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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지인의 집에서 여러 명이 함께 TV를 본 적이 있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마침 방영 중이던 <타짜>에 시선이 머물렀고 모두가 함께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자리를 비웠던 친구가 돌아와 TV를 보더니 1초 만에 영화의 제목을 맞히는 게 아닌가. 배우도, 영화 제목을 소개하는 자막도 없이 오직 담벼락만 나오는 장면이었는데 말이다. 대체 어떻게 무슨 영화인지 알았냐는 좌중의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 “내가 <타짜>를 40~50번은 봤는데 아무려면 담벼락을 보고 무슨 영화인지 모를까.” 흔치 않은 일화라는 생각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는데, “<타짜> 몇십번 봤어요”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첫인사라는 이번호 조승우 배우의 인터뷰를 읽으니 담벼락만 보고도 이 영화가 <타짜>인 줄 알아챌 사람이 대한민국에 적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덧 최동훈 감독의 <타짜>가 세상에 첫선을 보인 지 15주년이 되었다. 2006년 추석
[장영엽 편집장] '타짜'가 우리에게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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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집에서 <무신: 용의 귀환>이라는 2020년에 제작된 중국영화를 보았다. 물론 무료라서 본 것이기도 하고, 조자룡 얘기라서 본 것이기도 하다. 아내는 최근의 중국영화들을 선전영화라고 질색하고, 그런 걸 보고 있는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고 간다. 가끔씩 중국 고전을 다룬 영화 중에서 의외로 재밌는 것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재미없다. 유명한 조자룡의 장판교 전투를 다룬 영화이기는 한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은 여주인공이 중반까지도 못 가고 바로 죽어버려서 김이 샜다. 그 후에 영화는 산으로 갔다. 조자룡 나오는 영화는 어지간하면 보고, 한신 나오는 영화도 설령 가짜 영화라도 본다. 그건 나의 판타지다. 프랭크 허버트의 <듄>은 1984년에 영화로 만들어졌다. 망했다. 스팅이 출연했고, 음악은 토토가 맡았다. 나는 재밌게 봤지만, 사람들의 판타지를 만들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때 O.S.T 음반을 샀고, 아직도 가끔 듣는다. 뒤에 미국에서 만들어진 드라
[우석훈의 디스토피아로부터] 판타지 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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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 취준생 분투기’라는 글을 읽었다. 매일신문이 주최하는 ‘매일 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부문의 수상작으로, 포털 사이트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니 독자 여러분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예순아홉의 작가는 황혼이혼을 한 뒤 ‘먹고살기 위해’ 취업전선에 뛰어들어 4년간 분투한 경험을 담담한 필치로 서술하고 있다. 이력과 경력이 화려하면 채용이 어렵다는 시청 직원의 말에 두장 빼곡히 채워넣은 이력서를 구겨버리고 수건 접는 노동자, 백화점 청소부, 어린이집 주방 선생님과 요양 보호사와 장애인 돌봄 노동자를 거치며 작가가 경험한 초유의 에피소드는 한국 사회 속 노인의 초상에 대한 씁쓸하면서도 서늘한 진실을 전한다. 한편으로는 이 글을 남긴 작가가 고맙기도 했다. 그가 육십을 넘겨 글을 본격적으로 써보기로 결심하지 않았더라면, 다리미판 위에 노트북을 펼쳐놓고 자신의 삶을 기록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독자들은 영영 환갑을 넘어 홀로서기를 시작한 취업지망생에게 어떤 나날들이 펼쳐질 수 있는지
[장영엽 편집장] 노인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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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겨울서점에는 아주 진지한 주제의 영상이 올라갔다. 내가 삶에 근본적인 회의가 들 때 읽는 책을 소개하는 영상이었다. 아주 오랫동안 삶의 의미에 관한 공부를 하고 책을 읽었던 입장에서 사람들과 내밀한 경험을 나누는 의미 있는 영상이 될 것이었다. 내밀한 만큼 그동안 만들지 말지를 두고 고민한 주제이기도 했다. 하지만 겨울서점의 상황으로 보든 시기적인 측면으로 보든 이제는 이런 영상이 필요한 시기라고 판단했고, 비정기 시리즈로 영상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영상은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올린 지 5일 만에 10만에 가까운 조회수를 기록했고, 댓글은 400여개 이상, 좋아요는 5천이 훌쩍 넘어갔다. 그간의 경험으로 미루어보건대 책을 다루는 영상이 이 정도의 반응을 얻기는 쉽지 않다. 그만큼 사람들이 영상의 주제에 반응했고, 내용에 공감했다는 뜻이었다. 댓글의 내용도 하나같이 진지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절절한 진심과 경험을 털어놓았다. 서로가 서로의 댓글을 읽으며 위로받았고 힘
