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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할 게 있다. 나는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무슨 소리냐면, 진짜 무슨 스파이로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사람들이 잘 상상하지 못하는 취미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주야장천 앉아서 책만 읽고 글만 쓸 것이라는 사람들의 짐작과는 달리 나는 스포츠를 매우 좋아하고, 꽤 오랫동안 춤을 춰왔다. 춤의 종류가 바뀌기도 했고, 바빠서 놓았던 적도 있지만 춤을 좋아하지 않았던 적은 없다. 7살 때 유치원에서 처음 발레를 배우고, 13살 때 힙합 댄스를 처음 배운 이후로 한번도.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춤추는 영상을 올려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는 일을 무슨 연례행사처럼 하고 있다. 책으로 가득한 배경 앞에서 조곤조곤 말하는 것만 봐왔던 신규 구독자들은 어김없이 놀란다. 몇달 전에 올렸던 스트리트 댄스 영상에는 ‘당신 누구야… 김겨울 어디 갔어…’라는 댓글이 달려 한참 웃었다. 보통은 서브 채널에만 춤 영상을 올리지만 이번엔 본채널에도 아주 짧게 몇초의 영상을 올렸고, 댓글창에
[김겨울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작가의 이중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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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게임인가 영화인가, 지금껏 이런 콘텐츠는 없었다’. 이다혜 편집팀장이 이번호 기획 기사를 위해 멋지게 뽑아준 제목이다. 게임 회사 크래프톤이 얼마 전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한 영상 콘텐츠 <그라운드 제로>와 <미스터리 언노운>을 보면 기사의 제목처럼 이들 작품을 어떻게 명명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일례로 크래프톤의 인기 게임 <PUBG: 배틀그라운드>의 기원을 다루는 단편 <그라운드 제로>는 김지용 촬영감독(<남한산성> <밀정>)이 감독과 각본, 촬영을, 배우 마동석이 제작과 주연을 맡고 모그 음악감독과 허명행 무술감독 등 영화 스탭들이 대거 참여한 작품으로 흡사 한국 상업 액션영화의 한 대목을 보는 듯하다. 게임의 스토리와 맵이 단편 영상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배틀그라운드’ 게임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호기심을, 팬들에게는 세계관을 알아가는 즐거움을 준다.
<씨네21>은 지난해에도
[장영엽 편집장] 너의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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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지 <도무스 코리아>와 3년 기한으로 진행해온 “꿈꾸다 만들다 그리고 묻다” 기획이 마침내 끝났다. 최욱, 이희문, 김보라, 장영규, 송은이, 김보람, 지니 서 등 자신만의 것을 남다르게 만들어오고 있는 분들을 만나 그들이 세운 뜻과 고집스러울 정도로 꾸준한 실행의 비결을 묻는 인터뷰 코너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잡지를 핑계로 만남을 청해 꼭 뵙고 싶었던 분들의 노하우를 엿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는 나에겐 행운과 같았다. 호기심에 무모한 질문을 마구 해대며 몇 시간씩 이야기를 듣는 시간은 너무나 즐거웠으니, 역시 사심이 투영된 일이 성과가 큰 법이다. 바둑의 대가에게 지도 대국을 받은 것처럼 내 문제 중 많은 부분이 해결될 뿐 아니라 근원적으로 제거되는 느낌도 들었다. 언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진화한 우리 종은 다른 사람이 미리 한 고민의 답을 건네받고 그가 한 수고로움을 면제받을 수 있는 엄청난 혜택을 선물처럼 얻었다.
돌이켜보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워낙 새
[송길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三人行必有我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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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말, 여름 휴가철을 앞둔 한국영화계의 분위기는 비장하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주춤한 틈을 타 신속하게 개봉을 추진했던 지난해의 여름영화, <반도>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오케이 마담>과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다. <블랙 위도우>가 열어젖히고 <랑종>이 바통을 이어받은 올해 여름 영화시장은, <모가디슈> <방법: 재차의> <싱크홀>이 공개되기 전 코로나19 확진자 수 역대 최다라는 난관에 부딪혔다. 그러나 더이상 물러날 곳은 없다는 게 영화 관계자들의 생각인 것 같다.
