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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complete me.” <제리 맥과이어>(1996)에서 스포츠 에이전시 매니저 제리(톰 크루즈)가 도로시(르네 젤위거)에게 고백하며 유명해졌던, ‘넌 나를 완성시켜주는 존재’라며 멜로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이 대사는 <다크 나이트>(2008) 취조실 장면에서 조커(히스 레저)가 브루스 웨인(크리스천 베일)에게 하기도 했다. 선이 있으면 악도 있고 배트맨이 있는 세상에 조커도 있다는 의미로, 조커는 그렇게 배트맨을 필요로 했다. 자신에게 쨉도 되지 않는 재미없는 경찰들에 비하자면 배트맨은 그야말로 흥미로운 적수였기 때문이다.
올해 제76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으며,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가 제작한 코믹북 원작 영화 중 최초로 주요 영화제에서 수상한 영화가 된 <조커>에는 바로 그 조커(호아킨 피닉스)의 영혼의 파트너 배트맨이 등장하지 않는다. 나중에 배트맨이 될 어린 브루스 웨인과 그의 아버지 토마스 웨인(브렛 컬런)이 등
[주성철 편집장] <조커> 보며 <펭귄>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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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철이라는 음악가를 좋아한다. 처음 그의 음악을 알게 된 것은 밴드 ‘불독맨션’ 때문이었다. 김현철이 쓰고 부른 불후의 명곡 <춘천가는 기차>를 리메이크한, 원곡보다 좀더 경쾌한 멜로디의 기타 연주와 평소에는 사투리를 쓰는 싱어송라이터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주는 대비를 좋아했다. 카세트테이프가 서서히 사라졌지만 음반 가게는 아직 번창하던 시절, 불독맨션의 음악은 항상 가까이 있었다. 요즘 발견의 기쁨을 느끼는 음반은 2016년 11월 발매한 5집 《늦어도 가을에는》이다. 첫곡 <가을>은 잔잔하다. 계절이 바뀔 때 으레 하는 행동으로 새로 오는 계절을 조곤조곤 이야기한다.
그는 목소리와 클래식기타 선율만으로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 줄 안다. 앨범의 세 번째 곡 <출렁이는 달빛>을 들으면, 연휴가 시작될 때 충동적으로 걸었던 서울의 밤과 새벽의 텅 빈 도로가 떠오른다. ‘출렁이는 달빛 아래서/ 일렁이는 마음을 본다/ 밀려오는 바람 타고/ 끝도 없이 나부
[마감인간의 music] 이한철 《늦어도 가을에는》, 그 시절의 감흥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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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을 보면서 영화 <기생충> 생각이 났다. 특히 주인공 가족의 아버지 기택(송강호)이 했던 말 “아들아, 넌 계획이 있구나”가 자꾸 떠올랐다.
옛날엔 “가족계획”이란 말이 있었다. 1960년대 인구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정부가 펼친 캠페인이었다.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정부 표어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리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가족계획”이란 말은 있었지만 “계획가족”이란 말이 있었나 싶다. 가족계획이 자녀수의 조절을 통해 전체 사회의 비용을 절감하는 국가정책이라면 계획가족은 단기적 혹은 중장기적 계획을 수립함으로써 생계와 사회적 이동을 효율화하는 가족 내 정책이다.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사회의 가족은 계획가족을 지향한다. 다만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자원의 양과 질이 다를 뿐이다. 특히 세습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질수록, 금융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전문가주의가 득세할수록, 부모가 고학력에 고임
계획가족의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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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클로드 샤브롤 / 출연 상드린 보네르, 이자벨 위페르 / 제작연도 1995년
