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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즈음, 오랜 친구가 밤에 불쑥 전화를 했다. “방 청소를 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문집을 발견했는데, 네가 아주 변태같은 글을 써놔서 네 생각이 났다”는 전화였다. 그렇다. 그는 나의 좁은 인간관계에서 악우(惡友)라는 농이 어울리는 귀한 친구다. 나는 또 나대로 그 말에 흥미가 동해, 문집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고 했다.
그는 얼마 후, 정말 문집에서 내 글을 찍어 문자로 보내주었다. ‘여름의 대삼각형’(여름의 북반구 밤하늘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밝은 별 3개가 이루는 삼각형)이라 일컫는 베가, 데네브, 알타이르에 대한, 조금도 귀엽지 않을 뿐 아니라 그리스 문자까지 병기한 다소 장황한 설명이었다. 그는 사진을 보내며 중학교 2학년도 아니고 초등학교 6학년이 학교 문집에무슨 이런 글을 쓰냐, 너는 역시 그때부터 변태였다며 낄낄 웃었고, 나는 읽어보고 “ㅎㅎ 나 같은 글이네”라고 했다.
우리는 연락을 한 김에 약속을 잡았다. 토요일, 여의도였다. 나는 그가 약속한 칼국숫집 앞
낭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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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에밀 아돌리노 / 출연 패트릭 스웨이지, 제니퍼 그레이 / 제작연도 1987년
동화 같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범죄영화, 코미디, 사극,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관객으로서 ‘왕자와 공주는 행복하게 살았대요’ 같은 해피엔딩을 좋아한다. 주인공이 온갖 어려움을 극복한 뒤 마지막에 행복해지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내 인생의 영화를 꼽아달라니 기억을 대학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해서 난감하다. 예전에는 모든 게 명동에 몰려 있었다.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백화점들이 그곳에 있었다. 지금 롯데백화점 영플라자 자리에 있던 미도파백화점을 기억하는 <씨네21> 독자들이 있을까. 앙드레 김 숍을 포함해 유명한 뷰티숍들 모두 명동에 있었다. 당시 명동은 젊음이 넘쳤고 화려했다. 그곳에서 영화를 보고, 거리를 걸으며 사람을 구경하고, 군것질도 했었다. 명동성당 옆에 있었던 중앙극장, 유네스코 회관 안에 있던 코리아극장 등 극장들도 많았다. 모바일로 간단하게 예매한
[내 인생의 영화] 배우 김성령의 <더티 댄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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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무당이 된다는 소리를 듣고 예언의 그때가 지날 때까지 겁에 질려 지냈단 이야기를 이 지면에서 한 적이 있다. 실은 며칠 전에 또 신점을 봤다. ‘이젠 무속인이 뭐라든 개의치 않는다!’는 치기로 석
달 전에 예약했고, 막상 가서는 입담 좋은 무당이 전하는 업계 소식을 듣다가 왔다. 무당은 다들 자기 신이 최고라 여겨서 협회를 못 만 든다기에 깔깔 웃었는데, 집에 와서 찾아보니 관련단체가 많다. 기껏 들은 좋은 얘기도 별 신빙성이 없겠다 싶으니 조금 섭섭하다.
