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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끼리 결혼해서 이혼한 커플 하나도 없다? 그 누구도 (이혼) 1호가 되기 싫은 거지.”JTBC 예능 프로그램 <1호가 될 순 없어>는 개그맨 박미선이 했던 말에서 시작되었다. 희극인 부부 1호인 팽현숙-최양락, 4호 박준형-김지혜, 12호 강재준-이은형의 일상을 보여주고, 3호 박미선(이봉원은 종종 CG로 소환된다)과 다행히 아직 자유의 몸인 장도연이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 출연자들의 방송 경력은 도합 197년에 달한다. ‘이혼’을 ‘1호’라는 표현으로 대체하고, “1호가 될 순 없지만 언젠가 2호는 될 수 있다”고 의미심장한 여운을 남기며, “다른 개그맨하고 결혼해서 또 나올 수 있느냐”는 질문에 놀라긴커녕 반색하는 분위기는 무엇보다 웃기려는 마음이 앞서는 이 집단의 특성을 보여준다. 아무것도 안 하면서 눈치 없이 들썩대는 명절날 큰아빠처럼 입바른 소리만 자꾸 해대는 최양락과, 외식 사업에 방송은 물론 가사노동까지 완벽을 추구하면서 최양락을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싹
'1호가 될 순 없어', 그래도 내가 더 웃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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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코로나19 첫 환자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얼마 전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발간한 ‘2020년 상반기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를 읽다 보니 6개월 만에 이 많은 변화들이 일어났나 싶을 정도로 지난 상반기가 아득하게 느껴진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상반기 극장을 찾은 전체 관객수는 3241만명으로, 지난해 대비 관객수가 무려 7690만명 감소했다. 이는 2005년 이후 최저에 해당하는 수치다. 관객수가 급감하며 개봉을 미루는 상업영화들이 늘어났고, <위대한 쇼맨> <라라랜드> 등의 재개봉작들이 3, 4, 5월의 극장가를 견인했다. 코로나19의 전세계적인 확산과 더불어 한국 극장가에서 성수기와 비수기의 구분을 없애는 데 기여한 할리우드 프랜차이즈 영화들이 사라졌으며, <닥터 두리틀>(4위)과 <1917>(10위)을 제외한 상반기 국내 박스오피스 10위권의 거의 모든 작품이 한국영화로 채워졌다. 극장 개봉에서 넷플릭스 공개로
[장영엽 편집장] 상반기를 결산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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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은 명실공히 디스토피아다.
기독교대한감리회는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축복기도를 했다는 이유로 이동환 목사를 교회의 재판위원회에 회부했다. 교회 사건에는 교회 내부 규정이 적용되는데, 교회 재판위원회는 교인을 ‘처벌’할 수 있다. 가장 무거운 처벌은 출교인데, 공동체에서 한 사람을 죄인으로 선포하며 내보내는 것이다. 이동환 목사는 성소수자 문제 외에도 노동현장에서 자주 연대해온 현장의 종교인이다. 탄원서를 쓰자는 링크가 와서 이름을 썼다. 탄원서에는 하고 싶은 말을 덧붙이는 칸이 있었다. 나는 “응원하고 연대하고 지지합니다”라고 썼다. 언제나 진심이지만, 날마다 새로운 사건이 있고 새로운 좌절이 있는 이 디스토피아에서, 이 말은 이제 자동 출력 문구나 다름없다.
어느 단체의 성소수자 난민 지원 모금이 마감을 임박해서도 목표액을 채우지 못했다. 나는 허겁지겁 추가 기부금을 냈다. 목표액이 높지 않았는데도 마지막까지 아슬아슬해 마음이 좋지 않았다.
