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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소연의 클로징] 내가 달걀에서 본 것
임소연 2025-09-11

<내가 물에서 본 것>(What I Sense in the Matter)은 안무가 김보라의 작품이다. 현대무용을 잘 알지도 못하고 평소 자주 보는 편도 아니지만 이 공연만큼은 꼭 보고 싶었다. “주변부에 머물러 있는 몸에 관한 의심과 질문.” “수차례 난임 시술을 받은 안무가의 경험을 통한 포스트휴먼적 몸의 형상화.” “의료 현장에서 몸은 단 한 가지의 모델로 환원되지 않는 다중적 유형의 장.” 나 역시 연구자로서 성형외과 현장에서 다중적 몸을 목격했고 수술을 받으면서 몸이라는 존재에 대한 탐구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던 경험이 있기에 작품을 소개하는 이 문구들만으로 확신이 들었다. 이건 봐야 한다! 그리고 너무 궁금했다. 도대체 나는 무대 위에서 무엇을 보게 될까? 세 가지가 궁금했다. 과연 ‘몸 그 자체’를 어떻게 표현할까? 난임 시술이라는 ‘기술’을 어떻게 보여줄까? 보조생식기술에 대한 ‘여성’의 관점을 어떻게 드러낼까? 현대무용의 문외한답게 처음에는 무용수들이 난자와 정자를 닮은 동작을 하지 않을까, 첨단 의료기술을 상징하는 어떤 무대장치들이 나오지 않을까, 시술 과정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여성이 등장하지 않을까, 하는 어설픈 짐작을 하며 공연을 보기 시작했다. 공연은 나의 예상과 기대를 완전히 뛰어넘으며 끝이 났다. 우선 13명의 무용수들은 그 자체로 몸이 되어 어떠한 상징이나 의미에도 갇히지 않는 독립적인 존재되기를 보여준다. 기술과 결합한 몸이라는 핵심 주제를 파란 비닐을 벗겨낸 차가운 금속판에 닿을 때마다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살색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로 그리고 무용수들이 몸으로 직접 내는 소리와 의료 기계 소리를 섞은 소리로 표현한 점이 기발했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이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의 경험임을, 감정도 없고 성(性)도 없는 포스트휴먼의 경험이 아님을 번쩍 깨닫게 하는 방식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공연의 후반부가 되면 달걀판을 머리 위에 위태롭게 이고 조심스레 달걀을 하나둘씩 바닥으로 굴리는 무용수들과 바닥의 달걀들을 밟을 듯 말 듯 조마조마하게 움직이는 무용수가 등장한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그가 갑자기 손에 들었던 달걀을 바닥에 사정없이 패대기친다! 마치 예술영화가 한순간 아침드라마로 바뀌기라도 한 것처럼 감정이 훅 들어왔다.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래, 이거지. 은빛 금속 재질의 바닥에 달걀이 내리꽂히며 박살이 날 때마다 통쾌하고 또 울컥했다. 이 나라의 여자들은 도대체 어떤 팔자인지. 전세계에서 인당 성형수술 건수가 가장 많은 곳이 한국인데 (정확한 통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성형수술 환자의 대부분은 여성으로 알려져 있다) 며칠 전 한국이 다둥이 출산율 세계 2위에, 세쌍둥이 이상만 따지면 세계 1위라는 기사를 봤다. 보조생식기술 덕분이다(난임 및 불임의 원인 중 절반은 남성에게 있지만 시험관시술의 고통과 위험을 부담하는 이는 거의 전적으로 여성이다). 임신을 그만두기 어려운 것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나라도 한국이다. 단적인 예로, 세계보건기구가 2005년에 필수의약품으로 등재하여 이미 전세계 100여개국에서 사용 중인 ‘미프진’이라는 임신 중지 약물을 한국에서는 합법적으로 구할 수 없다. 6년 전 임신 중지가 불법이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났음에도 말이다. 꾸밈부터 임신까지 더 잘하게 해주는 기술이 있으면 안 하게 해주는 기술도 그만큼 있어야 할 텐데. 그래야 어느 쪽을 택하든 선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 아닌가. 에라이, 나도 달걀을 집어던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