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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났다. 극장 밖을 나섰으나 여전히 깜깜하다. 마지막 회차였으니 당연하겠지만 문득 밤이라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물리적으로나 시기적으로나 바야흐로 어두운 시간이 이어지는 중이다. 그럴 때 어떤 사람들은 희미한 희망의 빛을 찾아 다시 깜깜한 극장 한구석에 자리를 잡는다. 나 역시 그런 부류 중 하나다. 초조한 마음으로 몇편의 영화를 연이어 봤고, 희미하게나마 깜박이는 불빛을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혹자는 성냥팔이 소녀가 잠시 추위를 잊으려 켠 작은 성냥불이 한줌의 환상에 불과하다며 가여워하겠지만 나는 지금도 현실도피와는 다른, 어떤 결연한 선택이라 믿는다. 세상을 뒤집지 못하는 자에게도 꿈은 허락되는 법이고 소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을 했다. 이 감각이 휘발되기 전에 몇 글자 남기고 싶어 서둘러 메모장, 아니 성냥불을 켠다.
첫 번째 성냥불, <아침바다 갈매기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3관왕을 수상하자마자 빠르게 개봉하여 더 반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희망의 건너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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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의 저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추천하여 독서토론을 했다. 며칠 전엔 같은 주제의 특강도 했다. 질문이 들어왔다. “선물을 하거나 받을 때, 돈과 실물 가운데 무얼 선호하느냐”고. 한 1초간 멈춘 후에 답을 했다. 돈을 배제하는 건 아니지만 굳이 하나를 선택하자면 실물이라고.
성의가 오고 가야 하는 상황에서 상대가 ‘굳이’ 돈을 주거나 받기를 원한다면 차라리 깔끔해서 좋지만, 그 성의의 구체성이 액수로만 표현될 수밖에 없는 돈은 증여이지 선물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한다. 물론, 많은 이들의 부모님처럼 명확히 돈을 선호하는 경우엔 가벼운 마음으로 돈을 드린다. 축의금이나 부의금처럼 ‘돈이어야 하는’ 증여 상황이 잦으니 그럴 때에도 그에 맞는 ‘값’을 치른다. 규격화된 증여에 따르는 세무 투명성을 위해 기록을 남기는 게 좋다고 판단하여 내 계좌의 ‘수치’를 줄여 상대 계좌의 수치를 아주 약간 늘려놓는 방식을 취한다. 또 내게도 금전 증여, 정확히 말하면
[정준희의 클로징] 선물과 뇌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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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간 뉴스를 끊고 살았다. 종종 멘털이 개복치급으로 약해질 때 일상을 버티는 방식 중 하나다.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미국 대통령에 압도적인 우위로 당선되고, 윤석열 대통령이 아무도 기대하지 않던 기자회견을 연 날부터 뉴스를 보지 않았다. 매주 목요일이 <씨네21> 마감일인지라 정상적인 마감을 위해서라도 속 시끄러운 소식을 차단할 필요가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을 때 당장 할 수 있는 건 스트레스의 근원으로부터 멀어지는 것 정도다. 마감날 글을 못 쓰겠다며 울분을 토하는 후배의 열띤 항변을 초점 없는 눈빛으로 흘려들으며 번뇌로부터 나를 보호했다. 그렇게 내 주변 자잘한 일들에만 신경 쓰며 버틴, 나름 평안한 한주가 될 줄 알았다.
살얼음처럼 얇았던 (가짜) 평화에 금이 간 건 어머니 때문이다. 어머니는 영화를 딱히 좋아하지 않으신다, 고 늘 생각해왔다. 아직도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정확히 모르실 정도이니 관심이 없으실 거라 지레짐작했다. 그런 어머니가 어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받기 전에 먼저 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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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과학이나 공학에 관심이 없다는 편견 때문일까. 그 편견을 깨고 여성 독자에게 호소하기로 마음먹은 듯한 표지를 단 책들이 가끔 눈에 띈다. 젊은 남성 둘이 함께 쓴 과학책의 표지에는 후드티를 입고 안경을 쓴 대학원생처럼 보이는 단발머리 여성이 서 있고 중년 남성 과학자가 쓴 책의 표지에도 언뜻 치마에 실험복처럼 보이는 겉옷을 걸친 여성이 있다. 또 다른 중년 남성이 쓴 인공지능 책에는 애교머리를 살짝 뺀 긴 머리에 발그레한 볼을 한 여성 청소년의 옆모습이, 여러 명의 물리학자가 함께 쓴 어떤 책의 표지에는 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는 작은 소녀의 실루엣이 보인다. 후자의 책을 쓴 저자를 찾아보니 남녀 물리학자가 섞여 있었다.
