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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
[비평] 플라스틱 시네마, 최선 평론가의 <브라이드!>
매기 질런홀 감독의 <브라이드!>를 보고 나면 무엇이 남는가. 이야기보다 이미지다. 사건의 흐름이 한데 모이지 않고 줄거리도 손쉽게 뽑아내기 어렵다. 인물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고 어떤 갈등이 이어졌는지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영화관을 나와도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다시 소환된 신화 같은 캐릭터들, 농밀한 공기와 색채, 음악이 만들어낸 볼륨,
글: 최선 │
2026-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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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
[비평] 극우화 시대의 청소년 환경운동가와 비혼주의 비버 왕, 이자연 기자의 <호퍼스>
고작 4분이다. 제리 시장이 연못을 메우고 고속도로를 설비하면서 인간이 얻을 이득은 4분간의 이동시간 절약이다. 그가 이 짧은 시간에 목맨 이유는 오직 대중으로부터 환호받고 싶어서다. 그의 재임 여부는 사람들의 호불호에 달려 있다. 연못에서 인생 절반을 느리게 보내며 많은 생명체의 존재를 목격해온 19살 소녀 메이블은 터무니없는 시장의 욕망에 적극적으로
글: 이자연 │
2026-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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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
[비평] 빛에서 빛으로, 문주화 평론가의 <레이의 겨울방학>
잠에서 깬 레이(구로사키 기리카)에게 오빠 히로키(오다 신이치로)와 아버지(쓰루다 고조)는 “학교는?”이라고 묻는다. 레이는 “끝났다”라고 대답하며 겨울방학이 시작됐음을 알린다. 방학은 학기와 학기 틈 사이에 자리한 시간이다. 또한 방학의 시작은 학기의 중단으로부터 기인하는, 말하자면 학교의 시간들을 일시정지하고 획득한 무좌표의 시간이다. 학교의 수업, 친
글: 문주화 │
2026-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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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
[비평] 블라디보스토크, 잃어버린 편도 티켓, 이병현 평론가의 <휴민트>
박건(박정민)은 마지막에 살 방도를 묻는다. 관객은 그 유언을 조 과장(조인성)을 통해 전해 듣는다. 그런데 얼마 전, 한 지인이 이 대목을 두고 재미난 해석을 하나 건넸다. 요지는 이렇다. 박건의 말이 채선화(신세경)와 함께 더 살고 싶어서 나온 고백이 아니라, 죽음을 코앞에 둔 사람이 공포에 떠밀려 그저 “살고 싶다”는 원초적인 욕망을 내뱉은 것일지
글: 이병현 │
2026-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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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
[비평] 세계냐 여자냐, 이연숙(리타) 평론가의 <플루리부스: 행복의 시대>
물론 <플루리부스: 행복의 시대>(이하 <플루리부스>)는 흥미로운 철학적 질문으로 가득한 드라마다. 그렇지만 정체불명의 외계 신호가 인간의 기술을 매개로 바이러스 형태로 전파되어 살아 있는 모든 인간의 고유한 의식을 하나의 단일한 네트워크로 통합하는 와중에 어째선지 세상 성격 더러운 우리의 주인공 캐롤만이 이런 시도에 면역이 있어
글: 이연숙(리타) │
2026-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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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
[비평] 습기를 머금은 몸들에 관해, 김연우 평론가의 <물의 연대기>
영화 <물의 연대기>를 말하기 전 원작을, 정확히는 이 회고록이 ‘아닌 것’을 언급하는 편이 좋겠다. 극복과 성공으로 귀결되는 전기가 아니다. 고백이나 고발, ‘친족성폭력 트라우마를 지닌 여성 A의 사례’가 아니다. 통상적인 연대기와도 거리가 멀다. 당사자이자 화자인 리디아 유크나비치는 장면(이 글에서 일컫는 ‘장면’은 기억 속 상을 의미한다
글: 김연우 │
2026-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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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
[비평] 동시대의 로즈버드, 회귀하는 맥거핀, 김소희 평론가의 <슈퍼 해피 포에버>
맥거핀은 초반 영화의 흐름상 중요한 대상처럼 인식되었다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귀결되며 사라지는 매개다. 달리 말해 맥거핀은 관객의 망각을 전제로 기능한다. 작은 사건은 영화에서 강조되는 더 큰 사건 속에 묻히며, 이에 종속된 대상들은 무의식중에 선택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오슨 웰스의 <시민 케인>(1941) 속 ‘로즈버드’는
글: 김소희 │
2026-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