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지도학은 너무 완벽해 한 지역의 지방이 도시 하나의 크기였고, 제국의 지도는 한 지방의 크기에 달했다. 하지만 이 터무니없는 지도에도 만족 못한 지도제작 길드는 정확히 제국의 크기만 한 제국전도를 만들었는데, 그 안의 모든 세부는 현실의 지점에 대응했다. 지도학에 별 관심이 없었던 후세대는 이 방대한 지도가 쓸모없음을 깨닫고, 불손하게 그것을 태양과 겨울의 혹독함에 내맡겨버렸다. 서부의 사막에는 지금도 누더기가 된 그 지도가 남아 있어, 동물과 거지들이 그 안에 살고 있다. 온 나라에 지리학 분과의 다른 유물은 남아 있지 않다.”(보르헤스 ‘과학적 정확성에 관하여’)
지도와 근대성
지도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은 어린이용으로 각색된 소설에 나오는 것이다. 이야기마다 차이는 있지만 그 지도는 종종 ‘양피지’라는 종이에 그려져 있었다. 그게 양가죽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은 물론 먼 훗날의 일이다. 종이 위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다. 하지만 촛불에 쪼이거나 약물을 바르면 거기에 감추어진 메시지가 나타난다. 물론 ‘럼주’라는 술을 마시는 해적들이 약탈한 보물을 감추어놓은 장소다. 지도를 들고 그곳에 찾아가 땅을 파보면 해적선의 선장이 묻어놓은 보물 상자가, 그것을 묻으러 왔다가 두목에게 살해당한 불쌍한 졸개들의 해골과 함께 발굴된다.
보물 지도만큼 오래된 기억은 북위 38도선이 그려진 한반도 지도. ‘호시탐탐’ 남침 야욕에 사로잡힌 북괴를 규탄하는 뉴스릴이나 반공영화 속의 이미지다. 남북의 경계가 직선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분단이 매우 인위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아무튼 그 지도 다음으로는 달랑 낙동강 이남만 남기고 적색으로 물든 지도, 국군이 북진하여 압록강까지 파란색으로 물든 지도, 그리고 휴전이 이루어진 직후의 현재의 지도가 이어지곤 했다. 구불구불한 휴전선은 직선으로 된 38도선보다는 덜 인위적으로 보이지만, 그 자연스러움이 전쟁의 산물이었다는 게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길거리에서 보았던가? 어떤 외국인 청년이 세계 지도를 물구나무 세운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청년의 국적은 분명했다. 지도를 물구나무 세우니 저 아래 변방에 있던 호주가 세계의 중심으로 나타난다. 그러고 보니 메르카토르 도법이 결국 근대성의 시각적 반영이라는 포스트모던 지리학의 논쟁이 떠오른다. 구형(球形)을 원통형으로 전개하는 메르카토르 투영법이 높은 위도에 위치한 유럽을 지도상에서 실제보다 더 크게 나타나게 만듦으로써 서구 중심주의 시각을 강화한다는 얘기다. 이를 수정하기 위해 각 지역을 실제 면적과 똑같이 보여주는 지도를 만든 이도 있다.
지도와 탈근대
첫 번째 기억은 ‘지리상의 발견’ 이후 서구의 항해술을 연상시킨다. 신세계에서 오는 금과 은, 동인도에서 실은 사치품들. 그것을 실은 배를 습격하는 해적들의 활동. 주로 항해에 사용된 근대의 지도는 식민주의라는 정치적 필요의 산물이었다. 두 번째 기억은 지도와 영토의 관계를 둘러싼 논쟁으로 연결된다. ‘지도가 영토의 재현이 아니라, 영토가 지도의 산물’이라는 명제가 있다. 가령 중동과 아프리카 국가들의 경계가 직선으로 되어 있음을 생각해보라. 세 번째 기억은 메르카토르 도법에 내포된 근대적 표상, 즉 서구 중심주의에 대한 탈근대적 시각과 관련이 있다. 이렇게 지도는 그저 기술의 산물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역사성, 정치성, 문화성을 내포한 이념적 구성물이다. 포스트모던과 관련하여 ‘지도학’(cartography)의 은유가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것은 이와 관련이 있다. 인문학의 담론에서 ‘지도학’은 주로 기호론의 관점에서 다루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는 주로 지도의 기호학적 성격(동사, 지표, 상징)이나 지도의 언어학적 특성(통사론, 의미론, 화용론)이 문제가 되었다. 포스트모던과 더불어 지도를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가 일어난다. 이제는 지도에 내포된 근대성을 드러내는 것이 담론의 주요한 경향이 된다.