한국상영관협회(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와 한국IPTV방송협회(KT,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홈초이스(케이블TV VOD)는 대작영화 <모가디슈>와 <싱크홀>이 제작비 50%를 보전할 때까지 티켓 매출을 가져가지 않겠다고 밝혔고, <모가디슈>와 <방법: 재차의>는 7월
[장영엽 편집장] 여름의 승부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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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만한 영상을 찾아 스트리밍 사이트의 목록을 훑는다. 새로고침을 할 때마다 ‘시원한 여름을 위한 공포 특집’, ‘혼밥족을 위한 드라마’ 같은 분류명이 붙은 포스터 목록이 나타난다. 여기도 남자, 저기도 남자, 여기는, 어디 보자, 남자 다섯에 여자 하나…. 몇번이나 화면을 다시 당겨 보다가, 결국 포스터에 남자만 있어도 장르상 납득은 된다 싶은 선협물을 고른다. 은거해 음악으로 마음을 나누며 산다는 노인이 네명 등장한다. 남자 셋에 여자 하나다. 심지어 남자1은 현을 타고 남자2는 무공이 높고 남자3은 높은 벼슬을 했고 어쩌고인데, 여자1은 남자1의 아내란다. 이 조연 네명은 2화 만에 습격을 받고 사라졌지만, 개운치 않은 마음은 남는다.
성비가 맞지 않는 콘텐츠는 더이상 즐겁지 않다.
의식해 추구한 변화가 아니다. 소비자운동적인 행동도 아니다. 재미있는 것은 보고 재미없는 것은 피하다가 어느 순간 깨달았다. 전체 등장인물들의 생물학적 성비가 맞지 않는 영화나 드라마, 남자들끼
[정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설정 구멍, 재미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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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7월 15일 막을 내렸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4단계로 격상된 가운데 개최된 이번 영화제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여러 차례 데일리 취재를 담당한 <씨네21> 기자들에게도 가장 높은 수준의 거리두기를 요하는 영화 축제였다. 공식 온라인 데일리팀을 맡은 임수연, 배동미, 김소미 기자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거의 대부분의 게스트를 화상으로 만났고, 백종헌 사진기자는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키며 영화인들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고생을 많이 했다.
취재 후일담을 들어보니, 대면 만남이 줄어든 대신 온라인이기에 가능했던 즐거운 순간들도 있었던 것 같다. <기생충>의 다송이 방을 모티브로 한 임수연 기자의 화상 배경은 해외 게스트들에게 인기가 최고였다고 한다. <공동주택 66>을 연출한 필리핀의 래 레드 감독은 임수연 기자의 화면을 보며 공동주택에 사람이 한명 숨어서 살고 있다는 영화의 설정이 실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으로부터 영
[장영엽 편집장] 네버 엔딩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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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가디슈>는 255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다. 우와! 한국 영화시장에서 이렇게 큰 영화가 과연 성공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 국면에서 관심 있게 지켜보는 중이다. 코로나19 이후 물리적 거리두기로 극장이 주춤하는 동안에 OTT가 가성비를 앞세워 약진했다. 팬데믹 국면에서 여행이나 관광 등은 우리나라만 백신 접종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다고 해서 풀릴 문제가 아니라서 몇년은 더 ‘롱테일’이 남겠지만, 이르면 연내나 늦어도 내년 초에는 극장의 거리두기는 완전히 열릴 것이다. 추석에 열 수 있을 것이냐 아니면 내년 설에 열릴 것이냐, 이건 아직도 불확실하다.
극장이 100% 열린 뒤에 어떤 상황이 되어 있을지 아직은 모른다. 과연 ‘가성비’와 편의성을 찾아 OTT로 간 관객이 극장으로 일부만 돌아올지, 아니면 극장만이 줄 수 있는 몰입감과 문화적 경험을 위해 다시 예전으로 돌아올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얼마 전 서울시 1인 가구 행사에서 연극이나 콘서트를
[우석훈의 디스토피아로부터] 극장 리부트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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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고질병이 있다. 겸손병이라고, 조금이라도 참여한 걸 나의 성과로 자랑해도 모자랄 마당에 자신이 도맡아 한 일마저 “어휴… 아니에요…” 따위의 말로 얼버무리는 병이다. 연봉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자기 PR을 충분히 하지 못하게 만드는 이 병은 이미 많은 여성들에 의해 비토된 바가 있다. 물론 나도 이 겸손병을 비토하는 동시에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여성이다.
