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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호모로맨스 에이섹슈얼 안드로진이에요.” KBS Joy <무엇이든 물어보살>에 나온 한 출연자의 말에 진행자인 서장훈과 이수근의 얼굴 위로 물음표가 떴다. 하지만 여장한 거한 ‘선녀님’과 마흔다섯 먹은 ‘동자’가 고민 상담도 하는 마당에 놀랄 일도 아니다. 스물한살 청년은 “남자에게 정서적으로 끌리는데 육체적으로는 아무에게도 끌리지 않고 내면에는 양성을 다 가지고 있다”고 자신을 설명했다. 잠시 혼란을 겪은 MC들은 곧 ‘바이로맨스 호모섹슈얼’ 같은 응용문제도 풀 수 있게 되었다. 부모에게 자신의 성적 지향을 알리고 싶어 나왔다는 그에게 서장훈은 “사람이 자신을 속이고 사는 건 좋지 않고,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아는 건 중요하다”며 “다만 부모님 이 상처를 덜 받으시게끔 잘 설득하라”고 조언했다.
드라마에 동성애자가 나온다고 신문에 반대 광고가 실리고, 트랜스젠더 예능이 1회 만에 폐지된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뉴미디어 시대가 오며 성소수자의 존재를 지우는
<무엇이든 물어보살>, 그러니까 그냥 받아들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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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자를 꿈꾸는 최진리양.” 설리가 세상을 떠난 후 옛 영상들이 여럿 돌아다니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띈 것은,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 설리가 <밥상천하>라는 TV 요리 프로그램에 출연한 영상이었다. 그때도 큰 자막으로 저런 자막을 넣은걸 보면 제작진과의 사전 인터뷰 때, 분명히 연기자의 꿈을 얘기한 것이리라. <씨네21>에서도 설리를 인터뷰한 적이 두번 있다. 굳이 가장 최근의 인터뷰라면,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이 2011년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가졌던 <SMTOWN 라이브 월드 투어> 실황을 담고 있는 최진성 감독의 <I AM.> 개봉 당시 가졌던 인터뷰다. 최강창민, 은혁, 티파니와 함께한 인터뷰였기에 단독 인터뷰는 아니었다. 당시 인터뷰 시간 절약을 위해 그들에게 빈칸을 스스로 채우게 하는 공통 질문을 던졌고, 기억에 남는 설리의 문답 몇개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어머니]다.” “가수가 되지 않
[주성철 편집장] 설리를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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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철용 열풍’에 힘입은 배우 김응수의 상승세를 보고 있으면 ‘누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이 현상을 있어 보이게 표현한다면 네티즌과 인플루언서(SNS에서 많은 구독자를 둔 사람)가 또 다른 스타 메이커로 등판하면서 인기의 예측 불가능성이 더 커진 시대라고 말할 수 있겠다. 팝 음악계도 다르지 않다. 최근 빌보드 싱글 차트 5주 연속 1위에서 내려올 줄 모르는 리조의 <Truth Hurts>는 처음 발표된 2017년에는 차트인에도 실패했다. 그러나 틱톡에서 유행한 ‘#DNATest’ 배경음악으로 쓰이며 역주행에 성공했다. ‘#DNATest’란, <Truth Hurts>의 가사를 인용해 “DNA 테스트를 받았더니 100% OOO라고 나왔어”라고 개그를 선보이는 영상이다. 스스로가 바보 DNA를 가졌으면 최대한 바보 같은 몸개그를 선보이는 식이다. 별것 아닌 이 놀이가 틱톡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퍼졌다. 빌보드 최장기간 1위 기록을 갈아치운 릴
[마감인간의 music] 리조 <Truth Hurts>, 역주행 거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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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같았으면 테이프가 늘어졌을 것이다. 듣고 듣고 또 들어서, 더이상 테이프가 음악을 재생해낼 수 없을 때까지 테이프를 잡아 늘리고 말았을 것이다. 요즘 이렇게 열렬히 사랑에 빠져 있는 음악은 감미로운 목소리의 발라드도 몸을 들썩이게 하는 댄스곡도 힙한 감성의 인디음악도 아닌, 몇 백년 묵은 클래식이다. 하도 오랫동안 한방을 차지하고 있는 바람에 거기 있는 줄을 모두가 잊어버렸던 <백년 동안의 고독> 속 멜키아데스 같은 음악. 하지만 멜키아데스는 분명히 거기에 있고,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부엔디아 가문의 전 생애를 예언하고 있다. 클래식 역시 분명히 거기에 있고, 인간의 감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곳에 기록되어 있다.
