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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집 근처 자주 가던 극장이 문을 닫았다. 지난해부터 퇴근 후 아이를 재우고 마지막 상영 회차를 챙겨보는 게 하루의 소소한 행복이었지만 이젠 어렵게 됐다. 심야영화는 사람이 적을수록 특별해진다. 아무도 없는 극장, 혼자 스크린을 독차지하는 날엔 전세를 낸 기분마저 들었다. 관객이 한명도 없는 날에도 꼭 제일 뒷줄에 앉아서 영화를 봤는데, 내 자리에서 스크린까지 객석이 모두 비어 있는 사치스러운 풍경이 한눈에 들어와 더 좋았다.
하지만 올해는 같은 광경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극장에 사람이 하나둘 없어지더니 텅 빈 극장에서 혼자 영화 보는 날이 많아진 탓이다. 넓은 극장에 사람이라곤 직원 한명과 나뿐일 때, 쾌적하다고 느꼈던 것들이 동전의 뒷면처럼 황량하게 다가왔다. 점점 불안해졌다. 이러다 극장이 망하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이내 기우에 불과하다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6개월을 못 채우고 우려가 현실이 된 후에야 자각한다. 내가 즐겼던 건 적막함이 아니라 평소와 다른 특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침체를 부술 스펙터클에 시동을 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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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3일 대선투표일. 출구조사 발표를 앞둔 MBC 개표방송에 친숙하지만 의외인 두분이 등장했다. 유명 과학 유튜버 궤도와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였다. 무려 ‘민주주의 이즈(is) 사이언스’라는 제목과 함께. 두 이과 남자가 설명하는 민주주의가 과학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과학의 역사를 보자. 궤도가 과학계의 “위대한 큰 형님”으로 소개한 아이작 뉴턴은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법칙’을 발견한 과학자로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절반의 이야기일 뿐. 뉴턴의 질문은 “사과가 왜 떨어질까?”에서 그치지 않고 “달은 왜 떨어지지 않을까?”까지 나아갔다. 그리고 이 질문은 지상계와 천상계에 공히 적용되는 보편적인 물리법칙으로서, 질량을 가진 두 물체는 서로를 끌어당긴다는 만유인력의법칙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천상계의 달과 지상계의 사과가 평등한 뉴턴의 물리학은 왕과 백성의 위계적 구분 대신 평등한 시민으로 구성된 민주주의 사회와 일맥상통한다. 이어서 김상욱
[임소연의 클로징] 민주주의 이즈 슬로 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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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작품 중 뭘 제일 좋아하나요. 직업적으로 ‘당신의 올 타임 베스트가 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 편이다. 솔직히 묻는 사람도 진짜 궁금하진 않을, 자기소개서의 취미와 특기란 같은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이 예정된 테스트는 익숙해지긴커녕 매번 곤혹스럽다. 왜 그럴까 고민하며 작품들을 복기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 나 이 작품들 고르기 어려울 만큼 하나하나 되게 진심으로 좋아했구나. 상황과 형편, 기분과 컨디션에 따라 리스트의 우선순위가 달라지는 와중에 요즘은 조금 엉뚱하지만 스튜디오 지브리의 단편 중 <On Your Mark>가 계속 뇌리를 맴돈다. <On Your Mark>는 일본의 록밴드 차게 앤 아스카의 뮤직비디오로 제작된 단편애니메이션이다. 1995년작 <귀를 기울이면>과 동시상영된 이 작품은 6분37초의 짧은 분량이지만 감히 지브리의 낭만과 정수가 응축된 결과물이라 할만하다. 안도 마사시의 작화, 야스다 미치요의 채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희망찬 비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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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하순이면 두 사람의 김군이 생각난다. 