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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유튜브 속 나의 눈길을 끈 영상은 “카메라 잡아먹었다는 김선호의 추억여행씬”이었다. 2009년 연극으로 데뷔해서 2017년 TV드라마에 출연하기까지 장장 8년 넘게 현장의 무대를 지키며 커리어를 쌓아온 배우 김선호는 더 많은 대중에게 사랑받는 지금도 꾸준히 연극무대를 지키고 있다. 헤어진 연인을 그리며 해변으로 추억여행을 가서 동영상을 찍는 모습에 엉뚱하게도 연기 감독을 자처하는 행인과 어촌의 촌부들이 참견을 하고 카더가든의 발라드가 오버랩되는 엄청난 혼종의 7분여는 도무지 다음 장면을 예측할 수 없도록 긴장시킨다.
마지막 대사에 이르면 본인도 이것이 무엇인지 헛갈려하는 이 창의적이고 흥미로운 영상은 다름 아닌 캐논의 카메라 광고였다. 정신없이 몰아쳐도 제품 기능 소개와 효용까지 빠뜨리지 않아 정체 모를 동영상을 광고라고 분류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렇지만 드라마와 코미디, 뮤직비디오와 광고가 포함된 이 영상을 그저 광고라고만 치부하기가 미안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닐
[송길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너의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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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이 지난 1년 새 한국인의 영화 축제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봉준호 감독이 샤론 최 통역사와 함께 감독상의 시상자로 나서고, <미나리>의 윤여정 배우가 한국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2021년 오스카는 한국영화계의 저력을 다시 한번 글로벌 무대에 선보이는 자리였다. 새로운 역사가 쓰여진 만큼 지난해부터 SNS로 실시간 아카데미 시상식 중계를 시작한 <씨네21> 취재팀의 하루도 덩달아 숨가쁘게 흘러갔다.
특히 올해는 김성훈, 송경원, 임수연, 김소미, 남선우 기자가 트위터의 새로운 음성 기반 커뮤니티 서비스인 ‘트위터 스페이스’(#TwitterSpaces)에서 아카데미 시상식을 해설했다. <씨네21>을 통해 스페이스 기능을 처음 접한다는 소감부터 세 시간 반 동안 단 한 차례의 휴식도 없이 매끄러운 진행을 선보인 기자들이 놀랍다는 이야기까지, 다양한 반응을 접할 수 있었다. 주간지의 긴 호흡에서 벗어나 실시간으로 청취자들과 교
[장영엽 편집장] 오스카의 밤이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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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점이 ‘페미니스트가 아니한 자’를 찾는 채용 공고를 게시했다. 이 공고는 삭제되었지만, 이와 같은 차별은 끝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애써 분노하고, 잘못을 지적하고, 민원을 넣고, “물의를 일으켜 송구하다”는 뒤끝 나쁜 결과를 본다. 차별은 잘못이 아니라 ‘논란’으로 남고, 이 일을 잊기도 전에 다음 차별 사건이 또 발생한다. 또 분노하고 잘못을 지적하고, 이도 저도 아닌 결과를 본다.
이래서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플래카드를 펼치고 찬바람을 맞다 몸싸움에 밀려났던 게 2017년이었던가? 2016년이었던가? 2007년이었을지도 모른다. 인권조례에서 성소수자 인권이라는 말을 지키기 위해 자리를 깔고, 콘센트가 있는 기둥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던 것은 2018년이었나? 2019년이었나? 소위 보수개신교 언론의 카메라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은 유엔의 권고사항이라는 토론회를 열었던 건 언제였더라? ‘차별금지법 반대세력’에 막혀 건물에서
[정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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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 윤.”(Yuh-Jung Youn) 지난 1년간 우리는 글로벌 무대에서 익숙한 한국 배우의 이름이 낯설게 호명되는 모습을 수도 없이 지켜봐왔다. <미나리>의 순자 역으로 단숨에 2020, 2021 시상식 시즌의 가장 찬란히 빛나는 스타가 된 윤여정의 행보는 그의 자연스러우면서도 유니크한 매력이 한국을 넘어 세계의 영화산업 관계자들과 관객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점을 일깨워주었다. 이틀 뒤로 다가온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한국 시각으로 4월 26일 오전 9시)에서 다시 한번 ‘여정 윤’이 호명되는 순간을 기다리며, <씨네21>은 창간 26주년을 기념하는 마지막 특집호를 배우 윤여정 스페셜 에디션으로 구성했다.
