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과 초연결이 중첩되는 시대는 수백년간 매일같이 직장에 나가야 했던 사람들에게 일하는 장소를 고를 수 있는 특권을 갑자기 허락해주었다. 랩톱 화면을 바라보다 고개를 들면 하얀 파라솔과 푸른 바다가 보이는 감동은 여름휴가 성수기의 살인적인 비용을 지불한 휴양지에서 겨우 며칠간 누리던 호사가 아니라 일상이 될 수 있다. 숲속 작은 집에서 화목난로 안 참나무 장작이 타는 냄새를 맡으며 키보드를 누르다 바라본 창밖의 하얗게 쌓인 눈은 어릴 적 성탄 카드의 현실화로 다가올 것이다. 이처럼 각자가 자신의 일을 짊어지고 어딘가로 떠날 수 있는 사회는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낸다. 그간 주요한 산업이 대도시로 집중되며 발전의 수혜가 고르게 나누어지지 못해 소멸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까지 언급되는 지역에는 예기치 못한 수혜가 열릴 수 있다.
문제는 직장을 유동화한 사람들이 지역을 고를 때 무엇을 고려하는가 하는 것이다. 멋진 풍광만 있다고 온전한 생활이 가능한 것이 아니기에 경치와 더불어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고민해보아야 한다. 먼저 정주자와 활동 인구에 맞추어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교육과 의료의 재활성화는 필수적이다. 다양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것 역시 반드시 챙겨야 할 요소이다. 문화와 휴식의 공간 역시 포기하기 어려운 항목이 되고 있다.최근 지역의 삶의 인프라를 조사하며 곳곳마다 적지 않은 수의 카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잠시 차를 마시거나 책을 보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장소 또한 우리 삶에서 꼭 필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특색 있는 지역의 정서를 반영한 독특한 카페가 아니라 국도 변 커다란 창고형 건물을 인더스트리얼풍으로 꾸미고 아이스아메리카노와 앙버터로 매대가 채워진 ‘베이커리 카페’의 폭증은 지역의 매력을 반감한다. 큰 자본을 넣었기에 혹여 매출이 적게 나올까 아우성치듯 가로막는 거대한 폰트의 간판은 주인이 이 일을 좋아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유행을 좇고 있음을 자백하는 듯하다.
최근 가본 강화도의 작은 카페가 잊히지 않는다. 목수인 주인이 자신이 살기 위해 만든 집은 카페로 변신했다. 주인 혼자서 감당할 수 있도록 제한된 크기의 업장은 가구 하나, 소품 하나에도 그의 애호가 녹아 있었다. 무엇보다 손님의 호기심 어린 질문 하나에도 환하게 웃으며 열심히 설명해주는 태도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열정은 위의 ‘베이커리 카페’에 몰려드는 뜨내기 손님에게 지쳐버린 아르바이트생의 피곤한 무심함과 대조를 이룬다.
우직한 목수처럼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기에 우리는 그곳으로 향한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문득 수원에 본점을 둔 커피전문점에 붙어 있던, 자신의 고장을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의 슬로건이 생각난다. ‘We are Suwoner.’ 결국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