북괴 간첩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한다는 명분을 씌웠다. 조금이라도 민주주의의 목소리를 낸 사람들은 물론이고,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다는 목적의식 없이 평범하게 생활하다 무심
[정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역사를 기록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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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 레이터: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 전시를 관람했다. 토드 헤인스가 <캐롤>을 연출하며 많은 영감을 받았다던 아티스트 사울 레이터의 사진들을 좀더 자세히 보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창문, 거울, 쇼윈도 너머로 그가 포착한 뉴욕의 사람과 풍경들을 보니 호기심 많은 내향형 아티스트의 설렘이 보는 사람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전시장에서 그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사울 레이터: 인 노 그레이트 허리> 또한 만날 수 있었다. 사울 레이터 예술 세계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무작정 카메라를 챙겨 들고 뉴욕으로 떠난 영국 출신 촬영감독 토마스 리치가 만난 사울 레이터는 작품만큼이나 흥미로운 캐릭터였다. 55년째 같은 동네에 살며 사람과 사물과 풍경을 찍는 그는 그저 “남의 집 창문이나 찍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소개한다. 자신은 어떤 예술적 운동이나 사조에 동참한 적이 없으며, 세상에 알려지는 걸 바란 적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돌림노래처럼 반복하는 말
[장영엽 편집장] 노 그레이트 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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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경제사 시간에 1929년 대공황과 함께 할리우드의 대약진이 있었다고 배운 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프랑켄슈타인과 드라큘라 백작과 같은 대표적인 공포 캐릭터들이 이때 스크린을 가득 메웠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를 비롯해 무성영화의 전성기도 이 시대였다. 공황 때 영화산업이 잘되는 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1997년 IMF 외환 위기 시절에 정리 해고된 실직자들이 아침에 집을 나와서 비 오는 날에는 등산 대신 극장으로 갔다는 눈물 어린 신화들이 생겼다. 그 이전에 한국영화는 ‘방화’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고난의 경제 위기를 지나고 나서 ‘한국영화’라는 자신의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코로나19 경제 위기는 “경제 위기=극장 흥행’이라는 공식과 다른 방식으로 움직인다. 국내 극장 배급사에서 코로나19 초기 몇달 동안 그전 3년 동안의 수익만큼 손해를 봤다고 <씨네21> 토론회에서 얘기한 게 기억에 남는다. OTT의 약진으로, 영화의 위기는 아
[우석훈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스크린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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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소식과 먹구름이 공존하는 연말이다. 12월15일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개봉 첫날 63만 관객을 돌파하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장 높은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한 반면, 12월18일부터 영화관의 영업시간이 밤 10시까지로 제한되며 개봉을 준비 중이던 영화 관계자들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최근 영화계 여러 단체들(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한국영화감독조합 이사회, 영화수입배급사협회,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상영관협회)이 발표한 긴급 성명 ‘극장 영업시간 제한은 영화산업의 도미노 붕괴를 가져온다’를 보면 지난 2년간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를 반복하며 겪어야 했던 피로감이 이제는 마지노선에 다다랐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번 송년 특대호를 통해 소개하는 ‘2021년을 빛낸 <씨네21>의 베스트 영화’ 목록 또한 한국영화계가 지난 1년간 겪어온 ‘암흑의 시간’을 반영한 결과라고 하겠다. 31명의 평론가와 기자들이 보내온 설문 결과를 집계한 송경원 기자는 “쓸쓸하다
[장영엽 편집장] 2021년을 결산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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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드벤트 캘린더’라는 게 있다. 나도 이것의 존재만 알고 이름은 몰랐는데 이걸 ‘어드벤트 캘린더’라고 부른다고 한다. 어드벤트 캘린더가 뭐냐면,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면서 하루에 하나씩 그 날짜에 준비된 제품을 사용하도록 만들어진 일종의 ‘선물 달력’이다. ‘어드벤트’가 영어로 강림절,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전의 4주간을 뜻하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 ‘홀리데이 캘린더’라고 부르기도 한다.
두툼한 상자에 날짜 표시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그 숫자 부분을 꾹 누르면 종이가 뜯어지면서 안에 있는 제품을 만날 수 있다. 화장품부터 초콜릿, 주얼리, 향수, 와인, 맥주, 장난감 등 종류도 다양하다. 상자가 무한히 커지기 힘든 만큼 제품들도 보통 작은 사이즈로 만들어져 있어 미니어처를 모으는 듯한 느낌도 든다.