대개 ‘클래식’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은 애호가들을 제외하고는 비슷비슷하다. 지루하다. 가사가 없다. 현악기와 관악기, 피아노 등의 악기가 쓰인다. 길다. 졸리다. 여기에 학창 시절 치르곤 하는 음악 과목의 듣기시험-주로 비발디의 <사계>가 출
음악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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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브래드 버드 / 목소리 출연 제니퍼 애니스턴, 빈 디젤, 엘리 마리엔탈, 크리스토퍼 맥도널드, 존 마호니 / 제작연도 1999년
첫돌 사진 속의 나는 양손에 연필을 한 다발 쥐고, 돌상 위에 놓인 책을 골똘히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은 돌잡이 때 아이에게 쥐어주는 0순위가 노골적으로 현금이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책과 연필이 현금으로 가는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길이라 여겼던 듯하다. 어린 시절의 돌잡이 사진은 공부를 하지 않으면 스스로의 운명을 거스르는 것 같은 주술적인 부담으로 각인되기도 했다. 20대가 되고, 학교를 졸업할 무렵에서야 돌잔치의 내가 바라보던 책이 월트 디즈니 만화영화 전집이었고, 연필의 쓰임새는 훨씬 다양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렇게 애니메이션이 하고 싶었고, 영화를 만들고 싶었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1999년, 나는 애니메이션을 배우기 위해 유학을 갔고, <아이언 자이언트>가 개봉했다. 난 애니메이션을 많이 보지 않았다. 심지어 작품
[내 인생의 영화] 원종식 감독의 <아이언 자이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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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면 고양이가 다가와 페이지와 페이지가 맞붙은 곳을 앞발로 박박 긁어댄다. 고양이들이 좁은 틈으로 파고드는 본능은 별스러운 일도 아니다. 그래도 워낙 열심히 파니까, 뭔가 따로 보이는 것이 있나 싶기도 하다. 우리 집 고양이가 조금만 더 끈기가 있었다면 짝수쪽과 홀수쪽 사이, 예정된 이야기의 틈으로 비집고 들어가 갈퀴발톱으로 다른 가능성을 쑥 당겨 뽑을 수 있지 않을까?
페이지가 넘어가는 소리, 컷과 컷 사이의 공백을 느끼게 된 인물이 있다. MBC 드라마 <어쩌다 발견한 하루>의 18살 고등학생 은단오(김혜윤) 얘기다. 등교한 기억이 없는데 학교에서 시험을 보고 있고, 눈 깜짝할 사이 며칠이 지나기도 한다. 주변 친구들은 듣지 못하는 ‘사각’ 하는 소리도 들린다. 알고 보니 단오가 사는 곳이 만화 속 세상이고 ‘자아’를 갖게 되면 컷과 컷 사이의 공백을 알게 된단다. 단오는 ‘금수저’에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하는데 하필 심장이 약하고 약혼자가 있는 자신의 설
<어쩌다 발견한 하루>, 단역들이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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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 묻고 더블로 가! 10년도 더 지난 영화 <타짜>(2006)에서 순정파 보스 ‘곽철용’을 연기했던 김응수 배우의 때아닌 전성기가 도래했다. 그래서 이번호에 김성훈 기자가 그를 만났다. 다른 매체에서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이야기들, 그리고 본인도 이번 기회에 일본에 연락하여 알게 된 진짜 일본 유학 시절 데뷔작까지,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아무튼 개그맨 이진호가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서 그의 팬임을 밝히고 <타짜>의 거의 모든 대사를 외운다고 하여 어떤 촉매제가 된 것 같은데, <타짜>를 수백번 봤다는 그는 방송인 유병재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여 <타짜> 덕력 시험평가를 치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김응수의 팬으로서도 역시 같은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여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2) 덕력 시험평가를 치르며 김응수가 연기한 최 검사의 대사까지 읊었다. “너 최형배랑 최익현이 집안사람인 거 알고 있었어?”
