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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의 한 작고 오래된 서점이 문을 닫았다. 서점을 지날 때나 볼일이 없을 때도 근처에 일이 있으면 종종 들러보곤 했는데, 결국 그렇게 되었다. ‘결국’이라는 건 사라질지 모른다는 걱정을 했었기 때문이다. 그런 걱정은 그 서점이 처음 문을 열었던 십수년 전부터 있었다. 손님이 많진 않았으니 그럴 만도 했지만 이런 걱정을 하는 것이 오래된 습관이기도 해서, 마음에 드는 소박한 상점이나 가게들을 보면 이 가게는 어떻게 유지해 나가고 있을까? 유지가 될까? 벌이가 될까? 하는 걱정이 늘 앞선다.
그런 걱정은 가게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지방 외진 곳에 들어선 아파트를 보면 한두 가구도 아닌 이 많은 사람이 여기서 무엇을 하며 먹고살까 궁금하고, 싱가포르처럼 작은 도시국가의 만원 전철 틈바구니에서도, 프랑스의 한적한 지방 도시의 밤 골목을 걷다가 드문드문 불이 켜진 집들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한다. 그렇게 학문적 연구를 시작했다거나 어떤 통찰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그저 막연
[이동은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어떻게 먹고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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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보다 보면 악의와 음모로 작동하는 세상을 개인이 돌파하는 이야기에 익숙해진다. 주인공에겐 경로를 정하는 선택지가 주어지고 맞는 선택에 보상이 따른다. 드라마 바깥에선 성공한 사람의 후일담이 그렇다.
젊은이들의 창업기를 다룬 tvN 드라마 <스타트업>은 ‘엔젤’이 있어야 돌아가는 드라마다. 엔젤은 ‘스타트업 초기에 자금지원과 경영지도를 해주는 투자자’를 뜻한다. 또한 18살에 보육원에서 자립해 갈 곳이 없던 시절의 한지평(김선호)을 거둔 최원덕(김해숙)도 천사나 마찬가지다. 학생들을 상대로 핫도그를 팔던 원덕은 월세방 전단지 앞에 망연하게 섰던 지평을 자신의 가게에 머물게 했다. 박혜련 작가는 사람이 성장하고 다음 스테이지를 밟는 이야기에 머물 공간, 숨 돌릴 시간을 마련해주는 이의 역할을 크고 중요하게 두었다. 현실에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되냐 묻는다면, 현실이 이래서 그런 존재가 절실하다고 답하는 드라마다.
원덕의 손녀 서달미(배수지)는 스타트업 육성 공간
<스타트업>, ‘엔젤’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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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중순, 중국이 북미를 제치고 세계 최대의 영화시장을 점유했다는 뉴스가 화제였다. 아시아 영화시장 조사기관인 아티산 게이트웨이에 따르면 10월 18일 기준 중국 내 영화티켓 판매수익은 19억8800만달러(약 2조2663억원)로 북미의 19억3700만달러를 넘어섰다. 중국이 시장 규모로 미국을 앞선 건 처음이 아니지만, 이러한 변화가 팬데믹 도중에 일어났다는 점은 단순한 순위 변동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씨네21> 1277호 통신원 리포트에서 한희주 베이징 통신원이 자세하게 전한 대로 최근 중국 영화산업의 회복세는 무서울 정도다. 현재 중국은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블록버스터영화들을 극장에서 연달아 개봉하고 극장 영업을 재개한 지 4개월도 채 안되는 시간 동안 2조원이 넘는 수익을 벌어들이는 나라다.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입은 미국과 여타 국가들이 산업을 정상화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거라 예상되는 만큼, 그동안 2인자에 머물던 중국이 팬데믹을 계기로
[장영엽 편집장] 중국영화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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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피아노학원에 다니는 일은 거의 형벌이었다. 폐소공포증을 일으킬 만큼 비좁은 방, 7살의 나는 내 몸집보다 몇배나 큰 피아노와 독대한다. 선생님은 한번 연주할 때마다 획을 하나씩 그어 ‘바를 정’자 네개를 완성하라 했지만, 나는 그저 건반 위에 엎드려 있다. 내가 만드는 소음도 버거운데, 옆방 애도 나만큼이나 소질이 없다. 너무 시끄럽다. 나는 인심 쓰는 척 딱 한번 연주한 후, 바를 정 네개를 한꺼번에 그려 연습을 종료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난 모차르트는 아닌가보군.
