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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폴 다노의 감독 데뷔작 <와일드라이프>는 1960년 미국 몬태나주의 한 가정에 찾아온 해체의 기운을 14살 아들의 눈을 통해 그린 영화다. 아들 조 역을 연기한 호주 출신 배우 에드 옥센볼드는 스크린 위의 연기자 폴 다노가 그랬듯 비밀스럽고 정확한 나이를 짐작하기 힘든 인상이다. 대규모 산불을 포함해 <와일드라이프> 속 주요사건의 절반은 그의 얼굴에 일어난 리액션으로 표현된다. 때로 감독은 조가 보고 있는 대상보다 소년의 표정을 먼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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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도 남지 않은 2019년은 내가 대학에 입학한 해의 내 어머니와 동갑이 된 해였다. 열아홉의 나는, 당시 부모님의 삶이란 거의 완성되고 확정된 상태일 거라 믿고 있었다. 그러나 같은 지점에 도달한 2019년의 나는 여전히 선택의 갈림길에 자주서고, 모종의 변화를 기다린다. 타인이란 언제나 견고해 보이고 옆방의 소용돌이는 기척조차 감지할 수 없다.
1인칭 내레이션은 없지만 10대 소년의 시점으로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패밀리 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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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임권택 / 출연 신은경, 한정현, 최동준, 정경순 / 제작연도 1997년
지인이 새 TV를 샀다고 해 구경하러 갔다. 크기와 성능에 압도돼 리모컨을 꾹꾹 눌러보는데 마침 공중파에서 <서편제>를 한다. 올해 한국영화 100년을 맞아 한국영상자료원과 KBS가 <한국영화 100년 더 클래식>이라는 이름으로 12편의 디지털 복원작을 매주 한편씩 방영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복원작이라 해도 작은 컴퓨터 화면으로 본 게 다였는데 잘 얻어걸렸다 싶어 화질과 사운드에 감탄하면서 보고 있는데, 갑자기 생각났다. 인생 영화에 대한 글을 써야 한다는 사실이.
물론 나에게도 태어나 최초로 본 영화, 영화에 흥미를 갖게 한 영화, 영화를 하겠다 마음먹게 한 영화, 극장에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 쏟게 한 영화, 보고 나서 며칠을 앓아 눕게 한 영화…. 많은 순간을 함께한 영화들이 있다. 손으로 다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스쳐가지만 어쩐지 사적인 이야기와 함께 털어놓
[내 인생의 영화] 김유리 감독의 <노는 계집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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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시즌이 끝나고 연봉 협상이나 선수 영입을 하는 기간을 ‘스토브리그’라고 한다. 각 구단 팬 게시판이 온갖 잡음을 전하는 ‘카더라’ 통신이나 트레이드 기사에 들썩이는 시기. 때마침 팬들이 둘러앉은 스토브에 땔감이 늘었다. 구단 운영팀을 다룬 드라마 SBS <스토브리그> 얘기다.
“8892910101010.” 팬들의 눈물도 말랐다는 꼴찌팀 ‘드림즈’에 새로 온 단장 백승수(남궁민)가 암흑기 순위를 뜻하는 ‘비밀번호’를 읊는다. 프로야구 원년 창단에 유통 체인이 있는 모기업이라고 하면 분명 내 팀 같고, 코미디 같은 수비 실책은 그 팀 같고, 모기업의 재정 지원이 열악하다면 또 이 팀인가 싶다. 하위권 팀 팬들이 ‘우리 팀이 모델 아니냐!’고 울부짖을 만큼 구체적으로 못하는 팀을 만들었으니, 말이 되게 재건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팀 4번 타자 트레이드설이 돌자 단장 퇴진 운동을 벌이던 팬들이 그 대신 리그 정상급 1선발 투수가 드림즈로 돌아온다니까 곧바로 ‘갓승수
<스토브리그>, 야구 보는 맛 단짠단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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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연말연시에 특히 바쁜 직업이다. 저무는 해를 결산하고 다가오는 해의 주요 이슈를 소개하는 것이 숙명이다 보니, 일에 치여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새해를 맞는 경우가 잦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연말이 되면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밝은 표정이 그렇게 야속하고도 부러울 수가 없다. 올해 크리스마스이브에도 용산에서 열린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시사회에 참석했다가 오후 시간에 극장을 찾은 수많은 인파를 보고 회사로 복귀하는 길에 불현듯 울적해졌다. 나는 왜 저 풍경 속의 한명이 될 수 없는가. 어쩌면 되지 못한 게 아니라 선택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왜 나는 마감 노동자의 길을 선택했을까. 기자에게 마감은 무엇이고, 마감에게 기자란 무엇인가… 인생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질문의 심연으로 빠져들다 보니 어느덧 다음 정거장은 (<씨네21>이 위치한) ‘당산’이란다. 아차차, 이번주 에디토리얼 원고는 언제 쓰지.
