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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선라이즈>(1995)를 다시 봤다. 제시와 셀린이 나눈 수많은 말들, 아름다운 단어들이 마치 별처럼 흩어져 스크린에 박힌다. 하지만 결국 제시와 셀린의 욕망은 하나로 귀결된다. 너를 온전히 알고 싶다는 것. 두 사람은 그 실현 불가능한 기적을 위해 빈에서 꿈결같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 제시는 말한다. “사람들은 항상 이렇게 말하지. 너를 알고 싶다고.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스스로를 아는 것도 힘들어. 나는 항상 변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걸 알려줄 수 있겠어?” 셀린은 답한다. “이 세상에 어떤 마법이 있다면 그건 누군가를 이해하고 함께하려는 시도일 거야. 설사 성공하지 못한다고 해도 말이야.” 그리하여 영화는 셀린의 입을 빌려 진실을 전한다. “있잖아, 이 세상에 신이 있다면 그것은 너나 나, 우리 안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 사이에 존재한다고 믿어.”
영화의 신 있다면 그 역시 한편의 영화로 강림하진 않을 것이다. 이번주는 영화와 영화 사이에 깃든 에너지를 목격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영화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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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K컬처의 시대다. 한국의 음악이나 영화, 드라마 등을 향한 열광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K성형 역시 K컬처의 일부로 잘 알려져 있다. 긴 연휴가 시작되기 전 노르웨이와 중국, 일본 등에서 온 학생과 교수진을 대상으로 한국 성형의 ‘테크노컬처’를 주제로 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다. 자신이 평소 K뷰티에 얼마나 관심이 많은지 얘기해준 중국 학생과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강연 중에 최근 유행하는 피부미용 주사시술을 언급했는데 하필 연어 추출물이 주성분이라서 노르웨이에서 오신 분들이 흥미로워했던 것은 여느 때와 다른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해외 언론과 인터뷰를 하거나 이렇게 외국인 청중을 대상으로 강연을 할 때마다 양가적인 감정이 든다. 한국의 성형수술에 대한 내 연구를 궁금해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은 기분 좋은 일이지만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K성형을 신기한 구경거리로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에 씁쓸해지기도 한다. (다행히(!) 그날 강연 후 받은 질문
[임소연의 클로징] K뷰티? K뷰티 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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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인연이다. 요즘 입에 달고 사는 말 중 하나다. 수많은 영화 중에 어떤 영화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만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영화기자의 업이라는 건 그 인연을 기다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만들어가는 쪽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간지의 타이밍을 빗나가는 영화들이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와 미쟝센단편영화제, 추석 합본 특대호 연휴 등 예정된 경로를 마치고 돌아와보니 폭풍 같은 영화들이 이미 지나가버렸다.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화제작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니 믿을 수 없다. 명백한 직무유기다. 일본 애니메이션 <체인소 맨: 레제편>을 이렇게 흘려보내다니 분하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그저 사고였을 뿐>은 아무리 다뤄도 모자라다. 더 큰 맥락에서 조감도를 그려봤어야 했다. 태풍이 지나가고, 돌아보니 때를 맞추지 못한 영화들이 지나간다.
물론 이대로 보내진 않을 것이다. 어떤 방식이든 경로를 찾아내 다시 불러와 이야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파도에 몸을 맡긴 채. 조용히. 고요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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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자란다. 매일매일 그 성장의 궤적을 지켜보는 일은 마치 잊어버린 어린 시절의 소중한 순간들을 다시 마주하는, 이미 잘 알고 있다고 믿었지만 볼 때마다 새로운 영화를 재관람하는 기분이다. 이제 4살이 된 아이는 본인이 너무 기분이 좋을 때 예상치 못했던 말을 마치 감탄사처럼 내뱉는다. “엄마, 행복해? 주하가 웃으니까 좋아? 주하는 엄마가 많이 행복했으면 좋겠어.” 아내는 옆에 멀뚱히 서 있는 내가 안쓰러운지 되묻는다. “아빠는? 아빠도 행복했으면 좋겠어?” 이어지는 아이의 답에 모두 함께 쓰러진다. “아빠는… 조금만 행복해.” 늘 함께 있는 엄마와 자주 놀아주지 못하는 아빠를 정확히 구분하는 말이 귀여우면서도 못내 미안해, 서운할 뻔한 마음을 감추고 답했다. “그래, 아빠는 조금만 행복할게. 대신 우리 더 자주 행복하자.”