두달 전 설 합본호를 통해 소개한 봉준호 감독과의 대담 기사가 배우 윤여정의 생각과 목소리를 오롯이 담은 특집이었다면, 이번 스페셜 에디션에서는 기자, 평론가, 감독, 배우, 작가, 제작자, 촬영감독, 매니지먼트 대표, PD, 스타일리스트 등 국내외
[장영엽 편집장] 윤여정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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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팬데믹과 관련된 책 한권을 마무리하고, 관련된 논문도 하나 썼다. 어쩔 수 없이 팬데믹의 영향을 받은 여러 분야를 살펴보고, 이런저런 예상도 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역시 언제쯤 코로나19가 끝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코로나19 백신을 청년 등 활동력이 높은 사람부터 맞게 할 것인가, 아니면 노년층부터 먼저 맞게 할 것인가? 활동력에 따른 전파를 생각하면 청년부터 맞는 게 더 효과적이다. 실제로 인도네시아는 젊은 노동자부터 먼저 맞는 전략을 선택했다. 청년층 확산도 막고, 젊은 노동자들이 경제에 먼저 투입될 수 있게 하자는 선택이다. 그렇지만 선진국 대다수는 노년층부터 맞는 것을 선택했고, 우리도 그렇게 했다. 바이러스를 조금 천천히 잡더라도 사망률부터 줄이는 선택이다. 백신에 의한 집단 방역에 가는 시간은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같겠지만, 노년층부터 맞는 경우가 중간에 확진자가 급증할 위험이 조금 더 높다. 백신 접종이 어느 정도 마무리 국면에 접어
[우석훈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코로나19, 언제까지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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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창간 26주년 세 번째 특집의 주인공은 감독 이정재, 정우성이다. 2021년은 지난 27년간 한국영화의 대표적인 얼굴로 자리매김해온 두 배우가 장편영화의 감독이라는 새로운 타이틀로 관객을 만나는 의미 있는 해다. 1995년 <SBS 스타상> 신인연기상을 수상하며 처음 인연을 맺은 이래 스크린 안팎에서 좋은 친구, 의지가 되는 영화계 동료, 회사 아티스트컴퍼니를 함께 운영하는 동업자로 지내오다 이제는 카메라 뒤편의 일들을 함께 고민하는 사이가 된 이정재, 정우성은 첫 장편영화 연출작 <헌트>(가제), <보호자>에 대한 소회부터 서로에 대한 생각, 영화인으로, 한 사람의 개인으로 경험하고 느끼는 다양한 생각들을 공유해주었다. “<씨네21>과는 연년생”(두 사람은 1994년 스크린 데뷔했다)이라고 말하는 두 감독은 신작을 공개할 때마다 어김없이 표지를 장식하는, <씨네21>의 좋은 친구들이기도 하다. 창간 26주
[장영엽 편집장] ‘영화인’이라는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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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빠지셨네요!”
너무 놀라서 대답을 못했다. 저 말을 듣고 멍한 얼굴로 약 1초 동안 내 주변의 인간관계와 내가 사람을 만나는 횟수와 용건을 돌아보며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페미니즘 친화적인 출판계 인사를 주로 만나며 그 밖의 경우에도 저런 말을 할 일이 없는 공적인 자리에 주로 나가는지를 주마등처럼 떠올렸고, 저 말을 첫인사로 건넨 상대방은 내가 대답을 못하자 호탕하게 웃었다. 물론 상대방이 무슨 나쁜 의도가 있어서 그랬던 것은 전혀 아니다. 나와 나이가 같은 여성이며 평범한 직장에 다니는 나의 친구는 기분 좋은 첫인사를 했을 뿐이고, 나는 그런 ‘평범한 감성’으로부터 내가 얼마나 많이 도망쳐왔는지를 실감했다.