대한민국,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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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이면 몰라도 사람들은 구의원에는 관심 없죠. 그래서 일년에 90일만 근무하고 연봉 오천을 받는 신의 직장을 지역 유지, 건물주, 정당인들이 나눠 먹는 겁니다.” 마원구청 5급 사무관 서공명(박성훈)의 말처럼, 우리 동네 구의원이 누군지는 몰라도 돈 이야기엔 솔깃해진다. 29살의 ‘연쇄 퇴사러’ 구세라(나나)도 그랬다. 부당한 상황에 분노하는 족족 비자발적인 퇴사 이력만 쌓이던 그는 취업 대신 구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다. KBS 드라마 <출사표>의 시작이다. 학력, 경력, 단체, 정당 없는 무소속 후보. 15년간 지역 불편을 꼼꼼하게 살핀 구청 홈페이지 민원왕 타이틀로 아무리 분투해도 예상 득표율은 9%. 보수와 진보 두 거대정당의 지원을 받는 1번과 2번 유력 후보를 두고 기호 5번 구세라가 당선될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리고 선거 막판,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2번 손은실 후보(박미현)가 합동 연설 중, 구세라 지지를 밝히고 후보 사퇴를 선언한 것이다. 손은실은 구
'출사표', 여자들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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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사 속에 작지만 나만의 자리를 하나 차지하고 싶어.” 지난 7월 6일 세상을 떠난 영화음악가 엔니오 모리코네가 살아생전 아내 마리아에게 종종 말하곤 했던 소망이라고 한다. 모리코네의 부재를 전세계가 애도하는 지금, 영화음악사에서 그가 차지했던 자리는 모리코네의 짐작보다도 훨씬 거대했다는 것을 절감한다. 20세기의 위대한 영화음악가였던 엔니오 모리코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서는 잡지 한권을 온전히 할애해도 모자랄 지경이다. 고심 끝에 <씨네21>은 <공동경비구역 JSA> <올드보이> <아가씨> 등의 영화음악으로 잘 알려졌으며 지난 2011년 엔니오 모리코네 내한 당시 박찬욱 감독과 함께 모리코네를 직접 인터뷰한 조영욱 영화음악감독에게 추모의 글을 부탁했다. 그는 차기작 준비로 여념이 없는 와중에도 엔니오 모리코네에 대한 애정으로 흔쾌히 취재에 응해줬다. 조영욱 음악감독에게 지면을 빌려 감사의 뜻을 전한다.
조영욱 음악감독이 꼽는 엔니오
[장영엽 편집장] 애도는 무한히, 음악은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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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등을 연출한 김수용 감독이 이만희 감독과 경부고속도로를 지날 때의 일이다. 당시 베트남에서 전쟁영화 <고보이강의 다리>를 찍고 돌아온 이만희 감독은 김수용 감독에게 경부고속도로가 무슨 색깔로 보이느냐고 물었다. 김수용 감독은 카메라의 노출 얘기인가 싶어서 맑은 날엔 하얗게, 흐릴 땐 검게 찍힌다고 답했다. 그러자 이만희 감독은 자기 눈엔 그것이 핏빛으로 보인다며 그것은 베트남전쟁에서 희생된 병사들이 흘린 피 때문이라고 했다. 김수용 감독은 지금은 누구든 할 수 있는 말이지만, 1970년대엔 어림없는 주장이었다고 그때를 회고했다.
박정희 정권은 베트남 참전의 대가로 미국에 장기차관을 경제원조 성격으로 지원받았고, 이중 일부를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용으로 충당했다. 당시 전쟁으로 인한 ‘베트남 특수’가 국가경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가늠한다면 이만희 감독의 말에 숨은 뜻을 쉽게 헤아릴 수 있다. 전쟁이 한창이던 1970년, 베트남 현지에서 국군영화제
숨겨진 주인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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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에게 추천한다. Mnet <GOOD GIRL: 누가 방송국을 털었나>가 끝나서 아쉬운 사람, 이제 예능 섭외 1순위는 이영지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리고… 모든 걸 내려놓고 웃고 싶은 사람. 지난해, 최종회 방송을 앞두고 제작이 중단되었던 <Target: Billboard-KILL BILL>의 흑역사를 뒤로하고 “(그래요) MBC가 또 힙합했습니다…”라며 조심스레(조심스러운 나머지 홍보가 안됐다) 등장한 웹예능 <본격 국힙 도장깨기 힙합걸Z>의 정신은 Mnet <음악의 신>을 연상케 하는 자조와 자학이다. 브린, 이영지, 하선호로 여성 힙합 크루를 만들겠다는 제작진에게 “Mnet <언프리티 랩스타> 베꼈네”라며 찬물을 끼얹는 것은 다름 아닌 하선호고, 이들의 ‘바지 수장’ 자리에 앉은 슬리피는 다른 프로듀서가 안 나온 이유를 잘라 말한다. “걔넨 비싸.” 화려한 조명도, 살벌한 경연도, 비장한 도전도, 훈훈한 미담도
MBC 웹예능 '본격 국힙 도장깨기 힙합걸Z', 난 슬플 땐 영지를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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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회 <씨네21> 영화평론상 공모전 심사가 마무리되었다. 총 117편의 응모작이 접수된 올해의 공모전은 최근 몇년간을 통틀어 가장 많은 수의 응모작을 기록했으며, 지원작의 수준 또한 상향평준화돼 수상작을 정하기까지 심사위원들의 고민이 깊었다. 장문의 영화글을 볼 수 있는 지면마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시대, 영화가 남겨놓은 질문에 시간과 공을 들여 응답하고자 하는 마음만큼은 결코 지지 않는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제25회 <씨네21> 영화평론상은 내부 구성원들에게도 유의미한 자극을 주었다. 지원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마음 깊이 감사드린다.
