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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객잔] 야오이로선 함량미달, 폭력은 과잉

결국 액션영화의 플러스 재생산으로 끝난 <쌍화점>

소문과 달리, 제목과는 더더욱 달리 <쌍화점>에는 불타오르는 것이 별로 없다. 원래 고려가요에 등장하는 쌍화점도 만두 파는 가게이니…(‘만둣집- 쌍화점- 에 만두 사러 갔더니만 회회 아비 내 손목을 쥐더이다). 고려시대를 재현한 듯한 의상과 세트는 인도의 어느 대도시, 예컨대 뭄바이 등에 들어선 중국 식당처럼 키치하고, 여배우는 일부러 그렇게 캐스팅했는지 특별히 나쁘지는 않은데 모든 면에서 밋밋하다. 액션 안무는 괜찮은데, 정사신 액션 안무는 동성간일 때는 키스에 집중하고(하품 유발!), 이성애간 장면에서는 구태의연하고 억지스럽다. <색, 계>의 기기묘묘한 정사신에 대한 액션적 안무 이후 유사한 장면들은 사실 그 영화와 불가피하게 대조, 대비된다. 그러니 역부족이다. 본격적 게이 섹스는 없었다

<쌍화점>에서 내 시선을 잡은 것은 주진모(고려 왕)가 소년 때부터 조련한 친위부대 건룡위의 호위 수장 무사 조인성(홍림)과의 어딘지 퀴어하다기보다 강압적, 규율적, 회유적인 동성애 관계가 아니다. 제작비 100억원 중 일부를 사용했을 의상과 세트도 아니다. 나는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주진모의 칼이 조인성의 몸을 관통하는 장면이 흥미롭다. 주진모의 칼은 조인성의 몸 한 부분을 그냥 찌르는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통과한다. 무사인 한 남자의 몸을 완전히 결딴낸다.

여기서 이와 유사한 한국 액션영화의 마지막 장면들을 연쇄적으로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친구> <달콤한 인생>을 비롯해 <쌍화점> 감독 유하의 전작 <비열한 거리> 등이 그렇다. 이상하지 않은가? 야오이 혹은 유사 퀴어 소재를 약속한 영화가 액션영화로서의 면모를 그 진상으로 갖다니?

여기서 조인성이 연기한 누구, 주진모가 연기한 누구 대신 연기자 이름을 그대로 쓰는 것은 영화가 이들을 활용하는 방식 때문이다. 그리고 이 배우들이 영화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태도 때문이다. 이들은 홍림과 고려 왕이라기보다는 스타 조인성과 주진모다. 조인성이 직접 해명하는 “내 성정체성에는 문제가 없고요” 등 그를 따라다니는 동성애에 대한 소문은 영화의 의미 방출, 홍보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다. <미녀는 괴로워>에서 미녀를 관리하던 주진모는 36명으로 이뤄진 미소년 친위부대를 관리한다.

<쌍화점>은 퀴어영화가 아님은 물론이고, 조선시대의 유교적 성 관리체계와는 사뭇 달라 보이는 고려의 성에 대한 풍자적, 향유적, 다형적 표출이나 표현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거나 사유하지 않는다. 영화는 이성애 섹스장면이나 폭력장면 묘사에선 과열이지만, 규범적 성의 경계를 위반하는 장에 가선 오히려 조심스럽고 겁을 낸다. 그것이 ‘비정상’이라는 것을 연출이나 편집에서 무의식적으로 드러낸다. 주진모와 조인성의 베드신은 섹스신이 아니라 키스신에 가까운데, 이 장면이 영화에 삽입되는 것은 주진모가 조인성에게 왕비(송지효)와의 동침을 명령하고 나서다. 즉 조인성과 주진모의 동성애에 대한 제시나 암시는 영화 도입부나 홍보 포스터, 인터뷰 등에서 충분히 이루어지지만, 막상 영화에서 두 사람의 베드신은 조인성과 왕비가 벌일 섹스 시퀀스의 앞부분에 외삽되는 방식으로 처리된다. 즉, 본격적 게이 섹스는 없을 뿐만 아니라 영화의 구성상 조인성과 주진모의 베드신은 조인성과 왕비가 만들어내는 섹스장면의 서곡이자 참조이자 방해물로 외삽된다.

왜 감정의 흐름에 공감할 수 없을까

그래서 영화에서 왕과 홍림의 동성애 관계는 예외 중 예외다. 왕은 자신이 “여자를 안을 수 없는 몸”이라고 말하면서도 소년이었을 때부터 자신이 조련해온 홍림은 본인이 명령만 내리면 당연히 이성애적 성행위를 할 수 있다고 상정한다. 미소년 친위대가 있지만 영화에서 묘사되는 고려로 상정된 사회가 이성애 밖의 섹슈얼리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실천하는지를 추론하기는 어렵다. 조정 관리들은 후손이 없다고 난리를 치고 간계를 꾸미면서도 왕과 친위대장과의 관계에 대해선 함구한다. 비이성애적 관계에 대한 관용이나 차이에 대한 인정보다는 그에 대해 묵언, 묵인하는 사회체를 영화 역시 암묵적으로 전제하는 셈이다. 왕비와 홍림의 동침 이후 주진모와 조인성의 관계는 왕비와 조인성의 관계에 어떻게 주진모가 반응하는지와 조인성이 왕비와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되는지에 맞추어 진행된다.