초등학생 때 새로 만난 선생님은 엄마가 다니는 성당의 오르간 연주자였다. 그분은 여성이고, 우리 집과 같은 아파트의 위층에 가족과 함께 살았는데, 집에 피아노 두대를 놓고 아이들을 가르쳤다. 언어장애가 있는 그분은 자신이 먼저 연주하고 그다음 학생의 연주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건반 위에 올린 내 손이 계란을 쥔 모양에서 흐트러지면, 그분은 ‘바를 정’을 그리던 연필로 내 손등을 가볍게 쳤
[오혜진의 디스토피아로부터] 고요 속에서 배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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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좀 무리수 같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카카오TV에서 제작한다 해도,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말 대신 카카오톡(이하 톡)으로만 대화하는 예능이라니 너무 지독한… 컨셉 아니냔 말이다. 하지만 결국 형식을 완성하는 건 사람이라는 진리를 확인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첫 번째 초대 손님 배우 박보영이 톡으로 어린 조카 동영상을 공유하자 “워낙 동안이어서 셀카인 줄”이라고 능청스러운 농담을 던져 상대의 긴장을 한순간에 날려버린 김이나 작사가는 ‘토크’는 물론 톡에도 뛰어난 진행자다.
프로필 사진, 플레이리스트, 사진첩의 ‘짤방’은 물론 필요한 정보를 검색해 즉시 대화 소재로 가져올 수 있는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한 대화는 현대인의 내면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이기도 하다. 인터뷰 기사라면 ‘(웃음)’으로 표시되었을 순간 ‘ㅋㅋㅋ’ 연타를 치면서 웃는 인터뷰이의 모습을 동시에 보는 것은 흥미로운 경험이다.
어릴 때부터 연기자로 활동한 박은빈이 ‘사적인 것과 사적이지
카카오TV '톡이나 할까?', 톡의 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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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위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최근 많은 영화인들로부터 공통적으로 듣는 말이다. 올해 상반기 국내 극장가는 코로나19로 인해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통합전산망 집계 시스템이 도입된 이후 최저 관객수를 기록하며 큰 타격을 입었지만, 올여름 개봉작 <반도>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등의 선전은 극장이 예년만큼의 성적은 아니더라도 서서히 회복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많은 이들에게 심어주었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크게 증가한 8월 중순 이후, 한국 영화산업 안에서 체감되는 위기의식은 상반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다. 한국영화 신작들의 OTT행 소식과 멀티플렉스의 감축 운영 발표, KT&G 영화사업 부문의 축소 및 폐지 논란과 같은 위기의 신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가시화되고 있는 2020년 가을은 한국 영화산업을 지탱해왔던 시스템이 더이상 과거의 방식으로 유지될 수 없음을 명확하게 자각하게 한, 엄혹한 계절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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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엽 편집장] 위기일까, 기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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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근본적인 모멸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임신한 엄마의 배를 누군가 허락 없이 만지던 때부터 내 몸은 내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엄마의 결혼식에서 엄마의 아버지가 아빠에게 엄마를 ‘넘겨줄’ 때부터 그랬는지도 모른다. 할머니 집에 찾아가면 엄마와 큰엄마들이 허리가 부러지게 일하고는 작은 상에서 따로 밥을 먹을 때도 나는 인간이 아니었던 것 같다. 또래들 사이에 어떤 여자애가 ‘걸레’라는 소문이 돌고, 옆 학교 화장실에서 불법 촬영 카메라가 발견되고, 내 친구가 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로 길에서 할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하고, 내가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에 가는 길에 성추행을 당했을 때도 나는 인간이 아니었던 것 같다. 우리 엄마도, 언니도, 나도, 나의 친구도, 나의 친구의 친구도, 삶의 어떤 순간에는 분명 인간조차도 되지 못했다.