눈앞에 닥친 업무에 고단함
[장영엽 편집장] 일의 기쁨과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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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인터뷰를 하러 찾아간 망원동의 음악 작업실에서 펑크 록밴드 빌리카터의 주축이 되는 둘을 만났다. 탈색한 금발이 잘 어울리는 김지원은 굵게, 마음 깊은 곳으로 호소하는 음색을 악기처럼 조율하며 노래를 부른다. 소녀 같은 웃음과 날카로운 카리스마를 동시에 지닌 듯한 김진아는 누구보다 신나고 진지하게 기타를 친다. 2015년 《The Red》라는 EP앨범으로 데뷔한 이들은 곧 척박한 한국 펑크 신의 새로운 얼굴이 되었다. 《The Yellow》 《The Green》 《The Orange》로 이어지는 EP 시리즈는 각각 다른 주제로 그들이 바라본 세상을 이야기하는 연작이다. 어떤 이야기에는 조용한 새벽의 심상같은 우울한 정서가 저변에 깔려 있고, 어떤 이야기에는 세상을 향한 분노가 날것처럼 느껴진다. 2016년 발매한 《Here I Am》은 밴드 초기의 다양한 면모를 13곡 안에 가득 채운 첫 번째 정규음반이다. 펑크뿐만 아니라 하드록이나 블루스처럼 그들이 영향을 받은 음악과 멜로디에
[마감인간의 music] 빌리카터 《Here I Am》, 로드무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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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열린 두 전시, 노원희의 <얇은 땅 위에>와 윤석남의 <벗들의 초상을 그리다>는 흥미롭게 대조적이었다. 노원희 그림의 등장인물들은 대개 얼굴이 없다. 윤곽은 있되 이목구비가 있어야 할 자리는 비어 있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영감을 받아 그렸다는 <무기를 들고>에서 여자들은 텅 빈 얼굴을 한 채 한손에 프라이팬을 번쩍 들고 궐기 중이다. 반면, 윤석남은 오랜 벗들의 머리칼 한올, 주름살 하나까지도 세밀하게 그려낸다. 각각의 초상화에는 해당 주인공을 대표하는 물건들을 함께 그림으로써, 이 여성이 다른 누구로도 대체될 수 없는 ‘오직 그녀’임을 지시했다.
얼굴의 추상성과 고유성에 집중하는 두 재현에 위계적 가치를 부여하는 일은 무용하다. 다만 각각의 서로 다른 효과에 대해서는 고민해보고 싶다. 이를테면, 한국·일본·중국·영국 등지에서 발간된 <82년생 김지영>의 표지에 모두 ‘얼굴 없는 여자’가 그려졌다는 점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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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이야기>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36년생 사회주의자 켄 로치 감독은 2010년대 자본주의의 작동 방식과 신종 착취를 따라잡는 데에 게으르지 않다. <미안해요, 리키>는 금융위기 이후 급격히 늘어난 모바일 앱 기반 호출 서비스와 임시직 경제(gig economy)가 만든 노동 환경을 주시한다. 리키(크리스 히친)는 자유롭고 자율적인 자영업자로 일하게 될거라는 배송 회사의 약속을 믿고 운송기사 일을 시작한다. 그러나 ‘0시간 계약노동’이 실제로 뜻하는 바는, 회사가 노동자에 대해 어떤 책임도 지지 않을 자유와 벌점의 위협에 쫓기는 노예적 규율이다. 역사적으로 노조가 쟁취한 병가, 유급휴가의 권리를 무화시켜버린 신종 고용 형태는 리키를 신경쇠약으로 몰아넣고 가족과 규칙적으로 대면할 시간을 빼앗아 가정생활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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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바움백 감독이 예술가 부부의 이혼을 그린 영화를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배우 제니퍼 제이슨 리와 바움백의 이혼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이별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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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경미 / 출연 손예진, 김주혁, 김소희, 최유화, 신지훈 / 제작연도 2015년
중학생 때 친구들과 싸우고 도저히 감정이 추슬러지지 않아 조퇴를 했다. 낮 시간에 학교 밖을 나가는 일탈은 항상 좋았었는데 그날은 교문을 나가기도 전에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고 결국 엉엉 울면서 실내화를 신고 집까지 걸었다. 그런데 막상 집 앞에 도착하니까 들어가기가 싫었다. 이대로 방에 들어가면 모든 게 끝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처음 느끼는 절박한 외로움을 도대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하며 한참을 서성였다.