궁금하다. 도대체 왜 과학책의 표지에 여성 이미지를 쓰는 것일까? 여성 독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의도라는 나의 추측이 맞는 것일까? 구매자의 성별과 연령을 보여주는 한 온라인 서점에서 앞에서 언급한 책들을 찾아보니 놀랍게도(?) 이 책들을 가장 많이 구
[임소연의 클로징] 과학책 표지의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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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을 맡은 지 딱 1년이 됐다. 원래 기념일이나 햇수를 잘 챙기는 편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공교롭게도 기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11월3일 프로게이머 페이커 선수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우승을 달성한 것이다. 리빙 레전드의 눈부신 길을 목도하며 되뇐다. 아, 벌써 1년이 지났구나. 지난해 4회 우승으로 왕의 귀환을 증명했을 때 아직 손에 익지 않은 코너 ‘오프닝-편집장의 말’에 삐걱거리며 존경과 경탄을 짧게 기록한 적 있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을 초월적인 업적은 때로 분야를 넘어 보편타당한 경이로움으로 연결된다.
이번 결승전을 라이브로 보며 심장이 크게 두번 두근거렸다. 도파민이 폭발하는 짜릿한 역전 한타의 순간, ‘고전파’(페이커의 아마추어 시기 닉네임.-편집자) 시절을 방불케 하는 피지컬과 야수의 심장으로 채색된 경기 운영이 빛난 4, 5세트는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였다. 이윽고 폭풍 같던 환희의 순간이 지나간 뒤 대회를 마무리
[송경원의 오프닝] 영화의 운명, 경이로운 길을 따라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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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당일 관할 내 대규모 집회·시위가 예정돼 있어 용산구의 치안을 책임지는 용산경찰서로서는 집회·시위 대비와 핼러윈데이의 질서유지를 모두 담당하게 됨으로써 경력을 실효적으로 운용하는 데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태원 참사 책임자들에게 내려진 1심 판결문의 내용 일부다. 대통령실 이전이 이태원 참사의 주요 원인이라는 것을 사법부가 공식 인정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3월 당선되자마자 대통령실 이전을 추진했고 기어이 용산에서 취임을 맞았다. 늘어날 집회에 맞춰 경찰 인력을 증원하고 재배치할 시간이 없었다.
대통령실 이전은 윤석열 정부의 실패를 확정 지은 사건이다. 윤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 청산’을 내걸고 제왕적 방식으로 대통령실을 이전했다. 비용 집행은 예비비로 이뤄졌다. 예비비는 예산 편성 과정에서 예상할 수 없는 지출에 대비한 것이다. 대통령실 이전은 신규 정책 사업으로서 예산 편성 과정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추가경정예산도 법령 개정도
[김수민의 클로징] 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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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던 작품을 봤다. 일본 인기 만화 <원피스> 25주년 기념으로 제작된 <원피스 팬레터>(ONE PIECE FAN LETTER)는 빈칸을 채워주는 선물 같은 이야기였다. 시점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시야에 가려졌던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원피스>에서도 의미가 남다른 정상 전쟁 2년 후를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은 본작의 주요 등장인물 대신 ‘원피스’를 추구하지 않는 보통 사람들의 시점으로 굵직한 사건들을 재구성한다. 초인적인 능력을 휘두르며 각자의 꿈과 신념을 위해 싸우는 주인공들이 있는가 하면, 주먹 한방에 쓸려서 우수수 날아가던 엑스트라 해병1, 2, 3도 있다. 평범한 이들의 관점에선 바다를 얼리고 지진을 일으키는 주인공들의 멋들어진 전투는 사실 재앙에 가깝다. 그럼에도 해병들은 보잘것없는 몸뚱이를 이끌고 언제 가루가 되어 날아가버릴지 모를 무시무시한 전장에 서 있다. 왜. 무엇을 위해.