한 사람은 1980년 5월22일 옛 전남도청 인근에서 ‘김군’이라는 문구가 적힌 머리띠를 둘렀던 시민군이다. 다른 한 사람은 2016년 5월28일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숨을 거둔 김군이다. 참사 직후 구의역에 붙은 메모에는 나의 것도 있었다. “2013. 1. 19. 심OO(성수역) / 2014. 4. 22. 노OO(독산역) / 2015. 8. 29. 조OO(강남역) / 2016. 5. 28. 김OO(구의역).” 모두 스크린도어 수리 도중 사망한 노동자들이다. 연결되어야 할 열차 운행과 스크린도어 수리 업무는 원청과 하청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이런 외주화는 ‘전문화’가 아니라 원청 퇴직자의 고임금 일자리를 창출할 뿐이며 그만큼 현장 노동자는 쪼들린다. 김군은 2인1조 규정이 무너진 자리에서 혼자 일했다. 나는 2015년 한 조직에서 상근을 시작하며 강남역 참사에 관한 논평을 썼다. 이듬해 상근을 그만두기 사흘 전 구의역 참사가 일어났
[김수민의 클로징] 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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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은 1년에 한번 개편을 한다. 시기는 보통 창간기념일에 맞춘 4월을 목표로 하는데, <씨네21>을 오래 구독한 독자들도 매년 개편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해도 거르지 않고 개편을 하는 건 가장 효과적인 중간 점검과 평가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1년, 12달, 50권 정도의 잡지를 만들다보면 어떤 식으로든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지겨워진다고 해도 좋겠다. 지겹다는 건 읽는 쪽뿐 아니라 만드는 쪽에도 해당한다. 사실 후자를 위한 것이 더 클지도 모르겠다. 익숙해진다는 건 편해진다는 거고, 하던 대로 하면 몸은 편해도 보이지 않는 곳부터 녹이 슬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편은 망망대해에서 배를 점검하고 나사를 조이는 작업이다. 지난 1년에 대한 중간 점검을 통해 첫걸음의 의도와 달리 어디까지 떠밀려왔는지 위치를 확인해야 한다. 그런 후에야 떠밀려온 만큼 새로운 좌표를 설정하고 다시금 노를 젓기 위한 의지를 다질 수 있다.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새날이 왔습니다. 개편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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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기적은 작은 흔적을 끊임없이 축적할 때, 그리고 뚜렷한 목적을 갖고 부단히 흔적을 축적할 때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앞에 나타난다.” 꽤 오랫동안 이걸 <나무를 심은 사람>에 나온 명문장이라 착각하고 있었다. 장 지오노의 단편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을 처음 알게 된 건 1987년 프레데리크 바크의 동명 단편애니메이션을 통해서였다. 이 경이로운 애니메이션의 아름다움에 한참 먹먹해졌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중에 원작 소설이 있다는 걸 알고 찾아 읽었는 데, 소설과 애니메이션의 감상이 뒤섞인 탓인지 시간이 흐른 뒤엔 프레데리크 바크의 파스텔 톤작화 속 노인의 온화한 표정과 저 한 문장만 기억에 남았다. 지금 다시 보니 저 문장은 ‘옮긴이의 말’ 속 한 문장이었다.
<나무를 심은 남자>는 갑작스러운 비극 이후 황량한 자연을 바꿔보겠다고 결심한 남자가 우직 하게 나무를 심어 끝내 풍성한 숲을 가꾸는 이야기다. 아내와 아들을 잃고 홀로 양을 키우며 살아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나무를 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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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할 적당한 용어가 없어서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라는 영어를 그대로 쓰는 것을 용서하시기를. 이 말은 ‘스페셜리스트’ 즉 전문가와 대비되는 의미로서, 묘하게 경멸의 의미를 담는 경우도 많다. 