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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오픈칼럼] 검색 기사 추가요
술자리에서 농담 삼아 말한 적이 있는 얘기다. 깊은 밤 심심할 때면 개인 블로그의 유입 키워드 통계를 보곤 하는데, 뜬금없게도 ‘외숙모 & 섹스’라는 키워드를 접했다. 외숙모에 대한 이야기를 쓴 포스트와 다른 글에서의 ‘섹스’라는 키워드가 동시에 검색 결과로 추출된 모양이다. 그러고보니 민망한 검색어로 호기심을 채우는 동지들이 세상에 여럿 있다는 생
글: 안현진 │
2009-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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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고립과 대결하는 전술
가파르게 다가서는 벽은 숨통을 죈다. 모퉁이 없이 사방이 툭 터진 공간에 나서면 불안하다. 우리는 적당히 숨고 이따금 드러나기를 원한다. 활개치기를 열망하다가도 이내 기댈 곳을 찾는다. 벽은 우리를 보호하는 동시에 막아선다. 상반된 두 욕망의 긴장을 잘 해결한 건축만큼 아름다운 구조물도 없다. 폐소공포증과 광장공포증 사이에서 뒤척이는 우리의 일생은, 각자
글: 김혜리 │
2009-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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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은의 돈워리 비해피]
[최보은의 돈워리 비해피] 나는 게임상의 캐릭터였다
의자가 내게 말을 건 뒤로, 내가 맨 처음 행동에 옮긴 것은 보험을 해약하는 일이었다. “살아야 할 오늘은 있어도 대비할 미래란 없다”는 사실도 사람 아닌 어떤 존재와의 대화를 통해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보험금을 찾아서 어떻게 했느냐 하면, 쇼핑백에 현찰로 담은 다음, 피시방에 가서 원없이 게임을 하고, 낮에는 순두부와 자장면, 볶음밥, 라면,
글: 최보은 │
2009-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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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객잔]
[전영객잔] 야오이로선 함량미달, 폭력은 과잉
소문과 달리, 제목과는 더더욱 달리 <쌍화점>에는 불타오르는 것이 별로 없다. 원래 고려가요에 등장하는 쌍화점도 만두 파는 가게이니…(‘만둣집- 쌍화점- 에 만두 사러 갔더니만 회회 아비 내 손목을 쥐더이다). 고려시대를 재현한 듯한 의상과 세트는 인도의 어느 대도시, 예컨대 뭄바이 등에 들어선 중국 식당처럼 키치하고, 여배우는 일부러 그렇게
글: 김소영 │
2009-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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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영화읽기] 섹스에 압도당한 역사의 관능
<쌍화점>의 오프닝 시퀀스를 기억하는가. 영화는 충에 대해 묻는 어린 시절의 왕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몇몇 소년이 이에 대해 답한 이후, 똘망똘망한 눈빛의 소년이 충이란 왕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라 답한다. 그리고 왕은 늦은 밤 건륭위 숙소에 들러 이불 바깥으로 나온 그 소년의 ‘가녀린 발목’을 덮어준다. 그것도 에로틱하게. <쌍화점&
글: 안시환 │
2009-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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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의 독설]
[김봉석의 독설] 한국영화의 위기는 영화인 책임이다
한달쯤 전인가, 모 영화인이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책에 대해 던진 코멘트를 봤다. ‘말기 암환자에게 항암제가 아니라 진통제를 투여하’고 있다고. 근원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미봉책만 선사하고 있다는 말이었지만, 나는 그 말에서 뭔가 묘한 생각이 들었다. 말기 암환자라면 항암제보다 호스피스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라고. 한국영화가 그냥 팍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
글: 김봉석 │
2009-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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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친구 그의영화]
[나의 친구 그의 영화] 내가 눈여겨본 건 엉덩이가 아니야
<쌍화점>은 정말 좋은 영화였다. 하고 싶은 말은 결국 이거다. 못 만난 지 꽤 오래됐지만, 혹시 만나면 유하 선배라고 부르지 말고 감독님이라고 불러야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본 뒤에 생각이 바뀌었다. 그냥 계속 유하 선배라고 불러야겠다. 변덕이 죽 끓듯 하는 건 우리 집안의 도도한 가풍이다. 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눈여겨본
글: 김연수 │
2009-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