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소중한 분들과의 저녁 식사에 초대받았다. 특별한 만남의 기억을 작은 선물로 남겨드리고 싶어 찾아보니 선택이 쉽지 않았다. 취향이 있는 분들에게 무언가를 전하기 위해선 고려해야 할 것이 많다. 기준은 흔하지 않고, 만든 이의 삶이 녹아 있고, 형태가 아름답고, 보관이 가능한 것이었다. 다른 나라에서 오래 사신 분에겐 우리의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고, 모임 후 지역으로 돌아가시는 분에겐 이동 중 상하는 물건도 곤란했다.
검색을 거듭해 찾은 작은 초콜릿 전문점은 상권의 이면 도로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다. 무엇보다 상점 입구에 붙여진 10년의 세월 동안 받은 맛집 인증서들이 역사를 담고 있었다. 차분하고 깨끗한 상점에 예쁘게 진열된, 장인이 정성스레 만든 초콜릿을 장갑을 낀 정중한 점원의 설명을 받고 신중하게 골라 담담한 설명서와 함께 갈색의 아름다운 박스에 담았다. 완벽한 경험은 나중에 찾아본 만든 이의 인생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용돈이 귀하던 어린 시절, 초콜릿은 과자보다 비싼 가격과 싱그러운 광고 모델로 럭셔리의 이미지로 남아 있다. 제과 회사의 대량 생산 제품도 감지덕지했던 이전 삶의 질곡은 지금 생각해보면 흑백의 추억과 같다.
초콜릿 상점의 분위기를 사진에 담고 참석한 저녁 식사 자리는 별점이 가득한 레스토랑이었다. 트렌디한 레스토랑의 메뉴판은 작은 글씨로 빼곡히 적혀 있어 한눈에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 경우엔 앞에 S가 써 있는 메뉴를 시키면 된다고 지인이 알려주었다. 추천하는 요리로 시그니처 디시라는 뜻이라 하는데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대표 메뉴라 한다. 그러고 보면 날이 갈수록 더 감각적인 공간으로 진화하는 카페들도 저마다의 시그니처 메뉴들을 내세우고 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패밀리 레스토랑을 거치며 프랜차이즈의 표준화된 경험을 충분히 즐긴 이들은 이제 그 어느 곳에서도 얻을 수 없는 유일한 경험을 탐하기 시작했다.
바쁜 노동 중 허기를 달래려 들이치는 손님에게 손빠른 주인이 토렴한 뚝배기에 국과 밥을 말아 숟가락을 꽂아 내어주면, 훌훌 들이켜고 다시 일터로 가던 우리네의 효율을 중시하던 일상이 변화하는 것이다. 유럽 사람들이 몇 시간에 걸쳐 밥을 먹으며 담소를 나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하던 사람들이 파인 다이닝과 오마카세(주인이 알아서 음식을 주는 방식)를 예약하고 있다.
기계의 도움을 받아 대량으로 제품을 만들어내는 축복을 인류가 갖게 된 것이 불과 200년 남짓에 불과하다. 이제 정성스레 나에게 맞추어진 유일한 제품을 얻고 싶어 하는 욕망을 꿈꾸고 있기에 비스포크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다. 얼마 전 글로벌 스타 디자이너로부터 럭셔리 산업에서 비스포크에 대한 강연을 들었다. 비스포크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원 오브 원(one of one), 유일한 대상을 위해 하나만 만들어지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오직 하나뿐인 소중한 나는 특별한 경험을 원하고 있다. 이것이 21세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