[주성철 편집장] <타짜> 곽철용 전성시대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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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엔틴 타란티노라는 이름 앞에서 나는 언제나 절망을 느꼈다. 그의 천재성에 휘둘렸다는 의미가 아니다. 세상에는, 나보다 잘난 천재들이 너무 많다는 걸 이미 오래전에 절감했기에 천재 앞에서 나는 그저 경탄하고 어떻게든 배우려 노력할 뿐 절망하지 않는다. 내가 좌절한 건 다름 아닌 그의 음악적인 넓이와 깊이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신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를 두고 내 주위에서는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누군가는 찬사를 보내는 와중에 누군가는 기대만 못하다는 독후감을 적고 있는 모양새가 이를 증명한다. 그럼에도, 일치된 의견 하나가 있으니 “이번에도 음악은 죽인다”는 것이다. 과연 그렇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언제나 음악으로 나를 무릎 꿇게 한다. 대체 어떻게 하면 저렇듯 방대한 라이브러리를 뇌 속에 저장할 수 있는지 멱살을 잡고 묻고 싶을 정도다. 굳이 비율로 따져보면 절반 조금 넘는 것 같다. 그의 사운드트랙에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곡이 있을 확률 말이다. 나머
[마감인간의 music]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이번에도 음악은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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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아, 오랜만이야. 넌 행복하니? 갑자기 행복이라니 참 뜬금없지? 근데 사람들도 뜬금없이 행복이라는 말 잘 쓰잖아. 지금 당장 어느 고객센터라도 전화해보면 ‘행복하세요, 고객님’이라고 인사할걸? 식당의 물티슈에도, 라디오 DJ의 단골 멘트로, 하물며 연예인에게 사인을 부탁해도 흔히들 ‘행복하세요’라고 쓰잖아. 이렇게 세상 모두가 우리의 행복을 바라고 있는데, 난 잘 모르겠어. 행복이 뭘까? 행복하다는 게 그렇게 좋기만 한 걸까?
솔직히 행복이란 게 말이나 되긴 하니? 행복의 정의가 충분히 만족스럽고 기쁜 마음의 상태, 그걸 자신이 온전히 누리고 있다는 거잖아. 그게 가능한 일이냔 말이야. 바다는 죽어가고, 숲은 곧 사라질 위기에 처했고, 땅은 병들고 동물은 멸종 중이야. 대기 중엔 미세먼지가, 우리 혈관에는 미세플라스틱이 흐르고 있어. 기후변화와 혼란은 막을 수 없는데, 이를 심각하게 여기는 이는 별로 없어. 환경 문제뿐만 아니라 정치와 경제, 사회는 어떻고. 그런데 뭐라고?
당신의 불행을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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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로버트 저메키스 / 출연 마이클 J. 폭스, 크리스토퍼 로이드, 리 톰슨, 토머스 F. 윌슨, 엘리자베스 슈 / 제작연도 1989년
영화 <엑시트>는 미래영화다. 2019년 7월 31일에 개봉했지만 영화 속 유독가스 테러사건이 벌어지는 날은 2019년 9월 7일이다. 근미래지만 미래, 의도치 않게 데뷔작으로 미래영화를 찍게 된 셈이다. 물론 지금 시점에선 모든 것이 과거가 돼버렸지만.
슬프지만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 <백 투 더 퓨처2>가 개봉하자 막내 삼촌은 나와 누나를 데리고 시내에 있는 극장으로 향했다. 친구 집에서 비디오로 본 1편이 충격적으로 재밌었던지라 몇 정거장만 더 가면 2편을 극장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날 굉장히 들뜨게 만들었다. 하지만 비도 오는 데다가 어린애 둘을 데리고 가는 여정이 쉽지는 않았을 터, 우린 결국 상영시간에 늦게 도착했고 영화 초반 10분을 놓친 뒤 좌석에 앉게 됐다. 얼마나 기다렸던 2편인데 10분이나