이것저것 잡다하게 많이 알기는 하지만 자기 고유의 전문 영역이 없어서 막상 어느 한 분야에서도 권위를 가질 수 없는 지식인과 기능인을 통틀어서 부르는 말이었다. 이러한 사람들은 사회와 직장에서는 물론 심지어 학계에서도 찬밥이 되기 십상이다. 때깔은 좋고 폼은 날지 몰라도 막상 어디에 써먹기는 힘든 ‘은도끼’ 취급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언가 하나의 분야를 깊게 파고드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소리를 귀가 따갑게 듣는다. 그런데 막상 현실에서 부닥치는 가지가지의 문제들에 꼭 맞는 전문가가 존재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구두와 이를 고칠 때에는 구두수선공과 치과의사가 있지만, 출산율 저하 문제나 남녀 갈등 문제 등에 그런 전문가가 있을 리가 없다. 제너럴리스트들은 여기에서 반
[홍기빈의 디스토피아] 인공지능과 ‘제너럴리스트’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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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책방이 문을 닫았다. 카페를 겸한 작은 공간 한곳에 사장님이 직접 고른 책 몇권을 비치해둔 곳이었는데, 책 사러 일부러 간 적은 없었 지만 우연히라도 들르면 뭐에 홀린 것처럼 꼭책 한권을 사서 나섰던 기억이 생생하다. 엄밀히 말해 문을 닫은 건 아니고 카페 영업만 하는 걸로 방침이 바뀌었다고 한다. 그렇게 오랜만에 들러 아쉬운 마음에 차 한잔을 마시고 있자니 낯선 장소에 떨어진 기분이다. 인테리어는 거의 그대로였지만 그곳에서 책을 둘러보며 켜켜이 쌓았던 시간은 어느새 옛일이 되어버렸다. 종종 시간이 다르게 흘러간다고 느껴지는 장소가 있다. 돌이켜보면 장소가 특별한 게 아니라 거기서 무엇을 했느냐가 늘 핵심이었다. 움푹 팬 장소에 시간이 고이면 모두의 공간이 나의 장소로 거듭나는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지금 저 멀리 프랑스 칸에서 영화 축제가 벌어 지고 있다.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누벨바그>, 아리 애스터의 <에딩턴>, 린 램지의 <다이, 마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칸에서 한국까지, 영화의 시차가 빚어낸 상상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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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실망은 기대로부터 찾아온다. 실망(失望)이라는 단어 자체가 정확히 그렇다. 바라던 바가 이뤄지지 않았기에 낙심하는 것이니까. 같은 의미의 영어인 ‘disappointment’도 다르지 않다. 예정됐던 것이 실현되지 않았기에 낙담하는 마음을 가리킨다. 그런 낙담(落膽)의 다른 영어 표현인 ‘렛다운’(letdown)은 묘하게도 한국어와 발음이 유사하게 들린다. 우리 안의 무언가가 ‘뚝 떨어지는’ 느낌까지 꼭 닮았다. 사람들이 몸과 마음으로 생생하게 경험하는 무언가라서 그런 것 같다. 지난 몇년, 특히 최근 몇 개월간 수없이 많은 좌절과 실망을 맛봤다. 이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작자가 저런 수준이라고? 그걸 주변에 있는 이들이 그냥 놔두는 것을 넘어 동조하기까지 한다고? 누가 봐도 자명한 내란 범죄자를 잡아 가두는 게 그렇게나 힘든 일이라고? 애써 가두었더니 판사가 나서서 풀어준다고? 높은 법대에 앉으신 고귀한 대법관들이 저리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서는 대놓고 선거를 자기 맘대로 결정하
[정준희의 클로징] 정말, 미워 ‘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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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서 보통 2편은 존재감 없는 영화 취급을 당하지만 나는 <미션 임파서블2>(2000)도 나름 재미있게 봤다. 고백하자면 2편을 먼저 보고 나중에 화제가 됐던 1편을 찾아본 터라 나쁘지 않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오우삼 감독의 <미션 임파서블2>는 성공한 후속편이 범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지뢰를 성실히 밟아 터트린다. 오해할까봐 미리 밝혀두는데, 그 영화가 별로였다는 ‘평가’를 위해 이 말을 꺼낸게 아니다. 2편이야말로 속편과 시리즈를 중심으로 한 할리우드 영화산업 모델의 본질이 무엇인지 드러내는 좋은 사례다.
