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식습관을 정비했다. 흔히들 하는 것처럼 식단 관리를 시작한 게 아니라, 원래 소극적으로만 실천하던 채식을 제대로 하기로 했다. 고기 종류를 먹지 않을 뿐 아니라 우유와 계란도 끊었다. 집에 남아 있는 동물성 식재료가 조금 있긴 하지만 있는 걸 소진하고 나면 새로 사지는 않을 계획이다. 그럼 도대체 뭘 먹고 살아? 그게 아마 비건들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인 것 같다. 하지만 놀랍게도, 나의 식습관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아침마다 먹던 그릭 요구르트는 두유 그릭 요구르트로 바꾸었다. 그래놀라도 비건 그래놀라가 많이 나와 있다(어차피 곡류와 견과류니까 동물성 지방을 쓰지 않으면 비건으로 만들기 쉽다). 원래 파스타를 좋아하니까 파스타는 그대로 먹고 있는데 토마토 소스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크림 소스는 비건 크림 소스를 사다가 쓰거나 두유와 견과류, 두부를 갈아서 만든다. 운동하고 나서는 두유에 식물성 단백질을 챙겨 먹는다. 카레에 대체육을 토핑해서 먹기도 하고 템페를 구워 먹기도 한다. 으슬으슬 추울 때는 채개장이나 두개장을 끓여 먹는다. 사실 비건을 하고 나서 치킨이나 돈가스 같은 게 별로 당기지는 않지만 비건 치킨과 비건 돈가스도 이미 시중에 나와 있다. 한식에는 또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비건 반찬들이 있다.
원래는 혼자 밥을 먹을 때만 고기를 최대한 먹지 않는 쪽으로 밥을 먹어왔지만 이제는 약속을 잡을 때도 먼저 이야기한다. “제가 비건이라 비건 옵션이 있는 식당을 가야 할 것 같아요. 식당은 제가 알아볼게요.” 사람들은 내가 비건을 하기로 했다고 말하면 두 가지를 묻는다. “왜?” “불편하지 않아?” 첫 번 째 질문에는 “그냥 더이상은 먹을 수가 없겠어서”라고 답한다. 어느 날부턴가 동물의 사체 덩어리를 보는 것이 힘들었다. 물고기를 물에 사는 ‘고기’라고 부르는 것에 위화감이 들었다. 계속해서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고 낳은 송아지를 볼 수조차 없는 젖소의 환경이 잔인하게 느껴졌다. 이것이 인간의 동물적 본능에 반하는 행동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우리는 동물로서의 범위를 아득히 넘어선 지 오래니까.
두 번째 질문에는 “아니, 오히려 반대야”라고 답한다. 삶이 아주 편해졌다. 정확히는 삶이 간결해졌다. 나에게 제안되는 무수한 선택지를 주저하지 않고 단숨에 쳐내게 됐다. 음식에 대한 집착이 생길 틈이 없어졌다. 음식을 과식하고 나서 후회하거나 쓰린 속을 붙잡고 괴로워하지 않게 됐다. 그리고 매일 두세번씩 이런 마음가짐을 갖게 되면, 삶 전체의 온도도 조정된다. 비건이 무슨 삶의 마법 같은 건 아니지만 분명 나는 올해 더 가뿐해졌다. 간결하고 힘 있는 고요한 삶을 향해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