누구나 자신의 성과를 객관적으로 측정하기 어렵다. 어느 정도의 성취를 했지? 어느 정도의 보수가 적합하지? 누가 정해준 답이 있는 게 아니니 대략적인 짐작을 할 수밖에 없는데, 나는 아무래도 평가에 있어 조금 보수적이다. 혼자 하는 일이 많아 호응에 대한 체감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구독자가 19만명일지라도 촬영은 카메라 앞에서 혼자 하니까. 코로나19로 대면 행사를 하기가 어려워진 상황 속에서 괴리는 더 커졌다. 그러는 동안 누군가는 자신의 성과를 촘촘히 그러모아 자랑하고 있을까?
[김겨울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우리의 보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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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종영한 <마인>의 최종회는 한국 드라마사에서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순간으로 남을 장면을 선보였다. 낳은 엄마와 기른 엄마가 우리 함께 아이를 잘 키워보자며 양쪽에서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장면이다. 아내가 두명 등장하는 드라마에서 분란의 원인을 제공한 남편은 쏙 빠지고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 구도가 형성되는 것이 그간의 한국 드라마가 묘사해온 일종의 스테레오타입이었다면, <마인>은 갈등의 불씨를 제거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아이를 사랑하는 두 엄마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무언가 이질적인 것을 보고 있다는 낯설고도 복합적인 감정을 <마인>을 보는 동안 종종 느꼈다. 살얼음판 같은 재벌가에서 서로를 지키는 형님과 동서, 능력과 사랑은 별개임을 인정하고 첫사랑을 그리워하며 남편과 결혼 생활을 이어가는 아내, 배다른 자식의 행복을 위해 책임의 무게를 대신 짊어지는 새엄마.
<마인>에서 등장인물들의 선택은 단
[장영엽 편집장] <마인>과 <블랙 위도우>, ‘여성스러움’에 대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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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식사 중 화제는 요즘 부쩍 친절해진 택시였다. 복잡한 도시에 좁은 공간의 이동수단이라 스트레스가 많을 수밖에 없는 택시 속 경험이 몰라보게 바뀌고 있음에 모두가 공감했다. 하차 전 별점을 읍소하는 기사 분들을 만난 경험 또한 자리에 모인 전원에게 있을 정도로 이제는 평판 때문에라도 질 높은 서비스가 당연해지는 플랫폼 시대가 도래했다.
기사보다 손님이 우위에 서게 된 지금의 상황이 기반시설은 열악하고 경제발전의 기울기는 가파른 시절에 자란 내겐 도무지 익숙지가 않다. 타고자 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차는 항상 부족했기에 친절함까지 요구하기엔 승객의 입지가 한없이 작았다. 짐짝이 실리듯 모르는 이들과 함께 가야만 했던 ‘합승’의 기억까지 가지고 있는지라 요즘의 변화는 황송하기까지 하다.
이쯤에서 생각나는 것이 넷플릭스의 영국 드라마 <블랙 미러>의 ‘추락’(Nosedive)이다. 모든 사람들의 사회적 평가가 5점 만점으로 실시간으로 보여지는 사회에 살고 있는 주인공
[송길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오점 만점에 오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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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 <씨네21> 통신원들이 보내오는 리포트를 매주 흥미롭게 읽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는 국내에 아직 개봉하지 않은 화제의 영화 소식을 미리 접하는 즐거움이 컸다면, 최근에는 코로나19 이후 각국의 영화계 상황은 어떤지, 유례없는 위기를 어떻게 돌파해내고 있는지 궁금한 마음에 원고를 유심히 보게 된다.
지난 1년간 통신원들이 전한 소식은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전세계 영화계의 창의력 전쟁이라고 할 만하다. 록다운 기간이 길어지자 아예 비대면 프리프로덕션을 통해 비대면을 소재로 한 코믹 스릴러 영화를 연출한 감독(프랑스)부터 영화제(film festival)에서 영화(film)라는 단어를 빼고 TV시리즈, 팟캐스트, 게임, 콘서트를 포괄하는 축제로 거듭난 뉴욕 트라이베카페스티벌(미국), 영화제 중심부를 벗어나 고풍스러운 유적지에서 관객을 만나는 베를린국제영화제 서머 스페셜(독일)의 사례까지 그야말로 개인과 단체를 막론하고 각양각색의 대처 방식과 아이디어가 빛났다.
