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2월의 어느 새벽. 나는 군용열차 안에 앉아 있었다. 이놈의 기차는 재미있게도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가 다시 앞으로 가기를 반복한다. 창문은 차단막으로 가려져 있어, 도대체 어디로 가는지 종잡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여기저기 병력을 떨어뜨려놓으며 달린 지 10시간. 드디어 ‘내릴 준비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기차가 금속성의 소리를 내며 심하게 덜컹거린다. 철교. 꽤 길다. 이렇게 긴 철교는 한강에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곳은 서울! 뛸 듯이 기뻤다.
용산역. 노랗고 뿌연 나트륨 등 아래로 호송을 맡은 하사관의 뒤를 따라 더플백을 지고 플랫폼 위를 걷는다. 이때 내리지 못한 아이들이 차단막을 슬쩍 들추고 그 조그만 틈으로 우리에게 작별 인사를 한다. 왈칵 눈물이 난다. 불쌍한 녀석들. 걔들은 거기서 더 북쪽으로 가야 한다. 서울의 북쪽이라면 전방밖에 없다. 요즘도 길에서 가축을 운반하는 트럭을 보면 그때 그 열차가 생각난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끌려가는 신세야 어차피 마찬가지가 아닌가.
서울에 떨어졌다고 팔자가 펴는 건 아니다. 대기실 안으로 족히 190cm는 되는 건장한 몸뚱이 하나가 들어온다. 검은 베레를 쓴 공수부대 하사관이 명단을 들고 이름을 부른다. 이름이 불린 신병들은 “예!”라고 외치며 스프링처럼 자리에서 튀어 일어난다. “따라와!” 이번엔 가축 호송 정도가 아니라 아예 도살장행이다. 대기실 문을 나서며 검은 베레의 사내가 그 날카로운 눈으로 슬쩍 뒤를 돌아보며 한마디 툭 던진다. “너희들은 이제 죽었다.”
군대가 많이 좋아졌다 하나, 여전히 주거환경이 썩 좋은 동네는 못 된다. 나야 팔자가 좋아 서울 한복판 국방부에 떨어졌지만, 그 ‘천국’의 일상도 그리 행복하지는 못했다. 처음으로 내무반이라는 곳에 들어가니, 마침 반쯤 미쳐버린 병장 하나가 졸병 둘을 바닥에 엎어놓고 쇠로 된 야전삽으로 엉덩이를 마구 난타하고 있었다. 세상에, 군대의 천국은 고문실이었던 것이다. ‘오, 주여, 내 앞에 무슨 시련을 준비해놓고 계시나이까…’
졸병 시절, 정말 무서웠다. 이렇게 공포를 체험한 사람들은 이와 연관된 사안 앞에서는 이성을 잃는 모양이다. 솔직히 나는 유승준이 왜 입국을 거부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가 군대에 가지 않는 것은 지극히 합법적인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인정하고, 비양심적 병역거부는 솎아내면 될 일. 양심도 아니고, 비양심도 아니고, 그냥 군대 안 갈 형편이 되어 안 가는 게 왜 비난의 대상이 되며, 심지어 법적 제재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전인민의 공인화? 가수는 공인이 아니며, 연예질은 공직활동이 아니다. 유승준이 어디 출마하러 나오는가, 아니면 청와대의 전화를 받고 입각하러 들어오는가? 그냥 연예활동을 하겠다는데, 그걸 왜 막는가? 물론 팬들에게 ‘군대에 가겠노라’고 거짓말한 것은 문제겠지만, 이 국방색 사회에서 군대 안 간다고 말하면 어디 살아남을 수나 있는가? 따라서 병역의무를 하겠다던 그의 약속도 실은 강요된 것이다.
이중국적으로 병역의무를 피해가는 것을 혹 윤리적으로 비난할 수는 있을지는 모르겠다. 비난할 자 마음대로 비난하라. 하지만 그 차원을 넘어 거기에 법적, 제도적 제재를 가하는 것은 분명히 도를 지나친 것이다. 심지어 인권침해의 소지마저 있다. 나는 이런 무지막지함이 싫다. 한 개인에게 안 해도 될 일을 굳이 하라고 공동체 전체가 나서서 강요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올바른 의미의 평등이 아니다.
군대문제만 나오면 왜들 그렇게 흥분하는가? ‘평등’을 얘기하는 게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평등’이 곧 빨갱이를 의미하는 사회에서 평등을 얘기하는 안전한 방식. 그게 바로 병역의 평등만 외치는 것이다. 병역의무, 그것은 저 지배자들마저 ‘신성하다’고 늘 주장하지 않는가. 이 평등은 저들에 의해 유일하게 허용된 평등. 이 때문에 민초들은 이 사회 속에서 받은 그 모든 정치적, 경제적 차별의 분노를 거기에 실어 폭발적으로 발산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불쌍하다. 진중권/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