세상을 바꿀 특별한 능력이 없다고 해서 꿈과 신념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독립영화,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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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이후’(post-growth)라는 말이 있다. 20세기 후반의 전 지구적 산업문명은 국내총생산(GDP)으로 측정되는 경제성장을 지상명령으로 최고의 조직원리로 삼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기후 위기, 극심한 불평등, 인구 위기, 사회 해체 등으로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는 21세기의 현실에서는 전혀 다른 원리로 경제와 사회를 조직해야 한다. 그 새로운 대안적인 원리는 무한성장이 아닌 ‘인간과 자연의 좋은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 안에 담긴 함축된 내용이다.
이렇게 말하면 단박에 현실을 조금도 모르는 낭만적 이상주의자라는 비웃음이 쏟아져나온다. 경제성장 없이 어떻게 산업사회의 조직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좋은 삶’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하려면 마음 맞는 몽상가들끼리 모여서 공동체나 만들어서 조용히 살 일이지 떠들어대지 마라. 우리는 경제성장의 엔진을 힘차게 돌릴 것이다 등등.
나는 반대로 묻고 싶다. 이상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바로 그 ‘현실’에 대한 질문이다
[홍기빈의 클로징] 성장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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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진창이야. 다시 써봐.” 오랜 지인이 등단을 했다. 국문과 졸업한 지 15년이 훌쩍 넘었으니 그동안 집필의 끈을 놓지 않은 의지만으로도 존경의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술기운이 적당히 오른 축하 술자리, 지인은 대학 시절 내가 자신의 글을 보고 했던 ‘엉망진창’이란 한마디가 갑자기 떠오른다며 불쑥 술잔을 내밀었다. 묵은 응어리를 푸는 회포의 잔도, 나의 건방지고 못된 말에 자극받아 계속 글을 쓸 수 있었다는 훈훈한 성공담도 아니다. 그냥 문득 지금 그 말이 떠올랐다며, “네가 비평을 업으로 삼은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해맑게 웃는 그의 모습에 생각이 복잡해졌다.
그는 내가 적성에 맞는 일을 찾은 것 같다고 했지만 실은 매 순간 번민의 늪 속을 허우적거린다. 이 걸작들을, 벅차오르는 순간을, 감히 이렇게 몇마디 조악한 단어들로 정리해도 좋은 것인가. 내가 뭐라고. 뭘 얼마나 안다고. 악의 없는 그의 미소가 안겨준 자괴감을 음미하며, 마음이 너덜너덜해지면서도 이 짓을 계속하는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애매한 재능을 견디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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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회과학자다. 모든 관심은 사회에서 시작하고 모든 고찰은 사회를 개선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한국과 세계가 실로 대격변을 겪던 1980년대 후반, 고등학교 시절에 이 길을 걷기로 마음을 먹었고, 그 결정은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는 결국 자연의 일부이기도 하지만, 사회 안에서만 인간으로서의 삶을 누릴 수 있다. 따라서 내게 이 사회는 영원한 숙제이다. 나는 사회과학을 사랑한다. 우리가 사회를 지어 살아가는 한 사회에 대한 탐색과 질문 그리고 해답 찾기는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사회는 이런 사회과학의 느린 몸짓을 비웃으며 저 멀리 달아나고 있다. 미국 사회과학은 왜 트럼프가 멀쩡히 살아 돌아와 기세등등하게 유권자를 후리고 다닐 수 있는지 해명하지 못한다. 유럽 사회과학은 홀로코스트의 비극 이후 영원히 묻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던 극우의 발호를 눈뜬 채 방임하고만 있다. 한국 사회과학은 우리 민주화 과정이 왜 이런 대통령과
[정준희의 클로징] 어느 부끄러운 사회과학자의 소심한 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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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산처럼 높은 파도의 위용보다 하얗게 부서진 포말이 더 깊은 여운과 잔향으로 기억된다. 좋은 드라마도 마지막 페이지의 결과보다 과정이 메아리처럼 되돌아와 완성되는 법이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열풍이 남긴 후일담을 들으며 어느덧 우리도 맹목적인 결과지상주의의 터널을 지나 과정을 즐길 정도의 여유가 생겼음을 실감했다. 우승의 영광은 나폴리 맛피아에게 돌아갔지만 사람들의 반응을 보니 좀더 마음을 울리는 드라마를 써내려간 쪽은 아무래도 에드워드 리 셰프였던 것 같다.