맑은 물에 불순물이 들어왔을 때, 그걸 건져내고 지우려 애쓰면 물은 점점 더 흙탕물이 될 뿐이다. 힘들고 괴롭고 탁한 것들이 우리 마음을 흐릴 때 해야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자잘한 행복의 총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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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봉투를 지정 장소에 놔두면 미화원이 트럭에 담아 옮긴다. 구역을 독점하는 사업으로서 공공이 해야 할 일이다. 더구나 폐기물 정책의 주요 목표는 폐기물 감축이다. 영리를 추구하는 업체는 감축에 나설 동기가 부족하며, 실적을 부풀릴 위험도 있다. 트럭에 바위를 숨기고 무게를 단 업체도 있었다. 업체와 관련해 이런저런 논란은 끊이지 않았고 최근에도 파주시와 청도군 등지에서 관련 뉴스가 나온다. (아마 거의 모든 지역에서) 지자체 폐기물 수집운반업은 사기업이 대행하고 있다. 비용을 절감한다는 것이 핑계다. 참고로 지자체는 연구 용역으로 산정한 사업비를 업체에 지급한다. 차량 감가상각비까지 싹 다 대준다. “고거 먹고 인건비나 나오겄어?” 인건비도 다 들어가 있다. 그럼 어디서 절감이 이뤄지는 걸까. 현장 노동자의 인건비다. 업체 미화원과 운전원의 인건비(직접노무비)는 시중노임단가를 따른다. 지자체 미화원보다 적잖게 낮다. “지자체가 직영해서 미화원한테 주려는 거 이거, 이거 이거 고임
[김수민의 클로징] 타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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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가 문자 그대로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올해가 마지막인 거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역대급 게스트가 부산에 모여 다채로운 행사를 치렀고, 이에 호응하듯 많은 관객들이 영화의 바다에 흠뻑 빠졌다. 흥하면 흥하는 대로 우려의 목소리가 섞여 나오기 마련이다. ‘극장에는 사람이 없는데 영화제에는 사람이 넘쳐난다’는 자조 섞인 지적은 가볍게 흘려들을 수 없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지 않지만 축제에는 인파가 몰리는 걸보며 올해 도서전의 풍경과 연결하는 세평도 있다. 확실히 책과 영화 모두 대중적, 상업적인 규모의 영향력은 줄어드는 반면 열광적인 지지자들이 오프라인으로 응집하며 전과 다른 존재감을 드러내는 중이다. 사람이 모이는 곳엔 반드시 북적거리는 소란이 있어야 한다. 다만 큰 목소리에 묻혀, 이 다채로웠던 소란을 축약된 몇 단어로 기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술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짧게 축약하지 않는 것이라 답하겠다. 가령 ‘사랑’이라는 한 단어로 축약할 수 있는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영화는 경험이고, 극장은 습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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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목에 따옴표를 친 이유는 사실 확인에 대한 일부의 의문 때문이다. 지난 9월13일 서울 잠실에서 찰리 커크 추모 집회가 열렸으며 5천명 규모의 참가자들이 운집했다는 소식이 우파 계열의 매체들에서 일제히 보도되었고 여러 사진과 동영상들이 SNS에 올라왔다. 하지만 이른바 ‘메이저’ 매체들에서는 보도된 바 없고 이를 접한 일부 누리꾼들은 그 사진과 동영상이 모두 AI로 합성된 가짜 뉴스가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나도 판단할 방법은 없지만, 워낙 허를 찌르는 상상 밖의 집회였는지라 주요 매체가 취재하지 못했을 뿐 사실 자체를 부정할 근거가 있다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쉽사리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미국의 유력 정치인도 아닌, 그것도 백인 우월주의를 주장했던 한 청년 인플루언서의 비극적 죽음에 멀리 한국에서 추모 집회가 열린다고? 하지만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다. 영국에서도 찰리 커크의 추모 집회에 1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고 하니까. 이제 신우익 운동은 확연
