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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일탈>의 시대는 다시 오지 않는가?
우석훈(경제학자) 2021-02-24

자우림의 노래 몇개를 좋아하고,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를 정말로 좋아한다. 그렇지만 자우림 앨범을 찬찬히 들어본 적은 없었다. 그러다가 <일탈>의 가사를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파트 옥상에서 번지점프를 하고, 신도림역에서 스트립쇼를 하고, 선보기 하루 전에 홀딱 삭발을, 이런 가사가 한국에 또 있었나, 그런 생각을 했다. 아내가 김윤아 또래인데, 환경 활동가 시절에 새만금 농성을 시작하면서 삭발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결혼을 결심했다.

공교롭게도 자우림 1집은 1997년 11월에 나왔다. IMF 경제 위기와 함께, 딱 한번 한국에서 만개하려고 하던 다양성의 시대, 그런 흐름의 날개가 꺾였다. 군사정권 이후 획일성을 강요받던 그 시기가 미처 정리되지 않고 우리는 21세기를 만났다. 일탈을 대놓고 노래 부르던 시기는 다시 오지 않은 것 같다. 한국의 문화는 사관학교라는 비유를 써도 이상하지 않은 기획사 연습실로 들어가거나, 자신의 목줄을 쥐고 있는 오디션 방송의 심사위원 앞에서 고분고분하게 “선배들을 존경하는” 집단 관음증처럼 되어버렸다.

다시 팬데믹과 함께 경제 위기가 왔다. 그동안 충분한 복지와 안전망 없이 적당히 입으로만 경제를 얘기하던 시기가 되었고, 영화를 비롯한 많은 문화 생산자들이 현장에서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물론 아무리 경제 위기라도 장사할 놈은 다 장사하고, 떼돈 버는 놈들도 나온다. 그렇지만 자본과 잘 결합된 특별한 요소가 있어야 그렇고 전체적으로는 획일성을 높이는 쪽으로 경제 위기가 작동한다. 우연히 방송국 문서를 볼 일이 있었는데 “작고 내적으로 단단한 얘기”라는 표현이 나왔다. 이게 뭔지 잘 몰라서 물어봤더니 로코, 로맨스 코미디를 얘기하는 거라고 했다. 영화든 드라마든 위기와 함께 불확실성이 워낙 높아지다 보니 다들 로맨스 코미디만 찾는 거란다.

많은 생태계가 그렇듯이 획일성이 높아지고 다양성이 줄어들면 사회적으로 퇴행적 현상이 일어난다. 나훈아쇼가 KBS를 장식할 때 좋아하는 사람도 많았겠지만 사회적 퇴행의 전조라고 생각한 나 같은 사람도 있었을 것 같다. 자우림에 열광했던 사람들도 이제 40대고, 그들이 청년기에 잠시 누렸던 풍요의 시대는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다.

코로나19 경제 위기, 일탈보다는 생존이 덕목이 되고, 기득권들은 이래라저래라 더욱 꼰대스러워질 것이다. 지금의 20대는 경제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잃어버린 세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정치권은 그들의 정치적 선택을 표로만 계산하지만 그들의 문화적 선택이 무엇인지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아득한 기억 속에서 “머리에 꽃을 달고 미친 척 춤을”, 이렇게 IMF 위기 한가운데에 버거워하던 청춘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것과 비교하면 코로나19 국면의 대한민국은 너무 질서정연하고, 재미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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