인류학자 김현경의 말처럼 사회 속에서의 인간다움이라는 것이 인간이 타고난 본질적 특성이 아니라 서로의 수행과 연기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라면, 대
[김겨울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지금 여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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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와 허기가 묘하게 섞인 얼굴. 인세를 초월한 삶을 살고, 초월하지 못한 욕망을 말할 것 같은 표정의 배우 이동욱이 저승사자에 이어, 이번엔 천년 묵은 구미호가 되었다. 사랑했던 인간이 저승으로 가는 길을 막아섰던 구미호 이연(이동욱)은 금기를 범한 대가로 백두대간을 관장하던 산신의 지위를 잃고 저승 공무원으로 600년째 근무 중이다. 연인의 환생을 기다리면서. 설화 속 기묘한 동물과 오랫동안 이어져온 미신을 현대의 도시 괴담과 접목한 판타지 드라마. tvN <구미호뎐>의 세계에선 우렁각시가 도심에 한식당을 열고, 삼도천도 현대화되어 ‘내세 출입국 관리사무소’로 운영된다. 이연 역시 문명을 한껏 누리는 신식 구미호로 살아가지만, 은혜나 원한을 반드시 대갚음한다는 전설 속 여우의 속성은 고스란히 이어진다. 지고지순한 구미호의 사랑도 일부일처제인 여우의 습성을 따른다.
이미 결정된 운명. 환생한 연인 역할도 수동적인 대상에 머무르기 쉬운데 로맨스 안팎으로 굳건하게 개성을
'구미호뎐', 저승 공무원으로 600년째 근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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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내게 소중했던 그 이야기를 들려줘. 그 옛날 내가 즐겨 들었던 그 노래를 불러줘.’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칠중주: 홍콩 이야기>는 영국 작곡가 토머스 헤인즈 베일리가 작곡한 <그 옛날에>(Long, Long Ago)로 영화의 시작과 끝을 열고 닫는다. 애틋했던 과거의 순간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노래하는 이 곡은 홍콩과 홍콩영화의 역사를 반추하는 옴니버스영화의 사운드트랙으로 최적의 선택이다.
두기봉 감독이 제작하고 홍금보, 허안화, 담가명, 원화평, 두기봉, 임영동, 서극 감독이 연출한 <칠중주: 홍콩 이야기>는 1950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70여년의 세월을 경유하며 홍콩의 역사와 공간, 문화와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홍콩영화의 가장 찬란했던 순간을 함께했던 감독들은, 당연한 말이지만 그들이 사랑하는 공간을 매력적으로 담아내는 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듯 보였다.
그곳에는 물구나무서기로 하루를 시작하는 희극학원
[장영엽 편집장] 이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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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자궁이 있다. 올해 초, 나는 미레나 교체 시술을 받았다. 미레나는 매일 일정량의 황체호르몬을 내보내는 루프를 자궁 내에 삽입하는 피임법이다. 자주 나타나는 부작용 중 하나로 무월경이 있다. 무월경은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엄연히 부작용이지만, 이 부작용에 당첨(?)된 다음부터 내 삶의 질은 크게 향상되었다. 나는 본래 정확히 28.5일 주기로 5일간 생리를 했다. 생리주기가 30일 미만이라 한달에 두번 생리기간이 돌아왔다. 월로 따져보면 한달에 앞쪽 생리와 뒤쪽 생리를 합쳐 거의 정확히 일주일을 생리를 했다. 생리기간이 규칙적인 것은 그 자체로 아주 운이 좋은 케이스다. 생활이 예측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허겁지겁 생리대를 살 편의점을 찾거나 핏물이 든 엉덩이를 가리려 카디건을 허리에 묶을 필요가 거의 없었다. 생리전증후군도 심하긴 해도 뚜렷했다. 달리 말하면, 생리주기나 기간이 일정하지 않은 사람들은 언제나 일정 수준의 예측 불가능성을 감당하며 살고 있다.
