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속 사람들 마음을 캐내겠다는 당찬 포부를 품고 나서 알게 된 것은 똑같은 일을 해본 이들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다른 분야에서 공부한 분들께 여쭈는 것뿐이라 여러분을 귀찮게 해온 지도 근 20년이 되었다. 그만큼 많은 연을 이었다면 당연히 작은 도움이라도 드려 은혜의 일부라도 갚아야 하기에 항상 어딘가에 가야만 하는 일로 일정이 채워졌다. 짬을 내어 쉬기 어려웠던 시간을 꽤 오래 가진 후, 최근 바이러스가 강제 휴가를 선사해주었다. 미리 예약한 호텔은 거리두기를 위해 취소하고 집 안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냈다. 한가롭기만 할 줄 알았지만 놀랍게도 기술의 발전으로 짧은 시간 동안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것을 보았다.
시작은 여행 유튜버들의 모험이 담겨진 클립들이었다. 그들의 온갖 고생은 나의 근육의 수고로움 없이도 이국적 풍광을 눈앞에 펼쳐주었다. 그곳에서 살아간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할 것인가 공상을 하다 정보를 더 얻기 위해 현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유튜브를 찾아본다. 깨알 같은 어려움이 구구절절 표현된 영상을 보고 나면 예방주사를 맞은 것이라 생각하며 다시 일상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관광지로 유명한 곳을 실컷 보고 나서 동유럽이나 중동, 남미와 같이 학창 시절 근현대 세계사 교육에서 소외된 지역의 영상들에 빠져들게 되고 그들의 역사가 궁금해져 세계사와 관련된 팟캐스트 강연을 찾아본다. 입담 좋은 역사 덕후들의 맛깔나는 설명을 듣다 보면 우리만 기구한 역사를 가진 것이 아님을 이해하게 된다. 그다음에는 그 역사가 표현되어진 문학작품과 영화들이 보고 싶어진다.
이번엔 영화를 놓고 해설해주는 팟캐스트들을 찾아본다. 친구들 사이의 잡담 같이 살갑게 전해주는 영화 이야기를 듣다 생각보다 흥미로워지면 잠시 멈춤을 하고 다른 창을 연다. 넷플릭스와 왓챠 같은 OTT 서비스에 어지간한 영화들은 찾을 수 있기에 그 영화를 본격적으로 본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 다시 팟캐스트로 돌아와 아까 멈춘 부분부터 듣기 시작하면 마치 영화 동호회에서 만나 함께 토론에 참여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원작인 책이 영화보다 깊이가 깊다는 설명이 나오면 다른 창을 열고 책을 주문한다. 하루 만에 배달된 책을 읽은 후에는 영화 유튜버들이 제공하는 더 자세한 해설 영상을 찾아보며 처음 볼 때 놓친 부분을 발견하고 공감한다.
팟캐스트(P)와 유튜브(Y)를 거쳐 OTT(O)로 이루어진 흐름은 무한의 반복으로 폭포처럼 콘텐츠를 전해주었고 일주일 휴가는 그 어느 때보다 밀도 높은 수업으로 채워졌다. 한창 자랄 때 응당 받았어야 할, 자유의지에서 시작된 전인교육을 PYO가 이제야 내게 해준 것에 감사한다. 사전 속 ‘PYO’는 ‘Pick Your Own’, 알아서 따가라고 농장에 써 있는 푯말이라 한다. 넘치는 정보 속 지식도 각자 알아서 선택해야 한다는 점에서 매한가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