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용어를 쉬운 우리말로 ‘순화’하자는 주장이 계속 있다. 법률문장을 쉽게 고쳐 쓰자는 말도 있다. 판결문을 높임말로 쓰자는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나는 이런 흐름에 그다지 찬성하지 않는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애당초 법률용어나 법률문장은 한글이라는 기호를 사용하고 한국어 문법을 일부 차용한 일종의 외국어나 코드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법률문장에는 국가의 사법권을 행사하고 법적 개념을 정립한다는 목적이 있다. 개념어가 최대한 하나의 뜻을 가져야 하고, 읽는 사람에 따라 달리 해석될 여지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이는 내가 ‘작가도 변호사도 글 쓰는 직업이니 비슷한 일이겠지’라는 착각으로 법학 공부를 시작했을 때 가장 당황스러웠던 지점이기도 하다. 이게 분명 한글을 사용한 글이긴 한데, 내가 알던 그 글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오랫동안 번역가로 일해온 경력이 법률문장론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예를 들자면 법률문장론을 배울 때 가장 먼저 익히는 것 중에 ‘주시상목행’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문장을 주어, 술어, 상대방, 목적, 행위 순서대로 쓴다는 규칙이다. 우리는 평소에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한국어를 이 순서로 쓰지 않았다고 틀리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관행적 주어 생략과 순서 변경 가능은 한국어의 특징이다. 주시상목행은 한국어 문법이 아니라 한국어 관행에서 벗어난 법률문장의 규칙이다. 마치 한국어 문법이 틀린 글을 읽으면 어색하거나 때로 뜻을 알 수 없듯이, 주시상목행 규칙을 어긴 법률문장은 잘 읽히지 않는다. 어색한 정도면 다행이지만, 이 규칙을 벗어난 문장은 결국 내용적으로도 핵심 요소가 빠진 경우가 많아 종종 틀린 문장이 된다. 이 규칙을 지킨 문장은 한국어 사용자에게는 불필요한 말이 중복된 장황하고 어려운 글이라고 느껴지기 쉽다. 관행적 생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 언어(?)가 본래 그런 것이다. 가끔 한 문장이 500자, 1000자 혹은 A4 1페이지에 달하는 판결문이나 공소장이 지나치게 긴, 잘못 쓴 문장이라며 언급된다. 그렇지만 사실 규칙을 지킨 법률문장은 단문보다 한번에 쉽게 읽힌다. 정형화가 잘되어 있을수록 어디를 보면 무엇이 있는지 쉽게 찾을 수 있다. 좋은 문장의 기준이 다르다.
사건기록 500매 정도를 1권으로 세는데, 일반적인 형사사건기록은 최소한 2권이다. 내가 본 것 중 가장 분량이 많은 사건은 총기록이 약 14만장이었다. 사람이 이 정도 분량의 글을 한정된 시간 내에 읽을 수 있는 것은, 이것이 소설이나 수필 같은 한국어 문학이 아니라 정형화된 기호의 모음이기 때문이다. 법조인은 이 외국어의 규칙과 기호의 해석법과 사용법을 배우고, 특히 비법조인과 법조인 사이에 있는 변호사들이 통역사나 번역가 역할을 한다.
법률용어를 쉽게 바꾸어 써도 오해가 없고, 법률문장을 풀어 써도 누구에게나 하나의 뜻으로 읽힌다면 물론 가장 좋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무래도, 일상을 비일상적인 언어로 ‘정확한 동시에 쉽게’ 옮기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완벽한 번역이 불가능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