아주 어릴 적부터 무턱대고 예술가가 되고 싶었다. 모두가 흘려들었지만 스스로는 꿈을 찾았다고 뿌듯해했다. 문학과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어머니와 서부영화와 팝송을 좋아하는 아버지 밑에서 취향의 중심추를 이리저리 옮기며 지내던 어느 날, 문득 영화가 마음에 들어왔다. ‘내가 좋아하는 걸 다 할 수 있잖아!’ 인생을 뒤흔드는 걸작을 보고 영화를 선택하는 낭만적 수순이 아니라 나름대로 꾀를 내어 욕심을 하나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 내가 영화를 하게 된 쑥스러운 계기다. 그때부터 단순무식하게 매일같이 비디오가게를 들락거렸는데, 마침 일어난 예술영화 붐으로 세기말 지방도시의 청소년이었던 나에게도 누벨바그영화들이 도착했다. 그 유명한 고다르와 트뤼포, 바르다와 로메르까지. 그때의 나에게 누벨바그의 영화적 권위는 무겁고 버거웠다. 그리고 심각한 얼굴로 무게를 잡고 있는 여드름쟁이 소녀에게 클로드 샤브롤의 영화는
[내 인생의 영화] 임오정 감독의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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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털이 떨어질 때 벚꽃도 지겠지/ 나는 져버릴 꽃이 되긴 싫어 I’m the tree.” Mnet <퀸덤>에서 <너나 해> 무대의 막을 연 AOA 지민의 랩은 또렷한 선언과도 같았다. 검은 슈트를 입고 화사한 미소 대신 강렬한 시선을 보내며, 노출 있는 의상에 하이힐을 신은 남성 댄서들과 함께 절도 있는 안무를 소화하는 AOA의 모습은 관객에게는 물론 자신들에게조차 새로운 것이라고 했다. 바로 전주에 “새 구두를 신고 짧은 치마를 입어봐도 넌 몰라봐 왜 무덤덤해 왜/ 딴 늑대들이 날 물어가기 전에 그만 정신 차려 boy”(<짧은 치마>)라며 자신들의 5년 전 히트곡을 부르던 모습과 의상부터 태도까지 모든 면에서 대비되어 더 흥미로운 장면이었다.
이들이 페미니스트 선언을 했냐고 한다면 글쎄다. 하지만 많은 여성이 환호하고, 적지 않은 남성들이 불쾌해한 것은 분명 재미있는 현상이다. 물론 과도한 의미 부여는 금물이다. <페미니즘을 팝니다>
<퀸덤>, 꽃이 아닌 나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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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 특집은 10월 3일 개막하는 24회 부산국제영화제 미리보기다. 올해도 <씨네21>은 공식 데일리로 영화제와 함께한다. 장영엽, 이주현, 김현수, 김소미 등 <씨네21> 기자들이 추석 연휴를 전후로 부지런히 프리뷰룸에 출퇴근하며 무수히 많은 영화를 봤고, 20편의 추천작을 엄선했다. 카자흐스탄 감독 예를란 누르무함베토프, 리사 타케바의 개막작 <말도둑들. 시간의 길>을 시작으로 임대형 감독의 폐막작 <윤희에게>에 이르기까지, 85개국 303편의 영화와 이제 곧 만나게 될 것이다. 이번 영화제는 넷플릭스 영화 <더 킹: 헨리 5세>처럼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 영화를 포용하는 등 시대에 발맞춘 변화를 선보일 예정인데, 특히 <더 킹: 헨리 5세>에서 헨리 5세가 되는 할 왕자를 연기한 티모시 샬라메가 부산을 찾을 예정이라 일찌감치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기대작 중 스크리너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 소개하지 못한 작품은 추후
[주성철 편집장] 24회 부산국제영화제 추천작, 그리고 정일성 촬영감독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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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오의 데뷔앨범 《Immunity》는 음악 잡지 <NME>로부터 별 다섯개 만점을 받았다. ‘그 정도는 아니’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쨌든 이 앨범이 비평가를 흥분하게 할 요소를 다수 갖춘 것은 사실이다. 팝의 상식을 깨는 팝, 주류와 언더그라운드의 균형, 세대론 가능한 인터넷 성장 스토리 같은 것들 말이다. 《Immunity》는 신뢰받는 언더그라운드 테이스트메이커 피치포크로부터도 8점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미국의 우효 같은 느낌을 받았다. 지극히 앳된 목소리로 부르는 힙한 사운드,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쉽고 애틋한 멜로디 같은 것들 때문이다. 대담함 면에서 클레어오는 우효보다 한발 더 나아간다. 믹스 엔지니어와 싸우는 모습이 상상되는 깜짝 놀랄 노이즈(<Sofia>), 808 드럼과 베이스 위주로 만든 미니멀 팝(<Closer To You>)도 들려준다.