올해 영화평론상의 예심, 본심 심사에 참여하며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생각했던 경향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싶다. 예년에 비해 올해의 응모작에는 영화라는 매체 자체의 존재 이유를 되묻고 영화의 경계와 한계를 탐구하는 글들이 적지 않았다. 코로나19 이후 더욱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매체 환경이 신진 평자들에게 새로운 과
[장영엽 편집장] 영화를 향한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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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집에 처음 방문하기로 했다. 그 집에 ‘송삼동’과 ‘장그래’, 두 고양이가 있다고 했다. 고양이에 대한 비합리적 공포가 있던 나는 삼동이 사진을 보며 심리적 장벽을 미리 없앴다. 드디어 ‘실견’. 크고 동그란 옥색 눈과 형형한 눈빛, 거대한 몸집. 삼동이는 엄청난 크기와 상대를 베어버릴 듯한 눈빛, 치밀하게 계산된 예민함으로 나를 압도했다. 낯선 존재와의 특별한 관계가 꼭 ‘점진적으로’ 형성되는 건 아님을 그날 알았다. 그 후 3년 남짓, 삼동이와 나는 늘 함께였다. 이제 나는 고양이 종(種) 일반과 구분되는 삼동이만의 표정, 목소리, 습관을 식별한다. 턱과 몸통을 기대기 좋아하는 삼동이는 내 책과 노트북, 손목, 종아리를 부드럽게 점령한다. 기골장대한 삼동이가 날 죽일 듯한 눈빛으로 쿵쿵쿵 다가와 내 겨드랑이에 털썩 주저앉을 때, ‘평화란 참 위태롭고도 벅차구나’ 생각했다.
삼동이를 모르고 지낸 세월이 야속하다. 내 발목을 지그시 누르는 7kg의 무게감 없이 어떻게 글을
송삼동, 무지개다리를 건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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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웹툰을 원작으로 한 SBS 드라마 <편의점 샛별이>는 미성년자가 담배 대신 은단을 사다준 성인 남성에게 키스하는 장면, 오피스텔 성매매 현장 묘사 등으로 시청자 민원이 6천건을 넘었다. 이명우 PD는 “우려와 거리가 먼 가족드라마”라 밝혔지만, 방송 이후 ‘가족드라마 맞냐’는 기사가 줄을 이었다. 4회까지 시청한 결과, 가족드라마의 요소는 충분하다. 주인공 정샛별(김유정)을 고용한 편의점 점주 최대현(지창욱)의 집은 극중 가장 생활감 있는 공간이고, 엄마 공분희(김선영)와 아버지 최용필(이병준)은 일상의 리얼리티를 두텁게 쌓아간다.
연출자의 말은 논란의 방패막이일까? 정해진 목적지로 가는 포석일까? 실은 나는 그 ‘가족드라마’를 우려한다. 내면에 상처를 지닌 샛별이 단 한번 바른말을 해준 남자에게 반해 저돌적으로 대시하고 연애와 결혼을 거쳐 가족 안으로 흡수되고 일손이 부족하던 가족은 가용 노동력을 확보하는 전개 말이다. 어린 여성의 결핍을 성인 남성을 통해 채우
'편의점 샛별이', 편의점 며느리가 될까 불안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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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에는 편집장이 바뀌어도, 개편을 해도 변치 않는 코너가 있다. 신인배우를 인터뷰하는 지면이다. 지난 25년간 코너명과 형식은 바뀌었을지언정 이 지면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까닭은 향후 한국 영화산업의 흐름을 만들어갈 신인배우를 발견하고 지지하는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공동의 문제의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씨네21>은 지면을 통해 영화계와 신진 배우들을 잇는 접점을 만드는 데 적지않은 기여를 했다고 자부한다. 매년 초 고정적으로 기획하는 ‘올해를 빛낼 라이징 스타’ 특집기사가 발행되고 나면 다양한 영화계 인사들로부터 배우의 연락처를 묻는 전화가 걸려오곤 하며, 때로는 기사를 통해 소속사를 찾는 배우도 있다. 제작 중인 영화의 현장 관계자들로부터 직접 추천받은 배우들을 대상으로 취재를 하다 보니 특집기사에 소개한 배우들이 길지 않은 시간 안에 크게 주목받는 사례가 많았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최근 1~2년간 <씨네21>은 영
[장영엽 편집장] 뉴미디어로 옮겨간 신인배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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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생각한다.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는 사람들에게 묻곤 한다는 질문. 조금 정신이 흐려지더라도 고통을 줄이는 쪽을 원하세요, 통증이 있더라도 정신을 유지하기를 원하세요. 이 물음에 자신 있게 후자를 선택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지금의 몸에 아픈 부분이 없거나 큰 아픔을 이겨낸 경험이 있는 강인한 사람이리라. 지금 무슨 생각을 하든 실제로 그 상황에 처하지 않고서는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 알 길은 없다. 요컨대 정신은 몸이며, 몸 이상의 정신을 가질 일은 평생 구도자로 살지 않는 이상은 없다.