[장영엽 편집장] 창의력도 해결할 수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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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들이 저녁에 눕는 자리를 옮겼다. 얼마 전까지 담요를 씌운 작은 의자를 쓰던 첫째는 캣타워 높은 곳, 에어컨 바람이 잘 드는 칸에 누웠다. 지난달까지 폭신폭신한 해먹에 몸을 말고 자던 둘째는 이제 베란다 타일 위에 철퍼덕 누워 머리만 집 안으로 내밀고 있다. 장판보다는 타일이 시원할 터다.
고양이들과 함께 산 지 벌써 여러 해가 지났다. 2013년 가리봉동에서 태어난 첫째, 커크는 어느새 여덟살이다. 사람이라면 지천명일 나이다. 원래도 똑똑했는데, 요즘은 정말로 세상사를 좀 아는 표정을 짓곤 한다. 2017년 연남동에서 태어난 둘째, 스팍도 어느새 네살이다. 고양이가 네살이면 어느 모로 보아도 다 자란 나이인 데다 몸집도 크지만 하는 행동은 아직 새끼 고양이 같다. 아침마다 오빠(동거인)의 뱃살에 열심히 꾹꾹이를 하고, 사료통 여는 소리에 겅중겅중 뛰어온다.
커크를 처음 데려왔을 때, 나와 동거인은 이 암컷 고양이의 언니와 오빠가 되기로 했다. 인간을 동물의 엄마, 아빠
[정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사랑해, 우리랑 살아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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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그레타 툰베리>에는 인상적인 대목이 있다. 환경운동을 위한 행진 도중 그레타와 아버지가 끼니를 두고 말다툼을 하는 장면이다.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기에 끼니를 거르고 그들에게 돌아가겠다는 그레타와 밥을 챙겨 먹어야 하는 건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아버지의 싸움은 결국 아버지의 승리로 끝이 나지만, ‘왜 그렇게까지’라는 의문을 남긴다.
그에 대한 답은 풀밭에서 그레타가 친구와 나누는 대화에서 찾을 수 있다. 기후 문제가 인류에게 야기할 위기가 임박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데 온 정신을 쏟아야겠기에, 혹여나 기후 위기를 논하는 회의가 열릴까 싶어 주말 약속조차 잡지 못한다는 그레타의 절박함은 환경운동가로서 그가 얼마만큼 전력을 다하고 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툭하면 연설문을 읽다가 눈물을 흘리는 감정 과잉의 소녀, 구체적인 대안도 없으면서 환경 문제를 운운하는 애송이라며 그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환경운동에 자신의 모든
[장영엽 편집장] 미래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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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대학로예술국장 대극장에서 연극 <단테의 신곡-지옥편>(나진환 연출)을 보았다. 솔직히 말하면 보고 싶어서 본 건 아니고, 초청을 받아 어쩔 수 없이 보았다. 코로나19 한가운데라서 자리를 한칸씩 띄우고 앉았는데, 매진이라도 극단측에서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 아는 단테, 그것도 천국은 빼고 지옥편이라니! 듣기만 해도 안 보고 싶은 이야기 아닌가?
청년들이 ‘가성비’를 앞세우며 넷플릭스에 대한 찬미를 부르는 것을 듣는 일은 어렵지 않다. 정액제에 익숙해진 관객이 팬데믹 종식 이후 과연 다시 극장으로 돌아올 것인가, 이런저런 가설들이 많다. 한국에서 극장은 이미 끝났다는 영화인의 탄식을 듣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날 대학로에서 휴식 시간까지 합쳐 세 시간 가까운 시간을 어두운 극장 안에 있으니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다행히 연극은 그리스 신화 등 익숙한 인물들이 등장해 역사의 아이러니를 반추하게 해주어서 재미는 있었다. 그렇지만 세
[우석훈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우리는 왜 연극을 보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