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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진중권의 아이콘] 어떤 쾌락
동물 사체를 포르말린 용액에 담가놓은 다미엔 허스트의 수족관. 인분과 같은 신체재료로 만든 길버트&조지의 작품. 토사물과 지렁이와 곰팡이를 찍은 신디 셔먼의 사진. 무정형의 점액질로 뒤덮인 매튜 바니의 설치. 이처럼 부패하는 사체를 묘사하거나, 인간의 배설물을 동원하거나, 형체가 없는 점액질을 사용함으로써 관객의 구토를 유발하는 작품을 ‘역겨운 예술
글: 진중권 │
2011-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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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진중권의 아이콘] 괴팍함에 관하여
특정한 사물을 과도하게 사랑하거나 병적으로 혐오하는 특이한 체질을 가진 이들이 있다. 듣자하니 시저는 고양이 울음소리를 역겨워했고, 폴 발레리는 비둘기가 구구거리는 소리를 혐오했다고 한다. 괴테는 손으로 편지 쓰는 데에 몸서리를 쳤고, 르네 마그리트는 기름 냄새에 경기를 일으켰다. 프리드리히 쉴러는 새가 날개를 푸덕거리는 소리를 극도로 싫어했지만, 이상하게
글: 진중권 │
2011-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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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진중권의 아이콘] 스산함의 환기
80년대 이후 포토저널리즘에는 피사체에 냉정하게 거리를 취하는 사진들이 나타난다. 피사체에 대해 판단을 중지하는 바람에 의미가 흩어져 쓸모없어진 이 사진들은 저널리즘의 밖으로 나와 '예술'이 된다. 데드팬 역시 세계에 대해 정치적, 도덕적 입장을 취하는 게 난폭하게, 구차하게, 혹은 역겹게 느껴지는 시대의 사진적 증언이리라.
몇년 전 천안의 한 갤러리
글: 진중권 │
2010-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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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진중권의 아이콘] 보르헤스의 지도
“제국의 지도학은 너무 완벽해 한 지역의 지방이 도시 하나의 크기였고, 제국의 지도는 한 지방의 크기에 달했다. 하지만 이 터무니없는 지도에도 만족 못한 지도제작 길드는 정확히 제국의 크기만 한 제국전도를 만들었는데, 그 안의 모든 세부는 현실의 지점에 대응했다. 지도학에 별 관심이 없었던 후세대는 이 방대한 지도가 쓸모없음을 깨닫고, 불손하게 그것을 태양
글: 진중권 │
2010-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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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진중권의 아이콘] 인형의 노래
오펜바흐의 오페라 <호프만 이야기>에는 인상적인 노래가 등장한다. 원제는 ‘생울타리 속의 새들’, 하지만 노래를 부르는 올림피아가 자동인형이라서 흔히 ‘인형의 노래’라 불린다. 이 노래를 부르는 가수는 무대 위에서 자동인형과 똑같은 동작과 손짓을 해야 한다. ‘로봇 춤’의 원조라고나 할까? 올림피아는 한참 노래를 부르다가 중간에 맥이 풀린 듯 갑
글: 진중권 │
201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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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진중권의 아이콘] 완성으로서 미완성
<미완성 교향곡>(1822)이라 불리는 슈베르트의 교향곡 8번. 첫 두 악장만 풀 스코어로 존재하고, 3악장(스케르초)은 9마디의 오케스트레이션과 13마디의 피아노 파트만 남아 있다. 마지막 4악장은 아예 시작도 못했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곡을 쓰고도 6년을 더 살았으니, 적어도 시간이 없어 완성을 못한 것 같지는
글: 진중권 │
2010-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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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진중권의 아이콘] 포기해라, 포기해
“아주 이른 아침이었고, 거리는 깨끗하게 비어 있었다. 나는 역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시계탑 시계와 내 시계를 비교해보고,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늦었음을 깨달았다. 서둘러야 했다. 이 사실을 깨달은 것이 길을 찾는 내 발걸음을 더 불안하게 했다. 게다가 나는 이 도시를 잘 알지 못했다. 다행히 근처에 순경이 있어서 그에게 달려가 숨 돌릴 틈도 없이 길을
글: 진중권 │
2010-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