[내 인생의 영화] 이상근 감독의 <백 투 더 퓨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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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tvN <최신유행 프로그램> 새 시즌이 시작했다는 사실을 여기저기 뜨는 ‘짤’(인터넷상에 올라오는 사진, 그림이나 짤막한 영상)을 보고 알았다. 몇년 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를 모았던 ‘100일 기념 이벤트로 번화가에서 하회탈 쓰고 상모놀이 펼치다가 여자친구에게 차인 썰’을 재구성해 찍은 콩트는, 원글의 클라이맥스인 “여자친구를 유혹하려는 것처럼 어깨춤을 추면서 다가갔다가 멀어졌다가 다가갔다가 멀어졌다” 장면을 실로 완벽히 구현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프로그램은 90년대부터 지금까지 유행한 모든 ‘드립’과 유머 코드를 쏟아부어 이를 공유하는 시청자로부터 웃음을 낚는 예능이다. 그래서 아는 만큼 웃기기도 하고, 보이는 만큼 찜찜할 때도 있다. 수평적 문화와 독창적 비전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젊은 꼰대인 대표(권혁수)의 기분에 좌우되고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IT 스타트업을 배경으로 한 코너 ‘스타트엇!?’에는 노골적인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 구도’가 등장하다
<최신유행 프로그램>, 모든 것은 드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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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심 <엑시트>가 천만 영화가 되길 바랐건만 941만 관객에서 그쳤다. 아깝게 천만 관객에 다다르지 못한 다른 영화들로는 970만 관객의 <검사외전>(2016), 935만 관객의 <설국열차>(2013) 등이 있다. 아무튼 그러길 바랐던 이유는 <엑시트>가 천만 관객을 돌파한다면, 한국영화 역대 박스오피스에서 유일하게 20대 주인공이 등장하는 천만 영화가 되기 때문이다. 믿기 힘들지만 1761만 관객의 <명량>(2014)부터 1008만 관객의 <기생충>(2019)에 이르기까지, 총 19편의 역대 천만 한국영화들 중 동시대를 다룬 영화에서 20대 주인공은 찾아보기 힘들다. 1174만 관객의 <태극기 휘날리며>(2004)에서 장동건과 원빈이 연기한 두 형제는 한국전쟁 당시 확실히 20대 이하일 테지만, 동시대 영화는 아니다. <암살>(2015)의 독립군과 <실미도>(2003)의 부대원들도 20
[주성철 편집장] 20대 관객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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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st Badass Asian. MBA를 처음 알게 된 건 래퍼 딥플로우의 인스타그램을 통해서다. “오늘 나온 MBA 크루 앨범 강력 추천. 엉뚱한 애들 빨지 말고 앞으로 대세에 얘네 넣어라.” 딥플로우가 멋있다고 하니 관심이 갔다. 그와 나는 힙합을 보는 눈이 매우 비슷하기 때문이다. 멋의 기준 말이다. 그 ‘멋’을 바꿔 말하면 ‘태도’가 될 수도 있다. 힙합이 다른 어떤 장르보다 스스로의 고유한 태도를 유별날 정도로 중요시해왔다는 점을 잊지 말자. 그리고 MBA는 최근 몇년간 한국 힙합을 통틀어 힙합의 그 속성을 가장 강력히 떠올리게 하는 크루다. 암, 그렇지. 힙합은 태도지. 처음부터 끝까지. MBA의 노래 <무리>는 태도 그 자체다. 더 정확히 말하면 힙합 고유의 태도 그 자체다. MBA는 이 노래에서 우린 무리라고 말한다. 우린 집단이고 뭉쳐 있으며 형제이고 식구라고 말한다. 발라드를 즐겨 듣는 사람은 이 노래 앞에서 당황할 수도 있다. 하지만 힙합을 좋아하는
[마감인간의 music] MBA <무리>, 힙합은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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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생략된 ‘은희’와 ‘지숙’의 두 번째 투숏은 지숙의 방 침대에 누워 ‘sex’를 발음하는 전자사전 기계음을 반복 청취하며 자지러지는 모습이다. 사적 공간인 ‘방’에서 기계음을 빌려 크게 발음해보는 섹스, 섹스, 섹스…. 영화가 대서사시처럼 그려낸 10대 여성의 “광대한 마음의 지도”, “정서적 스펙트럼”의 한축은 분명 온갖 종류의 ‘친밀성’에 대한 갈구다. 그건 ‘성애적인 것’을 포함하며, 결코 특정 성별을 대상으로만 작동하지도 않았다. 영화 <벌새> 이야기다.
은희는 “우리 키스하자”라며 남자친구 지완과 이성애 행위를 실험하지만, 그와 나란하게 교차되는 것은 록카페에서 “X” 맺기로 결의한 “보이시한” 후배 ‘유리’, “짧은 머리”에 담배를 피우며 은희를 매료시킨 ‘영지’와의 관계다. 그 관계들은 순식간에 돌변하고 상실된다는 점에서, 은희에게 공평하게 소중했고 가혹했다.
유리 옆에서 은희가 <사랑은 유리 같은 것>을 부르는 장면은 단연 최근 본
사랑은 유리 같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