책은 책의 몸을 가진다. CD는 CD의 몸을 가진다. 트위터는 트위터의 몸을, 영화는 영화의 몸을 가진다. 각각의 몸은 그 정신을 전달하는 역할을 넘어 제한하는 역할을 한다. 책은 책이라는 몸의 제한 속에서 정신을 구현한다. 사각 종이의 한 모서리가 묶여 있고 그 앞뒤가 표지로 보호된 책은 독자의 몸이라는 물리적 한계를 따른다. 인간의 몸보다 큰 책을 만들 수는 있겠지만 그런 책은 읽히기 위
몸을 짓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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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둣집 앞에서 소년은 피아노를 치고 헨리는 바이올린을 켠다. <아무노래>가 흘러나오자 어린 청중이 나와 춤을 추고, 도로에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자동차가 지나간다. 멋지게 즉흥연주를 마친 12살 파트너 박지찬에게 헨리가 말한다. “정식적인 공연 말고 이렇게 프리하게 하는 거 재밌지?” 가수이자 방송인 헨리의 유튜브 콘텐츠 시리즈인 <헨리 뭐 했니>(Henry more Henry)의 첫 번째 프로젝트는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가진 어린이들과 헨리가 만나 공연하는 ‘같이 헨리’다. 막 초등학교를 졸업했다는 송시현은 떡볶이집에서 화려한 기타 연주를 마친 뒤 초등학교 담장 옆 길바닥에 헨리와 나란히 앉아 또래 청중들의 신청곡을 받고, 삑삑 소리나는 곰돌이가 붙은 상의를 입고 온 9살 바이올리니스트 설요은은 꼼꼼히 악기를 조율하며 헨리와 ‘절대음감 테스트’ 놀이를 한다.
새 콘텐츠를 고민하는 헨리에게 “초등학생들이 너를 되게 좋아해”라는 아이디어를 주었던 스타일리스트
'헨리 뭐 했니'(Henry more Henry), 초등학생들도 나를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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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기대했던 것과 너무 다른 방이구나.” “아르노강이 보일 줄 알았어요.” 지난 6월11일 재개봉한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전망 좋은 방>은 이탈리아 피렌체로 여행을 떠난 두 여성, 루시와 샬롯의 대화로 시작한다. 서신으로 접한 숙소 정보- 편지로 숙소를 예약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게 새삼 낯설게 느껴진다- 와 사뭇 다른 방의 투박한 풍경에 실망하는 헬레나 본햄 카터의 앳된 모습이 소소한 웃음을 준다. 꿈꿔왔던 ‘전망 좋은 방’은 이미 다른 사람의 차지지만, 루시와 샬롯이 머무르는 피렌체의 아담한 숙소엔 일상으로 돌아간 뒤 오랫동안 회자될 이야깃거리가 넘친다. 낯선 소도시의 이름을 줄줄이 꿰고있는 베테랑 여행자, 수레국화를 좋아한다는 손님의 말을 기억했다가 방 한구석에 슬며시 꽃을 놓아두는 호텔리어, 타인의 저녁식사에 함부로 훈수를 두는 무뢰한, 객실이 마음에 들지 않아 시무룩한 숙녀들을 위해 선뜻 방을 내어주겠다는 친절한 타인이 그곳에 있다.
언택트 시대의 관객
[장영엽 편집장] 언택트 시대의 바캉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