결과적으로 <쌍화점>은 이성애를 그 핵으로 하고 동성애를 외삽으로 구성하면서 여성 관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야오이 장르와 그 밖의 관객을 위한 액션 장르를 혼재시킨다. 야오이에는 별 관심이 없으나 액션과 폭력을 편애할 많은 관객이 쾌락을 느끼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블록버스터영화로서 기획 포인트를 증가한 셈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조인성의 스타성을 제외한다면 야오이 장르로서도 함량 미달이다. 반면 액션과 폭력은 과잉이다. 조인성의 몸은 여자와의 섹스장면에서 특별히 어떤 기교나 기예를 갖춘 것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왕비와 마찬가지로 그도 여성과는 별 경험이 없으며, 앞서 이야기했듯이 그가 당 여자와의 관계에서 어떤 ‘정상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전제된 것도 이성애 중심적 오류다. 욕정과 연모를 구분해 질투하고 질투를 벗고 하는 것도 구태의연하다. 고려시대, 왕의 남자라는 설정은 새로우나 그 새로움을 적극적으로 더 발전시켜나가지는 못한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별 재미도 새로움도 주지 못하는 성애의 세계를 떠나 폭력의 난무로 가보자. 주진모가 연기하는 고려 왕은 사실 흥미로울 수 있는 인물이다. 굳이 정치적으로 말하자면 원나라에 복속 하는 동시에 자신의 신하들을 종속시키는 이중적 지위를 갖는다. 원의 공주를 아내로 맞게 되었으나, 남자를 원하고 왕위를 계승할 친자가 없다.

무예와 음악에 능한 왕은 고려의 요직 관료들이 원나라의 비위를 맞추느라 자신을 노린다는 보고를 받자 건룡위를 동원해 그들을 절멸시킨다. 이후 영화에는 칼로 목을 베거나 가슴을 찔러 피가 솟구치는 장면들이 등장하는데, 점점 살인에 익숙해가는 왕은 대중화된 버전의 연산군을 연상시킨다. 정적들을 제거해 권력은 잡았으나 그는 자신과 홍림의 독점적 관계가 왕비와의 관계 때문에 무너져간다고 의심하고, 질투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왕이라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홍림을 지배하려 든다. 영화의 후반부 이러한 정념과 권력의 복잡한 오케스트레이션은, 그러나 지휘자 없이 흘러가는 연주처럼 들쭉날쭉이다. 그래서 정념과 권력의 다사다난한 굴곡은 비극이나 파토스의 옹이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홍림이 제시하는 욕정이나 연모, 그를 듣고 왕이 해석하는 그것이 홍림과 왕비, 또 홍림과 왕 사이의 감정의 흐름을 이해하게 해주지는 못한다.

늘 끝장을 보는 사도마조히즘

감정 파악이 안되는 대신 영화에서 가장 극렬한 장면은 앞서 이야기한 조인성의 몸을 관통하는 칼이 등장하는 부분이다. 이 영화뿐만 아니라 한국의 액션영화들은 왜 자신의 주인공인 미소년이나 청년들의 몸을 난자하는가? 한국영화의 엔딩 부분에서 자해이기도 하고 가해이기도 한 이 사도마조히즘은 이제 늘 끝장을 본다. <강적> <비열한 거리> 같은 다른 액션영화의 결말과 다른 것은 이 영화에서 조인성이 자신의 스폰서인 왕을 죽인다는 점이다. 흥미로운 점은 다른 영화와 달리 스폰서를 함께 지옥으로 끌고 갈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가 자신의 성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다른 액션영화들에서 꽃미남 조폭들이 스폰서에게 주먹과 충성을 바치다가 난자를 당하는 반면, 홍림은 성과 정서적 돌보기까지 한다. 액션영화의 진화로 보자면 새로운 포뮬라의 추가인 셈이다. 표면적으로 이 영화가 일으키는 사회적 이슈는 섹스장면의 노출 수위 여부나 동성간의 키스지만, 장르적으로 보면 액션영화의 플러스 재생산이다. 동성 사회성의 에로티시즘, 성적 친밀성을 액션영화에 쏟아부은 것이다.

영화가 사실에 시시콜콜 기반한 역사극이 아니고 판타지 사극이라고 해도 나는 이 영화가 고려시대를 우회해 상상하는 정치체를 조선시대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왕과 친위대의 것으로 환원해내는 데 불만이 있다. 식민과 독재를 겪은 사회가 가질 수 있는 역사적 레퍼런스 체계는 이것뿐일까. 최근 그 어느 때보다 ‘민주 공화국’의 공공영역 부문에 대한 급진적 논의가 필요한 때에 역사와 판타지의 경계 공간에서 그 상상력을 길어올릴 수는 없는 것일까? 자학과 피학으로 소진하지 않을 역사와 환상을 불붙게 할 <쌍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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