익숙한 무당과 낯선 ‘방법사’가 등장하는 tvN <방법>은 요약하면, 한국 오컬트 전문직 드라마다. “방법 몰라요? 저주로 사람을 죽이는. 한때 인터넷에서 유행했던 말이기도 하고.” 안다. 훔쳐간 나일론 방석을 도로 가져오지 않으면 손발이 오그라들게 ‘방법’한다길래 저렇게 소소한 일로 사람을 저주하나 웃고 넘겼지 업으로 키워 드라마가 될 줄은 몰랐다. 고등학생 방법사 백소진(정지소)은 사진과 한자 이름,
<방법> , 두려움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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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풍경이 디스토피아로 변하는 건 한순간이구나 싶다. 코로나19 국내 확진자가 급격하게 늘어난 지난 1주간 영화계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지켜보며 전례 없는 위기가 닥쳐왔음을 느낀다. 2월 마지막 주말 극장을 찾은 관객이 전국 70만명 이하로 급락한 한편, 주초의 일일 관객수는 7만명대를 기록했다. 이는 사실상 역대 최저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번주 국내뉴스 기사에서 자세히 소개했듯, <사냥의 시간> <이장> <콜> <후쿠오카> <결백>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 <페어웰> 등의 개봉예정작은 행사를 취소하고 극장 개봉을 연기했으며 한국영상자료원, 서울아트시네마, KT&G상상마당시네마 등 멀티플렉스 이외의 주요 상영시설들은 임시 휴관을 결정했다. 그동안 여타의 국가적 재난이나 위기 상황 속에서도 극장만큼은 큰 차질 없이 운영되어왔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직격탄을 맞은 극장의
[장영엽 편집장] 작은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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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부터 제법 걸었다. 설 연휴를 끼고 런던으로 출장을 다녀왔고, 돌아와서는 도시 곳곳을 걷는 데 몰두하고 있다. 짧게는 30분부터 길게는 두어 시간 남짓 걸리는 산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래 걸어도 발이 편한 운동화이지만, 그만큼 중요한 게 바로 음악이다. 밤과 낮, 아침을 오가며 매일 가던 거리와 오랜만에 마주한 골목을 다니며 들은 재생 목록에는 근래 즐겨본 영화음악이 있었다. 2012년 개봉한 미국영화 <루비 스팍스>도 그중 하나였다. 개인의 연애라는 관점으로 복기하면 결국 우리가 느끼는 사랑이 무엇인지 묻는 작품이란 걸 알게 된다.
영화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은 닉 우라타가 지휘했다. 종종 나오는 밝고 즐거운 장면 뒤에 흐르는 흥겨운 밴드음악도 매력적이지만, 음반에 담긴 22곡 중 영화의 가장 진지하고 어두운 이야기가 드러나는 맨 앞과 맨 뒤의 곡을 특히 좋아한다. 영화 속 소설가는 그의 작품에만 존재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여성상을 글로 창조하고, 어떤 연유
[마감인간의 Music] 닉 우라타 <루비 스팍스> O.S.T, 산책의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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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박이 좀 있으신 것 같군요. 정확히는 강박으로 인한 불안이에요.” 정신과의사는 내 불안의 원인이 강박이라고했다. 특히 의사소통에 있어서 완벽하게 전달하려는 강박이 있는 것 같다고 부연했다. 믿을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와 강박은 거리가 먼 것 같았다. 나는 미역국을 먹고도 시험을 볼 수 있고, 심지어 짝짝이 양말을 신고도 외출을 할 수 있는 사람인데!
의사에게 내 강박에 대해서 강박적으로 더 캐묻고 싶었으나, ‘그런 태도가 바로 강박입니다. 강박인데 강박이 아니게끔 보이려고 하는 것도 강박이지요’ 따위의 말장난 같은 타박을 들을까봐 관뒀다. 나는 강박이 없으니까 강박이 없는 사람처럼 의연해야 했다. 하지만 진료실에서 나온 그날부터 강박은 일종의 화두가 되었고, 꺼지지 않는 불씨로 남아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강박이 공황발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우스꽝스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의사가 말한 의사소통 강박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완벽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
답 없는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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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안드레아 아놀드 / 출연 나탈리 프레스, 대니 디어, 조디 미첼, 몰리 그리피스 / 제작연도 2003년
글에 생명력을 담으려 카메라를 샀다. 처음 의도와 다르게 카메라 안에서 형형색색 쏟아져 나오는 활기에 빠져들어 풍경을 수집하듯 촬영하고 편집해나갔다. 더 생생하게 담기 위해 망원렌즈에서 광각렌즈로 거리가 가까워질 때쯤 문득 눈앞에서 다채롭게 살아 있는 것들이 카메라 안에서 죽어간다는 죄책감에 빠져들었다. 돌파구가 필요했고 해답으로 서사를 만들어나갔다. 하지만 내가 써낸 서사 안에서의 인물들은 언제나 수동적이고 저항할 수 있는 의지를 갖추지 못한 채 끝내 갇히고 말았다. 암전 속에서 무력하다고 느껴질 시기,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의 단편영화 <말벌>을 보았다.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카메라 안에서 명멸 없이 발광하는 생명력을 느꼈다. 나는 이 영화를 한 픽셀씩 분리해나가면서, 다채롭게 살아 있는 것들이 카메라에 담기고도 생명력을 잃지 않는 법에 대해 고민했다.
