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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민의 클로징] 범죄의 재구성
김수민 2025-03-06

물의를 일으킨 이후 복귀 문턱에서 번번이 좌절했던 한 배우의 부음을 접하며 또 한번 생각했다. ‘정치는 악당의 도피처’라고. 몇몇 정치인은 사회 일각에 자신이 무죄인 세계를 건설했다. 아직 다수 대중이 범죄자 정치인의 무죄를 믿는 경우는 없지만, 30% 이상의 대통령 탄핵 반대율은 불길한 징후다. 다른 죄도 아닌 내란이고, 다중이 범행 현장을 목격하지 않았나.

그래도 가끔 웃을 수 있는 건 윤석열이 흥미롭도록 가소로워서이다. 여의치 않으면 ‘무승부로 하지 않을래?’가 튀어나온다. 더이상 체포를 피할 수 없게 되자 “자진 출석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부정선거의 근거는 대지 못하고 “음모론 제기가 아니라 팩트 확인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전직 육군첩보부대(HID)도 진상 규명에 나서는 팩트 체크의 강국인가. 바꿔친 카드도 있다. “경고성 계엄이었다”를 접고 “국민에게 호소한 것”이라 밝혔다. ‘폭동: 다수인이 결합한 폭행과 협박’ 가운데 ‘협박’을 인정하는 꼴을 피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병력 출동과 포고령 내용은 자신이 결정했다고 인정했다. 이마저 아랫선에 책임을 전가하면 반격을 당할까 두려운 것이다. “그 사람이 뭘 원하는지, 뭘 두려워하는지 알면 게임 끝이다.”(<범죄의 재구성> 중)

윤석열은 여론전으로 범죄를 가리겠다는 심산을 숨기지 않는다. 1월15일 체포 직전 관저를 방문한 국민의힘 인사들에게 “민주당은 조국(전 장관)을 옹호했다. 우리는 어떻게 가만히 있느냐”라고 다그쳤다. 결백한 피의자라면 “나는 조국처럼 하지 않는다. 우리 당은 민주당처럼 하지 말라”고 하는 법이다. 윤석열은 검사 시절 정치인 범죄자들의 수작을 숱하게 지켜봤을 것이다. 이제 그 모든 것들이 그의 것이다.

이번에도 특정 인물과 사물을 집중 공격해 뉴스 목록을 점거하는 수법이 나왔다. ‘윤석열의 태블릿PC’는 체포 대상자들이 적힌 ‘홍장원(전 국정원 제1차장) 메모’다. 집요하게 작성 과정에 시비를 걸지만, 메모 내용대로 방첩사의 체포 작전이 있었다는 증거와 증언이 쌓여 있다. ‘국정원이 방첩사를 도청했다’, ‘분신사바를 불러내 썼다’, ‘홍장원도 일당이었는데 배신했다’ 등등 온갖 경우를 상상해봐도 결론은 같다. ‘윤석열의 최성해’는 전 특수전사령관 곽종근이다. 그의 증언(“윤 대통령이 ‘안에 있는 인원들을 밖으로 끄집어내라’고 지시했다”)만 쓰러트리면 된다는 식이다. 처음엔 ‘인원’이란 단어를 쓰지 않는다더니, 여러 차례 썼던 것이 드러나자 “사람을 가리킬 때 쓰지는 않는다”고 했다. “불리한 진술을 안 해도 되는데. 무슨 얘기를 해도 불리한 거 같거든?” 무슨 단어를 썼든 그건 ‘국회 표결 저지’를 의미한다만, 덕분에 나는 윤석열에게 더 어울리는 가설을 세우게 됐다. “안에 있는 ‘이넘’들을 밖으로 끄집어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자백 아닌 자백은 향후 수사 지점까지 짚어준다. 경제부총리가 받은 비상입법기구 관련 문건의 작성자임을 자처한 그는 정작 사용한 워드 프로그램 명칭을 대지 못했다. 그의 보좌관도 그가 워드를 쓰는 걸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 문건은 정렬 솜씨가 빼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나는 검사 윤석열을 다룬 기획기사(2024년 5월13일자 <중앙일보>)를 떠올렸다. 어느 전직 검사의 말이다. “윤 대통령이 컴퓨터를 잘 못 다룰 것 같지? 단축키를 수시로 써가면서 엄청 빠르고 정확하게 서류를 작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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