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삼성카드 사용자였다. 어쩌다보니 그랬다. 어쩌다가 현대차를 모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한국 사회에서 보통의 삶을 살며 거대자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가 어디 말처럼 쉬운가. 삼성을 버려도 현대가, 현대를 버려도 LG가 가로막는 재벌세상 대한민국.
나는 삼성카드를 잘라버렸다. 강정마을 구럼비 해안이 산산이 폭파된 후였다. 구럼비에서 뛰어놀던 아이들과 구럼비에서 마을의 안녕을 손모아 빌던 마을 어른들의 평화로운 일상을 두눈으로 목격한 기억을 품은 채, 폭약의 굉음과 함께 그 모든 것들이 부서지는 장면을 목도한 자로서 작은 예의를 갖추고 싶었다. 삼성은 강정 해군기지의 몹쓸 강행을 해군만큼이나 주도적으로 밀어붙인 괴물이었다.
삼성은 폭력으로 얼룩진 평택 미군기지 확장사업으로 큰돈을 번 기업 가운데 하나였다. 국책사업이라는 이름 아래 평화롭던 마을의 늙은 농부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고향을 떠났다. 살을 에는 맹추위에 강행된 물대포 진압으로 여섯명이 목숨을 잃은 용산참사의 현장에도 삼성의 검은 그림자는 여지없었다.
2013년 10월의 마지막날, “힘들고 배고팠다”는 유서를 남긴 채 갓난이 별이를 두고 세상을 등진 최종범씨는 삼성전자서비스의 하청 노동자였다. 지금 이 시간, 강남역 삼성 본관 앞에는 삼성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가 희귀병에 걸려 사망한 노동자 76명의 영정과 함께 초라한 농성천막이 서 있다. 삼성이 내세우는 저 위대한 구호 “또 하나의 가족!”에 그들은 포함되지 못했다. 얼마 전 폭로된 이건희 회장의 성매수 사건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잠잠해졌다. 언론은 누구보다 삼성 앞에서 작아졌다. 그러니 경영권 세습 과정의 불법과 탈법을 말해 무엇할까.
며칠 전, 새벽 세시 거제도 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려 방황하던 나와 친구는 돈을 아끼려고 24시간 목욕탕에 들어갔다. 씻는 사람 없는 탕 안에서 이건희 회장을 만났다. 그는 내게 건강한 삶의 ‘욕법’을 권유했다. 땀이 흘러내렸다. 식은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