다듬어지지 않은 애정은 간혹 차별과 공격의 언어를 동반하기도 한다. 에드워드 리의 서사를 응원하는 이들 중 일부는 호텔에 머물며 연습할 여건이 되지 않았던 그가 상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이었다며 공정성 문제를 지적했다. 이에 대한 에드워드 리의 화답은 그가 만든 어떤 요리보다 깊고 진한 맛을 전한다. “주방이란 무엇인가요? 주방은 화려한 장비나 고급 식재료뿐 아니라 열정과 사랑, 창의력을 발휘하는 곳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곧은 말, 너른 삶. 굽은 말, 부박한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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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것은 본능 아닌가요?” 최근 북토크에서 받은 질문이다. <나는 어떻게 성형미인이 되었나>의 저자로서 여러 독자들을 대상으로 북토크를 해왔지만 여자 고등학생들만 모인 자리는 그날이 처음이었다. ‘아름다움을 향한 욕망은 여자의 본능,’ 아름답게 꾸민 여성이 등장하는 수많은 뷰티 제품 및 패션 광고가 전해온 메시지다. 당연한 사실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그 반대여서인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내 책을 읽은 어떤 독자에게도 이 질문을 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그날 깨달았다.
이 반가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새들과 춤을>이라는 다큐멘터리영화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암컷의 눈에 들기 위해 춤을 추고 또 추는 수컷 새들을 실컷 볼 수 있는 영화. 배에 노란 깃털이 가득한 어떤 수컷 새는 머리에 달린 몸 전체보다 긴 깃털을 사방으로 흔들어대고, 까만 몸통에 쨍한 파란색 깃털로 포인트를 준 또 다른 수컷 새는 나무 끝에 간신히 몸을 기대고 ‘폴
[임소연의 클로징] 아름다워지고 싶은 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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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종이에 쓴 기록처럼 ‘정보’의 속성을 지닌 반면 추억은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새겨진 가 아닐까 싶다. 이제 10월 초의 부산은 예전만큼 쌀쌀하지 않흔적을 더듬는 ‘감각’에 가깝다. 내 경우엔 가을바람이 쌀쌀해지기 시작하면 조건반사처럼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가 생각난다. 기분 좋게 선선한 바람으론 부족하다. 얇은 겉옷 사이로 바람이 뚫고 들어와, ‘겨울옷을 꺼내야 하나?’ 살짝 고민이 될 정도가 되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부산영화제와 관련해 잊히지 않는 경험, 몸에 새겨진 기억 중 하나는 대형 스크린이 마련된 수영만 요트경기장에서 덜덜 떨어가며 봤던 야외 상영이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고생하며 봐야 하나 싶었지만 막상 영화가 끝난 후, 더할 나위 없는 충만감으로 가득했던 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제목을 밝히기 곤란한) 그때 그 영화를 얼마 전 우연히 다시 보았는데 너무 엉망이고 재미가 없어 깜짝 놀랐다. 그 시절의 나는 무엇에 그렇게 취하고 반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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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부산 밤바다, 그 날씨에 담긴 BIFF의 추억. 그리고 새로운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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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 속 첫 번째 미국 대선은 1992년이다. TV 뉴스에 민주당 후보군이 소개되었을 때 후반부에 나온 한 젊은 후보를 보고 “대통령처럼 생겼네”라고 중얼거렸다. 이 비과학적 예언은 적중했다. 4년 뒤 맞이한 미국 대선은 ‘인생 선거’였다. 공화당 밥 돌 후보의 작은 정부론과 감세안이 복지국가의 원칙을 거스른다고 판단했고 이는 내 정책 체계의 1층에 자리 잡았다. 역대 미국 대선에서 줄곧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다. 미국 민주당은 유럽의 좌파 정당에 비하면 보수적이지만 적어도 조세와 노동, 성평등과 소수자 권리를 ‘나중에’ 논하자며 뒷걸음질치는 정당은 아니다.
2020년 한국에는 자신이 진보라면서 트럼프를 지지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혐오 정치의 세계화에 무딜 뿐만 아니라 한반도 평화에 대한 식견도 좁다. 트럼프의 모험이 북미 관계의 미래를 미리 보여준 측면은 있으나 거기서 끝이었다. 체계적이지 못한 이벤트식 접근 때문에 북미 대화가 중단되는 것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어차피
[김수민의 클로징] 게임 체인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