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요즘 윤석열 그분을 대통령으로 뽑은 사람들이 싫어 죽겠어요.”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푸념이다. 국민의힘 극성 지지층은 “무조건 민주당 찍는 좌파 콘크리트 40%는 인간이냐”고 조롱한다. ‘1찍(기호 1번 민주당 찍은 사람)’, ‘2찍(기호 2번 국민의힘 찍은 사람)’의 종특(종족 특성)을 운운하는 글과 말이 난무한다. 2022년 대선 직후 만난 유권자 몇몇에게 들은 말이다. “저는 국민의힘 지지자입니다만, 이재명에게 투표했어요.”(30대 초반 여성 A) A는 ‘2번’이 국정을 운영할 최소한의 자세도 안됐다고 보았다. ‘법인카드 유용’에 충격을 받았지만 ‘허위 이력’과 ‘주가 조작 의혹’에 더 경악했단다. “제 자신을 진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윤석열 찍었습니다.”(20대 후반 남성 B) 그는 조국 사태와 대장동 의혹을 거치며 ‘이번에는 1번이 져야 한다’고 생각을 굳혔다. 그는 여소야대가 여대야소보다 훨씬 낫다고 봤고 앞으로도 여소야대이길 희망했다.
세상에는 n개의 정치노선이 있다. 1찍이 다 같은 1찍이 아니고, 2찍이 다 같은 2찍이 아니다. ‘1못찍(못 찍겠다)’ , ‘2못찍’이라는 표현이 훨씬 더 어울리는 유권자가 흔하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서로 볏단 날라주는 ‘의 좋은 형제’였다. 국민의힘의 대선 득표율이 5년 만에 곱절로 불어난 것은 민주당 덕이다. ‘정권교체 50% 이상 대 정권연장 40% 이하’ 구도가 초박빙으로 좁혀진 건 국민의힘 덕이다. 2022년 대통령 선거가 잦은 역전을 거치며 50 대 50으로 수렴된 것은 용호상박이나 아마겟돈의 결과가 아니다. 크게 이긴 쪽이 횡포를 부릴까봐 국민들이 저울질 끝에 수평을 거의 맞춰놓은 것이다.
‘1찍/2찍’에서 날 선 ‘여집합’인 나는 ‘1못찍/2못찍’에선 너그러운 ‘교집합’이다. 1번과 2번의 극성 지지층, 전통 지지층, 비판적 지지층, ‘억지로 지지층’ , ‘찍고 잊는 층’ 등을 분별한다. 나도 하는 것을 한국 거대 양당과 그 극성 지지층은 하지 않는다. 자기가 잘못해서 남에게 퍼준 표까지 ‘저쪽’이라 싸잡아 비난한다. 심지어 ‘3 이하 찍’에 굴복을 요구한다. 제 지지층도 온전히 대변하지 못한다. 국민의힘 지지층의 ‘김건희 특검’ 찬성률이나 민주당 지지층의 ‘김남국 의원 사퇴’ 찬성률은 여론조사에서 3~4할가량은 나온다. 하지만 이들은 거대 양당에 찬밥 신세다.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직후 대선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은 24%에 지나지 않았다. 조국 전 장관 임명 긍정 평가율도 2020년 총선 직후 한 여론조사에서 그 비슷하게 나왔다. 대선에선 50% 가까이 얻지만 평소 ‘25%짜리 정치’를 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의 여러 정치 드라마는 주인공이 소수파였다. <퀸메이커>와 <어셈블리>는 거대 정당에 들어간 노동운동 출신 이단아, <출사표>는 거대 양당에 협공당하는 무소속 지방의원, <내 연애의 모든 것>은 군소 진보정당 의원-보수정당의 개혁적 의원 커플. 덴마크 드라마 <여총리 비르기트>의 소수정당 대표는 기적적으로 총리직에 올라 다수파보다 더 능숙하게 일한다. 한국 현실 정치에도 드라마적 출구가 필요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