최근에 티 어드벤트 캘린더를 선물로 받았다. 매일 그날의 차 티백이 들어 있다. 어떤 날은 평범한 차, 어떤 날은 가향 차가 들어 있고 어느 날은 티백 한개, 어느 날은 티백이 두
[김겨울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어드벤트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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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산의 시즌이 돌아왔다. 안부를 묻고, 새해 계획을 공유하고,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날들이 시작된 가운데 <씨네21> 편집부 또한 연말 설문 취재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결산에 앞서 2021년의 중요한 키워드를 언급하자면 ‘시리즈’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연말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 키플레이어 55인이 참여한 설문에서 영화와 드라마의 크로스오버, 시네마틱 드라마가 올해의 화두로 언급되었는데 그 예상이 짐작보다도 빠르게 현실이 되었음을 알 수 있는 한해였다. 이러한 흐름을 반영해 <씨네21>은 2021년의 베스트 리스트 특집을 두 차례로 나누어 진행한다. 다음주에 발행될 송년호에서는 한국영화 결산을, 신년호에서는 시리즈 결산을 진행할 예정이니 두 특집 모두 주목해주시길 바란다. 집계된 리스트만 보아도 올 한해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는지 절감하실 거라 자부한다.
시리즈가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핵심적인 콘텐츠로 자리매김하며 발생한 중요한 현
[장영엽 편집장] 배우 in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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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은 그 이전 세대에 수수께끼와 같아 보인다 한다. 생활의 도처에서 만나 삶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이따금 느껴지는 세대간 불협화음은 나이 든 사람들의 눈에는 생경하기 이를 데 없다고 토로한다. 이들의 마음이 도통 이해가 안된다며 데이터로 읽어달라는 조직들이 많아 프로젝트로 분석한 것도 한두번이 아니다. 기업의 경우에는 두 가지 관점이 어려움의 출발이다. 첫째는 소중한 고객이니 어떻게 대우해야 할지 묻는 것, 두 번째는 회사의 밀레니얼 직원들이 왜 이렇게 불만이 많은지 알려달라는 것이다. 데이터를 통해 분석해보니 크게 세 가지의 특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첫 번째, 자존이 중요한 사람들이라는 것. 자신에 대한 소중함을 인식하고 그에 합당한 인정과 대우를 요구한다. 뿐만 아니라 자존이 무너지지 않도록 자신의 역량을 계속 계발하고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이 관찰된다.
두 번째, 취향이 소중한 사람들이라는 것.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분야에 애호가 있는지 발견한다. 그 취향을
[송길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밀레니얼의 취향, 자존의 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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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겨울은 배우 출신 감독들의 영화를 연달아 만나볼 수 있는 시즌이 될 것이다. 지난 11월17일 개봉한 조은지 감독의 <장르만 로맨스>를 시작으로 유태오 감독의 <로그 인 벨지움>(12월1일 극장 개봉), 박정민, 손석구, 최희서, 이제훈 감독의 <언프레임드>(12월8일 OTT 플랫폼 왓챠 공개)가 관객을 만난다. 이 세편의 영화는 배우 출신 감독들의 영화가 단 한번의 반짝 이벤트나 외유가 아님을 알리는 준수한 사례다. 1331호 조은지 감독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이번호에서는 <로그 인 벨지움>을, 다음호에서는 <언프레임드>를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지면을 마련할 예정이다.
픽션과 리얼리티가 섞인 유태오 감독의 다큐멘터리 <로그 인 벨지움>을 보면 배우들이 왜 연출에 매혹되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벨기에 앤트워프의 어느 호텔에 갇힌 그의 공간에는 늘 이동식 삼각대와 조명, 배터
[장영엽 편집장] 배우, 감독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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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중순, 나는 헛소문으로 인한 온라인 괴롭힘에 휘말려 피해자가 되었다. 이름과 얼굴이 알려진 데다 송무변호사 일이 늘 책상머리에 앉아 하는 것만은 아니다 보니 이런저런 어려움은 이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생업과 윤리성에 직접 관련된 거짓 소문이 집요하게 돌고, 수백명, 아니, 1인이 복수계정을 만들고 여러 글을 계속 쓸 수 있는 SNS의 특성상 내가 느끼기에는 수천명이 나를 비난하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보지 않으려고 했다. 어떻게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내 마음 같고, 어찌 사람이 억울한 일 하나 없이 살 수 있겠는가. 내 자리를 잘 지키고 있다보면 지나갈 일이겠거니 했다. 몇달이 지났다. 일이 해결되지 않았다. 내가 못 본 셈 치던 사이에 오히려 소문과 괴롭힘은 점점 더 덩치를 키웠다. 내가 프로 의식이 없고 무능하고 인권 의식이 없다는 전문성 비하에서, 내가 남자와 결혼했고(그러므로 페미니스트로서 실격이고) 자기모에화를 하는 프로필 그림을 사용하고 있으며(그러므로
[정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시간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