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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호랑이의 심장은 아직도 뛰고 있다
1980년 5월에 아버지를 잃은 뒤 진배(진구)는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했다. 엄마는 땡전뉴스에 그 사람이 나오면 실성한 사람처럼 굴었다. 그래도 그가 희망을 잃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건 다 해태 타이거즈 덕분이었다. 홈경기가 있는 날이면, 그는 어김없이 무등경기장으로 향했다. 동전 한푼 없는 처지라 경기장 입장은 7회 이후에나 가능했다. 그때가 되면 관
글: 박해천 │
2012-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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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저 구닥다리 폭파해버려
부모의 보호막 없이 세계와 맞대면해야 했던 아이들의 눈에는 묘한 빛이 서려 있게 마련이다. 맹수들이 날뛰는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다가 너무 일찍 자신의 내면의 어둠을 들여다본 자들. 의자에 묶인 그를 처음 봤을 때, 나는 그가 나와 같은 종족임을 확신했다.
솔직히 말해 체력 검정과 사격 시험, 정신 감정도 제대로 통과하지 못한 요원을 내게 보냈
글: 박해천 │
2012-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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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지축을 흔드는 괴물들
군대에 끌려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서울역에서 인력거나 끌며 살아가던 내가 본토인들에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겠는가? 나는 애당초 ‘나라 잃은 설움’ 같은 거랑 거리가 먼 놈이다. 나라만 되찾으면, 반상의 차별이, 귀천의 구별이 없어지나? 나 같은 놈이 바닥에서 기는 건 마찬가지다. 그런 내가 그날 마라톤 대회 시상식장에서 소란을
글: 박해천 │
2012-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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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동네 카페의 사운드스케이프
그녀가 사라진 지 한달이 지났다. 큰 집에서 현모양처로 사는 게 꿈이라던 그녀. 유석(김주혁)은 그 꿈을 이뤄주기 위해 대출을 받아 집까지 새로 장만한 터였다. 하지만 그녀는 문자 한통만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지금 유석은 자신이 운영하는 카페에 출근해, 창가에 앉아 아이패드에 저장된 그녀의 사진을 보고 있는 중이다. 오전 11시 반, 아직 손님이 드문
글: 박해천 │
2012-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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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방배동 골목길 월담기
오늘따라 이상하게 동네는 한산했다. 학교 수업을 마친 아이들 몇몇이 골목을 서성이다가 눈이 맞았고, 딱지치기나 구슬 따먹기를 할 요량으로 어른들 눈에 잘 띄지 않는 뒷골목으로 향했다. 그런데 길모퉁이에 막 자리를 잡으려던 찰나, 바로 그 형이 나타났다. 피로에 찌든 얼굴에 군용 더플 백을 멘 초라한 행색이었지만, 나는 한눈에 그 형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
글: 박해천 │
2012-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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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갈뫼마을의 어떤 유니폼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하루라도 빨리 고향을 뜨고 싶었다. 부모님께 불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손바닥만 한 땅뙈기도 없는 형편에도 중학교까지 마치게 해주셨는데, 불만이라니! 당치 않은 소리다. 나는 다만 이 촌구석이 지긋지긋했을 뿐이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게 마음먹은 대로 되던가? 먼저 떠났던 친구 소식이 마을 전체에 퍼지면서, 상경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글: 박해천 │
2012-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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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철가방과 포니 블루스2
1980년의 일이었다. 사건은 아주 사소한 실수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신촌의 학교에서 방배동의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올라탔다. 하지만 전날 이태원의 나이트클럽에서 밤을 지새운 탓인지, 의자에 앉자마자 졸기 시작했다. 기사 아저씨가 내 어깨를 흔들어 깨웠을 때는 이미 방배동을 지나쳐 종점에 당도한 뒤였다. 그곳은 내가 한번도 가본 적이 없
글: 박해천 │
2012-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