메르카토르 도법에 서구 중심주의를 구현했다는 비판은 전형적인 포스트모던의 수다로 보인다. 자신을 세계의 중심으로 본 게 어디 서구만이던가? 중국도 자신을 세상의 중심이라 여겼다. 메르카토르 도법이 널리 사용된 것은 지도 위에 출발지와 목적지를 선으로 잇고 그 선의 각도에 따라 항해하면 된다는 편의성 때문이지, 거기에 음흉한 이념적 의도가 들어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유럽이 상대적으로 크게 묘사된다는 것도 그저 유럽의 위도가 비교적 높다는 지리적 우연 때문일 거다. 유럽이 적도 근처에 위치했다면 과연 유럽인들이 다른 도법을 채택했을까?
한 가지 기억을 추가하자. 며칠 전 트위터에 사진 하나를 올렸다. 몇년 전 “교회 다 망하면 절 하면 되고”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어느 건물의 사진인데, 한때 교회로 쓰였을 그 건물의 첨탑에는 ‘성불사’라 적혀 있고, 첨탑 끝에 십자가 대신 만(卍)자가 달려 있다. 길가다 우연히 이 건물의 사진을 찍어 트위터에 올렸더니, “혹시 여긴가요?”라며 링크를 건 멘션이 올라온다. 링크를 따라가니 다음(daum)의 ‘로드뷰’로 이어진다. 거기에 들어가는 순간,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찍은 그 건물은 물론이고, 주변의 광경이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카프카의 산문처럼 단 하나의 단락으로 이루어진 보르헤스의 소설(?)은 ‘실물만 한 크기의 지도란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제국의 지도 제작자들은 지도라는 가상을 현실과 똑같게 만들기를 원하나, 사실 지도가 지도로서 기능하려면 실물보다 모자란 부분이 있어야 한다. 지도의 효능은 실물보다 떨어지면서도 실물을 대신한다는 ‘경제성’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실물과 같은 크기의 지도란 일종의 형용모순이라 할 수 있다. 보르헤스의 우화는 아마도 근대과학의 인식론적 이상에 대한 비판, 즉 정확성과 엄밀성을 향한 근대의 강박증에 대한 풍자일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은 보르헤스의 풍자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오늘날 실물 크기의 지도는 가능하다. 과거의 지도가 그것이 놓일 현실의 공간을 요구했다면 디지털 시대의 지도는 굳이 공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이버 공간에서 지도는 무한한 축적과 크기를 가질 수 있다. 가령 ‘구글 어스’와 ‘로드뷰’를 생각해보라. 보르헤스의 소설에서 실물 크기의 지도는 누더기가 되어 짐승과 거지들이 살 뿐이었지만 오늘날 누더기가 된 것은 외려 현실의 공간이 아닐까? 가령 지금까지는 영화를 찍으러 로케이션 헌팅을 다녀야 했지만, 앞으로는 그럴 일이 줄어들 것이다.
반영론에서 화용론으로
그럼에도 보르헤스에게서 취할 수 있는 것은 근대의 인식론에 대한 비판이다. 근대의 인식론은 반영론, 즉 ‘완전한 인식에 도달하려면 세계의 완벽한 모상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완전함의 기준이 무엇인가? 지도는 사용자가 필요한 정보만 담으면 그만이다. 그 이상의 정보는 외려 혼란을 줄 뿐이다. 현실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는 정보를 담은 약도라도, 그것으로 길을 찾는 데 성공한다면 그 자체로 완벽한 것이다. 정확성의 기준이 있다면 그것은 지도를 그린 실용적 목적에서 찾아야 할 거다. 여기서 ‘지도’란 물론 인문사회학적 담론의 은유다.
제국의 지도 제작자가 너무 많으면 지리학 자체는 사라지고 만다. 보르헤스의 우화는 이렇게 끝난다. “온 나라에 지리학 분과의 다른 유물은 남아 있지 않다.”
(편집자 주: 카르토그래피란 지도제작법의 일종으로, 공중에서 내려다본, 옥상의 지붕 부분이 하나의 파사드를 형성하는 방식을 일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