나
[정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생리하는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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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해하고 치료받고 또 연습실에 왔어요.” “실수하면 얼음 넣은 양동이에 머리 박고 있으라고 했어요.” “개같이 벌었지만 4년 동안 정산서 한번도 못 받았어요.” MBN <미쓰백>은 잊혀진 걸그룹 출신 가수들에게 ‘인생곡’을 만들어준다는 취지의 예능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막이 오르자 쏟아진 것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올 법한 참혹한 증언들이다. 소속사 결정에 따라 수위 높은 섹시 컨셉을 수행했던 가영(스텔라)은 계약 종료 후 몇년이 지난 지금도 SNS 다이렉트 메시지로 성기 사진이나 ‘스폰서 제안’을 받는다. 노출이 과하면 빼주겠다는 소속사의 제안으로 찍었던 테스트용 사진이 그대로 공개됐고, 온라인에는 ‘망한 그룹’, ‘스타킹만 신고 나오는 그룹’이라는 조롱이 남았다. 2014년 그룹을 탈퇴한 세라(나인뮤지스)는 공황장애와 우울증 약 부작용으로 새벽에 몇번이나 잠에서 깨 음식을 먹고 잠들기를 반복한다. 회사 없이 혼자 활동하느라 은행 대출을 받아 생활
'미쓰백', 이름을 불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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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조용한 사무실에서 연쇄적으로 퍼져나가는 기자들의 한숨 소리를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코로나19 라는 초유의 상황으로 인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프레스 배지를 발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화제작의 경우 별도의 온라인 언론 시사를 진행하지 않는 작품이 많아 기자들도 영화를 보려면 관객과 예매 전쟁을 치러야 하는데, 오늘(10월 15일)이 바로 그날이다. 영화당 1회 상영을 원칙으로 하기에 예매가 쉽지 않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해당 상영작은 매진되었습니다’라는 문구와 마주하고 나니 허탈감이 앞선다. 다년간의 굿즈 구매 경험으로 가장 수월하게 예매에 성공할 거라 짐작했던 김현수 뉴미디어팀 팀장이 ‘그동안 너무 안일하게 살았다’고 가슴을 치며 반성하는 한편, 온라인과 가장 거리가 먼 송경원 기자가 예매 경쟁이 가장 치열했던 작품 중 하나인 픽사의 신작 <소울> 예매에 성공하는 등 <씨네21> 기자들 사이에서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장영엽 편집장] 극장은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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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째 머리털 정리를 스스로 하고 있다. 그 시작은 이랬다. 더운 날씨에 머리를 더 짧게 자르면 시원하지 않을까 싶어서 반삭발을 결심했는데, 머리를 아주 짧게 자르는 일이라면 굳이 전문가의 손에 맡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전기이발기를 알아보고 주문했다. 덕분에 ‘바리깡’은 프랑스의 제조 회사 이름인 바리캉에서 유래한 이름이고, 사람이 쓰는 전기이발기와 애견용 이발기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튼 새 이발기를 머리털에 갖다 대기 전에 그래도 기술을 배워두는 게 좋겠지 싶어 동영상을 검색했다. 검색어 ‘셀프 이발’을 입력하니 꽤 많은 영상이 떴다. 세상에 스스로 머리털을 자르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았단 말인가. 과연 속담처럼 제 머리를 못(안) 깎는 건 스님뿐이구나. 다양한 자가 이발 영상을 보니 자신감이 생겼다. 어쩌면 기술보다 필요한 건 용기였는지도 모른다.
미용실과 관련해서 뼈아픈 기억이 하나 있다. 몇년 전 생일을 앞두고 단골 미용실을 찾았는데 불상사가 발생했다.
[이동은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물은 셀프, 이발도 셀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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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빛 피부, 보라색 입술의 남자가 탐정 사무소 창가에 앉은 비둘기 무리에 시선을 둔다. 굶주림 끝에 비둘기라도 먹어볼 셈으로 뜰채를 휘젓다가 도심 비둘기의 세균과 바이러스가 옮을까 주저하던 그는 문득 현실 자각 타임을 맞는다. 그는 좀비다. 사람이던 시절의 기억을 잃고 야산에 숨어 지내던 좀비가 우연히 살인 사건을 목격하고 죽은 이의 신분을 빌려 탐정 김무영(최진혁)으로 생의 2막을 시작하는 이야기. KBS2 예능 드라마 <좀비탐정>이다.
좀비가 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바이러스를 옮기는 꺼림칙한 존재로 비둘기와 처지가 다르지 않고, 한번 죽은 좀비들이 다시 맞아 죽는 영화를 보며 인간의 잔인함에 몸서리친다. 대인기피증이 그래서 생겼다. 살아남으려면 인간과 비슷해져야 한다고 판단한 그는 야산에서 지내는 1년간 특훈을 거쳤다. 폐쇄된 마을회관 체육시설의 러닝머신에 올라 느릿한 발걸음을 고쳤고, 발음을 교정해 랩을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탐정 사무소에 머물게 된
'좀비탐정', 생식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