최근 몇년간 내 몸을 외양이 아닌 기능을 중심으로 보는 법을 배웠다. 가느다란 다리와 납작한 배와 큰 눈이 아니라 튼튼한 다리와 단단한 코어와 앞을 잘 보는 눈이 삶에서 더 소중해졌다. 물론 그렇다고 단박에 후자를 가지게 된 것은 아니고 여전히 일하느라 골골대는 프리
[김겨울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서로가 환경이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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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 발행하는 네권의 <씨네21> 표지에는 창간기념 로고가 붙는다. 매년 봄마다 돌아오는 씨네리의 생일을 한달간 축하하기 위함이지만, 책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로고를 볼 때마다 느끼는 심리적 부담감이 어마어마하다. 평소에 만드는 잡지에서 만나볼 수 없는, 또는 오직 <씨네21>에서만 만나볼 수 있을, 특별하고 깊이 있고 오랫동안 기억될… 기사들로 가득한 책을 만들어야 할 것만 같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이런 압박감이 주는 건강한 긴장감도 분명 있다. 여느 때였다면 엄두도 못 낼 대규모 특집을, 지금이 아니라면 또 언제 기획하고 추진해보겠는가, 라는 생각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러니 다음주도, 그다음주도 기대해주시길 바란다. 영화만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씨네21>의 스페셜 기사도 계속된다.
이번호에 소개하는 ‘2010-2020 영화 베스트10’은 이 책을 만드는 모든 구성원들이 그야말로 전력을 다한 특집 기사다. 21세기의 두 번째 1
[장영엽 편집장] 우리가 기억해야 할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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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박한 미디어 환경에서도 꿋꿋이 발행되고 있는 <씨네21>을 사서 보시는 독자 분들은 필시 전문가일 것이라 믿기에 다음의 질문을 하고 싶다.
“영화와 드라마의 차이는 무엇인가 ?”
이것저것 검색하다 시나리오작가들의 카페에서 동일한 주제의 논의를 발견했다. 영화가 화면으로 이야기하는 비중이 높아 ‘지문’이 중요하다면 드라마는 ‘대사’로 이야기를 하는 편이라는 주장부터, 영화는 극장에서 돈내고 보고 드라마는 공중파에서 공짜로 보여지니 집중과 병행의 시청 환경이 다르다는 의견까지 흥미로운 토론이 이어진다.
그중 “드라마가 길게 늘어선 엿가락이라면 영화는 단단하고 각 잡힌 각설탕 느낌”이라는 찰진 표현이 눈길을 끌었다. 요컨대 길이와 밀도의 차이라는 것인데 그간 보았던 영상물들의 상영시간과 시간당 제작비를 생각해보면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이야기다 싶었다. 길이의 제한이라면 최근 나의 추억의 리마인더는 왓챠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였다. 짬짬이 먹
[송길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어쨌든, 함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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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이 창간 26주년을 맞았다. 목차 페이지를 펼친 독자들은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외관상으로 새 단장을 했다. 극장 이외의 다양한 플랫폼에서 공개되는 영상 콘텐츠의 정보가 궁금하다면 신설된 홈 시네마 지면에 주목해주시길 바란다. 스탭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인’ 코너는 ‘커리어’라는 지면으로 개편되었는데, 한국영화계의 다양한 직무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얻을 창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문제인식에서 비롯되었다. 첫 타자로 <살인의 추억> <올드보이> <괴물> <암살> <아가씨> 등을 작업하며 한국영화의 독보적인 룩을 구현해온 류성희 미술감독을 모셨다. 이 모든 변화는 지난해 가을 수많은 정기구독자 여러분이 보내주신 설문 답변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애정 어린 답변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이번 창간 특대호의 진정한 주인공은 ‘영화’다. 코로나19가 세계를 잠식하고 영화를 둘러싼 환경이 급격
[장영엽 편집장] 영화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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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변희수님이 세상을 떠났다. 트랜스젠더인 변희수 하사는 군 복무 중 성확정 수술을 받았고, 계속 복무를 희망했으나 심신장애를 이유로 강제 전역되었다. 변 하사는 이 강제 전역의 부당성을 다투는 행정소송 첫 기일을 앞두고 있었다. 그 전주에는 김기홍님의 부고가 있었다. 그는 커밍아웃한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였다. 음악 교사였고,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했었다. 성소수자 가시화를 위해 노력했다. 다음달 4월 26일은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구 동성애자인권연대)의 청소년 활동가였던 육우당님의 18주기다. 그가 세상에 살아 있었던 시간과 그가 세상을 떠난 시간이 같아지는 날이다.
