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생각한다.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는 사람들에게 묻곤 한다는 질문. 조금 정신이 흐려지더라도 고통을 줄이는 쪽을 원하세요, 통증이 있더라도 정신을 유지하기를 원하세요. 이 물음에 자신 있게 후자를 선택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지금의 몸에 아픈 부분이 없거나 큰 아픔을 이겨낸 경험이 있는 강인한 사람이리라. 지금 무슨 생각을 하든 실제로 그 상황에 처하지 않고서는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 알 길은 없다. 요컨대 정신은 몸이며, 몸 이상의 정신을 가질 일은 평생 구도자로 살지 않는 이상은 없다.
책은 책의 몸을 가진다. CD는 CD의 몸을 가진다. 트위터는 트위터의 몸을, 영화는 영화의 몸을 가진다. 각각의 몸은 그 정신을 전달하는 역할을 넘어 제한하는 역할을 한다. 책은 책이라는 몸의 제한 속에서 정신을 구현한다. 사각 종이의 한 모서리가 묶여 있고 그 앞뒤가 표지로 보호된 책은 독자의 몸이라는 물리적 한계를 따른다. 인간의 몸보다 큰 책을 만들 수는 있겠지만 그런 책은 읽히기 위한 목적보다는 기념물 내지 오브제로서의 목적을 가질 것이다. 보통의 책은 아무리 길어도 1500페이지를 넘기기 쉽지 않다. 책이 창고의 공간을 점유하고 독자의 책장에 꽂혀야 하며, 물류센터의 직원과 서점의 직원과 독자가 책을 들고 옮길 수 있고, 독자가 책을 읽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정신은 몸의 제한을 통과한 후 구현된다.
최근 북디자이너이자 타이포그래피 전문가인 유지원 작가를 인터뷰했다. 그는 김상욱 교수와 함께 쓴 책인 <뉴턴의 아틀리에>를 직접 디자인하면서 어떤 점들을 고민했는지 이야기했다. 물리학자와 함께 내는 책이므로 물성이 고려된 디자인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원칙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책은 거짓말을 하는 물건이 되니까요.” 정신과 몸이, 내용과 형식이 일치하기를 바라는 마음. 테드 창의 <네 인생의 이야기>가 그 주제의식대로 시간을 뒤섞는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는 것이나, 사데크 헤다야트의 <눈먼 올빼미>가 그 황폐한 마음을 훤히 드러낸 책등의 붉은 실로 구현한 것을 볼 때와 비슷한 쾌감이 느껴졌다.
매주 영상을 올리면서 영상의 몸을 본다. 매주 춤을 추고 운동을 하면서 아드레날린으로 피어나는 정신을 감지한다. 곧고 유연하고 군더더기 없는 몸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다. 나보다 책이 주목받을 수 있는 영상, 전달해야 하는 내용과 삭제해도 되는 내용이 잘 구분되어 있는 대본, 보는 사람의 눈과 귀를 편안하게 유도하면서도 흥미를 잃지 않게 하는 영상의 색, 디자인, 말투와 감정, 손짓. 한편으로는 달리고 싶다는 충동, 달리면서도 평온한 호흡, 춤을 추며 끝까지 뻗은 손, 안으로도 밖으로도 휘는 척추, 호흡과 함께 움직이는 몸. 공감이라는 찌르르한 뇌의 신호도 무뎌지지 않게 연마하기. 살아 있는 몸을 만들고 유지하는 일이 나의 정신을 이끌 것을 생각하며 뛰고 추고 읽고 보고 쓰고 만든다. 이것만 할 수 있어도, 아니 이걸 할 수 있다면 충분히 잘 살았다고 말해도 좋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