<비밀은 없다>는 살면서 무수히 겪었던 그런 의문스러운 감정들을 다시 상기시켜준 영화다. <비밀은 없다>는 “연홍(손예진)이 사라진 딸을 추적하며 사건에 얽힌 비밀을 밝혀 처절하게 복수하는 모성 스릴러”라고 요약할 수 있지만, 이런 사건의 서술만으로는 이 영화를 제대로 읽어낼 수 없다. ‘저 여자는 왜 비명을 지르는가’, ‘저 여자는 왜 저렇게 이를
[내 인생의 영화] 복길 칼럼니스트의 <비밀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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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Mnet <신동엽의 톡킹 18금>으로 방송을 시작한 장도연은 14년차 예능인이다. 태연한 얼굴로 상냥하게 독설, 아니 진실을 내뱉고 “어머, 저도 모르게 말해버렸네요!”라며 활짝 웃을 것 같은 장도연의 화법과 현실감각을 잃지 않는 태도에는 은근히 팬이 많다. 친한 친구이자 동료인 박나래가 MBC <나 혼자 산다>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것처럼, 장도연에게도 딱 맞는 기회가 오기를 기대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물론 어느 분야나 그렇듯 여성에겐 좀처럼 ‘완벽한 기회’가 오지 않는다. SBS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에서 장도연이 맡은 역할은 ‘쇼 MC’라는 애매한 자리다. 호스트 이동욱과 초대손님 공유가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장도연은 멀리 떨어진 별도의 무대에서 “여기도 있어요!”라며 손들어 존재를 어필한다. 방청객도 아닌데 화면에는 얼굴도 못 비춘 채 리액션으로만 끼어드는 어색한 상황이 이어진다. 하지만 스튜디오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 장도연에게 더 많은 ‘말’을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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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을 앞두고 최근 다양한 매체에서 ‘2010년대 베스트’ 목록을 선정해 소개하고 있다. 그 흐름에 편승해 지난 10년간의 한국영화계 주요 이슈를 정리해본다면, 아마 2019년 한해 동안 충무로 안팎에서 일어났던 많은 사건들이 상위권을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올해는 한국영화 100주년과 더불어 기억해야 할 유의미한 기록들이 가득하다. 최초로 다섯편의 천만영화가 탄생했으며, 역대 최다 기록인 2억 2천만명의 관객(12월 17일 기준)이 극장을 찾았고, 첫 장편 상업영화를 연출한 여성감독들이 한국영화 흥행 순위 10위권에 무려 네명이나 이름을 올렸다. 독립영화계에서는 ‘영화제 44관왕’이라는 무시무시한 기록의 소유자 김보라 감독을 비롯해 강상우, 안주영, 유은정, 이옥섭, 한가람 등의 신진감독들이 한국 독립영화의 저력을 입증했다. 또 이정은, 염혜란 등 한국영화계의 ‘신스틸러’로 기능했던 여자배우들은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해를 거
[장영엽 편집장] <기생충>과 한국영화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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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성사된 역사적 첫 내한 공연이었지만 악조건이 많았다. 일단 악명 높은 고척돔의 사운드를 해결하지 못했다. 악기가 적을 때는 비교적 괜찮았지만 멤버 전원이 쏟아낼 때는 심하게 뭉개져 들렸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서 온 것도 문제였다. 나이 든 보노는 초반엔 컨디션 난조로, 후반엔 체력 저하로 힘들어했다. 전반적으로 훌륭했으나 때때로 어쩔 수 없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관객 반응도 예상외로 뜨겁지 않았다. 스마트폰 촛불 파도가 장관이긴 했으나 한국 관객의 주특기인 열렬한 떼창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 <One>을 부를 땐 관객이 가사를 몰라 관객석을 향한 마이크가 민망해지기도 했다. 거장이지만 국내 히트 레퍼토리가 적은 단점이 뼈아프게 드러났다.