서서히 주류 레이더에도 잡히기 시작했다. 2018년 두아 리파의 투어 오프닝을 맡았고, 같은 해
[마감인간의 music] 클레어오 《Immunit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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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유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예술로 얻고 싶다면 그만한 시간을 기울여야 한다. 책으로 진입하는 머리글을 읽을 인내심과 스크린 앞에 꼼짝 않고 앉아 있는 두 시간을 내놓아야 한다. 그래서 어색한 분위기와 초조함과 마법 같은 이끌림과 불현듯 다가오는 슬픔 같은 것들이 몸을 통과하도록 두어야 한다. 우리가 아무것도 내놓지 않는다면 작품 역시 아무것도 내놓지 않을 것이다. 요약된 소설과 압축된 영화와 후렴만 있는 음악은 심장에 도달할 힘을 잃을 것이다. 예술의 경험이란 작가와 향유자가 시간을 함께 견디는 경험이다. 그리고 그것은 정확하게 삶의 경험이다.
꼭 예술로 뭔가를 얻어야 하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런 경험 하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반론은 타당하다. 우리는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 그러나 먹고 사는 이상의 삶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는 사람만 남아 있는 세계에서 살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가. 시간을 견
이상적인 경청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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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사람이 반경 10m 안에 들어오면 알람이 울리는 애플'이라니! 굉장한 설정이다. 꼬리를 무는 의문을 따라가기만 해도 즐겁다. 마음을 애플로 확인하고 증명하는 세상이 되면 커플의 숫자는 이전보다 늘어날까, 줄어들까? 여럿을 동시에 좋아한다면, 알람이 그들 모두에게 울릴까, 가장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울릴까? 내 맘 나도 모를 때 제일 좋아하는 사람을 애플로 골라낼 수 있을까?
가능한 모든 변수와 조건의 답은 천계영 작가의 원작 웹툰에 있고 드라마로 제작한 넷플릭스 <좋아하면 울리는>은 보고 듣는 쪽에 재미가 있다. 10m 안에서 작동하는 애플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게 시각화하고, 웹툰에서 얻지 못하는 감각, 소리를 다루는 방식도 좋다. 수시로 ‘디리링~’ 울리는 알람음에 집중하다 보면 주인공 김조조(김소현) 주변에 울리는 다른 전자기기 소리에도 귀가 트인다.
애플이 출시되고 여기저기 울리는 알람음에 모두 설레고 들떠 있던 날. 조조는 스마트폰이 구형이라 애플
<좋아하면 울리는>, 좋아해, 널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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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곶매의 <파업전야>(1990)와 함께 바리터의 <작은 풀에도 이름 있으니>(1990)라는 영화가 있었다. <파업전야>가 ‘경찰이 필름을 압수하고, 경찰 12개 중대와 헬기까지 동원해 상영을 저지한 영화’로 신화화되고, 개봉 30년 만에 4K 디지털 리마스터링 작업을 거쳐 올해 5월 1일 노동절에 재개봉하며 여전히 한국 독립영화의 불굴의 전설로 회자된 반면, 같은 해 만들어진 김소영 연출, 변영주 촬영의 <작은 풀에도 이름 있으니>는 한국 여성영화사에 있어 한획을 그은 작품이라고 오직 ‘구전’으로만 전해졌을 뿐, 그 어디서도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심지어 한국영상자료원과 <씨네21> 홈페이지에서도 검색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존재 자체가 궁금했던 작품이었다. 그러다 올해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한국영화 100주년, 그리고 한국 최초의 여성영화집단 바리터의 30주년을 기념하며 <작은 풀에도 이름 있으니>를
[주성철 편집장] <작은 풀에도 이름 있으니> 꼭 복원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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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가을은 저녁의 냄새다. 정확한 언어로 포착할 순 없지만 공기 중에 떠다니던 바로 그 냄새를 어제 처음 맡았다. 이 냄새는 나에게 음악을 자극한다. 곧장 스마트폰을 꺼내 노래 하나를 찾았다. 권순관의 <그렇게 웃어줘>다. 이 곡, 적시해서 말하자면 ‘피아노 기반의 싱어송라이터 음악’ 정도 된다. 유희열이나 김동률의 계보를 잇는 음악이라고 보면 거의 정확하다.