[김겨울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일침의 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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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 표지는 웨스 앤더슨의 신작 <프렌치 디스패치>다. 프랑스에 위치한 어느 주간지의 제작 과정을 ‘보이는 영화’로 완성한 이 작품을 소개하기에 <씨네21>보다 더 잘 어울리는 매체가 있을까 싶다. 편집장의 관점에서는 다소 오싹한 대목도 있었는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뒤에도 잡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편집장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편집부를 진두지휘하던 그는 자신이 만들던 잡지 ‘프렌치 디스패치’의 부고 지면 주인공이 되어, 편집장과의 한때를 회고하는 기자들의 문장으로 기록된다. 평생 잡지 마감만 하다가 인생을 마감했다고 생각하면 좀 억울할 것 같기도 하지만, 가장 아꼈던 필자들이 전력을 다해 최상의 퀄리티를 자랑하는 잡지를 만들어준다면 주간지의 편집장에게 그보다 더한 선물은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김현수, 임수연, 조현나, 남선우 기자가 참여한 기획 기사를 보면 알 수 있듯, 웨스 앤더슨은 잡지 <뉴요커>의 열렬한 팬이었다. 시도 때도 없
[장영엽 편집장] 잡지를 만든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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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와 토토가 들어 있는 집을 들어올린 회오리바람처럼, 세상을 흔들어버린 바이러스와 함께한 지도 2년이 다 되어가며 변화의 현기증을 느끼고 있다. 익숙해지길 바랐지만 변화가 다시 다른 변화를 추동하는 도미노 같은 연쇄반응은 매일의 적응 또한 만만치 않게 함을 이해하게 되었다. 멀미를 덜어드리기 위해 먼 시점의 상수가 있음을 알리려 오랜만에 책을 냈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동료들, 선생님들과의 교류에서 얻은 배움을 숙고의 시간을 더해 정리해야 하는 일이라 좀처럼 엄두를 내기 어려웠지만, 물리적 이동이 제한되며 시간이 허용된 것 역시 어려움 속에서 주어진 작은 행운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무언가를 세상에 내놓으면 알려야 할 책무도 따르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어디에 알릴 것인가가 그다음으로 따르는 질문이 된다. TV, 라디오, 신문, 잡지와 같은 세칭 4대 매체가 가진 위상과 영향력에 도전장을 내밀기 시작한 동영상 플랫폼과 글로벌 OTT는 다양성과 접근성을 기반으로 수년 전부터
[송길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28일, 짧지만 꽤나 긴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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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이 자오와 켈리 라이카트, 2020년대 아메리칸 시네마의 가장 빛나는 이름인 두 감독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로부터 창작의 영감을 받았다는 점이다. 켈리 라이카트 감독의 <퍼스트 카우>는 “새에겐 새집이, 거미에겐 거미집이, 인간에겐 우정이”라는 블레이크의 시 한 구절로 시작한다. 클로이 자오는 <이터널스>를 만들기 위해 마블의 수장 케빈 파이기를 위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며 “한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라 그대의 손바닥 안에 무한을 쥐고 한순간 속에 영원을 보라”는 블레이크의 시를 통해 영화의 비전을 제시했다고 한다. <퍼스트 카우>와<이터널스>의 개봉 시기가 겹쳐 윌리엄 블레이크의 이름을 우연히 발견한 까닭도 있겠지만 두 감독이 같은 예술가의 이름을 모티브로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 단순한 우연으로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창대하고 유구해 보이는 세계와 전통도 결국은 사소하고 일상적인 무언가로부
[장영엽 편집장] 클로이 자오와 켈리 라이카트, 아메리칸 시네마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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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성과가 낮은 직원을 계속 고용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여기 와서 나름 열심히 했다고 말씀을 하시는데, 열심히 해도 성과가 나지 않는 직원에게 계속 기회를 주는 것은 불공정합니다.”