이 목록은 끝이 없다. 기록되지 않은 죽음, 소리내어 이유를 말하지 못했던 이별은 더 많았다.
그리고 이 이별에는 매번 이유가 있었다. 가해가 있었다.
육우당님의 부고 뒤편에는 동성애자 커뮤니티 사이트가 청소년 유해 매체라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강경한 주장이 있었다. 김기홍님의 부고 뒤편에는 성
[정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지옥에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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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어도 귀신이 무서운 것은 왜일까. 이제 화장실에서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묻는 귀신을 만나면 도톰한 4겹을 달라고 해야겠다 마음을 다잡으면서도, 늦은 새벽 갑자기 복도에 켜지는 센서등 때문에 쪼그라드는 심장은 주체할 수가 없다. 지난 1월, 파일럿 방송된 MBC 예능 프로그램 <심야괴담회>가 정규 편성된 것도 이처럼 공포에 반응하고, 나아가 유튜브나 온라인 게시판에서 무서운 이야기를 즐기는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음산한 스튜디오에 둘러앉아 주고받는 괴담의 묘미는 스펙터클이나 치밀한 서사보다도 긴장감 유지와 상상력 자극에서 나온다. 이때 중요한 것은 제보받은 괴담을 들려주는 패널들의 연기와 분위기 장악력이다. ‘스토리텔러’라 불리는 이들의 대사 처리, 시선, 동작, 호흡, 완급 조절에 따라 공포의 강도가 치솟기도 하고 김이 팍 새버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심야괴담회>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귀신이 아닌 심의일 것이다. “
'심야괴담회', 괴담이 알려주는 우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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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넘치는데 한 페이지만 늘릴 수 있을까요?” “이 기사는 사진을 더 시원하게 보여주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마감 때마다 <씨네21> 편집부 구성원들과 나누는 대화다. 기사를 작성하는 건 시작에 불과할 뿐, 한권의 잡지가 완성되기까지 수많은 구성원들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교열과 편집과 데스크를 거쳐 기사를 출고하면 디자이너가 글과 사진을 지면에 배치하고 교정지를 인쇄해 취재, 사진, 편집팀이 번갈아 검토한 뒤 편집장의 오케이 사인을 받는다. 신기한 점은 최종적으로 교정지를 검토할 때와 완성된 책을 보는 느낌이 또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잡지 마감이 끝나는 목요일 밤이 아니라 인쇄가 완료된 책을 받아보는 금요일이 되어서야 비로소 한주의 업무를 마무리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잡지 제작을 경험하기 전까지 미처 알지 못했던 공동 작업의 신묘한 매력이라고 할까.
영화 스탭들의 제작기에 흥미를 느끼는 까닭도 비슷하다. 연출, 제작, 촬영, 미술, 의상, 편집 등
[장영엽 편집장] 촬영감독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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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책에서 보고 배웠다. 프랑스혁명에서 삼권분립과 함께 근대가 열렸고, 68혁명이라는 일종의 문화혁명이 있었다, 이런 건 다 책에서 본 것이다. 국가를 어떻게 견제하는가, 그게 민주주의라고 알았다. 최장집 교수의 고전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달성한 시대 이후에 어떻게 새로운 도전을 맞을 것인가, 그런 문제를 다루고 있다. 민주주의는 한국에서 이루어졌는가? 글쎄올시다.
푸르동이라는 독일 경제학자가 마르크스 이전의 19세기 중반에 ‘산업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이때의 산업은 우리 식으로 하면 직장 민주주의 정도 된다. 국가가 아닌 경제 분야에서도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68혁명을 경계로 노조가 강해지면서 회사 안에 민주주의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68혁명에 대거 참여한 여성들은 임신중절을 요구하면서 스스로 권력을 갖기 위한 노력을 했다. 이렇게 유럽은 일상생활 속에서 스스로 민주주의를 만들면서 다음 단계로
[우석훈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압축 생활 민주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