오우삼의 <미션 임파서블2>는 스타일은 있되 야심이 없는 영화다. 1편과는 또 다른 위기가 등장하고 유능한 첩보요원이 사악한 악당의 음모를 분쇄한 뒤 사랑하는 사람까지 멋지게 구해낸다는, 안 보고도 쓸 수 있는 이야기. 평가는 시리즈 중 최악이었지만 성공한 1편의 속편인 만큼 흥행 성적은 좋았고(2000년 월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버스터 키턴을 향해 날아오른 사나이, 21세기에 불시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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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내란은 내란으로 불리지 못한다. 한국여성의전화는 2009년부터 매년 ‘분노의 게이지’라는 이름으로 언론에 보도된 여성 살해 사건을 분석한 보고서를 발간해왔다. 2024년 분노의 게이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한해 동안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게 살해된 여성은 최소 181명이고 살인미수 등으로 살아남은 여성은 최소 374명이었다. 최소 15.8시간마다 1명의 여성이 살해되거나 살해될 위험이 처했다는 뜻이다. 지난 16년 동안 남편이나 애인에 의해 살해된 여성은 1560명에 이른다. 일면식 없는 남성에 의한 여성 살해 또한 심각하다. 2024년 한해에만 처음 본 남성에게 살해되거나 살해될 위험에 처했던 여성은 최소 179명이다. 거의 이틀에 한명꼴이다. 가장 충격적인 점은 여성 살해 범죄에 대한 정부의 공식 통계조차 없다는 사실이다. 언론이 모든 살해와 폭력 사건을 다 다루지 않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실제 피해 여성의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임소연의 클로징] 보노보 폴리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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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 엔드게임>(2019)을 보며 21세기 초반을 지배한 이 위력적인 히어로 프랜차이즈를 떠나보낼 때가 됐음을 직감했다. 마블 영화와 작별을 고하는 마음으로 ‘나의 <보이후드>를 떠나보내며’라는 거창한 제목을 달아 글도 썼다. 물론 그 후로도 마블 영화가 나오는 대로 직업적 의무감에 체크는 했지만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실망의 연속이었다. 한 가지 예상 못했던 건 속도다. 예고된 몰락이긴 했지만 이 정도로 빠르게 가라앉을 줄은 몰랐다. 마치 잘못된 시대에 표류한 것 마냥 길을 잃은 행보를 보며 새삼 영화와 시대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 피어난다.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21세기 영화산업의 산물이다. 안정적인 속편을 갈망하는 할리우드 프랜차이즈는 CG라는 선택지를 만나 새로운 이야기 창고를 발굴하기에 이른다. 기존의 기술로 구현하기 힘들었던 만화적 상상력은 컴퓨터그래픽의 ‘그리는 영화’의 시대가 도래하여 비로소 빛을 얻었다. 이후 이 안정적인 모델이 예상하지 못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Not Super, Not Giving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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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요즘 대선주자들이 앞다퉈 가장 강조하는 단어다. ‘성장하다’(Grow)의 어원 ‘Growan’은 ‘녹색’(Green)의 앵글로색슨어이기도 하다. 풀이 우거지는 풍경은 녹색의 탄생이자 성장의 원형이다. 성장은 땅에서 피어난 것이다. 녹색은 단단하면서도 잘 파이는 땅의 양가성에 뿌리를 내리며 성장한다. 경제의 성장도 한동안 그랬다. 건물과 도로도 땅의 미덕 위에 세워지고 깔렸다. 하지만 땅이 지탱할 수 없는 존재가 하나 생겼으니, 땅을 쳐부수는 실력을 날로 키우면서도 땅이 언제까지나 끄떡없을 것이라 믿고 넘어가는 인간이다. 성장은 조화로운 번영에서 벗어나 파괴로 치달았고, 괴롭고 지친 땅은 무너져내리고 있다.
싱크홀의 원인 1위는 상하수관 누수다. 최근 5년간 벌어진 지반침하 사고의 원인 중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서울 지역만 해도 하수관로 가운데 30%인 3300km가 50년을 넘겼다. 관로 100km를 정비하는 사업에 드는 비용이 약 2천억원이다. 수도 요금이 싸디싸고 조세
[김수민의 클로징] 싱크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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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 되면, 괜히 심술이 난다. 스마트폰에 고개 박고 걷는 게 습관이 된 탓에 칙칙했던 뒷산이 어느새 옅은 초록 옷으로 갈아입은 걸 뒤늦게 깨닫곤, 비로소 계절이 바뀌었음을 실감한다. 미세먼지로 매일 희뿌옇던 하늘이 어느 날, 쪽빛 물감을 뿌려놓은 듯 파랗게 개면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일주일 내내 흐리다가 단 하루, 햇살 묻은 바람에서 뽀송한 솜이불의 감촉이 느껴질 땐 (약간의 과장을 보태) 살아 있어 다행이란 생각마저 든다.
온몸으로 퍼지는 이 감각에 굳이 이름을 붙여보고 싶어, 얇디얇은 내 어휘사전을 뒤적이다가 결국 어쩔 수 없이 ‘행복’이라고 쓴다. 그래서, 심술이 난다. 나는 파란 하늘 아래 초록 내음을 맡는 것만으로 이렇게 꽉 찬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인데, 이놈의 세상이 나를 매일매일 강퍅한 인간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제 좀 살 만한가 싶어 방심하고 뉴스를 틀 때마다 환장할 소식에 속이 뒤집어진다. (오늘은 5월1일이다.) 행복을 표현할 기회와 방법이 매일매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5월의 상태, 행복의 형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