회사측 대리인이 열변을 토한다. 얄밉다. 사람을 앞에 두고 저렇게까지 말할 일인가 싶다. 얄밉다고 말할 수는 없어 반대편으로 살짝 고개를 기울인다. 딱히 쓸모도 없는 소심한 항의다. 속으로는 ‘그렇게까지 말하지 않아도, 어차피 법리적으로만 보면 당신들이 이길 사건이잖아요? 꼭 이래야 해요?’라고 생각한다.
질 사건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전문가로서 승패를 가늠하지 못하고 희망찬 가정만 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는 일이 되지 않는다. 현실적인 가능성을 따져보고, 안될 일은 안될 일이라는 판단을 정확하게 하고, 제도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출구 전략도 궁리해야 한다. 전략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법리적, 현실적, 전략적.
허용, 인과관계, 취지, 예비적, 여
[정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말의 어려움, 어려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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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마지막 주의 <씨네21>은 한국영화계의 거목이자 큰 어른이었던 두 선배 영화인의 발자취를 다시금 돌아보는 지면을 마련했다. <서편제> <춘향뎐> <취화선>의 제작자 이태원 태흥영화사 전 대표와 <꽃잎> <초록물고기> <8월의 크리스마스>의 촬영을 맡은 유영길 촬영감독이다. 이태원 전 대표는 지난 10월24일 향년 83살로 영면하며 영화인들을 슬픔에 잠기게 했고, 고 유영길 촬영감독은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수상을 통해 1980년 5월 광주를 최초로 보도한 영상기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세간을 놀라게 했다. 두 사람은 1980~90년대를 관통하며 한국영화의 가장 역동적이었던 순간, 역사에 길이 남을 아름다운 영화들을 남겼다. 이들은 세상을 떠나고 없지만, 두 영화인과 많은 시간을 공유했던 선후배, 동료 영화인들이 이번호를 통해 들려준 이야기는 더없이 소중하고 값지게 느껴진다.
먼저 김성훈 기자가 취재한 고
[장영엽 편집장] 이태원과 유영길, 한국영화계의 두 거목이 남긴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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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은 <씨네21> 기자들에게 출장의 시즌이다. 짐을 두둑이 챙겨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부산 센텀시티와 숙소가 있는 해운대를 오가다보면 어느새 10월도 절반이 지나고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낄 수 있다. 올가을엔 출장이 하나 더 늘었다. 이주현, 송경원, 김소미 기자가 부산 출장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자마자 김현수, 임수연 기자가 강릉국제영화제 데일리 마감을 위해 강릉으로 떠났다. 부산과 강릉 모두 바다를 지척에 두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마침 강원도 바다를 배경으로 한 이번호 표지- 이시이 유야 감독이 강릉을 배경으로 한국, 일본 배우들과 함께 촬영한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이다- 가 데일리 시즌의 정취를 그대로 전해주고 있는 것 같다. 종종 출장지에서 일하다보면 바다를 눈앞에 두고도 백사장 한번 걸어볼 여유가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하지만 일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기자들이 전해오는 영화와 사람에 관한 리포트엔 언제나 오직 그 장소이기 때문에
[장영엽 편집장] 영화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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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가 막을 내렸다. 온라인 영화제로 전환된 2020년의 전주국제영화제가 팬데믹의 시작을 알리는 영화 축제였다면, 2021년의 부산국제영화제는 위드 코로나 시대에 도래할 영화제의 풍경을 짧게나마 가늠해볼 수 있었던 페스티벌로 기억될 듯하다. 영화제를 찾은 감독, 배우들은 다시금 관객의 환호 속에 레드 카펫을 밟았고, 영화제 곳곳에서는 오픈 채팅방에 입장하는 대신 오랜만에 마이크를 잡고 육성으로 영화인들과 소통하게 된 관객의 질문이 릴레이처럼 이어졌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지난 2년여 동안 긴 호흡으로 관객을 만나지 못했던 감독과 배우들의 들뜬 표정을 보니 관객의 빈자리가 그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반면 올해 영화제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지난 1년간 제작된 영화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를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일정상 주로 한국영화를 관람하게 되었는데, 저예산으로 제작됐을 한국 독립영화의 대부분이 실내를 배경으로 하거나 인적
