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픈칼럼]
[오픈칼럼] 이쾌대와 <二人 肖像>
촌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그린 것도 아닌데, 괜히 부끄럽고 화가 났다. 몇년 전 읽었던 한국 근대미술에 관한 책에 실린 도록을 보면서 그랬다는 말이다. 대부분이 초상화였고, 서양의 그것처럼 수세기 동안 단련된 예술가의 역사적 자의식이 배제된 채 기법과 묘사만 성급하게 따라한 그림이 태반이었다. 그래서 사실, 지난해 말부터 시작한 <한국근대미
글: 김용언 │
2009-03-27
-
[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물병은 물병이다
클로드 모네를 수련 중독자라 부르고, 에드거 드가를 발레리나 오타쿠라고 놀리는 무례가 관대하게 용인된다면 이탈리아 볼로냐 출신 화가 조르지오 모란디(1890~1964)는 다음과 같이 불릴 법하다. “그릇을 늘어놓는 100만 가지 방법을 고안한 화가.” 좁다란 테이블 위에 세심히 배치된 호리호리한 물병, 납작한 깡통, 입이 넓은 찻잔 등 갖은 생김새의 용기
글: 김혜리 │
2009-03-27
-
[최보은의 돈워리 비해피]
[최보은의 돈워리 비해피] 지리산의 그 빈집
내 소유의 집이 없으니 천하가 내 집이 되더라는 경험을, 도시를 떠나면서 하게 된다. 정해진 거처가 있는 것도, 돈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아무 걱정이 없었다.
곳곳에 집이 있는데, 그동안 집이 있는 곳에 내가 가려 하지 않고, 내가 서 있는 자리에 집을 끌어오려고 안달복달했던 어리석음을 되새기면서, 룰룰랄라 섬집도 기웃거려보고, 산속의 오두막도 기웃
글: 최보은 │
2009-03-27
-
[영화읽기]
[영화읽기] 브뤼겔을 향한 강한 오마주
*스포일러 있습니다.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며 피터 브뤼겔의 <게으름뱅이의 천국>, 혹은 <장님들의 추락>을 떠올린 적이 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타르코프스키의 <희생>를 보면서도 그랬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이 플롯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지 무척이나 골몰했고, 그 영화의 몇 장면들은 스스
글: 이지현 │
2009-03-26
-
[나의친구 그의영화]
[나의 친구 그의 영화] 우리 다같이 신나게 헤드뱅잉
망각의 삶이라. 지난호 혁 옵바의 칼럼은 그런 절규로 끝났다. 뭔가 신신애스러운, 잘난 사람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 못난 대로 사아아안다를 연상시키는 장중한 내용이었다. 그러다보니까 봄비도 아닌 것이, 하지만 겨울비라고는 절대로 부르기 싫은 뭔가가 하늘에서 떨어지던 어느 저녁의 대화가 떠올랐다. 기자와 과학자와 시인과 소설가 등으로 이뤄진, 매우 통섭
글: 김연수 │
2009-03-26
-
[기어코 찾아낸 풍경]
[기어코 찾아낸 풍경] 그곳에 올라 서울을 보니…
얼마 전 모기업의 기업PR TV CF를 촬영하기 위해 서울의 여기저기를 헌팅했다. 컨셉은 ‘발전된 대한민국’의 한컷을 찾는 것이었다. 1천만명이 넘는 인구가 사는 수도 서울. 어머어마한 인구를 수용할 만큼 넓은 땅을 가지진 않았지만 63빌딩만큼이나 하늘 높이 쌓아올린 집들 덕분에 아직 400만, 500만명은 족히 수용이 가능한 거대도시 서울의 랜드마크를 찾
글: 김태영 │
2009-03-25
-
[그 액세서리]
[그 액세서리] 두근두근, 하이힐 롱부츠
앗! 다시 봄인가 싶을 때 생각나는 영화가 <호텔 슈발리에>다. 봄의 감정은 누가 뭐래도 ‘두근두근’이고 웨스 앤더슨이 쓴 우편엽서 같은 이 영화야말로 ‘두근두근’의 결정체다. 부분이 예뻐야 전체가 예쁘다는 걸 아는 스타일리스트답게 12분55초의 필름 안에는 앤더슨풍의 어여쁜 디테일이 즐비하다.
영화의 도입부(랄 것도 없지만 어쨌든 초반부),
글: 강지영 │
2009-03-25