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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호랑이의 심장은 아직도 뛰고 있다

<26년>에 등장한 해태 타이거즈 모자의 로고

1980년 5월에 아버지를 잃은 뒤 진배(진구)는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했다. 엄마는 땡전뉴스에 그 사람이 나오면 실성한 사람처럼 굴었다. 그래도 그가 희망을 잃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건 다 해태 타이거즈 덕분이었다. 홈경기가 있는 날이면, 그는 어김없이 무등경기장으로 향했다. 동전 한푼 없는 처지라 경기장 입장은 7회 이후에나 가능했다. 그때가 되면 관리 아저씨들이 퇴장객들을 위해 출입구의 문을 열어두었기 때문이다. 83년에 이어 올해에도 해태 타이거즈는 진배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런데 오늘, 학교에서 바로 그 해태 때문에 반장 녀석과 심한 말다툼을 벌이고 말았다. 동네 만화방을 들락거리며 야구 만화를 섭렵한 그 녀석이 해태 타이거즈의 로고가 일본의 한신 타이거즈와 흡사하다고 말했던 것이다. 장훈 선수의 인기가 아직도 여전한 터라 일본 프로야구 무대에서 재일동포 주인공이 활약하는 내용의 만화들이 적지 않았다. 진배는 곧바로 따져 물었다. 그렇게 치면 롯데 자이언츠는 롯데 오리온즈를, 삼성 라이온즈는 세이부 라이온즈를 로고뿐만 아니라 유니폼까지 베낀 것 아니냐고 말이다. 일종의 맞불 작전이었지만, 진배의 자존심이 심하게 상처받은 것만큼은 분명했다.

집에 돌아온 뒤, 진배는 방구석에 들어앉아 한참 동안 검정 야구모자의 해태 로고를 들여다보았다. 일단 그가 보기에, 구단 이름이 해태 타이거즈라는 사실이 중요했다. 다른 구단들의 명칭은 구단주인 기업 이름이 앞에 나오고, 팀 이름이 뒤를 따르는 식이었다. 그런데 진배의 팀만큼은 유별났다. 하필이면 모기업 이름이 ‘해태’였기 때문이었다. 물의 기운으로 불을 다스린다는 신화 속 동물. 보험회사나 소방 관련 업체라면 군침을 흘릴 만한 이름이었지만, 공교롭게도 그 동물의 상표권을 선점한 것은 제과 업체였다. 그리고 그 덕분에 해태 타이거즈는 독특한 울림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롯데 자이언츠가 롯데라는 기업이 고용한 거인들, MBC 청룡은 MBC라는 방송사가 소유한 청룡을 뜻했던 반면, 해태 타이거즈는 ‘전설 속의 해태’와 ‘맹수의 왕 호랑이’가 합체한 것 같은 인상을 주었던 것이다.

진배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해태 타이거즈의 로고가 한신 타이거즈와는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한신의 로고가 대문자 H자를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대문자 T자를 지붕처럼 얹어놓았다면, 해태의 로고는 대문자 H자 한복판에 그 절반 크기의 대문자 T자를 심장처럼 박아놓지 않았는가? H자의 굵은 세로획과 굵고 각진 세리프를 보라, 민화 속 해태의 양어깨 위에 깃발처럼 세워져 있던 불기둥 같지 않은가? 또한 노란색의 T자는 어떤가? 성큼 앞발을 내딛는 호랑이의 가벼운 몸놀림을 연상시키지 않는가? 그러고 보니 매직 아이를 하듯 눈살을 찌푸리며 동공의 초점을 맞추다 보면, 호랑이의 앞몸과 해태의 뒷몸이 합쳐진 천하무적의 변종 동물처럼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진배는 남들이 알지 못하는 비밀을 발견한 것 같은 기분에 빠져들었고, 이내 이 로고를 자신의 수호신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녀석이라면 자신과 엄마를 끝까지 지켜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일년 반 동안의 연재를 마무리하며 그동안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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