[장영엽 편집장]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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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독서의 계절인 이유는 독서를 하기에는 너무 좋은 날씨라 다들 독서를 안 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약간의 의심을 가지고 있다.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이라 말도 살쪄야 하고 햅쌀이 나오니 나도 살쪄야 하고 날이 선선하니 나들이도 가야 하고 하여간 다들 바쁜데 말이에요. 가을을 독서의 계절로 부르는 유래를 찾아보니 농경 사회에서 추수 후의 여유 때문이라고도 하고, 온도와 습도가 적합해서라고도 하고, 가시광선이 독서에 적합해서라고도 하고, 줄어든 일조량으로 세로토닌의 분비가 줄어 마음이 가라앉아서라고도 한다. 하지만 정작 책이 많이 대출되거나 팔리는 시기는 한해를 시작하는 겨울과 피서를 가는 여름이라고들 하니, 이런 이유들은 일단 가을을 독서의 계절로 정해두고는 그다음에 붙인 이유가 아닐지.
그럼에도 가을을 독서의 계절로 만들어주는 게 있다면 가을의 스산함, 나뭇잎이 뚝뚝 떨어지고 거리에 똑같은 옷이 300개쯤 있어도 굳이 트렌치코트를 꺼내게 만드는, 잊었던 일도 뒤돌아보게 만드
[김겨울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아마도 독서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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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net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를 즐겨 보고 있다. 전략적으로 싸울 상대를 고르고, 있는 힘을 다해 싸우고, 승부가 난 뒤엔 서로를 힘껏 껴안아주는 대한민국 정상급 여성 댄서들의 품격도 이 프로그램의 매력 포인트지만 개인적으로는 배틀에 참여한 댄서들이 선보이는 몸의 움직임을 구경하는 재미에 매 화를 챙겨 본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는 시그니처 포즈로 팔뚝의 알통을 자랑하는 팀이 있고, 머리채를 상모처럼 돌리는 댄서가 있고, 어느 부족의 전통춤처럼 힘차게 발을 구르며 몸통을 울리는 묵직한 춤을 추는 경연자들이 있다. 이들의 움직임을 보고 있자면 그간의 대중문화가 미디어를 통해 구현해온 여성 댄서의 모습이 얼마나 편협한 것이었는지 체감하게 된다.
이번호에서는 임수연·배동미 기자가 <스트릿 우먼 파이터>부터 <골 때리는 그녀들> 등의 예능 프로그램, 여자 배구 열풍이 주도적으로 촉발한 여성의 신체적 재현에 대한 질문을
[장영엽 편집장] 다양한 몸을 볼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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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만난 분의 팔목에 가느다란 팔찌가 범상치 않아 보였다. 한눈에 보아도 재질과 패턴이 정성스러워 보여 보여달라고 하니 팔찌 한가운데 작은 크라운 속 세밀한 바늘이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1960년대 앤티크로, 이베이에서 산 클래식 시계가 장인에 의해 오버홀(분해수리)되어 21세기 한국에서 틱톡거리는 것을 보며 어디서도 주목받는 그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 하나를 보더라도 그가 생각나는 것이 그다운 것이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나의 최애 카페에서 불현듯 다프트 펑크의 클래식이 흐르기 시작했다. 단순한 리듬을 기반으로 선명하게 펼쳐지는 멜로디는 변주되며 확장되어 그들의 빛나는 헬멧을 떠올리게 한다. 아쉬운 해체 소식의 여운이 예술적 공간과 이질적인 앙상블을 만들어낸다. 부분이 전체의 모습과 같을 수는 없지만, 부분을 보면 그를 떠올릴 수 있다. 일관은 결국 그다움의 원칙을 얼마나 성실히 지켜오는가에 대한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나다움을 중시하는 자에게 그냥이라는 것은
[송길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당신의 모든 것이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