물론 좋은 순간들도 많았다. 디 에지는 ‘기타리스트’라는 표현이 전혀 아깝지 않은 베테랑 연주를 선보였다. 반주 정도의 난이도였지만 피아노 연주도 깔끔하게 소화하는 다재다능한 모습도 자랑했다. <Where the
[마감인간의 music] U2 내한 공연, 결국 우리는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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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은 하나의 고유한 과제를 수행하는 글이다. 짧은 글임에도 칼럼은 세상사와 사람살이에 대해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 그 의견은 “진리값” 혹은 최소한 진리에 가까운 근사값의 산출을 목표로 한다. 칼럼은 참됨을 찾아가는 짧은 여정이다.
한달에 한번, 매번 다른 사안과 주제에 대해 참된 의견을 내놓아야 한다는 의무감이 문득 한없이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칼럼을 시작할 때는 가볍게 생각하곤 했다. 재밌게 써보자.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마음으로 써보자. 독자들과 수다 떠는 마음으로 써보자. 문제는 쓸거리가 없다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쓸거리는 늘 차고 넘쳤다. 수많은 칼럼들이 수많은 사건들에 대해 갑론을박한다. 상이한 세계관과 문체로 작성되지만 칼럼은 대체로 동일한 규칙을 따른다. 의미 있는 사건에 대한 참된 의견의 제시. 나 또한 그러한 규칙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모두들 같은 사건을 이야기하는데, 나마저 거기 동참해야 하나 싶어 침묵하다가도, 때로는 떠밀리는 마음으
당분간 의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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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 출연 크리스천 베일, 히스 레저, 에런 에크하트, 매기 질렌홀, 마이클 케인 / 제작연도 2008년
입대를 앞두고 갑자기 영화가 찍고 싶어졌다. 그냥 한번 해보고 싶었다. 무작정 동아리 선배의 DV 캠코더를 빌려 동네 친구들을 모았다. 막무가내로 촬영을 끝내고 나서야 카메라가 고장났다는 것을 알았고 영화는 결국 완성되지 못했다. 하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되는 건 딱히 없었던 20대 초반, 허탈한 마음에 극장으로 향했다. 그때 본 영화가 <다크 나이트>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마지막 터널 신의 두근거림은 마음에 오래 남았다. 이런 영화를 찍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스치듯 했던 것 같다. 복학 후,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나 단편을 찍으며 연출부 생활을 했다. 그들과 마침 개봉한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함께 보며 어렴풋이 감독을 꿈꿨다. 졸업이 닥쳐올 때까지도 여전히 되는 건 없었다. 우물 속 어린 브루스 웨인처럼 두려운 마음으로 포기
[내 인생의 영화] 심찬양 감독의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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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를 낀 별장. 형편이 크게 차이나는 두쌍의 부부가 주말여행을 왔다. 여자들은 학교 때 친구고 남자들은 사업상 아는 사이다. 엄마와 산책하던 아이는 우물이 딸린 폐가 앞에서 녹슨 못을 주웠다가 잔소리를 듣고 길가에 도로 버렸다. 사인이 뭐가 되었든, 분위기는 분명 누군가 죽을 판이다. 하지만 사건은 별장 바깥에서 일어났다. 검은돈을 수송하던 차량이 도로 옆으로 굴러떨어져 운전자가 사망하고 수십억원의 현금 다발은 잠시 주인을 잃었다. 새벽에 별장을 나와서 호수로 걸어들어가던 여자. 정서연(조여정)은 그 돈을 가로챌 결심을 한다. KBS2 드라마 <99억의 여자> 이야기다.
“너 같은 년은 소싯적에 사고를 아주 크게 쳤든가 앞으로 치든가 둘 중 하나여.” “표정에 미스터리가 있어요.” 방문 청소를 다니는 서연이 가는 곳마다 듣던 이야기다. 대체 어떤 얼굴이기에 이렇게들 한 마디씩 말을 얹을까? 수차례 정면 클로즈업으로 잡히는 서연의 얼굴엔 무슨 소리를 들어도 항의하지 않
<99억의 여자>, 돈은 그녀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