영화
[내 인생의 영화] 조민재 감독의 <말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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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못하는 사람에게는 몇 가지 패턴이 있다. 사전 준비를 꼼꼼히 하지 않는다. 재료를 다루다 허둥댄다. 맛을 보면 잘못됐다는 건 알지만 수습할 줄 모른다. 일단 끝나면 모든 것을 잊는다. MBC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자칭 타칭 ‘손 많이 가는 사람’이자 가수 겸 배우인 손담비는 심지어 가위질할 때 요령조차 없다. 뜨거운 프라이팬을 물티슈로 닦고, 먹다 남은 된장찌개를 냄비에 붓고 끓여두지 않는다. 한국 예능에 모처럼 빛나는 여성 요리치가 등장한 것이다(마침 같은 날 방송된, 얼어붙은 제육을 통째로 팬에 던져 넣고 부서지도록 볶는 개그맨 장도연의 호방한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그동안 예능에서 남자들의 ‘서툰 요리 실력’은 꽤나 흔하고 인기 있는 아이템이었다. 재료가 썩어가는 냉장고를 거리낌 없이 공개하고, 부엌을 난장판으로 만들며 사람이 먹을 수 없을 것 같은 음식을 만들어도 욕먹지 않았다. 요리는 남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즉, 여자라면 잘
<나 혼자 산다>, 잘하지 못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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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얻게 될 줄은 몰랐다. 1243호 ‘<기생충> 스페셜 에디션’을 발간한 뒤, <씨네21>의 일주일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흘러갔다. 발간 하루 만에 온라인 판매분이 전량 매진되는 한편, 회사에는 스페셜 에디션의 구입처와 재고를 문의하는 전화가 빗발쳤다.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일주일 새 윤전기를 두번 더 돌리는 ‘사건’도 일어났다. 잡지 포장과 발송 지옥에 갇힌 마케팅 담당자들의 다크서클이 하루가 다르게 짙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안타까웠지만, 각종 웹사이트와 SNS에 독자들이 올린 구매 인증숏과 후기를 보며 잡지를 제작한 구성원들 모두가 즐겁고 뿌듯한 마음으로 한주를 보냈다는 점을 알려드리고 싶다.
1243호의 인기에 힘입어 <기생충> 국내 개봉 당시 <씨네21>이 발간했던 과월호를 찾는 독자들도 많아지고 있다. 지면을 빌려 한 가지 ‘팁’을 드리고자 한다. ‘<기생충> 스페셜 에디션’과
[장영엽 편집장] 아날로그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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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아 리파의 새 앨범 아트워크는 레트로 모던 매시업이다.” <보그>가 두아 리파의 2집 앨범 《Future Nostalgia》 커버를 묘사한 글이다. ‘뉴트로’가 한국에서만 쓰이는 단어라 저렇게 표현했을 뿐이지 사실상 ‘뉴트로’를 말한 것이다. 커버를 보면 1950년대 SF영화 포스터 같은 사진이 등장한다. 클래식 자동차에 탄 두아 리파가 달과 우주를 배경으로 오스틴 파워 같은 의상을 입고 있다. ‘퓨처 노스탤지어’라는 제목에 잘 어울리는 재치 있는 디자인이다.
최근 싱글 <Physical>에선 올리비아 뉴튼 존의 1981년 <Physical>을 오마주했다. 가사만 일부 인용한 것이 아니라 마음 말고 육체적 교감을 원한다는 원곡의 맥락을 그대로 가져왔다. 음악적으로도 그 당시 유행하던 신스팝, 디스코의 색깔이 강하다. 유로댄스 같은 의도된 촌스러운 구간도 등장한다.
첫 싱글 <Don’t Start Now>도 70년대와 80년대로 돌
[마감인간의 Music] 두아 리파 , 퓨처 노스탤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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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1월, 조선어로 쓰이는 몇 안 남은 문예지인 <문장>에 ‘문학의 제諸 문제’라는 흥미로운 좌담 기록이 실린다. 대표적인 조선 문인들이 총출동한 이 좌담에서 ‘문학상’은 뜨거운 화두였다. 일본 문학계가 ‘조선예술상’을 제정해 조선문학을 오키나와문학·규슈문학 같은 ‘지방문학’으로 흡수하려 했기 때문이다.
