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가, 뒤돌아보지 말고.”(Go. Go now. Don’t look back.) <벨파스트>의 마지막 장면. 카메라는, 고향 벨파스트를 떠날 채비를 하는 아들 가족을 바라보는 할머니(주디 덴치)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타이트하게 잡는다. 슬픔을 삼킨 단단한 표정으로 작별 인사를 건네는 주디 덴치의 얼굴. 흑백이라 더 도드라지는 얼굴의 주름은 오랜 세월 벨파스트에서 살아온 사람, 그곳에 ‘남은’ 사람들의 시간을 스크린에 각인하는 듯해 뜨겁고 뭉클하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촉촉해진 마음으로,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벨파스트>가 의미 있는 상을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극장을 나섰다. <드라이브 마이 카>를 보고 난 후에도 비슷하게 격한 감정을 느끼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었다. ‘올해 최고의 영화를 만났군! 아니 그런데 왜 칸국제영화제에선 각본상밖에 못 받은 거야?’
시상식의 결과 예측은 늘 어렵다. 올해도 어김없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시즌이 돌아왔고 <씨네21>은 예측 기사를 준비했다. 예측은 빗겨날 가능성이 있어서 예측이다. 시상식의 재미도 이변에 있다. 고백하자면 <기생충>이 오스카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기생충>의 수상 결과를 이변이라 부르고 싶진 않지만, 오스카의 역사를 생각했을 때 그것은 이변이었고 그런 이변은 늘 계산 밖에 존재한다. 지난해엔 이변 없이 클로이 자오 감독의 <노매드랜드>에 작품상과 감독상이 돌아갔다. 올해는 제인 캠피언 감독의 <파워 오브 도그>가 작품상과 감독상을 가져갈 것이 유력해 보이고, <킹 리차드>의 윌 스미스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아리아나 드보스도 확실한 수상권자로 분류된다. 올해의 깜짝 수상자는 누구일지 기대를 걸어보면서, <씨네21>은 7개 부문 후보에 오른 <벨파스트>,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킹 리차드>, 10개 부문에 이름을 올린 <듄>의 이야기를 길게 실었다.
개인적으로 이번주 잡지에서 꼭 읽어주었으면 하는 글은 따로 있는데, 우크라이나의 카테리나 고르노스타이 감독이 보내온 일기다. 수도 키이우를 향한 러시아의 공격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런 문장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큰 슬픔이 밀려온다. “나는 조금이라도 더 안전할 수 있다는 우크라이나 서쪽 등지에도 가고 싶지 않다. 바라는 것은 단 하나, 다시 내 집이 있는 키이우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다.” 폭격 소리에 선잠에서 깨어나는 전쟁의 한복판. 구체적 공포가 되어버린 죽음. 복구하기 힘든 일상. 파괴된 추억. 안전을 위해서라도 “돌아보지 말고 떠나세요”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카테리나 고르노스타이 감독의 마음은 결코 키이우를 떠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벨파스트>를 본 날 키이우에서 온 일기를 읽었다. 마음에 깊은 구멍이 생긴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