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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순택의 사진의 털]
[노순택의 사진의 털] 고디바와 바디숍 사이의 박근혜
세종로를 걷다가 잠시 멈췄다. ‘바디숍’이 있고, ‘고디바’가 있고, 그 사이에 박근혜가 있었다. 기묘한 풍경이었다. 박근혜는 바디숍을 택할 수 있었고, 고디바를 택할 수도 있었다. 어쩌면 둘 다 선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바디숍만 택했다.
물론 이곳의 ‘고디바’는 벨기에산 명품 초콜릿 제조사의 서울 매장이며, 바디숍은 흔한 화장품 가게일 뿐이다. 그
글: 노순택 │
2016-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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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순택의 사진의 털]
[노순택의 사진의 털] 내 이름은 노숙택
나는 지금 광화문에서 먹고 자고 있다. 일주일째. 집을 나오기 전 은행에서 20만원을 찾아 아내에게 건넸다. 신용카드가 있다지만, 아이들을 키우다보면 자잘한 현금이 늘 필요하다. 나는 우리집 현금 공급책이었다. 이 돈 다 떨어지기 전에 돌아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그랬는데 어느새 일주일이 흐르고 있고, 틈나면 통화를 하면서도 잔액이 얼마인지는 묻지 않았다.
글: 노순택 │
2016-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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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순택의 사진의 털]
[노순택의 사진의 털] 근혜의 말과 유연의 말
1.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에서 ‘엄마 잃은 소년’ 철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안드로메다로 긴 여행을 떠난다. 미지의 여인 메텔과 동행하는 조건으로 특별무임승차권을 얻었다. 안드로메다는 우리 은하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 은하라지만 빛의 속도로도 230만년을 달려야 닿을 수 있다. 우주의 관점에서 가깝다 해도 우리의 관점에선 멀고도 멀다
글: 노순택 │
2016-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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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순택의 사진의 털]
[노순택의 사진의 털] 미래를 잃자 과거를 살해당했네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능력을 아무리 길어올릴지라도 ‘나(너)’는 결코 고통받는 ‘너(나)’가 될 수 없다. 네 고통의 곁에 내가 아프게 선다는 건 서로가 다른 좌표에 있음을 깨닫는 일과도 같다. 하지만 묻자. 그러면 그것은 괴로움이 아닌가, 고통이 아닌가. 치사하게도 사람은 자신이 아플 때 가장 아프다. 당사자의 고통과 공감자의 고통을 비교 측량할 수
글: 노순택 │
2016-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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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순택의 사진의 털]
[노순택의 사진의 털] 영인이의 축구화는 낡았다
프링글스, 야채레시피, 오레오, 오예스, 포카칩, 바나나킥, 콘빠, 땅콩샌드, 딸기웨하스, 칸쵸, 고소미, 빠다코코낫, 크라운산도, 꼬깔콘, 콘칩, 크런키, 오징어칩, 초코하임, 쿠크다스, 제크, 오징어집, 칸츄리콘, 레인보우곰스, 스타팜스, 감귤사랑, 예감, 다르다팝콘, 몸에좋은17차, 다이제스티브, 한라봉제주감귤, 가나마일드, 새우깡, 허니통통, 로스
글: 노순택 │
2016-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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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순택의 사진의 털]
[노순택의 사진의 털] 말하는 옷
2002년 가을, 종로에서 교복 입은 여고생과 마주쳤다. 미선·효순 두 여중생의 영정을 들고 있었다. 알고 보니 대학생이었다. 할 수 있는 일이 이뿐이어서 고교 시절 입었던 옷을 애써 입고 나왔다고 했다. 교복 입은 산 언니가, 교복 입은 죽은 동생들의 얼굴을 들고 선 모습이 눈을 찔렀다. 그 옷은 말이 필요 없는 옷이었다.
2014년 가을, 재판에
글: 노순택 │
201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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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순택의 사진의 털]
[노순택의 사진의 털] 탕 위의 이건희
나는 삼성카드 사용자였다. 어쩌다보니 그랬다. 어쩌다가 현대차를 모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한국 사회에서 보통의 삶을 살며 거대자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가 어디 말처럼 쉬운가. 삼성을 버려도 현대가, 현대를 버려도 LG가 가로막는 재벌세상 대한민국.
나는 삼성카드를 잘라버렸다. 강정마을 구럼비 해안이 산산이 폭파된 후였다. 구럼비에서 뛰어놀던 아이들과
글: 노순택 │
2016-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