소설가 이태준이 “상의 명예가 받는 측에 있는지 주는 측에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도 유행합니다”라며 말문을 열자, 시인 김기림은 “주는 측으로 먼저 명예도 있고 채산採算도 있겠지요”라고 시큰둥하게 답한다. 평론가 임화는 “타는 사람으로도 창피한 일”이라고 일축했다. 소설가 박태원이 “아이러니”라고 지적한 이 상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이쪽에서는 받는다는 말두 없는데 제 맘대로 준다고 정해놓고 떠든다는 것은 좀 우스워”라는 김기림의 일침, 그리고 조심스럽지만 명백히 냉소와 저항의 의미를 담은 일동의 “웃음소리笑聲”로 끝맺는다. 주는 측의 “명예”와 “채산”때문에
나쁜 전통과 ‘끊어진 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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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범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남자 형사가 오열하는 이야기. 깊은 무기력에 빠져 있던 그들을 일으키기 위해서 또 다른 여성 피해자가 줄줄이 죽어나가는 드라마의 제목을 십수편은 댈 수 있다. 여성의 사체를 다양하게 전시하고 훼손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이야기인지 묻고 싶었고, 저항하지 못하는 상태의 여성 신체에 대한 도착증을 의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쪽 장르도 반복을 거듭하면서 조금씩 변주되는 지점이 보인다.
OCN 드라마 <본 대로 말하라>는 약혼자를 잃은 천재 프로파일러 오현재 역의 장혁, 몸을 잘 쓰고 절권도를 구사하는 그를 전동 휠체어에 고정시켰다. 대신, 현장을 뛰는 것은 본 것을 사진처럼 저장해 기억하는 픽처링 능력을 지닌 시골 순경 차수영(최수영)이다. 앞서 오현재의 능력을 발견하고 성장시켰던 광역수사대 팀장 황하영(진서연)이 차수영을 알아보고 광수대로 차출했다. 극중 잔혹한 장면은 끊이지 않지만, 징벌의 의미로 전시되는 사체는 주로 남성이다.
<본 대로 말하라>, 범죄수사물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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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영화 <기생충>의 모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한국과 미국 LA와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취재했고, 일본·홍콩·베트남·미국·캐나다·영국·프랑스·스페인으로부터 온 답신을 바탕으로 지난 9개월간 <기생충>이 그려온 궤적을 재구성해보았습니다. 김성훈 기자가 미국 LA에서 취재한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과 <기생충> 4관왕 수상 기자회견이 <기생충>팀이 거쳐온 여정의 행복한 종착지라면, 김혜리 기자가로테르담에서 만난 봉준호 감독, 이주현 기자가 취재한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의 코멘터리는 지난해 5월 황금종려상 수상 이후 오스카 레이스까지 <기생충> 제작진이 겪은 흥미진진한 경험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도대체 <기생충>이 왜 이렇게 해외에서 인기인지’ 궁금했던 분이라면 임수연 기자가 취재한 <기생충>의 해외 배급사 관계자 8인의 답변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또 한국 포스터 못지않게 화제였
[장영엽 편집장] <기생충> 스페셜 에디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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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the Oscar goes to…”라는 말에 이토록 가슴 졸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의 주요 제작진이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을 수상한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은 <기생충>의 후반부를 처음 보던 순간만큼이나 충격과 놀라움을 안겨줬다. <기생충>의 수상이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까닭은, 비단 한국영화 최초로 오스카상을 수상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봉준호 감독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이야기한 “1인치도 안되는 자막의 장벽”을 가진 비영어권 영화들이, 가장 영향력 있는 북미 시상식에서 할리우드영화와 동등하게 경쟁해 합당한 존중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기생충>의 작품상 수상이 일깨웠다는 점이 더욱 중요해 보인다. 오랫동안 높은 적중률로 아카데미 시상식 결과를 예측해온 <씨네21>도 작품상, 감독상 결과를 기존의 관습에 따라 예상했음을 이 자리를 빌려 반성한다. 가능성의 마지노선을
[장영엽 편집장] 영화의 모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