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경주에 갈 일이 있었다. 그곳에는 불국사도 있고, 석굴암도 있고, 그 밖에 여러 유적이 도처에 널려 있어 도시 전체가 곧 박물관이다. 하지만 내가 이 도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고층빌딩이 없어서 도시에서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것, 이게 경주의 매력이다. 하늘을 가리는 잿빛 고층빌딩 대신 조그만 가옥들 뒤로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만들어내는 것은 여기저기 솟은 초록빛 고분군이다.
짧은 여정에 잠시 시간을 내어 천마총 공원에 갔다. 물론 발굴이 끝난 자리에 정교하게 만들어놓은 가짜 모델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천년의 세월 동안 이 도시의 풍경을 만들어온 고분들 사이로 조용히 산책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고분의 무거운 침묵을 바탕으로 하여 들려오는 새소리, 바람 스치는 소리. 거기서 나는 이런 것을 기대했다.
이 기대는 공원 입구서부터 무참히 짓밟힌다. 새소리와 바람소리를 대신하여 나를 맞아준 것은 황당하게도 날카로운 금속성의 소리. 둘러보니 바로 옆의 가로등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다. 더 끔찍한 것은 그 레퍼토리였다. 폴짝폴짝 발랄한 서양의 무도곡과 닐리리 늘어지는 중국풍 경음악. 이런 끔찍한 음악들이 졸지에 신라 고도의 분위기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되고 있었다. 도대체 누구 머리에서 나온 발상일까?
입구서 잡친 기분은 천마총으로 이어진 산책길에서는 아예 분노로 변한다. 스피커에서 멀어져 그놈의 음악소리가 안 들릴 때쯤 되면 또다시 어디선가 그 소리가 들려온다. 디크레센도, 크레센도, 디크레센도, 크레센도. 그제야 입구만이 아니라 공원 전체의 가로등에 수많은 스피커들이 주렁주렁 걸려 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그 끔찍한 음악은 이렇게 고분 공원 전체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주책을 부리고 있었다.
천마총 안에 들어가니 안내원이 서 있다. 알알이 맺힌 분노와 울분을 애꿎은 그에게 터뜨린다. 대답이 걸작이다. 사람마다 취향은 다른 게 아니냐, 관광객의 기분을 좋게 하려고 틀어주는 음악이니, 그냥 ‘감수’하란다. 하긴 감수하지 않으면 어쩔 건가. 공원의 후미진 구석구석에까지 스피커가 달려 있으니. 도대체 어느 무식한 관료의 머리에서 나온 그 엽기적 망발의 씁쓸함을 왜 세금내는 우리가 달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모든 유적은 제 아우라를 품고 있다. 그 천년 고도(古都)의 그윽한 분위기를 기껏 기계 복제된 음향으로 무참히 깨야 할 필연적 이유가 있을까? 왜 국민의 혈세를 써서 기껏 제 나라 유적의 분위기를 훼손하는 걸까? 관광객을 보니 의문이 좀 풀리는 듯하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그 끔찍한 레퍼토리는 아마도 서양과 중국에서 온 관광객의 향수를 자극하기 위해 각별히 선곡됐나보다. 친절도 하셔라.
음악이 그치니 새로 방송극이 시작된다. 내용도 알차다. 주변 명소를 소개하겠단다. “‘계림’은 김알지가 탄생했다는 전설이 있는 곳입니다.” 순간, ‘응애, 응애’ 하는 애 울음소리가 효과음으로 끼어든다. 분노가 지나치면 허탈해지는 법. 이 대목에서 참았던 분노가 실없는 웃음이 되어 ‘피식’ 새어나온다. 밖에 주변 명소 안내 게시판을 세우거나 안내서를 비치해놓으면 될 일. 왜 듣기 싫은 사람의 귀에 괴상한 방송극을 강요하는가?
미셸 푸코는 근대사회를 거대한 판옵티콘에 비유했다. 한 사람의 간수가 모든 감방의 죄수를 감시할 수 있는 원형감옥. 천마총을 돌면서 여기는 판옵티콘이 아니라 판오디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이 틀어주는 방송을 누구나 강제로 들어야만 하는 곳. 듣고 싶지 않은 소리를 피해 도망갈 곳이 없는 완벽한 원형 고문실. 듣자 하니 이곳만 그런 것이 아니다. 심지어 조용한 산사로 올라가는 숲길에도 스피커가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아예 대한민국 전체가 ‘판오디콘’인 모양이다. 이 나라에서 도대체 소음을 안 들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
비싼 돈 들여 기껏 제 나라 유적의 분위기나 파괴하는 무지와 몽매, 그 야만과 원시. 이게 대한민국 관료들의 문화적 마인드다. 이런 분위기에서 장관이 된 이창동씨는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손쉽게 성공한 장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국의 문화유적지 돌아다니며 분위기 깨는 이 괴물 스피커만 철거하시라. 그것만으로도 문화적인 선조를 모신 이 야만적인 후손들의 교양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위대한 업적이 될 것이다. 제발 우리를 이 문화적 고문실에서 해방시켜 주시라. 진중권/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