[홍기빈의 클로징] ‘잠실의 찰리 커크 추모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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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하는 게 아니라 싫어하는 거야, 나는.” “어떻게 다른데?” “싫어하는 건 생각이 안 나서 좋은 거고, 미워하는 건 생각나서 힘든 거야.” <은중과 상연> 속 은중(김고은)이 툭 내뱉은 말이 빨려 들어가듯 귀에 꽂혔다. 미량의 짜증이 섞인 말투 아래 묻어둔 씁쓸함이 빗자루마냥 까슬거리며 흐리멍텅했던 머릿속을 깨끗이 쓸어버린다. 우리가 갈증에 시달리는 듯 소설, 영화, 드라마를 찾아 헤매는 건 드물게 이런 표현들을 마주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도 정확히 몰랐던 마음의 형태를 타인의 언어로 마주할 때 차오르는 희열. 약간의 과장을 보태 솔메이트를 만나는 기분이라 해도 좋겠다. 그럴 때마다 사막 한가운데 내팽개쳐진 듯한 고독의 밤을 버텨온 게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를 받는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니 여기저기 모닥불이 보인다. 싫은 건 많아도 미워하는 건 서투른 편이다. 이제야 이유를 알 것 같다. 미움에는 에너지가 든다. 어쩌면 미움이란 끝내 채우지 못한 결핍의 또 다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미묘한 단어의 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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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호흡으로 산다는 게 참으로 어려운 세상이 되었구나 싶다. 물론 이런 투덜거림은 적어도 지난 수십년간 수없이 나왔을 테고, 길게는 수백년 이상, 때마다 반복되었을 것 같긴 하다. 적어도 인류 역사가 근대로 진입하던 시점 이후로 우리가 체감하는 시간은 늘 가속화의 경향 속에 있었으니 말이다. 따라서 첫 문장은 조금 수정되는 게 맞다. 기존의 내 호흡보다 훨씬 더 짧은 호흡으로 살아야만 하는 조건에 처한 것 같다. 개인적인 사유로든, 사회 변화적인 이유로든 말이다. 일단은 개인적인 사유가 크다. 나는 일상적 보도 및 시사 문제를 다루는 ‘저널리즘’과 미디어를 관찰하면서 그것을 분석하거나 이론화하는 직업을 갖고 있었다. 현재도 그런 직업으로 분류되는 게 맞기는 한데, 과거형으로 표현하는 이유는 매일 내가 하는 일의 중심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매일’ 책을 읽었고, 관찰은 그 매일보다는 조금 더 긴 호흡을 주기로 이뤄졌다. 관찰의 결과로 읽어야 할 책이 정해지기는 하였으나, 실은
[정준희의 클로징] 시사라는 강물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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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이 수렴하고 기억은 발산한다. 기록은 기록자가 택한 형태로 고정되기 마련이다. 이때 기록의 대상과 내용만큼 중요한 건 기록이 새겨질 방식이다. 종이에 쓰는 것부터 시작하여 영상으로 남길 수도 있고, 때론 공간이 직접 기록의 매개가 되기도 한다. 기록이 기록자의 입장을 진하게 반영한다면, 기억은 받아들이는 쪽의 태도에 따라 매 순간 달리 발현된다. 우리는 기억이 과거의 것이라 여기지만 실은 기억이란 언제나 현재형이다. 기억을 ‘한다’는 건 과거를 지금 이 순간과 연결시켜 대화를 나눌 초대장을 보내는 것과 같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 영화의 역사는(정확히는 다큐멘터리의 역사는) 기록과 기억 사이를 오간 궤적의 산물이다. 다큐멘터리사(史)를 논할 때 한 사람을 꼽으라면 나의 첫손가락은 주저 없이 프레더릭 와이즈먼이다. 이유야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로 차고 넘치지만 무엇보다 카메라라는 영화 장치로 현실의 몽타주를 담아낸 작가적 일관성 면에서 독보적이다. 그리하여 1967년부터 지금까지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프레더릭 와이즈먼의 기록, 충무로영상센터 오!재미동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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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물에서 본 것>(What I Sense in the Matter)은 안무가 김보라의 작품이다. 현대무용을 잘 알지도 못하고 평소 자주 보는 편도 아니지만 이 공연만큼은 꼭 보고 싶었다. “주변부에 머물러 있는 몸에 관한 의심과 질문.” “수차례 난임 시술을 받은 안무가의 경험을 통한 포스트휴먼적 몸의 형상화.” “의료 현장에서 몸은 단 한 가지의 모델로 환원되지 않는 다중적 유형의 장.” 나 역시 연구자로서 성형외과 현장에서 다중적 몸을 목격했고 수술을 받으면서 몸이라는 존재에 대한 탐구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던 경험이 있기에 작품을 소개하는 이 문구들만으로 확신이 들었다. 이건 봐야 한다! 그리고 너무 궁금했다. 도대체 나는 무대 위에서 무엇을 보게 될까? 세 가지가 궁금했다. 과연 ‘몸 그 자체’를 어떻게 표현할까? 난임 시술이라는 ‘기술’을 어떻게 보여줄까? 보조생식기술에 대한 ‘여성’의 관점을 어떻게 드러낼까? 현대무용의 문외한답게 처음에는 무용수들이 난자와
