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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희의 클로징] 미디어와 대중(2) - 그들은 정말로 대중적 취향이 뭔지 알고 있을까?
정준희 2025-03-20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 실로 명언에 가깝다고 늘 생각하는 속담이다. 한길이 평균적인 사람 키에 해당하니 열길이면 15m가 넘는 깊이다. 아무리 맑은 물이라 해도 그 정도 깊이면 그냥 수면 위에서 들여다본다고 알 수는 없다. 물 안으로 들어가보거나 그 물길을 수십년은 노 저어 본 경험이 있어야 알 법하다. 쉽지 않다. 그런데도 사람 속은 더 어렵다. 자연과학이 알아내고자 하는 게 ‘열길 물속’이라면 ‘한길 사람 속’은 심리학의 몫이다. 심리학은 한편으로는 자연과학적 방법론에 의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문학적 통찰에 의지한다. 사회과학이 그 중간에 위치해 있어서 인지 대체로 심리학은 사회과학에 속하는 걸로 간주된다. 최근 뇌과학이 거두고 있는 엄청난 성과에서 보듯 사회과학으로서의 심리학의 저울추는 인문학적 통찰보다는 자연과학적 방법론에 훨씬 더 기울어 있다. ‘열길 물속’을 알아내는 수단에 의존하여 ‘한길 사람 속’도 알아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뇌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길이 열렸으니 사람 속을 들여다보는 일도 한결 수월해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정말 그럴까? 넷플릭스가 텔레비전과 극장을 동시에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무렵, 넷플릭스가 확보한 ‘빅데이터’가 사람들의 취향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게 해줄 것이며 결국 제작 방식에도 일대 혁신이 일어날 것이라는 믿음이 팽배했다. 넷플릭스 기술로 사람들의 뇌를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동시에 연결된 전세계 수억명의 이용자들이 토해내는 무시무시한 양의 ‘행동 데이터’가 그들의 마음속을 투명하게 비춰줄 것이다. 그렇게 알게 된 비법이 제작에 투입되면 마침내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만드는 연금술이 완성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흐른 지금, 넷플릭스가 극장과 텔레비전을 모두 위기에 빠뜨린 건 맞지만 이들의 연금술이 최적의 제작 비법과 제작물로 이어졌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소위 빅테크 기업이 부리는 마법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다수 대중을 매료시키는 제작자로서 살아보지도 못했지만 나는 여전히 대중의 취향을 콕 짚어낼 수 있는 미디어 연금술이 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대중을 ‘중2’ 취급하는 게 정답이라던 과거의 텔레비전 제작자도, 취향을 알고리즘화하는 게 비법이라고 주장하는 빅테크 미디어 기업도, 실은 ‘사람 속’을 잘 알아서가 아니라 그저 많은 대중을 자기의 앞에 모아놓을 수 있었기 때문에 성공했을 뿐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 앞에 모였던 건 기가 막히게 재밌어서라기보다는 그게 편리해서일 가능성이 높다. 일단 편리해지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되면 그 안에서 재미를 찾는 게 대중이 아닐까. 예나 지금이나 콘텐츠의 경쟁력보다 더 중요한 건 미디어 창구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