소속 밴드인 노리플라이보다 훨씬 더 멜로디 지향적인 음악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글쎄, 어찌 보면 뻔한 수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렇게 웃어줘>의 진가가 드러난다. 이 곡, 전혀 진부하지 않다. “하늘 아래 이런 곡을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무엇보다 권순관은 탁월한 밸런스 감각을 지닌 뮤지션이다. 피아노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결코 오버하지 않고, 다른 악기들과 환상적인 어울림을 일궈낸다. 그중에서도 3분 40초에 시작되는 브리지 부분을 꼭 언급하
[마감인간의 music] 권순관 <그렇게 웃어줘>, 이것이 가을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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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가 막 등장했을 때는 최신 휴대폰을 갖는 것이 능력의 척도였다면, 휴대전화가 흔해진 지금은 휴대폰을 갖지 않아도 되는 쪽이 오히려 능력자다. 휴대전화가 경제활동의 필수품이 되면서, 휴대전화가 없다는 것에 ‘특별한 소득 활동을 하지 않아도 생활이 가능한 상태’라는 새로운 지위가 부여된 셈이다. 소득 활동뿐만 아니다. 현실에서 휴대전화 번호가 없이는 실재하는 본인을 인증할 수 없는 상황에 종종 맞닥뜨린다. 사소한 온라인 쇼핑이든 오프라인 매장에서 구매 포인트 적립이든 소비자로 살려면 휴대폰을 통한 본인 인증은 필수다.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동시에 자유의지의 폭은 오히려 줄어든 것 같다. 현실적으로 메신저 앱을 깔지 않을 자유가 있을까? 공동 업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 전체 공지를 단체 대화방이 아닌 수단을 통해 전달받는 것을 내가 선택할 수 있을까? 만일 당신이 다른 방식의 정보전달을 원한다는 말을 저항감 없이 내뱉을 수 있다면
하지 않을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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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일이지만, 새 예능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제작진은 꼭 첫회에 중년 남성 탤런트 C씨를 부르고 싶어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입담이 좋고 능숙하게 분위기를 띄우기 때문에 뭘 해도 시청률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요즘, 아니 그때나 지금이나 믿고 섭외할 만한 ‘1회 전문 게스트’는 이효리인 것 같다.
유재석이 그날의 초대손님과 함께 육체노동을 하며 번 일당을 각자 좋은 일에 쓴다는 형식의 tvN <일로 만난 사이>는 아주 새롭거나 흥미로운 프로그램은 아니다. 단순한 노동의 반복에는 예능적 ‘재미’가없고, 일을 제대로 하다 보면 토크는 사그라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누구나 유재석 하면 어려워하고 ‘유라인’으로 가고 싶어 하고 재석형~ 재석 오빠~ 이러는데, 뭐 저는 그럴 필요는 없으니까”라고 말해도 미움받지 않는 유일한 연예인 이효리는 예측할 수 없는 발언과 행동으로 시청자를 집중하게 만든다. 월경이나 부부간 스킨십 얘기를 꺼내 유재석을 당황하게 만든 그
<일로 만난 사이>, 본 투 비 연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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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M. 나이트 샤말란 / 출연 브루스 윌리스, 할리 조엘 오스먼트 / 제작연도 1999년
나에겐 너무 어려운 요청이다. ‘내 인생의 영화’라니?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한 내 성격에 그동안 봐왔던 수많은 영화 중에서 한편을 콕 집어내라니? <매트릭스>를 선택하면 <쇼생크 탈출>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쇼생크 탈출>을 고르면 <유주얼 서스펙트>로부터 날아오는 그 경멸의 눈초리를 어떻게 피하란 말인가? 게다가 그 영화와 관련된 사연이나 에피소드가 있는지도 써달라니?! 한편의 영화와 개인적인 사연이 드라마처럼 엮이는 교집합점이 생각해보고 생각해봐도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다. 아니, 생각하면 할수록 ‘내 인생은 뭐 이렇게 물을 탄 술처럼 밍밍하고 맛없는 자질구레한 기억들로만 가득 차 있지?’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다. 방법이 없다. 그래서 ‘내 인생의 영화’라고 쓰고 ‘내 기억 속의 영화’로 읽기로 했다.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
[내 인생의 영화] 김동현 메리크리스마스 본부장의 <식스 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