[임소연의 클로징] 내가 달걀에서 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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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하긴. 순애(純愛)야.” 2021년 <극장판 주술회전 0>의 주인공 옷코츠 유타의 시그니처 멘트는 오타쿠와 일반인을 구별하는 테스트 질문이다. 놀라운 재능을 지닌 특급 주술사 후보 유타는 어린 시절 사망한 소꿉친구이자 저주의 여왕이 된 리타에게 속박의 말을 건다. 좋아하니까 영원히 곁에서 힘을 빌려달라는 순정남의 고백. 극장 안엔 삽시간에 소름이 퍼진다. 다만 같은 소름처럼 보여도 이유는 제각각인데, 팬이라면 응당 ‘머리를 올렸더니 미남자’라는 공식에 충실한 유타의 활약에 환호하며 대사의 맛을 음미할 것이다. 반대로 일반인들은 낯간지러운 대사의 민망함에 오그라들지도 모르겠다. 순애에 열광하는 오타쿠와 무례에 더 공감할 일반인 사이의 두꺼운 벽이 완전히 사라지는 데 놀랍게도 4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2021년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이 200만 관객을 돌파했을 때만 해도 단발성 신드롬에 가깝다고 여겼다. 일본에서부터 워낙 흥행작이라 기세가 심상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순애(純愛), 어쩔수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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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28일, 고3 학부모인 교수 A는 한 입시 전문가와 식사를 했다. ‘쓰앵님’께 스펙이 중요하다는 조언을 들었던 걸까. 이튿날부터 A는 연구실에서 인턴 증명서를 만든다. 2007년 6월부터 2009년 9월까지 한 사기업에서, 2009년 5월에는 한 국립대 센터에서, 자신의 딸이 인턴을 했다는 내용이다.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에 반영된 사기업 증명서는 기업명 중 한 글자가 잘못 표기됐다. 9월 모 사립대 입시에 제출된 국립대 센터 증명서는 센터용이 아닌 교수용 레터지였다. “그런 인턴은 없었다.” 관계자들의 하나같은 증언은 둘째치자. 기관 명의의 입시용 증빙서류를 학부모가 작성·저장·출력하는 날조 과정이 포렌식으로 명백히 밝혀졌다. A는 그러나 위조죄를 피한다. 공문서(국립대 센터 증명서) 위조는 공소시효 10년이 지나 있었다. 사기업 증명서 조작은 명의를 도용한 ‘위조’가 아닌 ‘허위 작성’으로 규정되었다. 아는 관계자에게 날인을 건네받았다는 이유다. 형법에 ‘허위 사문
[김수민의 클로징] 캐치 미 이프 유 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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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도 제철이 있다면 호러의 계절은 누가 뭐라 해도 여름이다. 왜 여름에 보는 호러가 더 제맛인 걸까. 공포를 맛에 비유하자면 매운맛과 닮았다. 매움은 맛이라기보다는 통증에 가깝다고 하는데, 공포영화를 보는 심경도 비슷하다. 다양한 종류의 불쾌감을 전제로 깔아야 얻을 수 있는 재미는 통증을 견뎌낸 뒤에야 오는 매운맛의 쾌감처럼 진입장벽이 만만치 않다. 어쩌면 여름이 호러영화의 계절로 자리 잡은 건 더울 때 뜨겁고 매운 음식을 먹는 것과 비슷한 심리가 아닐까 싶다. 공포에 흠뻑 젖은 뒤 등골이 오싹한 기분. 불쾌감의 허들을 통과한 자만이 즐길 수 있는 특권.
꽤 오랫동안 여름은 호러의 계절이었지만 최근 2, 3년 사이를 뒤돌아보면 그렇지도 않았다. 연휴 영화, 방학 특수 등 영화 개봉의 전통적인 사이클이 무너지면서 한동안 호러도 상시 개봉에 가깝게 계절을 타지 않았다. 그런 호러가 다시 여름 시장을 공략하며 돌아왔다. 정확히는 1년 내내 다양한 방식의 호러들이 꾸준히 개봉하는 것에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한여름 호러의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